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시대의 소리 풍경에 오감을 맡겨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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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2, 2024

글 심은록 (AI 영화감독, 미술비평가) l Edited by 고성연

광주비엔날레 개최 30주년 전시

올해로 개최 30주년을 맞이해 문화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아온 제15회 광주비엔날레(2024. 9. 7~12. 1)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프랑스 출신의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예술감독이다. 이 전시는 한국어 제목 <판소리, 모두의 울림>과 영어 제목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판소리,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다른 뉘앙스를 지닌 두 제목 아래, 광주비엔날레 주 전시관과 양림동 여덟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30개국에 걸친 72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전부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작가들이며, 덕분에 신작이 눈에 많이 띈다. 또 아프리카, 아메리카,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22개 국가관, 9개의 도시와 기관이 참여하는 31개의 파빌리온 전시가 각 나라의 특성을 발휘하며 광주 곳곳에서 ‘울림’을 주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의미 있게 공명하는 ‘소리 풍경’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광주비엔날레는 인간 중심이고 시각 우선인 미술계의 영역을 극복하고, 형식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감각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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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몽유도원도에서 서편제로
화려한 색감과 패턴이 인상적인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공식 포스터는 미술사에서 최초로 꿈의 공간을 재현한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산세와 관점을 참고했다고 한다. 첫눈에는 자연풍경을 담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충류부터 포유류까지, 도시와 바다, 그리고 상상의 공간까지 담은 ‘시각적 사운드스케이프’가 펼쳐진다. ‘몽유도원도’의 산세가 출렁거리더니 어느덧 파동이 되어 갖가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 가운데 대표적인 단어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사운드스케이프다. 한국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중 하나가 ‘판소리’다.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은 리서치를 하다가 한국의 사운드스케이프인 ‘판소리’를 만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등을 접하면서 ‘감’을 잡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과 그런 이들에게 늘 절실한 대상인 공간과의 관계를 탐색하고자 했다는 이번 전시는 ‘광주의 광주화’와 ‘18~19세기의 판소리’보다 ‘광주의 세계화’와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에 좀 더 무게중심을 실었다.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아는 판소리의 흔적을 기대했다면 처음엔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판소리의 개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확장한 21세기적 소리 풍경은 형식(form)을 극복(ex-)하는 것을 뜻하는 ‘엑스폼(exform)’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부리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에서 ‘sound(소리)’는 우리가 듣는 모든 음향을 포괄한 소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인간에만 국한되는 협의적 의미의 ‘언어’보다 포괄적이다. ‘landscape(풍경)’에서 비롯된 ‘스케이프’는 물리적 환경이나 주변 경관을 의미한다. 음향 생태학자 머리 R. 셰이퍼(Murray R. Schafer)는 ‘소리로 이뤄진 풍경인 사운드스케이프는 특정 장소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하나의 환경적 요소로 인식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음향 생태학(acoustic ecology)의 기반이 된다. 이를 토대로 광주비엔날레는 인간 중심이고 시각 우선인 미술계의 영역을 극복하고, 형식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감각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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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관 부딪침 소리 | Feedback Effect
사실 부리오 감독의 의도를 명쾌하게 따라잡기까지 살짝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난 9월 6일 열린 프리뷰 당일, 국내외 기자와 여러 관계자들로 광주비엔날레 주 전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갔는데, 터널 같은 입구가 조명도 없이 어두웠지만,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어서 바로 다음 전시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소리를 놓쳤다. 시간에 쫓기고 인파에 밀리다 보니 어느새 출구에 서 있었고, “판소리가 어디에 있었지?”라고 자문하게 됐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관람을 다시 시작했다. 전시의 첫 번째 작품인 터널에 발을 디디자 갑자기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길거리 상인의 목소리, 버스 운전사의 소리, 지나가는 차량 소리,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울렸다. 처음 이 작품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쳤을 때는 길을 잃지 않았는데, 소리가 들리자 낯선 언어와 음향 가운데 헤매게 되었다. 바로 에메카 오그보(Emeka Ogboh)의 ‘Oju 2.0’ 작업이다(oju는 나이지리아에서 사용하는 요루바어로 ‘눈’ 또는 ‘얼굴’을 의미하며,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됐다). 나이지리아의 도시, 라고스의 오주엘레그바 버스 정류장과 그 주변 지역에서 녹음한 현장의 소리, 활기차지만 혼란스러운 에너지, 그리고 전자음악이 결합되어 21세기 라고스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이룬다. 1, 2관의 주제인 ‘부딪침 소리’ 혹은 ‘피드백 효과’는 ‘두 음향 기기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을 때 좁은 공간에서 소리가 포화되면서 발생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말하는 음향 기기’로서 필자와 다른 ‘말하는 음향 기기’의 잡담과 소음으로 작품을 놓친 것 역시 ‘피드백 효과’인 셈이다. 전시장뿐 아니라 일상에서, 특히 생태계에서 수많은 소리가 피드백 효과에 의해 부딪치고 사라지며, 중첩되고 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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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관 겹침 소리 | Polyphony
전시 전체에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에 대한 긴장감이 감돌지만 ‘겹침 소리’라는 주제를 내세운 3관에서는 촉각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인간을 넘어 동물, 기계, 쓰레기, 폐기물 등에서 비롯된 소리의 겹침(polyphony)이 인상적으로 전개된다. 프랭크 스커티(Franck Scurti)는 광주 곳곳의 쓰레기통에서 채집한 곰팡이를 뒤집어쓴 석고 버섯을 고전 영웅이나 신들의 대리석 조각처럼 좌대에 올려 비인간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 이 좌대 역시 광주 쓰레기 매립장의 폐기물을 압축해 만들었다. 벽면에는 거대한 오선지가 그려져 있고, 다양한 폐기물이 음표인 양 붙어 있다. 그 앞에 선 ‘인간’은 ‘비인간’의 연주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확장된 의미의 ‘쓰레기’는 니콜라 부리오식 해석을 빌리자면(<엑스폼-미술, 이데올로기, 쓰레기>) ‘일상에서 존재(being)를 소유(having)로 대체하도록 강요받는 모든 사람(불법체류자, 노숙자 등)’과 사물을 지독하게 현실적이며 고통스럽게 표현하는 메타포다.


