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estive Vi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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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7, 2022

글 고성연(도쿄 현지 취재)

아트 위크 도쿄 (Art Week Tokyo) 2022

디지털 시대의 속도가 팬데믹을 계기로 월등히 빨라졌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적응력을 발휘하는 지구인의 모습을 보면서 설마 ‘체험 경제의 논리’ 따위는 통하지 않는 걸까 하는 우려가 싹틀 만도 했다. 처음에는 ‘줌’ 같은 방식의 온라인 소통을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대면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가거나 물리적인 회의에 참석하는 게 귀찮다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물론 천만의 말씀이었다. 국경을 잇는 하늘길이 보다 자유롭게 펼쳐지면서 여행은 다시 꽃피우고 있고, 몸소 ‘발품’을 팔아 생생한 ‘체험’을 누리길 갈구하는 수요가 치솟고 있다. 도시마다 전시, 축제 등 몰입적인 경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형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고 말이다. 백신을 접종한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진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도 동시대 미술을 품는 ‘글로벌 행사’를 지향하는 축제가 열렸다. 아트 위크 도쿄 (Art Week Tokyo, AWT) 2022. 포스트-팬데믹 시대에 아시아 지역의 문화 예술 허브를 둘러싼 역학 구도가 어떻게 펼쳐질지 더 궁금해지게 만든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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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도시 브랜딩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도시가 아니다. 팬데믹으로 맥없이 닫혔던 빗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전 세계에서 다시 이 도시로 향해 몰려드는 방문객 행렬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항공권과 호텔 가격만 봐도 알 수 있듯 말이다. 21세기를 주도한다고 일컬어지는 ‘소프트 파워’의 지위를 확실히 누려온 아시아의 손꼽히는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던가. 이 같은 브랜드 파워는 건축, 조경, 미식, 문화 예술, 쇼핑 등을 아우르는 풍부한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두루 뒷받침하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을 따로 끄집어낸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시대 미술을 둘러싼 생태계의 다채로운 동력’이라는 표현이 나을 수 있겠다. 다수의 다국적 컬렉터가 일부러 찾아올 만큼 활력을 내뿜는 구심점이 될 만한 플랫폼의 존재감이 도시의 명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물론 도쿄에는 근현대를 다루는 빼어난 미술관도 많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러나 다국적 갤러리들의 진출 상황이나 글로벌 아트 페어 같은 상업 인프라 혹은 신진·중견 작가의 균형 있는 브랜딩 등 아트 신 자체의 활기는 적어도 고무적이지는 않다. 팬데믹 이전에 ‘창조 도시’나 ‘문화 예술 허브’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시아 지역의 경쟁 구도를 논할 때 도쿄라는 이름이 자주 거명되지는 않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의 출현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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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기행’ 형식을 빌린 축제형 쇼케이스
아트 위크 도쿄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떠올린 건 ‘어째서 아트 페어가 아니지?’라는 물음이었다. 지난가을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를 한껏 달군 프리즈·키아프(Frieze+Kiaf)의 첫 공동 개최를 계기로 미술은 물론 ‘아트 페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고, 더불어 글로벌 아트 페어에 대한 호기심도 커지고 있다. 아트 페어를 다니는 미술 애호가나 관계자는 1월에는 타이베이 당다이 페어, 3월은 아트 바젤 홍콩, 10월은 프리즈 런던 하는 식으로 캘린더에 날짜를 채우기에 바쁘다. 미술을 매개로 지구촌 곳곳의 도시를 여행하는 셈이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업 플랫폼인 아트 페어와 달리 2~3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같은 현대미술 담론의 장이자 글로벌 축제인 대형 미술 행사도 있다. 아트 위크 도쿄는 매해 11월에 ‘미술 주간’을 전개하는 축제형 콘텐츠를 택했다. 관람하다가 원한다면 갤러리와 얼마든지 거래할 수 있지만 작품을 한데 모아놓고 매매를 하는 ‘장터’는 아니라 다분히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이다. 당연히 VIP 프로그램도 따로 꾸려지기는 하지만, 누구나 ‘AWT PASS’라는 모바일 앱을 내려받아 구역별로 정리된 지도를 보고 자신만의 노선을 정한 다음, AWT 로고가 새겨진 전용 버스를 타고 여러 아트 스페이스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입장 할인 혜택도 누릴 수 있다(물론 도쿄 거주자처럼 길을 잘 안다면 지하철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되겠지만).
지난해 ‘소트프 론칭’ 형태로 첫선을 보였는데, 내국인 대상으로만 2만 명의 참가를 끌어모으는 호응을 얻은 아트 위크 도쿄는 올해는 한층 체급을 키운 ‘확장형 버전’으로 다국적 손님을 맞이했다(11월 3일부터 6일의 공식 일정). 지난해에 이은 공적 지원(정부와 도쿄 도청)을 등에 업고 갤러리와 아트 스페이스, 공공 미술관을 아우르는 미술계의 보다 활발한 참여를 유도해냈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같은 유수의 공공 미술관, 모리 아트 센터, 시세이도 갤러리, 에르메스의 도쿄 전시 공간인 르 포럼 등 사립 미술관과 아트 센터, 그리고 일본에 현대미술을 소개한 선구자 격인 도쿄 갤러리 + BTAP를 비롯해 무진토, 갤러리 페로탕, 블럼 앤드 포, 스카이더배스하우스, 카이카이키키 같은 갤러리 등 51개 기관과 조직이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를 꾸려 힘을 보탰다. 아트 스페이스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아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도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도시 탐험’이 저절로 이뤄지는 게 투어의 묘미다. 예컨대 올해 개관 15주년을 맞이한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진행했던 한국의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의 소속 갤러리이기도 한 스카이더배스하우스는 도쿄 다이토구에 커다란 목욕탕을 개조한 전시 공간을 두고 있고, 개념적인 작업을 많이 선보이는 갤러리인 무진토 프로덕션은 스미다구 고토바시의 목재 건물에서 전시를 꾸리는데, 갤러리 덕분에 지역색을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매력의 동네를 알게 되는 행운을 누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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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예술 지평을 넓히고 싶었던 갤러리스트의 도전
