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봄, 새로운 미술관들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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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7, 2014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미술관만큼 봄나들이 하기에 좋은 곳이 또 있을까? 3월에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 파크(DDP)가 오픈한 것을 필두로최근 주목할 만한 미술관과 갤러리가 대거 개관했다. 이번 봄, 꼭 가보아야 할 새로운 미술관과 갤러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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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DDP

7년 7개월 동안 4천8백40억원을 들인 DDP가 드디어 공개됐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부지에 들어선 DDP는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같은 낯선 디자인의 건축물이라 외관을 구경하는 것부터 흥미롭다. 4만5천1백33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져 어느 한 곳도 똑같은 풍경이 없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더군다나 이 특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금속, 콘크리트, 잔디, 단 세 가지뿐이다. 건축 설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었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DDP의 개관에 맞춰 서울을 방문했다. “건축과 지형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DDP는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지형을 이루었다는 것이 대단히 독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붕은 잔디로 덮여 있어 멀리서 보면 동대문에 새로운 지형이 창조된 것 같지요. 내부 역시 기존의 네모난 박스 형태가 아닌 비정형 전시장이기에 그 자체가 지형과 어우러집니다.” 자하 하디드는 설계할 때부터 지향했던 기묘한 아름다움이 구현된 DDP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DDP의 개관을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하 하디드가 최근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설계를 맡으며 입증되었다. DDP 공간은 크게 다섯 곳으로 나뉜다. 신제품 발표와 공연 등이 열리는 알림터, 디자인박물관과 갤러리가 있는 배움터, 디자인 산업의 비즈니스 플랫폼 살림터, 그리고 앞뜰과 뒤뜰이다. 앞뜰에는 을지로와 곧장 연결되어 동대문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광장이 있고, 뒤뜰에는 역사문화공원이 있다. 모든 공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혹시 길을 잃어버려도 금세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다. 개관 전시로는 간송미술관과 함께하는 <간송문화전>, 자하 하디드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자하 하디드, 360°>, 울름조형대학의 디자인 제품을 감상할 수 있는 <울름 디자인과 그 후> 등이 열리고 있다. 이는 DDP가 고민하는 ‘디자인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극명하게 표출한 이상적 선택으로 보인다.
<간송문화전>은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도자기 등의 국보를 통해 우리나라 디자인의 뿌리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자하 하디드, 360°>에서는 건축물뿐 아니라 스푼, 구두, 목걸이, 의자와 테이블까지 그녀가 그간 디자인한 창조적인 작품을 전시한다. 그녀가 설계한 DDP에서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현대 디자인의 초석이 된 울름조형대학의 작품을 전시하는 <울름 디자인과 그 후>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디자인 과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많은 디자이너가 존경한다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조 마리의 작품을 소개하는 <엔조 마리 디자인>전 역시 놓치면 안 된다. 최소의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그의 사랑스러운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패션을 선도하는 동대문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알림터에서는 서울패션위크가 개최되었다. 야경 또한 아름다우니 DDP에서만 24시간을 보내도 심심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www.dd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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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경을 다시 그리다

DDP가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안착한 새로운 조형물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은 역사적 건축물 안에 자리 잡은 숨은 진주 같은 공간이다. 조선시대 왕의 사무를 담당했던 한옥, 일제강점기 수도육군병원으로 지어졌다가 보안사령부로 사용됐던 붉은 벽돌 건물, 그리고 테라코타와 유리로 만든 모던한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얼핏 보면 미술관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중요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전시장은 대부분 지하에 설치됐으며, 1층에는 MMCA 뮤지엄 숍이 있다. 현대식 건물의 서울 박스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다. 한진해운이 후원하는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조형물은 작가가 미국 유학 시절에 처음 거주한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의 3층 건물을 실물 크기로 재현하고, 바로 그 안에 작가의 서울 한옥을 매단 형식이다. 옥색 한복 천을 재봉해서 만든 높이 12m, 너비 15m의 거대한 조형물이 자연 채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이 ‘한옥을 품은 양옥’ 작품은 전통과 근대,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진 서울관의 특징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제8전시실에서는 서울관의 건립 과정을 담아낸 <미술관의 탄생>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작가 노순택, 백승우가 미술관 건립이 확정된 2009년부터 2013년 11월의 완공에 이르기까지 4년의 과정을 작품이자 기록으로 담아냈다. 조선시대 건물과 일제강점기의 기무사 본관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사진작가의 의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살펴보자. 건립 공사 현장의 시끄러운 음향 기록까지 미술가 양아치의 소리 작품으로 구현되었으니 흥미진진할 것이다. 제1, 2전시실에서는 서세옥, 윤명호, 장화진, 황인기 등 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39명의 작품을 조명한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이 열렸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근에는 국립민속박물관,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아트선재센터, 학고재, 갤러리 인 등 많은 갤러리가 위치하기 때문에 산책 코스로도 제격이다. 서울의 최근 미술 전시 트렌드를 반나절 만에 파악할 수 있다. (www.mmca.go.kr)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노원구 중계동에 개관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도 매력적이다. ‘노원(蘆原)’이 ‘갈대 언덕’이라는 뜻이라는 데서 영감을 얻어 마치 아파트 숲에 가려진 수락산과 불암산의 전경처럼 미술관을 디자인했다. 바로 옆 조각 공원과 연계되어 산책하기에 좋다. 이곳은 회화와 서예, 사진 작품 전시에 집중한다.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이 글로벌 네크워크 중심지라면, 남서울미술관은 리빙 아트 생활 미술관, 새로 생긴 북서울미술관은 공공 미술 콤플렉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인물 사진 1백60점을 소개하는 사진 갤러리의 <콘택트>전과 백남준에서부터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로봇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소개하는 어린이 갤러리의 <굿모닝, Mr. 로봇>전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sema.seoul.go.kr)

