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meets Art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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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1, 2018

글 고성연(밀라노 현지 취재)

프랑스 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도 말했지만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자신이 세계에서 얼마나 작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차원의 협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평을 넓히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특히 세계 여러 나라의 내로라하는 산업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장인 정신과 수준 높은 공예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자인 컬렉션을 빚어내는 창조적 협업이라면 두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난봄 밀라노를 수놓은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행사와 더불어 오는 9월 국내에서도 주문 가능한 한정판 가구와 홈 데코 컬렉션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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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휴가가 아니며, 대개는 휴식의 정반대’라는 뼈 있는 표현이 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육신의 편함을 꾀하려고 여행을 계획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해보면 상황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어딘가로 향하는 이유는 아마도 오래도록 남을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혹은 언젠가 여행을 계기로 우연히라도 스치는 영감을 포착한 적이 있거나, 아니면 뇌리를 강타하는 깨달음을 얻은 기억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콩고에 가기 전에 단지 동물이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긴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에게 찾아온 강렬한 각성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지구촌을 누비는 항해사이자 선장, 작가의 삶을 산 콘래드의 탐험심에 감히 견줄 수는 없겠지만 필자에게도 아직까지 여행이나 출장은 주로 ‘배움’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그리운 대상이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사람을 만날 때는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피상적인 사색이 아니라 뇌세포를 깨우는 발견이나 생생한 에피소드로 남는 경험담이기에 아무래도 밀도가 다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삶에서는 풍경보다는 사람이다(혹은 사람의 혼이 깃들어 있는 그 무엇이다). 멋진 도시를 보려고 8km를 가느니, 한 사람의 현인과 이야기하기 위해 160km를 가는 편이 낫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천하의 절경일지라도 그 순간을 나눌 이가 부재하거나 스스로에게 특히 더 소중하게 느껴질 의미가 없다면 감흥이 확연히 덜하지 않은가. 이 같은 맥락에서 지난봄 다시 찾은 밀라노는 꽤 익숙한 도시인데도 좀 특별하게 다가왔다. 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영감 어린 스토리를 선사해준 크리에이터들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iSaloni) 기간에 장외 행사를 뜻하는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를 무대로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과 펼치는 협업 프로젝트인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전시. 가구나 인테리어 디자인 세계를 좀 안다면 귀를 쫑긋할 만큼 명성이 높은 데다 작품 세계 자체도 흥미로운 다국적 크리에이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 행사는 고아한 미를 품은 공간이 인상적인 팔라초 보코니(Palazzo Bocconi)에서 열렸다.


장인 정신과 크리에이터의 상상력이 만나 빚어내는 노마드의 미학
