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하이엔드의 목적지 ZAG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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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 2017

에디터 배미진(바젤 현지 취재)

1919년 자동차의 외관을 만드는 코치 빌더로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 하이엔드 카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는 독점적인 브랜드가 된 자가토(Zagato)의 지난 1백 년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스위스 바젤 근교의 자동차 박물관 판테온(Basel Pantheon)에서 열렸다. 2017년 4월 17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는 진귀한 자가토의 자동차 25대를 소개했다. 숨어 있는 기존 컬렉터를 더 불러 모으기 위해 기획했다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다. 자가토의 수장 안드레아 자가토가 오직 <스타일 조선일보- 바젤월드 스페셜 에디션 2017>을 위해 전해온 브랜드의 목표에 관한 특별한 인터뷰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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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로체리아에서 이어진 독보적인 명성, 자가토
이탈리아의 브랜드 자가토는 하이엔드 카 혹은 빈티지 카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면 처음 들어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코치 빌더의 개념을 알아야 자가토를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는 ‘카로체리아(carrozzeria)’, 영국에서는 ‘코치 빌더(coach builder)’로 불리는 이 회사는 다른 회사의 엔진이나 섀시를 기본으로 하여 고객들이 특별 주문한 자동차를 설계·제작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1980년대 이전 자동차 회사가 지금처럼 체계적인 생산 공정을 갖추기 전에는 코치 빌더 회사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었고,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는 그중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브랜드도 과거에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에 디자인을 의뢰해 차를 생산했으니 자동차 디자인, 자동차의 콘셉트 등을 만들어내는 전문가라 생각하면 된다. 자가토도 이렇듯 이탈리아에서 엔진과 플랫폼을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를 위한 외형을 제작하는 카로체리아로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1백 년이 지난 지금 가히 범접할 수 없는 하이엔드 카의 외형을 제작하는 새로운 개념의 테일러 메이드 카를 만드는 신개념 코치 빌더로서 명성을 쌓게 된 것이다. 자가토와 컬래버레이션하고, 함께하기를 제안하는 브랜드는 알파로메오, 애스턴 마틴, 페라리, 벤틀리, 마세라티 등으로 그 리스트만으로도 자가토의 진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초고가를 자랑하는 이 자동차 브랜드의 뼈대에 자가토의 이름을 더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형성되고, 세월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희소가치 덕분에 수집 대상이 되며 가격은 예술품 수준으로 상승한다. 또 자가토의 고객은 주로 개인이기 때문에 이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한곳의 전시장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바젤에서 개최된 것이다.
이 전시는 그 어떤 요소도 평범한 것이 없는데, 자가토의 전시가 열린 판테온 바젤 포럼이라는 전시장 역시 존재 자체가 독특한 곳이다. 바젤 외곽에 위치한 이 엄청난 빌딩은 과거 고장 난 크레인을 수리하기 위한 작업장으로, 마치 스포츠 경기장처럼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는 나선형 구조로 마치 달팽이처럼 이어져 있다. 건물 천장은 수리 중인 크레인의 긴 상단 부분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구멍이 뚫려 있어 판테온이라 칭했는데, 스위스의 비즈니스맨이자 자동차 애호가이던 슈테판 무스펠트(Stephan Musfeld)가 이 건물을 사들였고, 이 공간은 빈티지 자동차부터 자전거, 오토바이, 마차 등을 전시한 ‘탈것에 관한’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심지어 이곳에 전시된 모든 것들은 사고팔 수 있게 가격까지 매겼으니 개성이 아주 강한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마니아적인 취향을 지닌 이 전시장의 소유주가 자가토에 열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러한 전시장 오너의 관심 덕분에 이곳에서 자가토의 전시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자가토가 전시를 개최할 수 있도록 차량을 빌려준 스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컬렉터들의 열광적인 호응 역시 이번 전시를 개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자가토의 명차를 모으고, 컬렉터들의 관심을 환기한다는 목표까지 담고 있다. 브랜드 창립 1백 주년의 해인 2019년이 다가오기에 숨겨져 있는 자가토 수집가들과 소통을 위한 여정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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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메이드 카(tailor-made car)의 창시자 안드레아 자가토
유고 자가토(Ugo Zagato), 엘리오 자가토(Elio Zagato), 그리고 현재의 CEO 안드레아 자가토(Andrea Zagato). 자동차 마니아라면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1919년 탄생한 이 특별한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안드레아 자가토는 1960년 4월 26일 밀라노에서 태어난 자가토 가족의 3세대로, 자가토 브랜드를 이끄는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Q1 지금 자가토의 가치를 만들어낸 새로운 소재,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전 본래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일에 대해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요즘은 일을 시작했다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쉽게 바꾸기도 하는데, 제가 젊은 시절에는 한번 직업을 선택하면 당연히 평생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죠. 