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leen Gray_세기를 관통하는 전설의 크리에이터

조회수: 3708
10월 07, 2020

글 고성연 | 사진 제공 Bard Graduate Center Gallery, National Museum of Ireland

The Women Who Inspire Us_ 10


187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976년 파리에서 세상을 뜬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거의 백수를 누리면서 디자이너로서 나름 인정받았고, 건축가로서도 꾸준한 행보를 펼쳤지만 당대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운’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성향 자체가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은둔형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내성적이지만 끊임없이 탐문하고 도전하기를 즐겼고,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독야청청 만들어갔다. 말년에야 주목받으면서 결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디자인·건축계의 아이콘으로 남았지만,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숨겨진 면모가 많아 신비로운 창조혼이라는 평가를 듣는 아일린 그레이. 그녀를 둘러싼 장막이 차츰 벗겨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그동안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선보인 회고전이 뉴욕 바드 센터(Bard Graduate Center)에서 열렸다.


우리네 일상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워버린 코로나19가 원망스러운 이유는 많지만 그중에 서도 설렘을 안고 떠나던 장거리 여행길이 상당수 막혀버렸다는 사실은 못내 아쉬운 점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 통제든 심리적 장벽 탓이든 간에 선뜻 타국으로 향하는 여정을 넘보지 못하게 된 현실이라니…. 그래서 휴대폰 사진첩을 들여다보노라면 문득 그리워지는,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가봐서 다행이다’ 싶기도 한, 애틋한 장소가 있다. 필자에게는 쪽빛 지중해를 배경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이 영혼을 포근히 감싸주는 듯한 남프랑스가 그러한 여행지로 손꼽히는데, 여기에는 고인이 된 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최근 재조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한 걸출한 크리에이터의 지분도 제법 크다. 지금도 영감을 북돋우는 그 이름은 20세기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3년 전 여름, 남프랑스의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 로크브륀-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에서 그녀의 창조혼을 ‘마주했던’ 시간은 곧 뜻깊은 ‘발견’이기도 했다. 명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건축물과 그 안의 공간을 채운 가구를 실물로 접하면서 제대로 입문하게 됐다고나 할까. 마침 아일린 그레이와 더불어 근대건축의 원리를 스위스 출신의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묶어 조명하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기에 시각적, 지적 정보가 더 풍부하게 다가왔다.

1
쪽빛 지중해를 낀 마을에 은은한 보석처럼 빛나는 자취

사실 로크브륀-카프-마르탱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는 르 코르뷔지에와 관련된 ‘성지순례’를 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니스, 칸, 모나코 등 인기 만점 도시들이 자리한 일명 ‘코트다쥐르(Co^te d’Azur)’ 지역에 속한 이곳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생의 말미를 보낸 4평짜리 오두막인 ‘카바농(Le Cabanon)’, 캠핑족을 위한 숙박 시설, 그리고 그가 식사를 즐겨 했던 레스토랑이 사이좋게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유산을 보러 왔더라도 그 앞에 있는, 고혹적인 푸른빛을 뿜어내는 바다를 향해 돌출한 곶 위에 자리 잡은 하얀색 장방형 건축물에 시선을 빼앗길 공산이 크다. 바로 그레이가 설계하고 실내에 들일 가구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고 디자인한 ‘빌라 E-1027’이다. 평평한 지붕,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필로티), 내부를 벽으로 나누지 않은 오픈 플랜, 루프 테라스…. 햇살 속에 청신하게 빛나는 이 순백색 저택은 1929년 완공됐는데,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요소를 야무지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부아(1931년 완공)를 비롯해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주택에 앞선 시기다. 실제로 르 코르뷔지에는 이 빌라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레이는 E-1027 빌라를 자신의 젊은 연인이자 건축 잡지 편집장이던 장 바도비치(Jean Badovici)의 제안과 도움으로 자신들을 위한 작은(1천4백 제곱피트) 보금자리로 3년에 걸쳐 설계했는데, 둘과 교류가 있던 르 코르뷔지에는 빌라에 자주 들렀다. ‘그레이표’ 디자인 언어는 실용적이면서도 인간 중심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캠핑 스타일(camping style)’을 표방한 이 집의 가구 컬렉션에서도 그 같은 면모가 묻어 난다.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 길게 누워 낮잠을 청할 수 있는 데이베드, 이동식 파티션과 스크린 등을 보면 깔끔하면서도 운치 있다. 상판 높이를 10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테이블 다리를 침대나 소파 밑에 넣어 쓸 수도 있는 ‘테이블 E-1027’은 크롬 도금한 강철과 유리를 조합한 간결한 스타일과 기능성으로 모더니즘을 반영한 수작으로 여겨진다(그 자신은 ‘어떤 사조’를 적극 옹호하지 않았지만).


