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9 SUMMER SPECIAL] Masterly tales_In the Steps of Paul Cézanne – Aix-en-Provence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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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19

글 고성연

< In the Steps of Paul Cézanne >

현재 엑상프로방스에서는 ‘세잔’의 개인전은 아니지만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우선 지금은 아트 애호가라면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세잔이 없었다면 별 관심을 못 받았을지도 모르는 ‘생트빅투아르산’을 소재로 한 그룹전이 그라네 뮤지엄(Musée Granet)에서 펼쳐지고 있다. 또 이 도시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코몽 아트 센터(HÔtel de Caumont – Centre D’Art)에서 진행 중인 ‘구겐하임 컬렉션’ 전시에서도 생트빅투아르를 담기 위해 작가가 수없이 찾았던 비베뮈스(Bibémus) 채석장을 특유의 붓놀림으로 녹여낸 풍경화를 볼 수 있다. ‘세잔 루트’를 따라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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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후배들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지만 정작 자신은 몹시 내성적이고 예민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했던 인물이다. 사생아이긴 했지만 엑상프로방스에서 모자 사업을 하다가 은행을 설립한 재력가 아버지를 둔 덕에 경제적인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창작 여정 말년에 이르러서야 화단의 인정을 받은 탓에 자신이 설정한 수준에 스스로의 재능이 혹여 못 미칠까 전전긍긍했다. 또 원래 부친의 뜻에 따라 법학도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도무지 흥미를 못 느껴 어머니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아티스트의 길을 택한지라 부친의 눈치를 봐야 했다. 소통에도 서툴렀다. 대중의 외면과 주변의 냉소적인 반응,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당대의 지성 에밀 졸라와의 절교 등으로 힘들어했다. 그래서일까. 꽤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 보이는 ‘노안’이기도 했지만, 세잔의 자화상을 보면 대부분 초췌하고 뭔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외톨이’ 세잔의 안식 같은 곳이었지만 부친의 눈치를 봐야 했던 고향
그런 세잔에게 고향은 특별한 곳이었다. 1861년부터 1870년 사이 파리에 살고 있을 때도 그는 엑상프로방스를 자주 방문했다. 당시 미술 아카데미는 무척 보수적이어서 전통적인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양식에 따르지 않는 작품들은 ‘거부’당했다. 당시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이 같은 보수성에 대한 반발과 동요를 막기 위해 1863년 아카데미의 미술 전람회에서 거절당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낙선전’을 개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젊은 미술가들은 화단의 비평에 더욱 굳건히 뭉쳤지만, 세잔은 특유의 수줍음 많고 모난 면모가 있는 성격 탓에 이들과도 그리 잘 지내지 못했다. 그는 어둡기는 했지만 자유분방하고 힘이 흐르는 화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했고, 징병을 피하고자 그는 프로방스로 향했다. 연인 마리오르탕스 피케(Marie-Hortens Fiquet)와 엑상프로방스가 아니라 남부 바닷가 마을인 에스타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72년 아들 폴이 태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부 같은 존재인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o)의 초청으로 퐁투아즈로 이주했다. 이 시기에 세잔은 피사로와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야외에서 작품을 많이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색점을 흩뿌리는 듯한 인상파의 붓놀림과 달리 입체적인 느낌과 건축적인 선, 색의 조화 등을 활용해 대상의 ‘구조’에 초점을 뒀다. “모든 자연현상은 원기둥, 구, 원뿔로 함축된다”라는 세잔의 말은 ‘명언’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를 알아주는 이는 거의 없었고, 그는 1878년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 가족과 지냈지만, 아버지의 무시를 견뎌내야 했다. 