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우정, 회복에의 의지를 다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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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 2021

글 고성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지구촌에 강타를 날린 팬데믹의 파장 속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수차례 연기됐던 현대미술 축제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드디어 막을 올린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오는 4월 1일부터 39일간의 여정을 펼칠 예정이다. 국가별 파빌리온 프로젝트로 참여하는 두 나라인 대만과 스위스의 전시장은 이미 지난 2월 말부터 전시를 꾸리고, 장외 전시도 선보이고 있기에 사실상 축제는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대만 파빌리온 프로젝트인 <한 쌍의 메아리>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스위스 파빌리온 프로젝트인 <얼론 투게더>는 은암미술관에서 각각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색다른 면모로 각기 호평을 얻고 있다. 예기치 못한 글로벌 악재의 여파로 이번 비엔날레는 규모와 기간이 줄어들었지만 콘텐츠의 질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위기 속 예술적 연대는 과연 우리에게 치유의 미학을 선사해줄까?




Taiwan C-LAB 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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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쌍의 메아리>, 역사의 수레바퀴 속 닮은 대만-한국
원래대로라면 작년 가을을 수놓았을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2월에 재차 연기되어 애석함을 금치 못한 이들이 있다면, 지금 광주에는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줄 전시 콘텐츠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월드 엑스포나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처럼 해외 유수 기관이 자국 작가를 소개할 수 있는 전략적 플랫폼인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다. 지난번 광주비엔날레가 열린 2018년 처음 시도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비엔날레 본전시와 독립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행사로 세계 미술계의 창의적인 교류를 꾀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번에는 당초 6개국의 참여가 추진됐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대만과 스위스로 좁혀졌다. 지난 2월 26일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대만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한 쌍의 메아리>. 주최 기관인 대만 동시대문화실험장(C-LAB)의 초청으로 8개 그룹에서 14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전시로, 비슷한 운명의 질곡을 거친 대만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짚어보면서 보편적 가치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실제로 대만은 19세기 말부터 전쟁과 식민지화, 가파른 경제성장, 민주화의 시련 등의 역사를 볼 때 우리나라와 닮은 면이 많다. 이렇듯 양국이 메아리와 반사된 거울의 이미지처럼 닮았다는 맥락에서 ‘한 쌍의 메아리’라고 표현한 우다쿤(Wu Dar-Kuen) 큐레이터는 몸·서사, 언어·의식, 가요·가사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언어·의식’을 예로 들자면, 전시장 입구부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커다란 네온사인 작품이 해당된다. 대만어 로마자와 한글로 각각 ‘나의 소중한 사랑, 작별의 입맞춤과 안녕’이라고 쓰여 있는데, 무고한 대만 시민들이 탄압당했던 ‘백색 테러’ 시대의 피해자들이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했다고.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이 협업해 완성한 ‘FM100.8’이란 작품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애잔한 울림을 준다. 옛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공간에 주파수 라디오의 형식을 모방해 쓰촨 사투리로 더빙한 서사를 담은 영상이 흘러나오는데, 닿지 못할 추억의 일기장을 펼쳐보는 듯한 잔잔한 몰입을 안긴다. ‘가요·가사’ 범주의 경우, 대만의 전통 가요 ‘우야화’를 소재로 한 덩자오민 작가의 ‘이 오랜 세월 동안’이 시선을 끈다.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가녀린 여인’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던 ‘우야화’ 자체를 1인칭 화자로 설정해 ‘사람들이 안 불러주면 없어져요’, ‘노래는 노래일 뿐’ 등의 메시지를 읊조린다. 다양한 버전의 우야화가 있는데, 한국 음악가 백현진도 참여했다. 전시장에 라이브 연주를 할 채비를 갖췄음에도 ‘바이러스 장벽’으로 작가가 내한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Swiss 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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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데렉의 <얼론 투게더>, 오감 사로잡는 세계 초연
지난 2월 26일 광주 동구에 위치한 은암미술관 1층 전시장. 오전 11시가 되자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어두운 공간에는 반짝이는 야광 운동화를 신은 여성 댄서들이 등장했다. 랩톱 컴퓨터(맥북)와 휴대폰을 든 4명의 댄서는 백색 알루미늄 구조물만 놓인 공간 여기저기를 느릿느릿 다니면서 때로는 눕기도 하고 때로는 앉기도 하고, 홀로 다니기도 하고 짝을 이루기도 한다. 맥북을 집어 들어 눈, 코, 입을 가리면서 동작을 할 땐 컴퓨터 스크린에 그들의 (대개 무표정한) 얼굴이 나오는데, 어쩐지 서늘하다! 알루미늄 구조물로 구획한 공간 주위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네트워크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관객들 역시 그 사이의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작품의 일부가 된다. 필자 역시 그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하고 눈도 맞춰보지만 쌔~ 하게 돌아오는 상대방의 시선은 뭔가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소셜 미디어로 촘촘히 연결된 가상 공간에서 끊임없는 소통과 상호작용을 꾀하지만, 여전히 외롭고, 아니 외려 더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랄까? 몸은 디지털에 함몰되면서 의식은 따로 노는 ‘분절’도 엿보인다. 공연 제목처럼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를 여러모로 잘 보여주는 연출이 아닐 수 없다. 한 세션이 60분에 걸쳐 진행되는 이 라이브 퍼포먼스의 후반부로 가면 4명의 댄서는 서로에게 다가서면서 맥북을 치켜든 채 ‘집단적 기념비’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마치 디지털 시대의 상징적인 브랜드 애플을 찬미하는 듯한 ‘테크노 조각’에 다름 아니다. 스위스 안무가인 안나 안데렉(Anna Anderegg)이 다국적 팀을 꾸려 선보인 <얼론 투게더>의 세계 초연은 6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휙 지나가버렸다. “브라보!” 박수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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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연결’ 사회에서 고립된 현대인의 자화상
멀리서 팬데믹의 장벽을 과감히 뚫고 온 안나 안데렉을 이날 일정이 끝난 뒤 만나봤다. 5시간 연속 공연으로 지칠 법도 한데 2주간의 강도 높은 자가 격리도 끝낸 뒤라 그럴까? 여전히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실 한국에서의 자가 격리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런 유형의 (엄격한) 격리는 처음이었거든요. 일도 했고요.” 같은 호텔에 묵지만 각자의 방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가상으로만 연결되는 경험은 그야말로 ‘얼론 투게더’의 핵심!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정해진 공연이라 “미리 계획한 건 전혀 아닌데, (요즘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면서 그녀는 웃었다. 격리가 끝난 뒤에는 빠듯한 일정으로 추위 속 촬영도 강행했다. 인간의 육체와 환경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늘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안나 안데렉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안무가로 한국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테이프 라이엇(Tape Riot)’이라는 안무 작품을 2017년 서울의 공공 공간에서 선보였고, 2020년에는 김사라 건축가, 박수환 감독과 함께 작업한 ‘남이 설계한 집’으로 제4회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들은 다시 뭉쳤다. 이번 라이브 공연을 기록한 박수환 감독의 공간적 비디오 설치 작품과 영화가 광주비엔날레 폐막일인 5월 9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또 공연에서 쓰인 알루미늄 건축 구조물은 휴대용 모듈 시스템이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얼론 투게더>를 진행할 수 있다. 안나 안데렉은 오는 6월 스위스에서 또 한번 공연을 펼칠 예정이라고.






