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플라스티쿠스’의 각성을 기다리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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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 2024

글 고성연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Plastic: Remaking Our World>展

‘플라스틱 공해’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소식은 너무나 흔해져 언젠가부터 더 이상 ‘뉴스’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수심 1만 미터가 넘는 남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그리고 ‘청정’ 이미지를 지닌 에베레스트산 정상 근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정도는 되어야 우리를 잠시나마 섬뜩하게 만들 ‘급’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산과 가장 깊은 해저까지 침투할 정도로 ‘플라스틱 천하’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플라스틱의 잘못이 아니다. 늘 그랬듯, 스스로 만들어낸 매혹적인 소재를 위험한 자멸의 도구로 키워낸 주범은 바로 인간이다. 플라스틱 중독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불필요한 쓰레기를 하염없이 생산해내며 디스토피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실천적 각성에 계기를 제공할 만한 전시를 만나봤다. 부산 망미동의 복합 문화 공간 F1963에 자리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새로운 발견(Plastic: Remaking Our World)>展이다. 현대자동차와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협업한 전시로 내년 5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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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을 앞둔 여름 한복판에 ‘행사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광경이 문화 예술계의 디폴트값처럼 된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함께 열리는 아트 페어 주간을 둘러싸고 각종 전시와 행사가 쏟아지는 축제의 무대는 화끈한 우리 민족의 성향 덕분인지, 이미 분주하기 짝이 없는 서울도 모자라 전국으로 확대된 모양새다. 이 시기에 맞춰 여러 도시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는 한 해 가장 공들인 기획전을 꾸리고, 브랜드들은 파티나 토크 프로그램을 앞다퉈 선보인다. 올해는 광주와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대구에서는 간송미술관이 문을 열어 ‘판’이 더 커진 느낌이다. 스펙트럼의 다채로움, 문화 허브로서의 경쟁력 같은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면면이 보인다. 내로라하는 문화 예술계 거장들, 그리고 반짝이기 시작한 재능을 같은 하늘 아래 마주하는 일도 즐겁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다수의 손님을 맞아들이는 잔치에는 플라스틱 컵과 접시 같은 일회용품을 산더미처럼 동반하고 ‘친환경(eco-friendly)’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된 홍보용 ‘에코 백’이 범람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작품 설치를 위한 온갖 자재와 도구는 다 어찌 처리될지도 걱정된다. 물론 환경을 의식하는 많은 예술가들은 폐소재를 사용하고 자원 낭비를 줄이려 애쓴다. 그렇더라도 ‘콘텐츠’가 너무나 많은 나머지 단기간에는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말로 이렇게까지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너무도 익숙해 간과하기 쉬운 전 지구적 과제
아마도 이 같은 배경에서 늦여름 ‘아트 주간’의 빼곡한 스케줄 틈을 비집고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 바일암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부산 망미동의 공간을 넓은 범주의 다양한 ‘디자인’ 콘텐츠에 진지하게 활용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협업으로 꾸린 전시 <플라스틱, 새로운 발견(Plastic: Remaking Our World)>. 사실 필자가 이 전시를 시작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2년 전 여름 세계적인 아트 페어 관람차 방문했던 스위스 바젤에서 가까운 터라 기회를 살짝 엿보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빽빽한 일정 탓에 놓쳤는데, 싱가포르 등을 거쳐 2년여 만에 이렇게 부산에서 느긋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수놓을 만한 화려한 전시는 넘쳐흐를 정도로 쏟아지지만 우리가 인류의 근본적인 생존 여부와 삶의 질을 놓고 볼 때 실천적으로 각성해야 하는 주제를 진지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는 규모 있는 디자인 기획전은 그리 흔하지 않기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에코 백이라는 물건을 아주 오래전부터(‘에코’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기 전) 선호했고, 되도록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며, 언젠가부터는 웬만하면 카페나 영화관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더라도 ‘플라스틱 문화’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여러 방면의 디자인 콘텐츠를 오랫동안 다뤄온 1인으로서도 말이다. 전시 개막 때 부산을 찾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미아 호프먼(Mea Hoffmann) 큐레이터가 말했듯, 플라스틱 문제는 “산업계, 입법, 디자인, 그리고 소비자 개개인이 협력해야 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상 과제 아니던가. 물론 하나의 전시가 인류를 행동가로 만들지는 않겠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지식이나 통찰을 얻을 수는 있다(그리고 사회적 담론을 조성하는 계기까지). 미아 호프먼도 전시를 기획하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됐다면서 “3개 기관이 협력하고 큐레이터도 7명이나 참여한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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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존재하는 플라스틱의 양면성과 우리의 선택
우리는 일반적인 플라스틱이 자연적으로 썩는 데 1백 년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질긴 생명력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갖가지 형태와 색상을 입은 채 어디에나 있는 존재여서일까? 수년 전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된,수심 6,500m 심해에만 서식한다는 벼룩새우가 배 속에 PET 섬유를 품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을 때 학자들은 이 새우에게 ‘에우리테네스 플라스티쿠스(Eurythenes Plasticus)’라는 학명을 선사했다. 지구상에 플라스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는 현실을 알리는 명명이다. <플라스틱, 새로운 발견> 전시의 포문을 여는 아시프 칸의 9분짜리 몰입형 영상 작품은 변종 새우의 슬픈 춤을 연상시키는데,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힌두교와 불교 우주론에서 세계가 성립되어 존속하고 파괴되어 사라지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나타내는 단어 ‘칼파(Kalpa)’(2022)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지구 해양 미생물이 태초부터 해저에서 축적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쳐, 20억 년 뒤에 석유의 형태로 발견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냈다. 결국은 플라스틱 제품과 폐기물로 오염된 지구를 그린 비극적인 내용의 본질과는 사뭇 다르게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화면으로 풀어냈는데, 배경에 깔린 음악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유명한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역설적으로 이 왈츠곡이 연주되었던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변합성 플라스틱인 ‘파크신(Parkesine)’이 은메달을 수상했는데, 이것이 바로 플라스틱 산업의 탄생을 부르는 계기가 됐다고. 이 은근히 강렬한 영상 작품을 필두로 여러 섹션으로 펼쳐지는 전시는 인간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온 혁신적 발명이었고, 심지어 한때는 일종의 ‘럭셔리’로 선망되기도 했지만, 지구를 병들게 하는 위협 요소이기도 한 1백50년에 걸친 플라스틱의 다면적 역사를 여러 시기와 측면에서 다룬다. 무분별한 인간의 행태가 플라스틱에 나쁜 이미지를 덧씌웠지만 사실 우리네 일상에서 플라스틱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그리고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자원이다. 플라스틱 시대를 예견한 화학자들이 장밋빛 전망으로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쓴 흔적이나, ‘한번 쓰고 버릴 수 있다’는 데 열광하던 시절의 전시장 포스터를 보면 씁쓸하기도 하지만 플라스틱의 혁신적인 물성을 둘러싸고 전개됐던 20세기의 신선하고 창조적인 실험 정신이 다시금 빛을 발해 친환경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 문화를 빚어내기를 바라게 된다. 이미 많은 기업과 연구자가 미래형 플라스틱 개발이나 재활용 기술에 골몰하고 있지만, 폭넓은 범용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지구가 병사할 수도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매 순간 엄청나게 늘어나는 데 반해 20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생산된 83억 톤의 플라스틱 중 고작 9% 정도만이 재활용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덜 사고, 덜 만들고, 제대로 재활용하는 습관을 들이고 그런 문화를 조성하는, 우리가 지금 바로 착수할 수 있는 각성 어린 행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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