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the Sur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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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 2022

글 고성연

영어로 ‘surreal’이란 표현은 대개 ‘믿기지 않는, 꿈 같은, 비현실적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팬데믹이 장악한 지난 2년의 시간도 때때로, 좋지 않은 맥락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우주여행을 넘볼 정도로 과학기술이 진보한 21세기에 마스크 조각을 걸쳐야만 다닐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그야말로 ‘surreal’하지 않은가. 1세기 전으로 돌아가, 근대 문명의 가파른 발전을 등에 업고 가공할 무기로 대량 살상을 초래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초현실주의(surrealism)가 저항적으로 등장한 이유를 절로 납득할 수 있게 해준다. 때마침 국내외에서 초현실주의를 키워드로 삼은 미술 전시가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자고 주장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외침은 지금처럼 상상력과 지혜가 요구되는 절박한 시기에 더 진한 울림을 자아낸다.




“나는 꿈과 현실, 이 두 상태가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미래에는 일종의 절대적 현실, 말하자면 초현실로 용해될 것이라 믿는다.”_by 앙드레 브르통(1924)




꿈을 그리고 무의식적인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흔히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몽환적인 그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 사조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근간은 문학이었다. 1920년대 초 파리의 실험 문학에서 출발했고 ‘초현실주의’라는 단어를 만든 인물도 당시 파리 문화 예술계를 주름잡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이자 생태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설명을 빌리자면 ‘삶의 방식 전체’를 가리키는 철학 개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마그리트와 호안 미로 같은 전혀 다른 종류의 예술가가 한 우산 아래 함께 활동하는 사례가 나온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기존 체제에 대한 혐오로 합리주의와 이성적 인간상에 등을 돌린 다다이즘(1916년부터 1920년대 초까지 전 유럽을 휩쓴 운동)에서 파생됐는데, 일부 다다이스트는 극단적인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면서 악순환을 탈피할 수 있는 보다 진지한 행보를 부르짖었다. 그중 핵심 인물이 초현실주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다. 파리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자신과 지지자들의 생각을 모아 일종의 선언문 형식으로 내놓기에 이른다.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Manifeste du Surre´alisme)’이다. 그는 사전적 정의도 내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현실주의: 명사, 순수한 상태의 정신적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 이성이 가하는 그 어떤 통제도 없이, 그 어떤 미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고려도 없이, (말이나 글이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사고의 실제 기능을 표현하는 것.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브르통은 당시 <꿈의 해석>을 출간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알고 있었고, 꿈과 환각 등 무의식 세계가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현실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브르통과 그 친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동기술법을 실험했는데, 무의식에 접근하는 도구로 강령회, 집단 최면, 환각제도 동원됐다. 이렇듯 문예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미려하거나 인상적인 화풍에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요소를 갖춘 시각 예술이 주축이 될 만큼 초현실주의는 빼어난 미술가를 여럿 배출했다.



초현실주의 거장들 A SURREAL SH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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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에서는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 책자를 비롯해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등 여러 예술가의 실험적 출판물을 실물로 접할 수 있다(오는 3월 6일까지). 사실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관련된 각종 서적이나 팸플릿, 스케치 같은 문헌은 귀중한 사료이고 누군가에게 영감 넘치는 작품이 될 테지만, 이번에 바다를 건너온 쟁쟁한 미술 작품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항구도시 로테르담에 자리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뮤지엄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내실 있는 초현실주의 컬렉션으로도 유명하고 일찍이 마그리트와 달리 회고전을 여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기획전에도 공을 들였다. 이번 기획전에 이 미술관의 소장품 중 전시명처럼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대표작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마그리트, 달리, 미로, 만 레이처럼 미술 애호가가 아닌 대중도 알 만한 이름뿐 아니라 폴 델보,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다양한 초현실주의 계보의 작가들이 소개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또 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에일린 아거, 레오노라 캐링턴, 우니카 취른 같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이기도 하다. ‘쌍둥이 자리는 과수원에 있습니다’(1947)라는 작품 한 점을 선보인 레오노라 캐링턴은 영국 부유층 출신으로 막스 에른스트와 사귀면서 고국의 사교계를 탈출해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멕시코로 거주지를 옮겨 그곳에서 평생 그림과 글을 창작하며 장수했다. 그녀가 글과 삽화를 맡은 동화책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라는 제목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는 2월 말부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도 대규모 초현실주의 전시가 열릴 예정인데, 1920년대 파리의 아트 신에 집중하는 데서 벗어나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초현실주의의 발자취를 글로벌 차원에서 폭넓게 조명할 예정이라고.



