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blime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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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2, 2018

글 고성연

돔 페리뇽 P2 2000 샴페인 디너를 빚어낸 창조적 협업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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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음식을 복잡하게 변형할 줄 알고, 그것을 시공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섭취하는 유일한 포유류라고 했던가.
그러한 ‘재창조’ 작업의 정석을 보여준 미식의 향연이 얼마 전 벚꽃 향 가득한 서울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렸다. 빈티지 샴페인 명가인 돔 페리뇽(DomPe´rignon)과
프랑스 출신의 국보급 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의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지난 2008년 처음 공개된 이래 2차 절정기를 맞이하면서 탄생한
‘돔 페리뇽 P2 2000’에서 영감을 받은 창조적 협업이 낳은 매혹적인 샴페인 페어링 만찬 현장을 소개한다.
미술이 시각의 예술이고 음악이 청각의 예술이듯이, 흔히 요리는 미각의 예술이라고 한다.하지만 요리를 정말로 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분명히 존재한다. 혹자는 손으로 만드는 일상적 작품이라는 맥락에서 요리를
‘수공예’로 분류하기도 하고, ‘요리 미학’을 찬양하는 미식가는 이에 발끈하기도 한다. 확실한 건 세상에는 예술가나 창조자로 불리는, 그리고 그렇게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 요리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자격을 부여하는 건
요리 테크닉, 맛, 음식의 조화 같은 요소는 기본이고 다른 누구와도, 무엇과도 차별되는 ‘테이블 연출’을 할 수 있는 창의력일 것이다. 이처럼 섬세함이 깃든 고도의 내공이 요구되는 총체적 ‘예술 작업’을 창의적으로 버무려낼 ‘지휘자’
역할을 맡을 인물로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만큼 뭇 미식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이름은 좀처럼 없지 않을까 싶다. 레스토랑을 토대로 한미식 문화의 근간인 프랑스 요리의 대표 주자이며 레스토랑의 수준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인
‘미슐랭 스타’를 20개 가까이 보유한 별 중의 별. ‘요리 예술’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빼어난 창의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뿌리인 프랑스 요리를 각 지역의 문화적 맥락에 맞춰 풀어내는 글로벌 감각,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세계 곳곳에 퍼뜨리고 성장하게 하는 조직력까지 두루 갖춘 걸출한 셰프가 바로 알랭 뒤카스 아닌가. 그런 그가 샴페인업계의 ‘왕중왕’이라 일컬어지는 브랜드 돔 페리뇽(Dom Pe´rignon)과 만났으니, 미식의 세계에서는 그 자체로
큰 화제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알랭 뒤카스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별들의 만남, 프랑스가 낳은 21세기 최고 스타 셰프와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동질성을 지닌 우정은 어떤 단계에 이르면 반드시 프로젝트로 실현되기 마련이지요.” 돔 페리뇽이라는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셰프 드 꺄브(Chef de Cave, 수석 와인메이커) 리샤 지오프로이(Richard Geoffroy)는 알랭 뒤카스와의 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정신적 사랑에 그치게 되는 셈”이라고 장난기 있게 덧붙이면서 말이다. 각각 샴페인과 요리라는 분야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하면서 20년 넘게 친분을 쌓아왔다는 이 둘의 만남은 그만큼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러웠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6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첫 포문을 연 돔 페리뇽과 알랭 뒤카스의 협업 프로젝트는 지난해 홍콩과 베이징을 거쳐 올해 서울 땅을 밟았다. 돔 페리뇽과 알랭 뒤카스의 공통분모는 단연 강력한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재창조로, 각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식재료를 반영해 매번 다른 창조물을 빚어낸다. 서울 성북동의 명소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간직한 한국가구박물관은 그 창의성을 펼쳐낼 무대로 손색이 없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초의 봄날 저녁,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리샤 지오프로이와 알랭 뒤카스가 40여 명의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는데, 샴페인 내음과 고아한 정취가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리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친 꾸밈이 없는, 가공되지 않으면서도 뭔가 굉장한 따뜻함이 묻어나, 친밀감이 있으면서도 적정한 거리가 있는 분위기가 정말이지 좋았다”고. 하지만 ‘DP X AD’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엄연히 ‘샴페인’이었다. 돔 페리뇽 샴페인은 세 차례 숙성기를 거치는데, 절정이라는 뜻의 ‘플레니튜드(ple´nitude)’의 앞 글자를 따 P1, P2, P3라 부른다. 알랭 뒤카스가 이번에 ‘샴페인 페어링’ 프로젝트를 맡은 대상은 지난 2008년 처음 공개된 이후 2차 절정기를 거친 2000 빈티지에서 ‘재창조’된 ‘돔 페리뇽 P2 2000’. P2의 특성은 ‘에너지’로 축약되는데, 그중 P2 2000은 보다 조화롭고, 복합성을 띤 샴페인이라고.