결국 그는 인상파와 ‘결별’했고, 스스로를 더욱 외롭게 하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던 세잔의 아틀리에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는 법. 이처럼 고립된 시기에 그는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만으로 대상의 부피와 깊이를 담아내면서 자연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성숙시켰다. 개념적인 추상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면서 ‘구조’에 집중하는 그에게서 피카소, 브라크 등의 입체파가 많은 영감을 얻었다. 1886년은 47세의 세잔에게 몹시도 고통스러운 해였다. 같은 해에 ‘절친’ 에밀 졸라와 절교하고 아버지를 여의는 아픔을 잇따라 겪었다. 하지만 그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하면서 재정적으로 독립했고, 주로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면서 작업에 매진했다. 1901년에는 엑상프로방스 외곽에 무화과와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아리따운 정원이 있고, 채광이 좋은 실내에는 장미 무늬 벽지를 바른 자신만의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스케치를 하러 나갔고, 아틀리에에서 해가 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소소한 일상을 반복해서 이어나갔다.
아마도 그런 안정된 창조 여정 속에서 나름 자아의 평정을 찾은 것일까. 이때 그린 자화상을 보면 세잔은 더 이상 고집만 세고 불만투성이 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1906년 세잔이 세상을 떠난 뒤 이 아틀리에는 마르셀 프로방스라는 인물이 사들였는데, 그의 사후에는 마땅히 거둘 이가 없었다. 그러자 아틀리에의 운명이 혹여 잘못된 길로 갈까 걱정한 ‘팬’들이 기념회를 설립해 이곳을 매입하고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 대학에 기증했다. 지금은 시의 소유가 되어 늘 방문객으로 들끓는다. 필자가 이 아틀리에를 방문했을 때도 학교 수업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찾아온 사람들로 공간이 가득 찼다. 그가 살았던 생의 대부분에 걸쳐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팬이 많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사뭇 차이 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생트빅투아르산을 수없이 담아낸 채석장 비베뮈스
세잔의 정물화에 ‘사과’가 자주 등장했다면 그가 그렸던 풍경화의 단골 소재는 단연 엑상프로상스 근방에 있는 생트빅투아르(Sainte Victoire)산이다. 그는 이 산을 비슷한 각도에서만 담아냈는데, 그 ‘스위트 스폿’이 비베뮈스 채석장(Carrières de Bibémus)이었다. 철 성분 때문에 오렌지빛 바위가 여기저기에 보이는 이 채석장은 현재는 미리 ‘투어’를 신청해야만 둘러볼 수 있는 시영 관광지로 남아 있는데, 거의 항상 북적거리는 세잔의 아틀리에나 세잔 가문의 별장 등과는 다르게 대개는 한적한 편이라서 고요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산책로다. 실제로 채석장 내부뿐 아니라 근처에 수려하게 펼쳐진 숲과 호수 등을 아우르는 코스가 따로 있기도 하다.
7헥타르 면적의 이 채석장 부지에는 손상되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적막이 흐른다. 하지만 가만히 거닐다 보면 대자연의 다정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올리브, 플라타너스,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면서 깨끗한 공기와 그늘을 선사하고, 온갖 종류의 꽃들이 혹여라도 외로움을 탈까 봐 저마다 시끄럽지 않게 재잘거리면서 마치 벗이 되어주는 듯하다. ‘외톨이’를 자처했고, 늘 정해진 시간에 작업에 매달렸던 ‘워커홀릭’ 세잔이 좋아했을법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세잔이 채석장의 황량해 보이는 풍경과 생트빅투아르산을 담아낸 시기는 1895년부터 1904년. 이를 위해 세잔은 이곳을 거의 매일 찾았고, 심지어 작은 거처까지 마련해뒀는데, 지금도 소담스럽게 핀 꽃들 사이에 이 아담한 집이 남아 있다.
날카롭고 대담한 붓놀림으로 세잔의 화폭에 담긴 오렌지빛 바위들을 배경으로 한 숲속 산책은 여유 있는 걸음으로 전문 가이드의 설명까지 듣다 보면 넉넉하게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스폿’은 그야말로 ‘화룡정점’이다. 멀리서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생트빅투아르산이 시야에 들어오는 가운데, 마치 세상의 모든 녹색을 모아놓은 듯한 경이로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봐도 제대로 담기지 않고, 그대로 스케치를 해봐도 10분의 1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래서 세잔은 이런 말을 남겼을 것이다.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동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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