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화려하게 한국 시장에 상륙한 내추럴 와인. 불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은 그것을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데일리한 와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추럴 와인을 소란스럽게 마시고 과시하던 시기를 지나 불필요한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음료인 것에 감사하며 마시는 시대가 온 것.
전문가들은 내추럴 와인 시장이 더욱더 견고하게 한국의 주류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는데, 한결같이 마이너 시장을 유지할 것 같았던 와인 시장도 바꿔놓았다. 코로나가 절정을 이루던 2020년, 관세청에 따르면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27.3% 이상 증가했다. 놀라운 수치다. 연간 와인 수입액은 처음으로 3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입량도 24.4% 이상 증가해 5만4천 톤을 넘어섰다.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와인 시장은 지금 흥분돼 있다. 모두 10시에 귀가해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일까? 영화 보면서 천천히 홀짝이기에는 배부른 맥주보다 와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또는 3년 전부터 트렌드 키워드로 급부상한 내추럴 와인이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일까? 유기농 채소를 고집하는 소비층이 좀 더 비싸더라도 화학물질을 배제한 내추럴 와인을 데일리 와인으로 채택한 까닭일까? 아마 전부 정답일 테지만, 나는 3년 전 서울에 혜성처럼 등장한 내추럴 와인이 와인 시장의 성장에 필연적으로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특권계층이 향유하던 술이 아니라, 지식 없이도 자유로운 표현법으로 마실 수 있는 술로서의 길을 내추럴 와인이 열어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만 해도 내추럴 와인은 독립적인 장르물이었다. 명칭 자체가 자극적이었다. 내추럴 와인이라니, 그럼 그동안 내가 마신 와인은 언내추럴 와인이었단 말인가?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추럴 와인을 잘못 접한 이들은 “저는 내추럴 와인의 쿰쿰하고 멍청한 맛을 싫어해요”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내추럴 와인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난리예요?”라며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이 신예 스타는 3년 만에 메이저로 급부상했다. 동네에 하나씩 있는 유기농 그로서리 숍처럼, 내추럴 와인을 다루는 와인 숍과 바가 엄청난 속도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내추럴 와인을 다루는 와인 숍이 압구정, 신사, 청담 일대에 생겨나는 속도가 10년 전 치킨집이 생겨난 속도와 비슷하다는 기사가 속속 나왔다. 내추럴 와인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보수적인 와인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것일까? 소수가 향유하던 와인 문화는 어떻게 MZ세대의 호기심을 끄는 트렌드로 성장한 것일까? 우선 내추럴 와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내추럴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컨벤셔널 와인)의 정확한 뜻을 이해해야 한다. 기원전, 포도주를 맛있게 만들기 위한 인위적인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와인을 내추럴 와인으로 분류하는 게 좋겠다. 포도 자체의 건강함과 날씨의 마법이 만나 당분이 알코올로 발효된 술. 그 어떤 인위적인 노동력도 부가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술.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을 넣지 않아 특유의 시금털털함이 알쏭달쏭하게, 또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내추럴 와인이다. 꽤 오랜 기간, 이런 내추럴 와인은 시장에서 제외되었다. 사람들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보석을 걸치고, 메이크업을 한 자극적인 와인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드레스나 보석, 메이크업에 해당하는 행위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포도에 농축미를 더하려고 멀쩡한 가지를 치는 것(멋진 말로는 그린 하비스트), 포도나무가 건강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농약을 뿌리는 것(아토피에 민감한 사람은 농약을 친 포도로 만든 포도주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격렬하게 반응한다), 와인이 좀 더 오랫동안 숙성되고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을 첨가하는 것. 하늘의 뜻보다는 사람의 의지가 훨씬 더 많이 개입되는 이 와인들은 내추럴 와인과 반대되는 개념인 ‘컨벤셔널 와인’으로 불리는데, 어느 순간 이런 ‘성형 와인’ 말고 자연 와인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람이 마시는 와인에 들어가는 포도는 최소한 유기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채소나 과일, 쌀을 고를 때 유기농을 선택하는 것처럼요.”
내추럴 와인을 조금씩 수입하던 시장은 국내에도 십수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 소비자가 직접 고르고 선택하는 시장으로 성장한 건 한국 최초의 내추럴 와인 바 프렌치터틀(제주)과 한남동 빅라이츠 바가 생겨난 2017년 이후부터다. 강단 있는 애호가 대표가 문을 연 아담한 내추럴 와인 바는 지금도 그렇지만 시작했을 때는 매우 획기적인 공간이었다.빅 라이츠 바 오너는 초기에 내추럴 와인 특유의 맛과 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지인이 소개한 손님에게만 자리를 내주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 알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에게 빅 라이츠의 예약 확정 디엠은 로또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수많은 내추럴 와인 바와 숍이 생겨났고, 을지로, 삼각지는 내추럴 와인 명소 집결지가 되었다. 화려하게 부상했다 사라질 트렌드라고 예상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몇 년 후인 지금, 내추럴 와인 시장은 더 뜨겁고 잔잔하다. 한번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산화황이라는 화학물질을 함유하지 않음으로써 느껴지는 부드럽고 순수한 맛을 일상적으로 즐긴다. 이산화황으로 인한 특유의 날카로운 신맛, 맛을 일정하게 해주는 방부제의 뉘앙스가 빠진 내추럴 와인은 조금씩 매일 마시기에 알맞다.몇 년 전만 해도 구입하거나 마실 곳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수동, 을지로, 삼각지, 신당동을 향해 뻗어나가며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과 쇼핑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동네에 맛있는 빵집과 좋은 셀렉션을 갖춘 책방, 일상 와인을 파는 와인 가게가 있으면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다고 믿는 나에게 무척 반가운 변화다.
내추럴 와인은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결점 없는 채소 말고, 시장에서 이름 없는 농부가 좌판에 내놓고 파는 벌레 먹고 초라한 채소에 가깝다. 물론 어떤 날에는 혜화동 마르셰에서 예쁜 옷을 입고 브랜딩된 농부의 이름으로 팔리는 채소가 될 수도 있다. 채소라는 카테고리에는 다양한 의도의 농작물이 존재하는데, 내추럴 와인의 포지션 또한 와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채소와 비슷하게 분류된다. 지금 비록 화려하게 주목받고 있지만 절대적인 트렌드도, 절대 강자도, 대단히 위대한 신의 선물도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추럴 와인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맛이다. 10년 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국내 최초로 내추럴 와인을 수입한 와인엔 곽동영 대표에게 내추럴 와인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똑같은 와인인데, 여러 가지를 걷어내서 맛이 깨끗한 거야”라는 명쾌한 대답을 보내주었다. 만약 말 오줌같이(?) 시금털털하고 쿰쿰한 효모 향이 지나쳐 도저히 매력이 없는 내추럴 와인을 마셨다면 ‘내추럴 와인이 맛없는 게 아니라 이 와인이 맛이 없는 거군’ 하고 생각해주시길.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담은 술을 잘못 마시고 미워하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보편적으로 맛있는 내추럴 와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가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세상에 없는 맛을 한 병 마시고 나면 내추럴 와인과 첫눈에 반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다음 날 숙취도 덜하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