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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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1, 2021

글 고성연 | 이미지 제공 현대자동차,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Hello, Robot.>展_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디자인이 우리네 일상을 둘러싼 혁신에 대한 것이라면, 이제 로봇공학은 당연히 그 영역에 들어갈뿐더러 다각도로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 마땅한 주제다. 로봇은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어느새 우리 곁에 깊이 파고든, 지구촌의 ‘동거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 얼마 전 부산에 상륙한 <헬로 로봇, 인간과 기계 그리고 디자인>展은 인공지능(AI)과 비대면 서비스가 주목받는 코로나19 시국이라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류의 불가피한 동행자가 된 로봇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여러모로 곰곰이 생각해보고, 인간의 정체성 자체에 대해 곱씹어보게 하는 콘텐츠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웰메이드 디자인 전시가 부족했던 상황이라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기도 하다(오는 10월 31일까지 무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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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은 기계도 의식이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믿음의 도약을 하고 싶다. 기계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추는 순간,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믿음이다.”_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기계들의 지적 능력이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 단계, 다시 말해 ‘기술적 특이점’에 관련된 이론의 권위자인 미래학자이자 발명가, 기업가 레이 커즈와일. 그가 주장한 대로 특이점이 도래하는 시점이 2045년 전후에 찾아와 궁극적으로 ‘디지털 불멸’까지 가능할지 여부를 알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인공지능(AI)과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는 눈부시게 빠르고 우리 삶은 그로 인해 아주 많은 변화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치 영화에서처럼 고도의 지적 능력은 물론이고 겉모습까지 그럴듯한 로봇이 다양하게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과학 저술가 케빈 캘리의 말처럼 로봇은 이미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지만, 조만간 좀 더 시끄럽고 영리한 녀석들이 나타나 인간의 삶을 흔들어대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8월 3일 부산 망미동의 복합 문화 공간 F1963 내에 자리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막을 올린 <헬로 로봇, 인간과 기계 그리고 디자인>展은 이처럼 현대사회가 직면한 로보틱스 기술에 얽힌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2백여 점의 다양한 볼거리를 펼쳐놓은 이 전시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비트라(Vitra)’는 유서 깊은 스위스의 명품 가구 브랜드로, 스위스 바젤과 멀지 않은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디자인·건축계 성지와도 같은 복합 공간 비트라 캠퍼스를 두고 있다. 캠퍼스 내 에 자리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것으로, 가구 컬렉션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건축, 예술, 일상 문화와 디자인의 관계, 미래 기술과 모빌리티 등의 주제도 진지하게 다뤄왔다. 이 중 오스트리아의 디자인 뮤지엄 MAK 등과 손잡고 2017년 선보인 <Hello, Robot.> 전시는 유럽 여러 도시를 거쳐 순회전으로 꾸려지다가 마침내 부산에 도착했다.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관련된 14개 질문을 던지는 4개의 비트라 주제관에 더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등 첨단 로봇 기술 투자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나선 현대자동차의 로보틱스 기술을 엿볼 수 있는 2개 관이 추가됐다. 로버트 태권V가 존재감 있게 자리 잡은 전시장 입구에 내건 첫 번째 질문. ‘로봇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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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1_과학과 상상(Science and Fiction)
로봇에 대한 첫 경험은 무엇입니까? / 우리는 정말로 로봇이 필요할까요? / 로봇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 로봇은 우리의 친구일까요, 아니면 적일까요?

사실 ‘필요성’을 운운하는 건 뒤늦은 질문일 수 있다. 현대인 대다수는 ‘로봇’이라고 하면 <스타워즈>의 R2D2나 <월E>의 월E 같은 영화 속 캐릭터를 떠올릴 정도로 대중문화가 선사한 ‘이미지’에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는 이미 로봇이 도처에 스며들어 있다. 1관에 전시되어 있듯, 드론에서 셀프 계산대, 나노 로봇, 로봇 청소기, 쇼핑용 챗봇 등 아주 다양한 로봇과 로봇 시스템에 둘러싸여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정의한 ‘의식을 가진 뇌’로서의 ‘마음’을 품은 초지능 로봇 수준에 아직 이르지는 못했을지언정 말이다. 전시 큐레이터는 불과 10년여 전만 해도 ‘인간에게 정말로 스마트폰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아니다’라는 답을 했다고 지적한다. 1관에 전시된 에릭 피커스길의 사진 작품 시리즈 ‘제거’(2014)가 보여주듯 우리는 이미 ‘기술 중독’의 현실을 살고 있다. 스마트 기기 부재 시 인간이 저도 모르게 취하는 행동을 포착해낸 이 작품에서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빈손에도 여전히 ‘폰’을 잡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공허한 시선을 보이는 모습이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렇게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 것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아바타’ 같은 각자의 로봇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Room 2_업무 프로그램(Programmed for Work)
로봇이 여러분의 직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러분 자신이 생산자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로봇의 부상>의 저자 마틴 포드는 20세기의 기술 발전 덕에 쾌조를 보였던 생산성 향상과 임금 상승의 공생 관계가 1970년대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반세기에 해당하는 미국 경제의 ‘황금기’에는 공생의 경향이 뚜렷해, 새로운 일자리는 과거의 직장보다 더 나은 일자리로, 수준 높은 기술을 요구했고 임금도 더 높았는데 후반기로 향하면서 이 같은 선순환 기조가 꺾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21세기 들어서는 최초 10년간 새로운 일자리가 전혀 창출되지 않았고, 이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3D 프린팅 기술로 원하는 형태와 소재의 가구를 만들고, 산업로봇을 활용해 도시를 가로지르는 다리까지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실제로 2관에서 선보인 작업으로, 요리스 라만의 암스테르담을 가로지르는 강철 다리 건설 작업인 ‘MX3D’ 다리 프로젝트가 있다) 기계 자체가 근로자로 변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저 직업을 잃을까 봐 두려워해야만 하는 걸까? 심지어 예술가나 영화감독처럼 창조적인 일을 하는 영역에서도 ‘로봇 대체’가 가능할까? 여러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지만, 이 지점에서 케빈 캘리의 조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로봇이 우리 일을 떠맡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일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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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3_친구와 조력자(Friend and Helper)
스마트 도우미에게 얼마나 의존하길 원하십니까? / 로봇의 보살핌을 받길 원하십니까? / 물건이 감정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존재의 죽음과 환생을 믿으십니까?