2
3

그런데 정작 그녀는 이처럼 정성을 쏟은 빌라와 그리 오래 함께하지 않았다. 1931년 장 바도비치와 헤어지면서 미련 없이 그에게 주고 떠났기 때문이다(외국인 신분이던 그레이는 E-1027을 설계할 때 대지를 사면서 ‘건축주’ 이름으로 장 바도비치를 내세웠다고 전해진다). 1956년에 장 바도비치가 명을 달리했고, E-1027 빌라는 결국 경매로 나오면서 르 코르뷔지에와 친분이 있던 스위스 재력가의 손에 들어갔다가 1999년 프랑스 공공 단체의 소유가 된다. 전쟁 등으로 망가진 이 빌라는 세밀한 복원 과정을 거쳤고, 2015년 르 코르뷔지에의 오두막과 캠핑 사이트 등을 합쳐 2015년 여름 ‘카프 모데르네(Cap Moderne)’라는 명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3년 전인 2017년 필자가 카프 모데르네에서 접한 전시는 현대 미술관 퐁피두 센터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아일린 그레이와 르 코르뷔지에의 숨결이 깃든 장소에서 개최한 2인전이었던 것이다.


4
5




6
7
8
9
그레이의 발자취를 찾아라, 각국에서 펼쳐지는 ‘재조명’ 작업
아일린 그레이는 파리로 돌아가 생을 다할 때까지도 펜을 놓지 않았다(스케치를 꽤 남겼지만 실제로 구현된 건축·인테리어 프로젝트는 9건 정도로 추정). 하지만 활동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아 ‘숨겨진 무엇’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녀가 역사에서 희미한 존재로 사라질 뻔한 배경에는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었던 당시 풍토도 있었지만, 조용히 독자 노선을 걷고 자 하는 사적인 성향도 한몫을 했다. 부유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런던의 슬레이드 아트 스쿨에서 공부한 미술학도였는데, 유럽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장인 스가와라 세이조를 만나 옻칠 공예에 눈을 뜨면서 20세기 초 파리로 향한다. 바야흐로 문화 예술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 시대.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새 흐름이 밀물과 썰물처럼 몰아치던 이 시기(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바우하우스 운동)에 그녀는 가구에 옻칠을 입히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해 추상적인 조형물처럼 바꾸는 작업에 열중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1922년에는 친구와 손잡고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와 러그 등을 판매하고 미술품 거래도 아우르는 매장을 파리에 연다. 남성을 연상시키는(연인 장 바도비치의 이름을 딴 것으로 추정되는) 가명을 붙인 갤러리장 데세르(Galerie Jean De´sert)가 그것이다.

10
11


사실 그녀의 작품은 상류층과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오트 쿠튀르 패션 디자이너이자 당대 최고의 컬렉터 자크 두세(Jacque Doucet), 파리 부티크의 상징 같았던 쥘리에트 레비(Juliette Le´vy) 등이 고객 명단에 들어 있었다(특히 레비의 파리 아파트를 새 단장하는 인테리어 작업을 계기로 건축에도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박람회나 전시회에도 출품했는데,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운동인 데스틸(De Stijl) 그룹에서는 큰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프랑스 언론에서는 딱히 호응을 얻지 못했다. E-1027 빌라 같은 경우는 건축 잡지에도 소개되는 등 주목받았지만, 르 코르뷔지에나 장 바도비치의 작품으로 오인됐다. 여기에는 두 남성의 잘못도 있으나 퍼즐 같은 코드를 즐겨 사용했던 그녀의 작명법과 내향적인 성격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E-1027 빌라의 경우, E는 아일린 그레이의 E, 10은 알파벳의 10번째 글자인 ‘J’(Jean), 2는 바도비치의 B, 7은 그레이의 G를 각각 뜻한다).
E-1027의 설계자가 명확히 밝혀진 논문은 그레이의 첫 회고전이 1972년 런던에서 열린 지 7년,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뜬 지 3년이 흐른 뒤인 1979년 나온다. ‘재발견’된 아일린 그레이의 작품은 다시 생산되었고, 그녀의 창조적 발자취를 찾아 나서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올해 미국 뉴욕의 바드 센터(Bard Graduate Center Gallery)에서 열린 그녀의 회고전에는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드로잉과 옻칠 작품도 선보였다. 새로운 면면이 드러날수록 이미 빈티지 가구 시장에서 경이로운 몸값을 자랑하는 아일린 그레이의 희소성 높은 작품에 부여되는 가치는 자꾸만 더 높아져간다. 물론 그녀 자신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가치의 메커니즘 같지만 말이다.

12
13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