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 ‘워케이션(workation)’ 공간 문화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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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 2021

글 고성연 | 이미지 제공 코사이어티(cociety), 노경(작가)

Brands & Artketing series_6 코사이어티(cociety) 빌리지

현대인의 삶을 수놓은 여러 키워드를 꼽자면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흔히 통용되듯 ‘일과 삶의 균형(work-and-life balance)’의 준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좀 편향된 시각의 번역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다수에게 일은 엄연히 삶의 일부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거나 전부나 마찬가지일 만큼 근엄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물론 여기에서 ‘삶’은 사적인 삶이나 일상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만). 어째서 ‘일’과 ‘삶’을 갈라치기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조직 관리자나 크리에이터라면, 아니 기왕 하는 일을 보다 행복하게 하고프다면 누구나 반가워할 만한 트렌드가 바로 ‘워케이션(workation)’이다. 일과 휴가를 합친 말인데, 처음엔 주로 시큰둥과 비아냥으로 점철된 반응을 얻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업무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마침 자연과 문화 예술이 매력적으로 어우러진 워케이션 공간이 생겼다. 제주 동쪽의 호젓한 대자연 속에 자리 잡은 코사이어티 빌리지(cociety village). 그 현장을 체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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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비경(祕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제주의 존재는 늘 경이롭다. 더구나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거의 막혀버린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 아름다운 우리네 화산섬의 소중함이 한층 더 크게 와 닿는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너비와 깊이가 남다른 제주의 거대한 심장은 잘 알려졌다시피 해발 1,950m를 뽐내는 한라산이다. 한라산을 기준으로 남과 북은 산의 앞뒤를 나눈다 해서 ‘산압’, ‘산두’라 불리고, 동과 서는 동촌과 서촌으로 통하기도 한다. 동촌은 오름이 많고 평지가 적어 서촌에 비해 개발이 덜 된 터라 상대적으로 더 한적하고 고요하며,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고 신비로운 자연미를 담뿍 머금고 있다. 한라산 아래 중산간 지대의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코사이어티 빌리지(cociety village) 제주는 동촌다운 영묘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천혜의 자연 속에 나지막이 터를 잡았다. ‘크리에이터 라운지’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던 서울숲점(서울 성수동)으로 잘 알려진 공간 브랜드 코사이어티의 두 번째 사이트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주황색 간판이 보이고, 그 뒤로 다채로운 꽃과 풀, 나무에 둘러싸인 단지가 평평하고 넉넉하게 펼쳐진다. 느림의 미학이 절로 연상되는 풍경의 한 자리는 카페가 차지하고 있는데, 바로 ‘슬로 커피’의 대명사 블루보틀! ‘워케이션’ 문화를 제안하는 복합 공간에 찰떡궁합인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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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 rest with inspiration’ 공간 문화, 새로운 현상이 될까?

서울을 벗어난 첫 번째 블루보틀 매장이라는 존재감을 보여주듯 입구부터 똬리를 틀고 있는 인파가 눈에 띈다. 심지어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도 대수롭지 않은 듯 차분히 입장을 기다린다. 카페로 들어가면 바람결에 흔들리는 털수염풀 가득한 산책로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일 수 있는 제주 매장만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두셋씩 짝 지어 수풀 사이로 거니는 연인이나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광경을 보고는 누군가는 반드시 뼈 있는 농담을 던질 것 같다. “아니, 굳이 이렇게 풍요롭고 여유로운 여행지까지 와서 일을 한다고?”, “일과 휴가를 굳이 왜 같이?” 사실 필자도 예전 같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갸우뚱했던 기억도 있다. 10여 년 전쯤 괴짜 CEO로 유명했던 글로벌 광고 기업 사치앤사치의 케빈 로버츠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가 일과 삶의 균형이란 숨 가쁜 프로페셔널의 삶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일과 삶의 통합’론을 펼치자 내심 흥미롭긴 해도 과연 한국에서 통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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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동의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근로 환경에 대한 조직 차원의 고민이 진화하면서 이런 인식은 변하고 있다. 사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지닌 일본에서도 이미 ‘일과 휴가의 동거’라는 워케이션 개념이 자리를 잡은 지 꽤 오래됐다고 한다. 도시의 딱딱한 사무실 공간에서 나오기 힘든 창조적 영감을 북돋우려는 기업 차원의 원격 근무 프로그램, 혹은 복지 혜택으로 제공되는 식이다. 더구나 지금은 원격 근무가 ‘뉴 노멀’처럼 당연시되는 팬데믹 시대 아닌가. IT 기업이나 진취적인 마인드의 조직들은 복지뿐 아니라 일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차원에서도 워케이션에 관심을 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워케이션’ 철학을 공공연히 지향하는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에서도 총 12채의 숙박 시설 중 절반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레지던스 유형으로 운영하며, 연 단위로 계약한다(나머지 6채는 한 달 살기나 단기 체류를 원하는 개인 고객에게 할당된다). 모든 숙박 시설은 독채인데, 정원이 각 4명 정도라 임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머무르는, 나름 ‘오붓한’ 구도가 형성되는 셈이다. 각종 행사를 위한 공간도 따로 있다.


