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ity in Kore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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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3, 2021

에디터 고성연 | 글 윤다함(아트조선 기자) | 이미지 제공 아트조선

박래현, 김환기, 김창열, 유영국, 이우환.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5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가 펼쳐진다. TV CHOSUN 개국 10주년을 맞이해 아트조선과 공동 기획한 특별 기념전 <한국 현대미술 거장展: 더 오리지널>. 오는 3월 9일부터 21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저마다의 사유와 스타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한국 현대미술에 의미 있는 획을 그은 5인의 작품을 100점 가까이 선보인다. 회화뿐만 아니라 박래현의 판화, 김환기의 드로잉 등 다양한 미디엄의 작품과 미공개작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 주인공 5인의 면면을 미리 살펴본다.




TV CHOSUN 개국 10주년 특별 기념전 <한국 현대미술 거장展: 더 오리지널> 포스터.




점(點)에서 발아한 이우환의 우주

물감을 흠뻑 적신 붓을 캔버스 위에 척 올리곤 그 붓을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린다. 필선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소멸되듯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잔잔히 일렁이는 수면처럼 고요한 파동을 선사한다. 그러곤 다시 붓에 물감을 묻혀 또 다른 필선으로 이 행위를 거듭한다. 이우환(1936~)의 ‘From Line(선으로부터)’에는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 그어간 흔적이 담겨 있다. 선의 굵기와 형태는 거의 동일하며 선들의 간격도 일정한 것이 조형적 특징이다. 간단명료하며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담백하고도 무한한 철학적 성찰이 내재돼 있다. 희끄무레한 선들은 오히려 이우환이 의도한 본질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데, 이 선들은 기와 생명력의 기원이자 출발점이다. 이들을 재차 그어가면서 작가는 무위 자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듯하다. ‘From Point(점으로부터)’에서 파생된 ‘From Line’은 이우환의 대표작으로, 제목이 말해주듯 기본 조형 언어인 점과 선에서 시작됐다. 어릴 적 우연히 들은 “우주 만물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 그의 예술 세계는 오늘날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란 수식어로 입증된다. 지난해 한국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 1위로, 그 금액이 무려 1백5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경매시장에서 인기 있는 1980년대작 ‘선으로부터’를 비롯해 ‘East Winds(동풍)’ 등이 출품된다. 문의 02-724-7832

이우환, ‘From line-80046’(1980), 캔버스에 유채, 115 X 90cm.

모험가적 기질로 동양화의 현대화 이끈 박래현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극찬을 받으며 재조명된 박래현(1920~1976). 올해에도 MMCA 청주관에서 회고전이 이어지고 있는 박래현은 청각장애를 지닌 유명 화가 남편(운보 김기창)을 뒷바라지하고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날 때마다 붓을 들던, 그야말로 ‘슈퍼 우먼’이었다.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하며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뛰어넘어 세계 화단과 교감할 수 있는 추상화, 판화, 태피스트리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구축한 그의 자취는 한국 미술사에서 선구적인 행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가부장적 분위기가 만연한 시대를 살던 터라 그녀의 이름에는 늘 ‘청각장애 천재 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김기창은 평소 자식들에게 “네 엄마는 더 클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고도 전해진다. 특히 57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1976) 독자적으로 조명될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박래현은 ‘동양화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추상’에 돌입했을 때도 단순히 쓰지 않던 재료를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의 정체성에 기반한 주제 의식을 견지한 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이처럼 서양화와 구별되는 동양화만의 특질을 살리고 당시 세계 화단에서 유행하던 추상화를 동양화로 해석해낸 작가의 노력은 21세기의 감성으로 봐도 세련된 느낌의 작품으로 그 결실을 남겼다. 이를테면 번짐, 드리핑, 두드림, 갈필 등 역동적 방식의 작업을 통해 한지에 그린 것임에도 유화의 마티에르가 주는 그것에 비견하는 감성을 빚어낸다.

박래현, ‘작품 6’(1968), 종이에 채색, 150 X 135.5cm.