아트 위크 도쿄의 공동 창립자이자 디렉터로 다케 니나가와 갤러리를 대표하는 니나가와 아쓰코(Atsuko Ninagawa)는 “지난해 봄, 이 행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여러 지역의 공간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부터 짜봤다”면서 정부 관계자들이 동시대 미술에 대한 대중의 지평을 넓히고 일본의 미술 콘텐츠를 해외에 더 활발히 알린다는 취지에 흔쾌히 동조한 덕에 빨리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에게도 빼어난 콘텐츠가 많은데, 그걸 보여주는 방법론에서 서툴렀던 것 같다는 생각에서 총대를 메고 나선 인물로, 그녀의 오랜 고객이기도 한 젊은 컬렉터 시라이 가즈나리(Kazunari Shirai)와 의기투합해 ‘판’을 벌였다. 전도양양한 사업가인 시라이 가즈나리의 사무실이 있는 근사한 건물은 이번에 신진 건축가 후원 차원에서 유망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라운지 ‘AWT 바(bar)’가 들어선 프로젝트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올해 아트 위크 도쿄에서 대규모 사진전(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끌어모은 작가 중 하나인 가와우치 린코를 비롯해 아티스트가 직접 레시피 제조에 참여한 칵테일을 맛볼 수도 있는 공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의외로 ‘아트 위크’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았던 로컬 갤러리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독려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참가를 망설인 갤러리 관계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대다수의 VIP 방문객은 그동안 잘 몰랐던 일본 현대미술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호의적인 피드백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행사에서 세계 최강 아트 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Art Basel)과 협업을 맺고 VIP 프로그램을 꾸린 행보에 큰 지분이 있다. 지난 11월 1일 오쿠라 호텔에서 열린 오프닝 파티와 공연을 시작으로 다국적 손님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동됐는데, 전용 버스를 타고 아트 투어를 하던 유럽과 미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VIP 중에는 작품을 ‘찜’하거나 아예 구매를 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갤러리 고야나기를 이끄는 고야나기 아쓰코 대표는 이번 아트 주간에 8년 전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던 일본 현대미술 거장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전을 개최했는데, 해외 아트 페어에 참가하는 건 비용도 많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우리 공간에서 우리가 작품을 어떻게 전시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도 덧붙이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절경을 배경으로 스기모토 히로시가 직접 설계한 오다와라 아트 재단의 에노우라 천문대(고야나기 대표는 작가의 아내이기도 하다)에서 그녀가 직접 안내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우리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십분 이해된다. 도쿄에서 2시간 넘게 버스로 이동한 직후라 피곤해진 눈에도 천상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출중한 ‘아트스케이프(artscape)’는 그야말로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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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허브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실험 무대 역할도
아트 위크 도쿄 2022는 처음에 필자가 품었던 ‘왜 (요즘 유행하는) 아트 페어를 시도하지 않았지?’라는 의문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을 해준 행사였다. 도쿄에 대한 도시 호감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태계가 지닌 문화 예술적 자산을 대놓고 상업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익숙하게 만들어가겠다는 것. 이는 오히려 한동안 불타오르다가 단명해버리기도 하는 아트 페어에 비해서 장점도 있다. 게다가 내년 도쿄와 멀지 않은 요코하마에서 새롭게 선보일 아트 페어인 도쿄 겐다이에 앞서 잠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실험의 장 역할도 해낸 듯하다. 물론 모든 행사가 그렇듯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아트 위크 도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연례 주간에 참여하는 문화 예술 생태계에 걸친 다양한 조직이 50여 군데나 되니 규모 자체는 충분히 크고 ‘느슨한 연대’로 묶이는 행사의 구성이나 취지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일본, 특히 도쿄라는 도시가 지닌 다양한 문화 예술적 자산을 버무린 ‘융합’적 성격이 더해진다면, 그리고 보다 다국적 면면을 품은 콘텐츠로 구성한다면 좀 더 흥을 돋우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시아의 도시들도 문화적 헤게모니를 향한 경쟁 구도로 치달을 필요 없이 저마다의 특장점을 보듬고 키우는 선의의 행보를 펼치고 창조적 네트워크를 다질 때가 아닌가 싶다. 어느 한 나라를 피해 가기 힘들 만큼 아시아 자체의 매력도를 골고루 끌어올리면서 시너지를 꾀하는 ‘윈-윈’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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