안도 다다오와 다비드 머큘러의 건축물

미술관은 건축가의 이름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지난해 개관한 뮤지엄 산(한솔뮤지엄)과 왈종미술관은 각각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다비드 머큘러가 설계를 맡아 주목받았다. 뮤지엄 산은 2005년 안도 다다오가 처음 부지를 방문하고 스케치를 시작한 이후 8년째인 2013년에야 드디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친환경적인 미술관이다.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의 산악자전거장으로 사용되던 부지를 선택했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로 알려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해발 270m 숲 속에 위치한 부지의 특성을 살려 빛과 물, 돌을 이용한 미술관을 완성했다. 뮤지엄은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박물관, 미술관,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길이가 2.1km나 되기 때문에 첫 관문인 웰컴센터에서부터 전체를 둘러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패랭이꽃 80만 주가 피어 있는 플라워 가든과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 가든, 빛의 미술가 제임스 터렐관이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www.hansolmuseum.org)
왈종미술관은 제주도 서귀포에 살고 있는 미술가 이왈종이 만든 미술관이다. 건축가 다비드 머큘러와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었다. “도자기를 빚어서 내가 살고 싶은 건물 모형을 만들어보았지요. 건축가 다비드 머큘러와 의논하며 도면을 수정하는 데에만 2년이 걸렸고, 드디어 꿈꾸던 미술관이 완공되었습니다. 예전 뜰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심었으니 다시 새들이 찾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귀포에 정착한 20년 동안 ‘제주 생활의 중도’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행복과 불행의 근원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는 미술관 건립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고 있다고 했다. 1층은 교육 공간과 작품 수장고, 2층은 전시장, 3층은 이왈종 작가의 작업실이다. 운이 좋다면 이왈종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차지할 수 있을 것. (www.walartmuseum.or.kr)
적산 가옥을 개조한 건축가 조병수의 온그라운드 스튜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1백 년 된 서촌의 가옥을 개조해 서점 ‘가가린’과 연결한 이 공간은 서울의 햇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원래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는데, 공사 과정에서 낡은 벽면을 허물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와 소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건축가로서의 자부심을 담은 건축 전문 갤러리이기도 하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2길 10-14 외 2필지)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도 일제강점기에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주로 한식으로 지었는데, 1층은 온돌과 마루가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이다.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박공지붕이며, 3개의 벽난로가 있어 포근함을 선사한다. 박노수 화백은 1973년부터 2011년까지 이곳에 거주했으며, 1991년에 서울시문화재 자료1호로 지정되었다. 작년에 작고한 박 화백이 기증한 작품 5백 점과 고가구, 수석 등의 컬렉션 5백 점을 소장한 의미 깊은 곳이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1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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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가장 늦게 탄생했지만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진 장르의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전문 미술 공간의 오픈도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12월, 강남역에 위치한 22층 빌딩의 펜트하우스에 개관한 대안 공간 스페이스22는 사진을 편애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영리 공간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강남대로의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22층에 위치하고 있는 것부터 매혹적이다. 얼마 전에는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젊은 여성 사진작가 여지와 안준의 2인 전시 <Pause & Pose>전을 개최했다. 특히 본인이 작품 사진에 직접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준 작가는 스페이스22 건물 옥상에서 직접 자신을 촬영한 아찔한 작품을 전시에 출품했다. 여지 작가는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의 포트레이트를 보여주었다. (www.space22.co.kr)
경기도 성남의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J 역시 놓치지 마시라. 얼마 전에는 폴란드의 가브리엘라 후크와 카야 도브로볼스카, 덴마크의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 우리나라 한경은 작가의 각기 다른 몸에 대한 생각을 담은 <Body & Nature>전이 열렸다. (www.artspacej.com)

해든뮤지엄과 BSSM 백순실미술관

서울을 벗어나 인근의 강화도와 경기도 파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강화도의 해든뮤지엄은 개관하자마자 2013년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될 정도로 수려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건축가 배대용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의 사계절과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이어오는 역사를 담기 위해 외부와의 소통에 중점을 둔 건축물을 만들었다. 백남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인디애나 등 미술가 29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전이 열렸다. 현재는 국내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시대와 감성전>이 열리고 있다. (www.haedenmuseum.com)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에 개관한 BSSM 백순실미술관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판화 작가 백순실이 직접 건립한 미술관으로 <판화가 대화하는 법> 전시를 열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판화에서만 영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채로운 미술 장르를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라고. (www.baiksoonshil.com)
이외에 근래 새로 생긴 미술 공간으로는 진도의 옥산 김옥진미술관, 대학로의 이화동마을박물관, 강원도 정선의 폐광을 개조한 삼탄아트마인 등이 있다. 첨단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더 큰 감동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예술의 힘을 빌려 활기찬 삶의 에너지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날씨 좋은 날, 미술관 산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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