SALVADOR DALI 살바도르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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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에는 스페인이 낳은 자타 공인 천재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주요 작품, 이를테면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1936)라든지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1936) 등이 눈길을 잡아끄는데, 그의 독보적인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달리 회고전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반대로 워낙 유명세 있는 달리를 계기로 다른 초현실주의 계열의 전시나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수도 있지만). 오는 3월 20일까지 펼쳐지는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전은 달리의 고향이기도 한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품을 모아온 야심 찬 기획전으로 국내에서 개최된 달리 회고전으로는 최대 규모다. 양쪽 수염 꼬리가 올라간 연출적인 인물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달리는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갈구하는 예술가였다.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그는 강박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기상천외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면서도 거의 평생에 걸쳐 천재적인 화가로도 인정과 주목을 받은 ‘슈퍼스타’ 작가였다. 초현실주의 그룹에 속했지만 나중에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것도 그의 성향을 볼 때 당연한 행보로 여겨진다. 이번 DDP 회고전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영화, 사진, 연극, 패션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그의 왕성한 활동을 두루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총 1백40여 점). 피카소에 뒤지지 않은 동시대 최고의 작가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자뻑’ 성향이나 파티로 점철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래서 앙드레 브르통이 그의 이름 철자를 바꿔 ‘돈에 환장했다’는 뜻에서 ‘아비다 달러(Avida Dollars)’라고 비꼬아 부를 정도의 탐욕도 그렇고, 그의 뮤즈이자 파트너였던 여인(갈라)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도 그렇고 달리는 여러모로 참 흥미진진한 캐릭터다. 이번 전시에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던 그의 말년과 사랑의 귀결에 대해서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그의 생마저 ‘연극적’이라 인상적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감탄할 만큼 출중한 실력이 뒷받침된 덕분일 테지만.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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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1887~1985)은 앙드레 브르통이나 만 레이처럼 초현실주의 진영에서 활약하거나 간접적으로라도 세를 보탠 인물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도 특정 사조로 분류되는 걸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꿈꾸는 듯한 세계를 표현하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시각언어 덕분에 초현실주의적인 화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현재 서울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샤갈 특별전>은 동유럽 유대인 출신의 ‘경계인’으로서 작가의 면모를 다룬 전시라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물론 ‘Chagall and the Bible’이라는 부제만 보고 성서를 소재로 한 종교 전시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샤갈이라는 예술가의 삶과 작업에서 성서적 모티브와 신앙은 중추적이며, 단순히 종교화로 정의할 수 없다. 그가 노년기에 여생을 보낸 남프랑스에 있는 국립 샤갈 미술관을 좋은 예로 꼽을 수 있는데, 이 미술관은 ‘성서 미술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구약성서 연작으로 채워져 있다. 러시아의 소도시 비테스크의 유대인 게토에서 태어나고 자란 샤갈에게 ‘신앙’은 아주 중요한 삶과 예술의 원천이었다. 당시 동유럽 유대인들은 도피적이고 금욕적인 거룩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인 채 현실의 기쁨을 누리는 ‘일상의 신성화’를 추구하는 하시디즘의 영향을 받았는데, 샤갈도 그러했다. 시인이기도 했던 샤갈은 성서야말로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했고, 구약에 담긴 많은 스토리에서 ‘인류애’를 끄집어냈다. 러시아혁명,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첫 부인을 잃고도 예술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열광적으로 타오르는 희망’이라는 하시디즘의 정수가 그의 기저에 자리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4m에 이르는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을 비롯해 2백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4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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