그래서 자가토 패밀리에서 태어났지만 자동차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제가 공부한 경영이나 파이낸스 쪽 일을 하면서 런던과 뉴욕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990년 무렵 자가토의 비즈니스 방향이 바뀌면서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고, 아버지와 삼촌의 권유로 자가토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들어오면서 회사가 안정을 찾게 되었죠. 그렇게 브랜드에 합류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향한 창조의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Q2 패션에서 통용되는 ‘테일러 메이드’라는 단어를 자동차업계에 도입한 것도 신선하다. 실제로 어떤 부분까지 오더 메이드가 가능한 것인지? ‘테일러 메이드’라는 단어를 자동차에 적용한 건 어찌 보면 제가 패션 쪽에서 쌓은 경험을 자동차 디자인으로 옮겨놓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과거에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에서 자가토라는 남성복 브랜드로 3년 동안 6개의 시즌을 전개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밀라노에도 6개의 매장을 운영했어요. 굉장히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죠. 너무 즐거웠어요. 나중에 자동차업계에 들어와 이런 점을 자동차 디자인에도 적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날 위한 단 한 벌의 옷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의 용어인 수미주라(su misura, 맞춤 제작)를 테일러 메이드라는 단어로 변용해 자동차에 적용했죠. 이렇게 자가토에서 이야기하는 ‘오직 날 위한 단 하나의 자동차’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할아버지 시대에는 지금보다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 진짜 단 1대만 생산했지만, 실제로 지금 시스템으로는 한 가지 디자인으로 9대의 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9대의 차 주인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지요. 그들이 만날 확률은 정말 희박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세상에 나만이 가진 단 1대의 차라고 할 수 있겠죠. 고객이 원하는 디테일을 모두 맞춰주려고 하지만, 처음 디자인한 차와 결과물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맞춤 수트를 입었을 때 어깨 근육과 체형에 따라 옷의 라인이 달라지듯 차도 마찬가지니까요. 디자인한 커브와 실제 재료를 사용해 제작한 차의 커브는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Q3 이탈리아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의 산실인데,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이 자가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지? 이탈리아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이탈리아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탈리아의 풍토에서 받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희 회사에 일본인 디자이너가 있는데, 일본인이지만 이탈리아 사람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동일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기 때문에 훌륭한 디자인을 하죠. 물론 이탈리아가 로마제국 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수준 높은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 시대에는 모든 예술이 장인들의 손을 통해 탄생했는데, 창조적인 일에는 장인 정신이 필수니까요. 지금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기에, 그 누구라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먹고, 마시고, 휴가를 즐기며 문화에 젖어드는 것만으로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4 자가토의 작업물을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믹스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형태와 컬러를 도입해 새로운 자동차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신선하다. 이러한 진보적인 영감은 어떻게 얻는지? 전 황금시대라 불리는 1950~60년대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1950년대의 모든 것들은 불멸이라고 생각해요. 패션도, 자동차 디자인도요. 항상 공부하고 그 시대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1950년대 아카이브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영감이 계속 나와요. 요즈음 1930년대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보려고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어요.
Q5 전기차와 자동 주행 기술이 보급되며 자동차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 속에서 자가토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부분이 있는지? 지금 이 시대는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고 있어요. 전 이런 시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 자가토의 아이덴티티, 컬렉션을 하는 자동차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패션 쪽에서 일할 때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1년에 2개의 시즌으로 구성된 프레타 포르테의 빠른 흐름은 매우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자가토는 프레타 포르테가 아닌 오트 쿠튀르입니다. 변화에 발 맞추어 마구잡이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유지하며 명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죠. 고객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자가토의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은 우리 브랜드가 소비형 자동차가 아닌, 컬렉션을 위한 자동차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은 물론 평생 소장하고, 대를 물려 보존하고 싶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감수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금처럼 컬렉션을 위한 자동차로서 자가토의 오트 쿠튀르적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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