‘리얼돌’ 이나 ‘섹스 로봇’ 같은 상품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이미 스마트 디바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간단하게는 낯선 여행길에서 안내를 받고, 생일 알람을 설정하고, 실시간 정보를 제공받는 일상 풍경을 생각해보라. 일례로 최근 희소식을 전한 도쿄올림픽의 양궁 선수들도 현대차그룹의 인공지능 비전 기술로 자세와 약점을 분석해주는 ‘AI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강도를 좀 높여보자면 로봇은 인형처럼 생긴 가짜 베이비시터의 모습을 띨 수 있다. 또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같이 쇼핑하고, 노인과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극단의 예로는 3관에서 소개한 댄 첸의 영상 작품 ‘생애 말기 돌봄 기계’(2012)를 들 수 있는데, 삶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상처받기 쉽고 개인적인 경험인 ‘죽음의 순간’에도 자동화에 의존하는 사회의 단면을 그린다. 사망 직전 환자 곁에서 AI가 속삭인다. “나는 마지막 순간 로봇입니다. 나는 당신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립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금 여기에 올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있습니다.” 지구를 떠나더라도 지인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보듬는 AI의 ‘손길’ 속에서 환자는 미소를 띤 채 세상을 뜬다(AI의 인간다운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인격을 부여하는 ‘일라이자 효과’에 다름 아니다). 지능형 로봇에 대한 의존도가 극심한 풍경이 슬프긴 하지만, 마치 ‘친구’처럼 선의의 보살핌을 건네는 존재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관계’를 맺게 되면 결국 로봇의 상실 역시 우리를 아프게 하리라는, 영화 <서복> 같은 시나리오가 절로 떠오른다.



#Room 4_융합(Becoming One)
로봇 안에 살 수 있을까요? / 당신은 본래의 타고난 것보다 더 나아지길 원하십니까? / 로봇이 진화를 앞당길 수 있을까요?

티타늄 소재의 다리를 박는다면 그저 기계적인 보조 장치지만, 그 안에 정교한 지능 칩이 심어져 있어 내 몸의 다른 부위까지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면? 4관에서 소개한 ‘사이보그 형사’ 가제트처럼 말이다. 심신에 무리만 가지 않는다면 노쇠한 육체에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더 나아가 뇌의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자연스럽게 ‘로봇이 내 안에 사는 건지, 내가 로봇 안에 사는 건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것 같다. 주인공이 죽기 전에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해 다시 살아나는 내용을 담은 영화 <트렌센던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바로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디지털 불멸’, ‘디지털 영생’이 가능해지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현재로서 확실한 건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면 신체적 장애에도 인공기관과 삽입형 칩의 도움으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반면, 이렇듯 초연결+초지능의 시대에는 기술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무시무시한 ‘빅브라더’의 감시가 횡행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변화’만이 유일한 확실성이라는 이 시대에 AI의 패러다임이 어느 정도로 진화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여기에는 결국 그 흐름을 이끌 인간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시대를 앞서간 혜안을 지녔던 20세기의 지성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Richard Buckminster Fuller)가 제시한 인간의 ‘총체적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되새기게 하기도 한다. 풀러는 지구가 일종의 우주선이고, 인간이 보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우주선 지구호 사용기 설명서>라는 책을 1969년에 내기도 했던 인물인데, 예술가, 발명가, 기계공, 경제 전문가, 전략가를 하나로 통합한 존재로서 모든 정보를 소화하고 가공하는 역할을 (폭넓은 관점의) 디자이너에게 주문했다. 물론 그 고도의 지적 자산을 ‘인간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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