‘오브제 노마드’라는 단어가 시사하듯이 팔라초 보코니에서 전시한 가구 디자인 컬렉션은 ‘이동’과 ‘이주’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의 유목 문화를 공통 주제로 삼고 있다. ‘여행 예술(Art of Travel)’이라는 1백60년 넘게 이어온 루이 비통의 브랜드 철학과 잘 어울리는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섬세한 소재의 아름다움과 디테일의 미학, 오랜 세월 축적된 장인 정신과 혁신적인 노하우로 빚어진 만큼 완성도가 단연 눈에 띄는 한정판 가구 컬렉션인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는 지난 2012년부터 국적을 가리지 않고 걸출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이 낳은 거장 캄파냐 형제(Campana Brothers), 영국의 스타 디자이너 듀오 바버 앤드 오스거비(Barber and Osgerby), 디자인계 여왕으로 불리는 스페인 출신의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 재치와 실험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스위스 3인조 그룹 아틀리에 오이(Atelier O), 네덜란드의 재기 넘치는 천재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르스(Marcel Wanders), 일본 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신화로 통하는 요시오카 도쿠진(Tokujin Yoshioka), 요즘 상승 가도를 달리는 로 에지스(Raw Edges) 등 그야말로 쟁쟁한 이름이 목록에 올라 있다. 지난해에는 환상적인 색채 감각을 지닌 프랑스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디아 마다비(India Mahdavi), 그리고 올해는 홍콩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안드레 푸(Andre Fu)가 새롭게 합류했다. 올해 밀라노 행사에는 오브제 노마드 가구 컬렉션만이 아니라 정교한 공예 기술이 잘 드러나는 홈 데코 컬렉션인 ‘레 쁘띠 노마드(Les Petits Nomades)’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꽃병과 수납 바구니, 거울 등 앙증맞으면서도 세련미를 풍기는 각종 소품으로 이뤄진 컬렉션이다. 레 쁘띠 노마드 컬렉션이 기존의 오브제 노마드 가구 컬렉션과 흥미롭게 어우러지니 시너지가 절로 나오는 듯했고, 덕분에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팔라초 보코니로 향하게 했다. 첫해를 맞이한 레 쁘띠 노마드 컬렉션에는 캄파냐 형제, 아틀리에 오이,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마르셀 반더르스 등 4팀이 참여했다. 밀라노 전시 첫날인 4월 17일에 직접 행사장을 찾은 3명의 크리에이터와 삶과 여행, 디자인의 미학에 대해 각각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남미가 낳은 별 중의 별, 캄파냐 형제
브라질 태생의 캄파냐 형제는 남미에서 배출한 최고의 형제 아티스트다. 첫눈에 봐도 강렬한 에너지와 자유로움이 넘치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 특유의 디자인·건축 세계는 많은 골수 팬에게 브라질의 문화, 대자연에 대한 동경과 관심을 절로 품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오라를 뿜어낸다. “형인 움베르토(Umberto)가 해외 출장을 주로 다니고, 저는 대개 상파울루에 머물면서 리서치하는 걸 좋아해요.” 털털하고 소탈한 성격이 외모에서도 단번에 드러나는 페르난도(Fernando) 캄파냐는 밀라노를 찾은 여정이 ‘고향 지킴이’인 자신으로서는 나름 흔치 않은 행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올해 발표한 자신들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캄파냐 형제는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에 속하는 스윙 체어 ‘코쿤(Cocoon)’과 풍신한 탈착식 쿠션의 조합이 인상적인 모듈식 소파 ‘봄보카(Bomboca)’를 생기발랄한 푸크시아(fuchsia)색으로 단장해 선보였고, 레 쁘띠 노마드 컬렉션으로는 가죽 화병도 내놓았다. 영어로 ‘트로피컬리스트 베이스(Tropicalist Vase)’라 명명한 이 소품은 언뜻 용의 비늘인가 싶을 만큼 화려한 느낌을 선사하는데, 페르난도의 설명에 따르면 남미 지역의 꽃인 케스넬리아(quesnalia)와 브로멜리아드(bromeliad)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자연의 원시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캄퍄나 형제는 오랜 세월 궁합을 맞춰왔지만, 사실 전공은 물론이고 인상도, 성격도 다르다. ‘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분위기를 지닌 움베르토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조각을 즐겨 하다가 디자이너로 전향한 경우이고, 페르난도는 건축을 공부했다. 여덟 살 차이 나는 형과 자신은 실제로도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음양’처럼 서로를 보완해준다고 설명하면서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흥미로운 고백은 페르난도 캄파냐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것. “당시 (정치적으로 독재 시기를 겪었던) 브라질 사회에서는 배우를 커리어로 선택하기 힘들었어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곤 했거든요. 그래서 대신 세트를 접할 수 있는 건축을 했죠. 하하.”