4, 5관 처음 소리 | Primordial sound
전시가 진행될수록 ‘비인간’적 세계가 확장된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까지 청각화, 시각화되고 사운드스케이프의 영역도 점점 더 확장된다. 이는 미래의 ‘음향 생태학’의 문제로 연결된다. 전시장에는 뜬금없이 하얀 소금 사막이 펼쳐지고, 끝이 없는 듯 아득한 구멍이 검은 액체로 둘러싸여 있으며, 식물이 그 안에서 자라고 있다. 비앙카 봉디(Bianca Bondi)의 ‘길고 어두운 헤엄(The Long Dark Swim)’(2024)이라는 작업이다. 인간과 비인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위계가 거부되며 거시적, 미시적 관계를 통해 생태학적, 전체론적 사고를 제안한다. 21세기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인식해야 할 ‘실재의 사막’(<매트릭스>, 워쇼스키 감독, 2003)이자 ‘우리 시대의 공허’(니콜라 부리오)다. 혹여 전시장에서 혼란을 느끼고 길을 헤맨다면 전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장-뤽 고다르의 영화 <중국 여인(La Chinoise)>에 나오는 표현처럼 ‘자북(magnetic north)이 제거되어 나침반의 방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리오 감독은 주어진 시공간적 조건 아래 그의 음색이 잘 드러나도록 제15회 광주비엔날레를 지휘했다. 쉽고 강렬하며 충격적인 전시에 익숙해져 사뭇 유희하듯 관람했던 필자를 스스로 꾸짖으며, 다시 한번 전시장을 순례하듯 관람했다. 전자와 같이 쉽게 이해되고 바로 감각에 전달되는 전시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눈을 감고 감정을 자제하며 봐야 하는 전시는 관람객을 성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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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개의 목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가 18~19세기의 판소리도 불러왔다(비엔날레 전시장에서도 판소리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활용한 작품이 더러 눈에 띈다). 화가는 자신의 준법(峻法)을 찾아야 하고, 소리꾼은 ‘득음(得音)’을 해야 한다(최동현, <소리꾼 : 득음에 바치는 일생>). 판소리는 서구와 확연하게 다른, 그리고 한국에서도 점점 낯설어지고 있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서구에서는 가수의 성대를 최대한 보호한다면, 반대로 소리꾼의 성대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한다. 소리는 ‘양성-천구성-수리성-떡목’으로 나뉘는데, ‘충분히 삭은 소리’가 나야 하나, ‘양성’같이 너무 맑거나 ‘떡목’같이 너무 거칠면 가치가 없어 그 중간이 좋다고 한다. 이 또한 시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고 있다. 명창 진봉규는 이러한 소리를 내는 53개의 성음과 목의 종류를 이야기한다.


아귀성, 푸는목, 감는목, 찍는목, 떼는목,
마는목, 미는목, 방울목, 끊는목, 엮는목,
다는목, 깎는목, 짜는목 등등

상기 리스트에서 우리는 몇 개의 목을 보존하고 있는지 자문하며, 광주비엔날레의 영어 제목대로 ‘판소리가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가 든다. 그만큼 여러 이유로 ‘판소리’의 전승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안타까운 상황으로, 비엔날레라는 미술 행사를 넘어 지구와 인류의 조화로운 공존에 있어 시급하고 위급한 ‘음향 생태학’의 문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사람의 청각으로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까지 청각화, 시각화하며 확장된 미래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제시하고 생태학적 사유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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