Artists and P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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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15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예로부터 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현대에는 미술가뿐 아니라 건축가, 디자이너도 반려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재기 발랄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랑스러운 동물에게서 영감을 얻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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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와 일본의 예술가들

아티스트는 세상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반려동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아티스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반려동물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험한 세상 속의 피란처와 같은 위안을 준다. 뉴욕과 상하이에서 반려동물에게 영감을 받은 미술가의 흥미로운 작품 전시가 있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발튀스: 고양이와 소녀들-회화와 도발(Balthus: Cats and Girls – Paintings and Provocations)>, 그리고 상하이 히말라야 뮤지엄의 <개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Dogs)>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발튀스(Balthus)의 작품 ‘미추(Mitsou)’ 시리즈는 발튀스가 10대 시절에 발간한 책에 수록된 것으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떠난 모험을 그린 40컷의 잉크화다. 작은 고양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발튀스는 자서전을 통해 언제나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발튀스는 사춘기 소녀의 에로틱한 그림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소녀는 그의 동경의 대상이고 소녀와 함께 있는 고양이는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www.metmuseum.org).
상하이 히말라야 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개를 위한 건축>은 2012년 미국 아트 바젤 &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첫선을 보인 일본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세계 순회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하라 겐야가 예술감독을 맡아 본인을 비롯해 총 13개 팀 아티스트가 창작한 개를 위한 디자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것은 홈페이지(architecturefordogs.com)를 통해 작품의 디자인 도면을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람과 동물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배려한 아티스트들의 마음 씀씀이가 놀랍다. 하라 겐야 예술감독은 유감스럽게도 요즘은 개를 키우지 않지만 그가 선보인 작품은 티컵 푸들을 위한 계단 ‘D-터널(D-Tunnel)’이다. 사람이 아니라 개의 관점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건축가 나이토 히로시는 스피츠를 위한 ‘도그 쿨러(Dog Cooler)’를 통해 이제는 세상에 없는 반려견 페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승화시켰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페페는 여름철이면 너무 더워서 바닥에 축 늘어져 있곤 했는데, 나이토 히로시는 만약 페페가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그래서 페페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나무와 쇠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곡선 위에서 강아지가 시원하고 안락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털이 복슬복슬한 반려견의 주인이라면 이 작품 도면을 참조하시라.
오랫동안 곁에서 가족과 친구로서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뜨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미술가 이불은 도쿄 모리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사랑하는 진돗개의 마지막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미술가 김병종은 하늘나라로 간 자신의 반려견 자스민을 그린 작품집 <자스민, 어디로 가니?>를 발표했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김창일 회장(CI KIM)도 11월 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CI KIM_THE ROAD IS LONG>을 통해 반려견 짱아를 추억하는 드로잉 작품을 몇 점 선보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짱아를 통해 아티스트는 생명의 덧없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www.arariogallery.com). 이렇듯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들은 살아생전 아티스트에게 사랑을 주고, 죽어서는 영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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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작가의 ‘쿠마’ 사진 조각 시리즈
미술가 권오상은 주위 사람들을 모델로 사진 조각 ‘데오도란트 타입’을 만들어왔다. 친구와 가족, 가수, 배우, 패션 모델, 그리고 반려동물도 기꺼이 그의 피사체가 된다. 그는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반려동물 사진 조각을 선보였다. 부모님이 키우는 개의 모습을 사진 조각으로 표현해 전시했고, 이후에는 친구들의 강아지와 같은 품종의 개를 작품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키우는 사랑스러운 고양이 쿠마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여러 점 선보였는데, 실제 쿠마는 그레이 컬러의 고양이인데 브라운 컬러 작품도 있어 의아했다. 이는 권오상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서 비롯된 차이점이다. 그는 실제 고양이를 촬영해 사진 조각으로 만들거나, 인터넷에서 찾은 고양이 사진을 프린트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브라운 컬러의 고양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출력해서 만든 쿠마의 또 다른 창조물인 셈이다. ‘우마(Uma)’라는 작품도 사랑스러운데, 우마는 작가의 동생이 키우는 페르시안 고양이다. 작가는 쿠마 작품이 2012년 열린 개인전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개인전 중 ‘흉상들’이라는 작품에서 친구들의 흉상을 만들어 한꺼번에 전시했더니 예상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졌다는 것. 그래서 쿠마와 타조, 표범, 미어캣의 흉상을 만들어 같이 설치했더니 분위기가 훨씬 유쾌해졌다고 한다. 작가의 귀여운 고양이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에도 등장했다. 사진 조각 ‘나무’의 고양이들은 작가의 고양이와 친구들의 고양이다(www.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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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김지평과 이경미의 고양이들