팔색조 매력을 지닌 마르셀 반더르스의 끝없는 진화
네덜란드 가구 디자인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인지도 높은 브랜드 모오이(Moooi)의 공동 창립자이자 아트 디렉터인 마르셀 반더르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모더니즘의 형식적인 고상함에 반기를 든 이른바 ‘안티 디자인’과 그 주요 세력인 이탈리아의 멤피스 그룹을 옹호했던 만큼 그는 장식적이고 우아한 화려함에 과하지 않은 재치가 묻어나는, ‘감성 돋는’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온 인물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디자인을 닮았다는 평도 듣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풍부한 자산을 지닌 네덜란드의 문화 예술 토양을 바탕으로 더치(Dutch) 디자인 특유의 실험성까지 겸비한 채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점점 더 넓히고 있다. 스스로도 ‘절충적(eclectic)’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글로벌하게 다양한 고객과 일하는데, 그들은 저마다 역사와 역량이 다르잖아요. 덕분에 저희도 다양한 부분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고 했다. “디자이너들은 스마트하고 지적인 걸 추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해요. 하지만 어찌 보면 좀 바보 같지만 아름다운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하이퍼 인텔리전스’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똑똑한 디자이너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초기부터 함께해온 오브제 노마드야말로 (가죽으로 된 휴대용 가구라는 점에서) 언뜻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시(poetry)를 창조해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펼치면 길게 누울 수 있는 휴대용 의자지만 돌돌 접으면 가방이 되는 첫 작품 ‘라운지 체어(Lounge Chair)’는 ‘발상(ideation)’ 과정에만 3년이란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 덕분에 그가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고 부르는, 혁신과 낭만을 동시에 품은 독특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뿌듯해했다. 올해 그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귀여운 다목적(쟁반, 거울로 활용할 수 있는) 소품인 ‘다이아몬드 미러(Diamond Mirror)’를 레 쁘띠 노마드 컬렉션으로 선보이면서 ‘다이아몬드 미러’의 미학을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해낸 설치 작품까지 내놓아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틀리에 오이, 재료의 연금술사
라 뇌브빌(La Neuveville)이라는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인연으로 친구끼리 3인조 디자이너 그룹을 만든 아틀리에 오이. 이들 삼총사는 마르셀 반더르스와 뚜렷히 구분되는 성향을 지녔다. ‘인간들의 스토리’를 시작점으로 삼는다는 마르셀과 달리 아틀리에 오이는 철저히 ‘재료(material)’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저희 공통분모는 처음부터 재료에 대한 호기심이었어요. 27년 전쯤 디자인을 하자고 셋이 뭉쳤을 때부터요.” 아틀리에 오이의 멤버 중 하나인 오렐 아에비(Aurel Aebi)는 1991년 아르망 루이(Armand Louis), 파트리크 레이몽(Patrick Raymond)과 함께 그룹을 결성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세 멤버는 매월 팀 차원에서 다 같이 모여 새로운 재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회의를 한다고 한다. “‘손으로 생각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저희는 드로잉을 먼저 하는 대신 흥미로운 재료를 고르고, 과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골똘히 궁리하죠.” 오렐은 루이 비통과 일하기 전부터 가죽을 다루는 데도 이미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하며, 루이 비통 장인들을 만날 수 있는 아니에르 공방과의 협업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가죽으로 멋스럽게 짠 ‘해먹(Hammock)’이라든지 루이 비통의 트렁크 제작 기술에 오리가미 기법을 적용해 손쉽게 가방처럼 접을 수 있는 가죽 소재의 ‘스툴(Stool)’이 탄생했다(‘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아마도 가장 ‘열일 하는’ 디자이너 그룹으로 둘째 가라면 서럽지 않을까 싶은 아틀리에 오이는 이번에는 15가지 색상의 가죽 꽃으로 이뤄진 오리가미 플라워,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두 가지 색의 양각을 지닌 가죽 화병 ‘레더 로자스(Leather Rosace)’ 등을  레 쁘띠 노마드 컬렉션으로 내놓았다. 아틀리에 오이의 작품이 재료의 미학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스토리의 소중함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실제로 그들의 작품에 간결하고도 아기자기한 감성이 묻어나는 이유일 것이다). 노마드 여행족이라는 콘셉트는 특히 스토리텔링의 강점이 있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루이 비통에서는 여러 항목을 적은 지루한 제안서를 주지 않고 그냥 ‘노마드’라는 주제만 주고 자유롭게 놔뒀어요. 신기하게도 가죽이 스토리를 얘기하기 시작하고, 삶에 대해 얘기했죠. 노마드 프로젝트에는 각각의 디자인에 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바로 오늘날 변질되어 안타까운 여행의 본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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