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_이경미
이렇듯 그는 묘하게 어긋나고 때로는 딱 맞아떨어지는 감각의 지점을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채로운 조형 언어로 표현해왔다. 그만큼 이경미의 아틀리에는 볼거리로 가득 찬 근사한 쇼룸 같다. 올가을에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미술 애호가들을 맞이할 채비를 마친 그를 만났다.
이경미의 작품 세계를 채우는 다양한 소재는 때때로 하나의 화면을 놀이터 삼아 뛰놀며 어우러지기도 한다. 산재한 이미지들이 서로 미묘하게 삐걱대는 와중에도 야릇하게 싱크가 맞는 신통함을 보여준다. 마치 수많은 정보가 한데 들어 있는 주제별 백과사전처럼. “생존 작가로서 제 작업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에는 작가도 전시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라든지 소통 채널이 여럿이다 보니 오히려 하나의 고정된 상(像)을 추구하기 더 어려운 시대가 아닐까요.” 그가 다변적이고 확장성 있는 작업에 몰두해온 이유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15점의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다층적 이미지의 조합이 더욱 두드러진다.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독일 예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목판화 시리즈 ‘묵시록(Apocalypse)’(1498)을 그대로 확대, 재현하고 그 위에 수집한 오브제 이미지를 흩뿌리듯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뒤러에 대한 오마주인 셈인데, 15점인 것도 원작 시리즈의 1번부터 15번까지 순서와 작품명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15세기에 목판인쇄한 묵시록 연작과 21세기 출판물의 대중적 이미지가 뒤섞인 채 5백 년 넘는 긴 세월을 관통하면서 이질적인 동시에 매력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자체 제작한 우드 패널에 회화 작업을 해 작가 특유의 입체감을 살린 점도 눈에 띈다. 덕분에 화폭에 담긴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조형 언어의 확장은 물론, 더 나아가 작품이 걸린 공간으로의 물리적 확장도 가능토록 했다. 실제로 이경미의 작업에서 ‘공간감’은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맞춤 제작한 우드 패널에 작업해 원근감을 극대화한다든지, 얕게 돌출된 저부조 형태로 만들어 입체감을 살리는 식으로 구성하는 전시 공간은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11월 3일부터 14일까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펼치는 개인전 <You Will Never Walk Alone>. 이 전시에서 이경미는 작업실 전체를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선보임으로써 공간감 넘치는 전시 구성에 대한 그간의 욕구 를 마음껏 풀어냈다. 지난해 ‘석주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올해 홍콩, 상하이, 자카르타 등지에서 전시를 하는 분주한 일정을 앞두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접어야 했다. 이번 아틀리에 전시는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다. 그래서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을 통해 작품과 소통하고 작업 세계를 다각적으로 경험하며 감상의 차원을 확장해볼 수 있도록 세심히 공을 들였다. 예컨대 작업실 벽 전면에 띠를 두른 듯 벽화를 제작해 벽에 걸린 회화와 천장의 행잉 작품이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지도록 연출했다.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시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미술을 잘 모르고 마냥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편안하게 경험하러 오세요. 제 작업실이 사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나오는 곳이거든요.” 작가는 ‘사진 맛집’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누구든 부담 없이 즐긴다는 마음으로 방문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의 02-724-7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