#가능성의 공간, 일과 일상 사이의 여유 속에서 싹트는 창조적 발상

물론 일도 일 나름이긴 하다. 모든 직군에 해당되는 콘셉트는 아니다. “사실 하드워크는 사무실에서 하는 게 효율이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감을 필요로 하는 소프트워크나 강도 높은 TFT 미팅 같은 일의 경우엔 다르지요.” 코사이어티의 브랜딩을 담당하는 위태양 공동 대표는 ‘자발적인 고립’ 속에서 집중을 통한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창조적 단합’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워케이션’ 공간인 만큼 집단 지성의 추구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휴식을 위한 ‘배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침실이 아니어도 언제든 편히 누워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데이베드나 소파 등 편안한 가구가 놓인 코사이어티 빌리지의 숙소는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힐링’에 필요한 요소가 골고루 녹아 있다. 탁 트인 창에 기막힌 풍경이 들어오는 공용 공간인 프라이빗 라운지는 별도의 2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의 ‘백미’다. 거실을 바깥으로 끄집어낸 공간으로 기획했다는 이 라운지는 조용히 독서를 하거나 명상, ‘멍 때리기’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단지와 연결된 당근밭이라든지 너른 들판을 끼고 있는 숲, 송당리의 보석 같은 시내(천미천)가 유유히 흐르는 오솔길 산책로 역시 영감 어린 체류에 보탬이 될 천연 자산이다. 자고로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고, 편견과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사실 장기간의 체류 공간 대여 비용은 개인이 지불하기에는 만만치 않기도 하다. 그래서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는 올가을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6채의 레지던스 고객 후보 자체를 ‘성장하는 회사를 위한 멤버십’으로 상정했다(물론 개인 여행자를 위한 나머지 6채는 일반 호텔처럼 운영한다). “여기까지 와서 치열하게 일할 정도면 정말로 성장하고 싶은 회사라고 생각했고, 또 그런 건강한 회사들과 같이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회사들과는 잠재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예전부터 ‘워케이션’ 공간 문화에 대한 꿈을 꿔온 코사이어티 창업자들의 소망에 부합하듯 이미 기업 고객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각 기업의 정체성에 맞게 가구나 오디오 등 하나의 콘셉트를 내세운 공간을 꾸미고 VIP 마케팅 프로그램을 입히는 아이디어도 싹트고 있다. 저마다의 공간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것이다.


#성수동 ‘이웃’과도, 고객 ‘브랜드’와도 손잡다, 협업의 선순환

이렇듯 ‘워케이션 공간 문화’라는 아이디어만으로 또 다른 발상을 낳는 선순환은 호스트 차원에서 은근히 바랐던 시너지이기도 하다. 코사이어티라는 브랜드의 태생과 성장 자체가 그러했다. ‘co’와 ‘society’를 합친, ‘마음 맞는 창작자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를 뜻하는 조어가 암시하듯 2019년 문을 연 코사이어티 서울숲점은 초기에는 크리에이터들이 어울리는 ‘멤버십 플랫폼’을 지향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멤버십이 아니라 모두에 ‘개방된’ 복합 공간으로 열게 됐고,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이는 외려 기회로 작용했다. ‘도심 속 치유’의 분위기를 품은 서울숲 공간이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잇 플레이스’로 입소문 나면서 브랜드들이 수준 높은 행사를 위해 대관 신청을 하는 인기 만점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코사이어티의 브랜드 인지도 역시 덩달아 올라갔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행사를 통해 관계를 맺은 기업들이 다시 코사이어티의 두 번째 실험이자 도전인 ‘워케이션’ 공간 문화에 동참하려 나서고 있다. 아예 공간 구성에 참여했거나, 잠재적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레지던스 고객으로서 말이다. 사실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를 매장으로 선택한 블루보틀도 성수동의 ‘이웃’ 브랜드로 자연스레 협업으로 이어진 사례다. “저희는 논리와는 상관없이 블루보틀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코사이어티랑 잘 맞고, 시너지가 날 것 같았거든요.” 이 지점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교류하면 역량이 융합되면서 창의적 시너지가 빚어진다는 이른바 ‘메디치 효과’를 떠올리게 된다. 업종은 이질적일 수 있어도 서로가 동의하는 ‘가치’의 지향점은 비슷하기에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결국 문화적 동맹이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겨나는’ 것이고,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밈’의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화’와 ‘창조적 상생’을 키워드 삼아 새로운 시도를 꾀해온 코사이어티의 행보는 앞으로도 다양한 결로 펼쳐질 예정이지만, 한 가지 ‘사명’만은 그대로 간직해나가기를 바란다. 바로 ‘문화가 발생할 수 있는 근원지이자 거점’을 지향하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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