13th Gwangju Biennale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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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졌지만 알찬 39일간의 축제
25년 넘도록 자리를 지켜온 광주비엔날레도 팬데믹의 기세에는 흔들렸다. 작년 가을에서 올 2월로, 그리고 다시 4월로 미뤄지면서 예년에 비해 규모나 기간이 절반가량 줄었다. 오는 4월 1일부터 39일간의 장정을 펼칠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는 69명(팀)의 작가가 참여하고, 40점 정도의 커미션 신작을 선보인다. ‘판’은 작아졌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내실 면에서 꽤 알차 보인다. 비엔날레의 특성상 도시 곳곳의 전시장을 찾는 ‘발품’은 여전히 요구되지만 콘텐츠의 홍수로 인한 피로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란 대주제는 서구 사회의 이분법적 구조와 관습에서 벗어나 ‘확장된 세계’와 ‘대안적 지성’을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우리는 내부자와 외부자, 법과 불법, 남성성과 여성성을 철저히 구분 짓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확장하고 포용적인 실천을 지속해온 예술가, 사상가와 함께하고 있다”고 공동 예술감독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와 나타샤 진발라(Natasha Ginwala)는 설명했다. 이러한 의지는 작가 구성에서 잘 드러난다. 아시아·아프리카 등 비서구 작가들의 참여가 늘고, 피지, 아이티 등 소규모 국가 출신도 눈에 띈다. 샤머니즘·치유·억압된 역사 등 동시대 현안이라든지 증강 지능, 폭력적 알고리즘 등을 다루는 키워드 목록 역시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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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의 미학
매번 다채롭게 진화하는 전시 공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풍장 터였던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 새롭게 추가되고 ‘라이브 오르간’ 등 온라인 공간도 마련됐다. 주 전시 공간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용봉동)의 경우 5개 전시관이 저마다 다른 분위기로 연출되는데, 특히 1전시실은 역사상 최초로 대중에 무료 개방된다(한국의 게이머들과 작업한 아나 마리아 밀란의 영상 작품 등과 더불어 민정기, 문경원, 이갑철 등 한국 작가를 포함해 모두 8명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 ‘광주 시민에 바치는 헌사’라는 전시실 무료 개방은 5·18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취지와도 잘 맞닿는 듯하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삶과 죽음, 애도를 다루는 기획전을 꾸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영상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 테오 에셰투(Theo Eshetu)가 박물관에서 촬영했다는 ‘유령의 춤’이 공개될 예정이며, 리만 머핀 서울에서 개인전을 진행 중인 칠레 출신 시인이자 미술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n˜a)도 만날 수 있다. ‘장외 전시’로는 아시아 미술관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워크 라이프 이펙트>를 주목할 만하다(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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