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 2025
글 고성연
작금의 비엔날레의 홍수 속에서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술을 소개하겠다는 포부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누군가의 우위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데 의의가 있지 않겠는가. 샤르자 비엔날레의 강점은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들과 손잡고 2백 점 넘는 신작 커미션(올해 기준)을 내놓을 정도로 풍부한 콘텐츠, 그리고 협업 과정에서 병렬적인 소통이 이뤄졌다는 평이 나온다는 점이다. 비엔날레 오프닝 주간에 큐레이터, 작가, 저널리스트 등 이 생태계에 속한 여러 영역의 다국적 관계자들이 도심과 사막, 해안가를 수놓은 다양한 전시 공간을 오가면서 서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SB16에 신작 커미션 작품을 선보인 한국계 작가 2인을 만나봤다.
#사유를 품고 나래를 펼치는 매혹의 조형, 제이디 차(Zadie Xa)
현대미술가 박찬경의 만신 김금화를 내세운 작업을 접한 적이 있다. 어째서 토속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가 쓴 글이 담긴 도록을 봤는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가톨릭 집안의 고층 아파트 주민에게 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전통 종교 문화는 애초부터 낯선 것’이라는 대목에서 ‘공감’ 어린 고개를 끄덕이다 결국엔 ‘우리 것’에 대한 외면을 자성하게 됐다. 특히 “미루면 미룰수록 점점 더 엄숙한 얼굴로 떠오르고, 결국 치우지 않은 돌에 걸려 넘어지듯 언젠가 후회하게 될 그런 것”이라고 했던 대목에서. 흥미롭게도 캐나다 밴쿠버에서 나고 자란 제이디 차(Zadie Xa, b. 1983)는 우리 다수가 일삼아온 ‘전통에의 외면’을 곱씹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민자 2세로 자라면서 정체성을 고민했던 그녀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민담, 설화, 전설 등을 접하고 매혹됐는데, 훗날 작가로서 그에 영감받은 캐릭터를 작품에 등장시킨다. 예컨대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렸던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에서 구미호를 미모의 사기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지혜로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전 부적처럼 행운을 가져다준거나 보호해주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요.” 샤르자에서 만난 제이디 차는 1천 개의 황동으로 만든 종(bells) 설치 작업을 가리키며 “(액을) 막아주지만 동시에 장난스럽게 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적 샤머니즘이 익숙하지 않았을 환경에서 자란 제이디 차는 어째서 이런 주제에 주목하게 된 걸까? 그녀는 30대 초반에 본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1977)>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속 무속인 캐릭터는 K-컬처 같은 대중문화에서 접하는 가녀린 동양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국 여자들을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회화를 할 때는 인물을 비롯해 그녀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구상으로 선보인 데 반해, 이번 비엔날레에는 한동안 작업을 힘들어하다 밴쿠버 여행에서 영감받아 완성했다는 아름다운 추상 회화도 첫선을 보였다. 몽환적 색조의 회화와 조각, 사운드 작업이 어우러진 그녀의 전시 공간은 기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1 샤르자 비엔날레(SB16) 오프닝 주간에 알 함리야(Al Hamriya) 스튜디오에서 만난 제이디 차 작가와 그녀의 신작 회화 작품.