한국적인 정취에서 한국 식재료로 빚어낸 궁극의 샴페인 페어링
이윽고 안뜰에서 샴페인 한 병과 와인잔이 놓인 각자의 테이블에서 P2를 혼자 오롯이 시음하는 ‘솔로 테이스팅’이 이어졌는데, 이는 샴페인이 행사의 주인공인 이유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였다. 미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가 낳은 국보급 스타 셰프가 이처럼 샴페인을 주인공으로 한 페어링을 대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그야 돔 페리뇽은 저에 앞서 수세기를 거쳐온 존재니까요.” 알랭 뒤카스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프랑스 미식 문화에서는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항상 같이 생각하는 게 전통이며, 대개 샴페인으로 정찬을 시작하기 때문에 당연한 조합인데, 돔 페리뇽의 탁월함을 끌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돔 페리뇽은 여러 유형의 재료와 풍미, 촉감과 잘 어우러지는 빼어난 샴페인이라 셰프로서 그러한 특성을 잘 끄집어낼 수 있는 요리 페어링을 한다는 것, 여기에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특수성을 반영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도전이에요.”
알랭 뒤카스 팀은 한국 행사를 위해 수개월에 걸친 준비 작업을 세심히 진행했다. 요리에서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할이라고 강조하는 뒤카스의 철학을 반영하듯이 우선 ‘어떤 재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프랑스 요리와 어떤 궁합을 창조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는 이 팀은 지난겨울부터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꼼꼼히 조사하고, 돔 페리뇽 팀과도 긴밀한 협업을 펼쳐나갔다. 실제로 블랙 트뤼플(검은송로)만 빼고 대부분 다 한국에서 재료를 공수했다고. P2의 복잡다단한 매력을 살린 여섯 가지 코스로 이뤄진 만찬 중 흥미로운 결과물은 김치 양념을 섞은 크림소스를 곁들인 채소구이, 그리고 만두였다(광물성을 한껏 살리는 캐비아 요리는 늘 그렇듯이 샴페인 페어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이자 ‘백미’였음은 물론이다). ‘건강한 미식’을 지향하는 알랭 뒤카스는 요즘 해산물과 채소를 주재료로 쓰고 있고, 한국 만찬에서도 김치, 가자미, 농어 등을 활용했지만, 특별히 한우를 넣은 만두 요리도 선보였다는 점이 참신하게 다가왔다(한우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에 매료됐다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글로벌하게 통한다는 것
돔 페리뇽의 빈티지 샴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부각하고 ‘플레니튜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주인공답게 철학적 깊이가 남다르고 언어 구사력도 뛰어난 리샤 지오프로이는 이 만찬을 두고 “조화가 조화를 만났다(Harmony meets harmony)”라고 표현했다. 돔 페리뇽과 미식의 조화, 프랑스 요리와 한국 식재료의 조화, 전통과 현대의 조화, 장소와 만찬의 조화…. 그야말로 수긍 가는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돔 페리뇽이든 미식이든 굳이 과장스러운 수식어를 붙이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는 실제로 누군가 자신에게 돔 페리뇽을 마시고는 ‘샴페인 이상(beyond champagne)’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고백(?)도 했다. 그는 그저 ‘이게 바로 샴페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할 따름이다. “많은 와인메이커가 여러 ‘급’을 뜻하는 분류 체계를 지닌 다양한 범위의 샴페인을 판매하지만, 돔 페리뇽은 그렇지 않아요. 돔 페리뇽은 그냥 돔 페리뇽이지요.”  단지 숙성기에 따른 P1, P2, P3 같은 분류 체계가 돔 페리뇽의 주된 특징인 셈인데,  이 역시 자신이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발견했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포함해 유기체라면 직선적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성숙해나가기 마련인데, 돔 페리뇽 역시 각 빈티지 안에서 절정기를 거치는 단계를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정말로 훌륭한 와인, 그리고 지역 요리는 국경을 뛰어넘어 세상과 대화하는 법’이라고. 세상에는 괜찮은 와인과 요리가 많지만, 대부분 지역 내에서 유통되는 데 그칠 뿐, 본연의 경계 밖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전통을 사랑하고 지키되 다른 지역 문화의 맥락을 읽고 반영하는 현대적인 해석의 노력이 꾸준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흡수되는 식문화 특유의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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