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ani Setia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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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 2016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겸임 교수)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민간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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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손꼽히는 아트 컬렉터 멜라니 세티아완(Melani Setiawan)은 단순히 미술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행보의 반경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파빌리온의 후원위원인 데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 아트 페어(2016년 8월 초)에서 선보인 컬렉터 특별전을 주최한 4명 중 하나다. 이들 중 다른 한 명인 톰 탄디오(Tom Tandio)는 송은아트센터에서 <예술과 사랑에 빠진 남자, 톰 탄디오, 개인적 서사로서의 컬렉션(Tom Tandio – The Man Who Fell into Art: Collecting as a Form of Personal Narrative)> 전시회를 열고 있다. KIAF 개최 기간 동안 멜라니와 톰 탄디오, 그리고 세계적인 컬렉터로 내년에 상하이에 있는 본인 소유의 유즈 미술관에서 단색화 전시를 열 예정인 인도네시아 화교 부디 텍(Budi Tek)이 동시에 한국을 찾았다. 싱가포르, 대만 등지에서도 여러 컬렉터가 방문했는데, 이들은 워낙 촘촘한 네트워크로 엮인지라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데다, 멜라니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서 온 친구 컬렉터들까지 합세해 서울은 잠시나마 세계 컬렉터의 집결지를 방불케 했다. 세대와 국경, 언어를 초월한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별 이해관계 없이도 예술을 향한 사랑 하나로 모인,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의 현장이었다.

세계를 누비는 진정한 ‘글로벌’ 컬렉터의 삶

멜라니는 이미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한 70대 여인이다. 그런데 한국에 머문 일주일 동안 아트 페어로, 미술관으로, 갤러리로, 작가의 스튜디오로 아침부터 밤까지 열정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낸 그의 체력과 열정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끝도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바쁜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발상지로 잘 알려진 욕야카르타(Yogyakarta)로 떠나 현지 작가들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 컬렉터들의 투어 리더로 참여했고, 곧바로 싱가포르 비엔날레로 날아갔다가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본인의 소장품 3점을 포함한 욕야카르타의 예술가 단체 MES56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 <예술계여(Dear Art World)> 오픈식에 참석했다. 이것도 다가 아니다. 겨우 2~3일 휴식을 취한 뒤 그는 다시 상하이 아트 위크를 찍고, 그다음 주에는 타이베이 아트 위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과거에는 큐레이터가 제트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비엔날레를 관장했지만, 이제는 컬렉터들이 세계를 누비며 온갖 미술 행사에 참여한다니, 멜라니 세티아완이야말로 ‘젯 셋 컬렉터(Jet Set Collector)’의 전형이다.

컬렉션의 원칙, 우정
하지만 그가 특별한 건 화려한 ‘아트 셀럽’이어서가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작가의 지명도, 큐레이터의 추천이나 평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컬렉터여서다. 그 원칙은 ‘우정’, 즉 작가와의 관계! 그는 작품을 선택하기에 앞서 가급적 작가를 직접 만나보려고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갤러리스트를 통해서라도 작가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고자 한다. 컬렉터가 된다는 건 단지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삶의 어떤 단계에 있는 작가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멜라니는 1977년 완성한 새집을 꾸미기 위해 이드란 유서프(Idran Yusuf)의 작품을 사들인 첫 컬렉션 이래 지금까지 한번 구매한 작품은 되판 적이 없다고 한다. 블루칩 작가를 찾고, 어느 정도 작품 값이 올랐다 싶으면 되팔아 차익을 거두는 투자자형 컬렉터와는 사뭇 대조적인 행보다. 컬렉터로서의 윤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신이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친구를 돈이나 이득의 측면으로 평가할 수 없듯이, 그에게는 컬렉션이 곧 우정의 텃밭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은 에땅 위하소(Etang Wiharso)와는 20여 년 전부터 친구가 됐는데, 에땅의 결혼식은 물론 그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몸소 방문해 축하해줄 정도로 한 가족처럼 지낸다. 위하소는 멜라니 세티아완의 집에 직접 커다란 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곳은 멜라니가 소유한 자택의 별채로, 각종 소장품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그는 조금씩 땅을 사서 전통 가옥을 짓고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다가 2008년부터는 아예 ‘아트 스페이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시와 세미나 등 비영리 문화 예술 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직 대중에게 공개하지는 않지만, 향후 그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훗날 뮤지엄을 짓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아트 스페이스’는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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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을 위한 모음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모음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각종 채팅 앱으로도 언제든지 연결되는 그와의 대화는 종종 그의 나이도, 본래는 의사였다는 점도,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원래 친했던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와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는 특유의 태도 덕분일 것이다. 이번 KIAF 기간에도 가장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된 이가 바로 멜라니였을 거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그는 또 만난 사람과는 반드시 함께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겨두는데, 인도네시아 작가 아티야 노발리(Atiya Novali)는 멜라니의 개인 아카이빙에 큰 흥미를 느껴 이를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작품 ‘낯선 대화(Conversation Unknown)’(2015)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2016년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 컬렉터의 전시 부문에 소개됐다. 요즘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그동안의 ‘비주류’ 지역 미술이 예전에 비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언어 장벽과 한정된 정보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세계 미술계의 미개척지에 속한다. 멜라니는 인도네시아의 미술을 알려면 ‘경험해보라’고 ‘그답게’ 강조한다. “직접 와서 대형 전시를 보세요. 자카르타 비엔날레, 욕야 아트 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등 국제적인 행사가 점점 많이 열리고 있어요.”
멜라니의 모국 사랑은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컬렉션 스펙트럼이 자국 작가나 특정 장르에 한정돼 있지는 않다. 한국 작가의 경우로는, 몇 해 전 일본의 아트 도쿄 페어에서 갤러리 스케이프를 통해 구입한 정지현 작가의 키네틱 설치 작품이 있다. 어두컴컴한 전시 공간에 천장을 만들고 가운데 구멍을 뚫어 그 속으로 다락방을 훔쳐보는 상황을 연출했던 대안 공간 사루비아 다방에서의 정지현 개인전을 되돌아보면, 대다수 한국 개인 컬렉터들을 비롯해 웬만해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작품이라는 생각에 감탄스러웠다. 싱가포르 푸르덴셜 아이 어워드의 수상자 침↑폼(Chim↑Pom), 또다른 작가 리오타 야기(Lyota Yagi)의 작품들도 그의 컬렉션 목록에 들어 있는데, 전부 비디오 아트 작품이다. 장르나 유명세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작가의 예술 세계에 반해 수집하는 이런 태도는 “작품은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열어주는 매개체”라는 그의 발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벽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한, 혹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가 아니라, 작가 그 자체만을 보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서포터형 컬렉터. 본래 컬렉터란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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