김환기 점화의 근원은 그리움⋯

작가 커리어의 절정기를 하나만 특정하기 힘들 만큼 김환기(1913~1974)의 예술혼은 매 시기 ‘정수’를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뉴욕 시기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점화’가 발아하고 완성된 때다. 파란색을 즐겨 사용하며 이른바 ‘환기 블루’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명예상을 수상한 뒤 미국 추상미술 경향에 심취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도미를 감행한다. 이후 국내 화단에는 통 소식이 없던 그가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 점화를 들고 나와 극적으로 바뀐 화풍을 선보이며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전의 도드라지는 마티에르와 구상(具象)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점과 선, 면으로만 이뤄진 추상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수상작이 바로 ‘16-IV-70 #166’(1970). 절친하던 시인 김광섭의 시구에서 따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뉴욕에 머물면서 여러 차례 편지를 교환하던 중에 1970년 김광섭이 죽었다는 오보를 접하고 충격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전면이 동양화의 그것처럼 번지는 효과를 이용한 점들로 가득 찬 서정적인 추상화로, 김환기의 점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점화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정작 이를 그린 김환기는 외롭고 서글펐다. 그의 번뇌는 그림만큼이나 많이 남긴 글에서 자주 발견된다.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우는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점화의 근원은 결국 그리움이었다.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를 절실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한 점 한 점 점화를 완성해갔던 것이다. 애타는 심상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서 쉬이 발을 뗄 수 없다. ‘울리는 미술’을 그는 결국 해냈다.

김환기, ‘4-XI-69 #132’(1969), 캔버스에 유채, 76.5 X 61cm.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방울이 아니다

지난 1월 5일, 김창열(1929~2021) 화백의 부음이 들려왔다. 반백 년 가까운 시간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을 빚어온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국내외 미술계는 숙연해졌다. 물방울은 물의 수많은 형태 중에서도 입김만으로도 사라져버릴 듯 가장 연약하다. 그러나 김창열의 화면에서는 보석처럼 찬란히 반짝이며 영롱한 빛깔을 보여줌과 동시에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충만함과 그득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의 ‘물방울’은 그냥 물방울이 아니다. 작가는 물을 단순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빛에 반응하고 투과하면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물의 특성을 빌려, 예술가로서 자신을 투영하고자 했다. 전쟁을 겪은 김창열에게 물방울이란 그로 인한 상실감과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하고 무(無)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불안도 공포도 허(虛)로 전복해 평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창열은 프랑스 신문 <르 휘가로(Le Figaro)>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은 작품 ‘휘가로지’(1975)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화면 안에 문자를 끌어들였다. 그에게 문자는 물방울만큼이나 중요한 화두였다. 신문을 옮겨 쓰거나 글자를 해체해 그려 넣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천자문이 고정적으로 등장한다. 조부로부터 배운 천자문과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문명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천자문을 깨치던 배움의 원점으로 돌아가 정신적으로 수행하고자 한 작가적 의지가 읽힌다. 물방울과 문자와의 접점이 일견 성글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애초에 물방울도 조형미가 아닌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고자 했듯이, 이보다 더 직접적인 문자 쓰기로 소재가 확대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김창열, ‘물방울 No.30’(1977), 마대에 유채, 100.3 X 100.3cm

자연의 정수, 곧 유영국의 정수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점, 선, 면, 색과 같은 기본 조형 요소로 형상화해 표현한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 자연을 사랑하고 흠모했던 작가는 적색, 황색, 녹색, 청색 등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그 정수(精髓)를 담아냈다. 경북 울진에서 나고 자란 유영국은 지근거리에 바닷가를 두고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배를 타고 나갔다. 해안에서 또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 풍경은 작가에게 큰 영감이 됐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빨강, 노랑 등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색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모두 자연에서 따온 색채다. 작가의 장남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는 산천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호남으로 여행을 다니고 배를 즐겨 탔다”고 설명했다. 유영국은 산은 삼각형으로, 빛은 원으로 그렸다는데, 이는 엄정하게 중첩된 기하학적 질서를 강조하는 절제된 추상 요소로 읽힌다. 작품 속의 산은 단순한 풍경 재현이 아니라 순수 조형 요소를 빌려 구축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비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도형 속에서 자연의 원형을 발견하고 그 본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어린 내가 뭐하시냐고 물으면 ‘그림 공부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면서, “예순까지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며 그림 앞에선 늘 진지하고 계획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회상했다.


유영국, ‘무제’(1979), 캔버스에 유채, 53 X 40.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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