미술가 김지평은 고양이가 등장한 그림으로 그림책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비룡소)를 만들었다. 첼리스트 정명화가 자신의 딸 꽃별과 꽃샘의 어린 시절에서 유래된 이야기를 쓰고, 김지평 작가가 그림을 그려 가나아트센터에서 원화 전시회도 가졌다. 작가는 그림책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페이지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토라를 등장시켜 감동을 극대화했다. 그림 속 고양이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곁에서 항상 작은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토라가 작가 곁을 묵묵히 지키는 가족이자, 작가에게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미술가 이경미는 그간 발표한 고양이 그림 작품을 모은 저서 <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다>(샘터)를 발간하기도 했다. 작가의 작품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 나나, 쥬디, 바마, 랑켄이 등장하는데, 고양이들은 그녀를 상징하는 자화상이자 오랜 친구, 사회의 소수자, 기피 대상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구성원의 다양성이나 소수의 가치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동물도 하나의 생명체이며 약자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약하다. 작가는 말 못하는 동물의 권리도 배려해주는 사회라면 당연히 소외 계층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의식이 확립된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다수를 위해, 인간을 위해, 권력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그림에 담겨 있는 셈이다. “강아지들도 키우고 있으며 무척 사랑하지만,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나의 작품을 보고 고양이를 그리는 의도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합니다. 기성세대에게는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뜯고 충성심이 없는 요물일지 몰라도, 한때 힘든 나날을 보낸 나에게는 우주를 관조하듯 마음에 위로를 준 존재가 바로 이 고양이들이었다는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반려동물인 나나에게 아무래도 큰 애정이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직후 우리나라가 IMF로 힘들 때부터 함께했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나나의 깊고 맑은 파란 눈동자를 보며 이해받고 있음을 느꼈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안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 랑켄이 하늘나라로 갔는데,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나이 많은 나나와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 있고 싶어 최근 미국으로 나나를 데리고 왔다. 그렇다고 미술가들이 고양이만 편애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마라너(Weimaraner)종의 개를 촬영해 의인화하는 미국의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먼(William Wegman)의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 퐁피두센터 소장품전 <비디오 빈티지: 1963~1983>전에서 그의 초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의 집에는 여러 마리의 바이마라너 개들이 뛰어놀고 있으며, 작가는 매일 그들을 관찰하며 작품을 만든다.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닥스훈트를 키웠는데, 얼마나 반려견을 사랑했는지 많은 작품을 그렸고, 저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도그 데이스(David Hockney’s Dog Days)>도 발간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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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에게 가구를 허하라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려동물 가구 디자인 브랜드 ‘엠펍(Mpup)’을 론칭했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그 하우스’ 소파,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하는 ‘펫 하우스’, 소파의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쉐어드 소파’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반려견 볼트와 함께 살고 있는 작가는 반려견과 디자인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이야기 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끼는 직업입니다. 그 대상이 말 못하는 반려견이기에 더욱 특별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있을까요? 다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은 소통을 위해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승지 작가는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라는 명언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작은 생명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내가 펫 퍼니처를 디자인하게 된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작은 인식의 변화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www.munseungji.com).
시베리안 허스키 초록이와 함께 사는 김현주 디자이너는 개집과 스툴(의자)을 결합한 작품 ‘해필리에버’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작가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자신의 반려견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정도로 매력적이다. 해외 디자이너들 역시 애정을 담은 개집을 선보이는데, 디자이너 멜리사 리베라(Melissa Rivera)가 반려견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개집을 보시라.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반려견 브랜드 ‘언리시 스튜디오(Unleash Studio)’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www.unleashstudio.com).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반려동물은 소중한 존재다. 스티브 J & 요니 P는 타쉬, 래쉬, 쭈쉬라는 길고양이 세 마리를 입양해서 키우는데, 새로 론칭한 남성복 레이블 이름을 ‘타쉬’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가엾다는 마음으로 집에 데리고 온 고양이들이 이제는 가족이 되었고, 유기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고양이 프린트가 인상적인 ‘트렁크(TRUNK)’ 라인의 ‘마이 어도러블 캣(My Adorable Cat)’ 제품의 수익금 일부를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은 2009년 F/W에 처음 발표해서 지금까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도그 맨투맨 스웨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뉴욕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덕분에 그의 반려견 갈색 푸들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처럼 아티스트들의 반려동물들이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굶주리고 학대당하는 동물들이 떠올라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열 살짜리 요크셔테리어 쿠키와 함께하며 에너지를 얻고 있는 필자 역시 그로부터 이 기사에 대한 영감을 얻었으니, 가엾은 동물에 대한 대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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