2 Zadie Xa with Benito Mayor Vallejo, ‘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 Your Ancestors Are Whales, and Earth Remembers Everything’, 2025. Courtesy of Thaddaeus Ropac.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16, Al Hamriya Studios, Sharjah, 2025. Photo by Danko Stjepanovic
2 Zadie Xa with Benito Mayor Vallejo, ‘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 Your Ancestors Are Whales, and Earth Remembers Everything’, 2025. Courtesy of Thaddaeus Ropac.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16, Al Hamriya Studios, Sharjah, 2025. Photo by Danko Stjepanovic
#일상성과 우리네 ‘숭고’가 맞닿는 지점들, 김상돈(Sangdon Kim)
베를린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한 김상돈(b. 1973) 작가는 지역 연구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장인들과 협업하고 워크숍도 진행하며 지식과 내공을 쌓았다. 일부러 전통과 현대를 잇는 연결 고리를 찾는다기보다 그 과정에서 체득한 것들을 유기적으로 풀어놓는다. 그가 지난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담아낸 신작 ‘행렬’은 진도의 전통 장례 문화인 ‘다시래기’를 모티브로 삼았고, ‘카트’는 세심하게 만든 남도 꽃상여를 실제로 마트 같은 쇼핑 공간에서 쓰는 카트 위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당시 공식 후원 업체인 이탈리아 섬유 기업이 제공한 슈퍼카 내장재로 쓰이는 고급 원단에 ‘지옥에서 온 부적’을 과감히 그려 넣었다. 팬데믹이 지구의 일상을 강타한 시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치유를 불러오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유쾌하게 버무려낸 작품들이다. 우리 조상의 근원에 맞닿아 있고 한국인의 영혼에 내재된 샤머니즘은 그의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렇듯 카타르시스를 불러오는 대안적 방안이 된다. 올해 샤르자 비엔날레에서는 꽃상여가 아니라 ‘단청’을 활용한 형형색색의 나무 조각으로 구성된 ‘숲(Forest)’이라는 신작 커미션 작품을 선보였다(샤르자 문화 예술 지구에 자리한 캘리그래피 뮤지엄 소재). 알록달록한 색조가 절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작업 역시 작가의 연구에서 비롯된 창조물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전시장(Bait Al Serkal)에 소개된 김상돈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은 ‘알이 보낸 밤(Eggs that has spent the night)’(2022~2023)이라는 제목의 유리공예 작품 시리즈다. “저는 우리한테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원형적인 심벌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게 ‘알’로 표현된 거죠. 경상남도나 전라남도에서는 알 모양의 항아리로 무덤을 만들기도 했다고 해요. 타임캡슐처럼 말이죠.” 커다랗고 매끄러운 알에서 느껴지는 뭔가 ‘기복적인’ 염원은 그 받침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달걀판에 알이 스스럼없이 서 있는 모양새라니.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의 거대한 기억을 다시 요리해서 먹을까?”라는 그다운 위트가 곁들인 설명이 돌아온다.
여기서 멀지 않은 전시장(Bait Al Serkal)에 소개된 김상돈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은 ‘알이 보낸 밤(Eggs that has spent the night)’(2022~2023)이라는 제목의 유리공예 작품 시리즈다. “저는 우리한테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원형적인 심벌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게 ‘알’로 표현된 거죠. 경상남도나 전라남도에서는 알 모양의 항아리로 무덤을 만들기도 했다고 해요. 타임캡슐처럼 말이죠.” 커다랗고 매끄러운 알에서 느껴지는 뭔가 ‘기복적인’ 염원은 그 받침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달걀판에 알이 스스럼없이 서 있는 모양새라니.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의 거대한 기억을 다시 요리해서 먹을까?”라는 그다운 위트가 곁들인 설명이 돌아온다.
1 김상돈(Sangdon Kim), ‘Forest’, 2024. Commissioned by Sharjah Art Foundation.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16, Calligraphy Square, Sharjah, 2025. Photo by Ali Alfadly
2 Sangdon Kim, various works from ‘Egg that has spent the night’, 2022~2023.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16, Bait Al Serkal, Sharjah, 2025. Photo by Danko Stjepanovic
2 Sangdon Kim, various works from ‘Egg that has spent the night’, 2022~2023.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16, Bait Al Serkal, Sharjah, 2025. Photo by Danko Stjepanovic
01. SB16_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 2025: to carry_30년 넘는 여정 속 공고히 자리 잡은 예술의 메카 보러 가기
02. Interview with 후르 알 카시미 샤르자 미술재단 대표_‘샤르자’ 브랜드를 세상에 각인시킨 변화의 리더십 보러 가기
03. Artist in Focus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