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드디어 개최 1백 주년을 맞은 바젤월드(Baselworld). <스타일 조선일보-바젤 스페셜 에디션 2017>은 올해의 바젤월드를 소비자를 위한 해로 정의한다. 중국의 부패 방지법과 유로존의 위기, 스마트 워치의 등장으로 전 세계 시계업계 전체가 어려워진 와중에 실용성과 진정성을 기반으로 위기를 이겨낸 스위스 시계 브랜드는 발 빠르게 소비자에게 적합한, 불황을 이길 만한 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물론 기계적인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열린 자세의 메이드 인 스위스 워치의 새로운 도약이 펼쳐진 ‘바젤월드 2017’을 바젤 현지에서 직접 취재해 소개한다.
“바젤월드는 단지 스위스 시계 브랜드만을 위한 무역 박람회가 아닙니다. 스위스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국제적 산업의 쇼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8일 동안 사람들은 스위스 산업의 중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젤월드의 맥박을 느낄 수 있고, 미래의 비전까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_LVMH 시계 부문 회장 장-클로드 비버(Jean-Claude Biver)
지난 2017년 3월 23일부터 30일까지 스위스 바젤에서는 세계 시계 및 주얼리 산업의 프리미어 트렌드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바젤월드 2017’이 어김없이 오프닝을 알리며 1백 년의 역사를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스위스 시계 박람회로 잘 알려진 이 박람회는 각국의 시계, 주얼리, 다이아몬드, 원석, 진주, 시계 제조 관련 기계, 공급에 관련된 글로벌 전문가를 위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람회로 성장해왔다. 첫해인 1917년에 오직 29개의 스위스 브랜드만 참가했던 바젤월드는 2017년 2백20개의 브랜드가 참가하며 드라마틱한 역사를 써나가는 시계 페어가 되었다. 축구에 프리미어 리그가 있듯 박람회의 프리미어 리그에 속해 있는 바젤월드는 수많은 박람회 중에서도 최고의 구단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 1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에 대해 생각하고 적응해나가면서 독자적인 포지션을 얻었고, 시계업계에서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박람회이기에 매년 바젤월드의 중요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바젤월드 매니징 디렉터 실비 리터(Sylvie Ritter)는 오프닝 스피치에서 한 세기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시계와 보석 장인들이 뛰어난 창조물을 바젤의 심장인 바젤월드에서 선보였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바젤월드가 1백 년의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보석과 시계 산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행사인 동시에 흥미로운 에디션을 출시하며 기대감을 끌어낸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시간도 많았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고, 안정적이지 않은 시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시계 및 보석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세계적 행사를 개최해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면서 발명하고, 적용하고, 현대화하고,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면서 얻어낸 성공이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회 위원장 에릭 베르트랑(Eric Bertrand) 역시 바젤월드를 둘러싸고 있는 시장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진정성을 담아 설명했다. “최근 시계업계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와중에 생각보다 빨리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 몇몇 브랜드는 바젤월드, 혹은 시계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지키며 중심을 잡은 브랜드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산업을 되돌아 볼 때 이러한 침체기가 지나가면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견고함이 남죠.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고 난 후에는 전체 산업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시계 시장은 더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참가한 모든 브랜드가 혁신적인 창조물을 만들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바이어와 미디어에 소개할 수 있는 자리는 오직 바젤월드뿐입니다. 이는 바젤월드가 세계 시계와 보석 시장의 흐름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젤월드를 통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양보다 퀄리티를 추구하는 스위스 시계 시장의 가치는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불황 속에서 다시금 의지를 다지며 본연의 가치를 드러낸 바젤월드 2017은 소비자에게 매우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 하이엔드 워치에 치중하던 시계 브랜드들이 다시 대중적인 시계, 당장 판매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의 실용적인 시계를 대거 선보인 것이다. 이렇게 시계 브랜드의 방향 전환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지난 2015년 1월 15일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정한 스위스프랑 환율 평가가 스위스 시계업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데다 2016 스위스 시계 수출이 전년 대비 9.88% 하락하며 침체기를 불러왔다. 안타깝게도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공공연히 이야기되어온, ETA 무브먼트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스와치 그룹의 선언은 이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다. 어떤 럭셔리 비즈니스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된 부패 방지법 발효는 스위스 시계 시장에 카운터펀치 역할을 했다. 또 휴대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워치의 등장은 실제로 큰 악재는 아니었지만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혹은 투자자와 수집가에게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역사적으로 각고의 어려움을 이겨낸 스위스 워치 브랜드가 초점을 맞춘 것은 ‘소비자’라는 사실을 2017년 바젤월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직 소비자만이 침체된 시장을 살릴 수 있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완성도가 어우러진 제품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 뛰어난 실용성
이러한 시기에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정확성과 내구성, 실용성과 같은 시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브랜드들이다. 스위스 워치메이킹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 롤렉스는 큰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핸즈의 컬러를 변경하고 타키미터의 글씨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자외선과 마모에 따른 색 바램과 충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술까지 더했다. 사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는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요소지만, 오래도록 착용할 수 있는 스위스 시계 본연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항공 워치를 대변하는 브라이틀링은 자사 무브먼트를 장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1천5백만원대에 선보이며 파격적인 가격 책정 소식을 알렸다. 가볍고 실용적인 쿼츠 무브먼트를 장착한 엔트리 워치는 2백만원대에 출시한다. 클래식 워치의 대명사인 론진 역시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인 쿼츠 무브먼트 워치를 선보였는데, 퍼페추얼 캘린더, 듀얼 타임 기능까지 갖췄다. 론진의 클래식한 외관에 오차 범위가 1년에 0.5초 이내에 불과한 정밀한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한 이 시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유니크한 콘셉트와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2백만원대에 론진이라는 유서 깊은 브랜드 시계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다양한 소비자를 경험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이 기술적, 마케팅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었다. ETA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제작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데 노력을 쏟으며 내실을 다진데다 투르비용, 애뉴얼캘린더와 같은 하이 컴플리케이션에 속하는 복잡한 시계 무브먼트를 적용하거나 파워 리저브 기능을 강화한 고급 시계 기술이 평준화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더 이상 기술만을 강조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기술력,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대중을 위한 시계를 선보이는 데 집중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바젤월드의 본질은 시장 상황을 반영하고, 전시자, 바이어,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변화는 이 박람회의 숙명이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바젤월드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_바젤월드 매니징 디렉터 실비 리터(Sylvie Ritter)
셀프로 교체 가능한 스트랩을 장착한 시계가 대거 등장한 것도 엄청난 발전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무브먼트와 케이스, 스트랩까지 하나의 완전체로 여기는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세계에서 사용자에게 매장에 찾아오지 않고 스스로 스트랩 교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위블로와 블랑팡, 오메가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변경 가능한 스트랩을 세트로 구성한 시계를 선보인 것은 소비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겠다는 일종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스틸 소재가 보다 넓고 다양하게 적용되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스틸을 가공하는 기술력이 높아진 것도 스틸 워치가 증가한 이유겠지만, 본래 골드로만 선보이던 모델들의 스틸 버전도 다양하게 출시한 덕분에 가격 민감도는 더 낮아졌다. 카본과 DLC 코팅, 세라믹,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등 고가의 특수 소재를 사용한 워치 역시 가격대가 낮아졌다. 수년간 이어져온 빅 다이얼의 트렌드 대신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41mm 케이스 사이즈의 실용적인 시계가 브랜드마다 다시 등장한 것도 시장 상황을 명확하게 반영한 요소다. 실용성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트렌드가 중심을 이루자 미드 하이엔드 라인을 구성하는 브랜드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는데, 론진과 태그호이어 같은 브랜드의 국내 시장 약진도 기대해볼 만하다. 고급 시계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장 성숙도를 견인하며, 스위스 시계 브랜드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이러한 중견 브랜드가 힘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긍정적인 현상이다.
지난 2016년에는 바젤월드 프레스 컨퍼런스를 라이브로 본 뷰어가 1만1천여 명이었지만 올해는 8만6천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증가해 디지털 플랫폼의 파워가 더 강력해졌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도래한 디지털 시대는 로컬과 글로벌의 구분, 세대의 구분, 산업의 구분까지 순식간에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네트워크와 디지털, 데이터의 접근성과 사용성, 스피드가 경제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시계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신 소식을 접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초 단위의 사회 변화 속에서도 전통 수공예에 대한 열정이 담긴 품질 뛰어난 시계와 주얼리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스위스 시계 산업은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와중에도 매년 새로운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스위스 시계 산업, 그리고 바젤월드는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스토리와 실용적인 매력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