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하는 21세기 건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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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정리·글 이소영 | 통역 최재훈(HaiLi, Planning Minister) | 문의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www.gdb.or.kr), 이토건축설계사무소(http://toyo-ito.co.jp)

소비의 건축을 지양하고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실천하는 건축계 거장 이토 도요.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이며 이듬해에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까지 받은 그가 한국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작품 ‘윤무’를 완성했다.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이효원 교수가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위해 방한한 이토 도요를 만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건축을 통찰하는 거장의 사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토 도요가 원래부터 자연 속의 건축물을 꿈꾼 것은 아니다. 나가노 현의 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도쿄’의 휘황찬란한 이미지는 콤플렉스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혈기왕성한 젊은 건축가로서 그는 ‘근대’가 곧 ‘도쿄’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1980년대에는 도쿄의 버블 경제에 취해 투명하고 평면적인 건축,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감 없는 건축물을 추구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도쿄는 매력적인 모습을 잃었고, 그는 마치 고향과도 같은 미래의 자연을 꿈꾸게 됐다.
이러한 건축 철학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그의 작품에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면모가 여러모로 반영되어 있었다. 나뭇잎 모양으로 콘크리트를 조형한 토즈 오모테산도 빌딩, 숲 속을 거니는 듯 아치가 이어지는 다마미술대학 도서관, 고즈넉한 숲 속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센다이 미디어테크 등 그의 작품에서 자연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연 재생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연환경에 열려 있는 건축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앞으로 선보일 그의 건축물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건축가 이토 도요의 최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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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원래 예술이 아니었다?

이효원(이하 효) 2015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야외 설치 작품 ‘윤무’가 한국에서 선보인 첫 번째 작품이라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어떻게 영감을 얻어 완성했는지요. 이토 도요(이하 도) 오래전부터 건축이 자연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 생각해왔어요. 담양 소쇄원에서 본 숲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나무를 이용해 작은 섬을 만들었는데, 저 역시 대나무를 사용한 것은 난생처음이라 새로웠죠. 언제부터인가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해왔고, 도쿄를 떠나고 싶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는 건축가 입장에서, 현인들이 시를 쓰고 문장을 짓는 대나무 숲에 흐르는 물과 바람을 재현했으니 여러분도 직접 느껴보기 바랍니다.


당신의 후기 작품 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큰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자연이란 굉장히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때로는 거칠고 잔인하지요. 항상 교훈처럼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고,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축가가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연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인간이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처럼 건축 역시 그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다행히 일본의 건축 기술이 크게 발달했고 노하우도 축적돼 있어 제가 추구하는 자연과 밀접한 건축물을 구현하기에 유리한 편입니다. 기술은 당연히 활용돼야 하지만, 근대주의의 연장선에서 활용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연 재생에너지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절감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건축물 경계 벽을 강화해 자연과 분절되면서까지 단열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여러 개의 벽으로 내부를 외부 환경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장지문과 미닫이문이 여러 개 있던 과거의 목조 주택처럼 단열 기능을 높이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을 ‘생태 건축가’라고 지칭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생태 건축가라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며 자연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서 항상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형태적으로 유기적인 자연과 닮은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과 자연의 생태에 대한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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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집’은 계속된다

동일본대지진 복구 프로젝트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피해 주민을 위해 건축가로서의 욕심을 버리고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집합 주택과 ‘모두의 집’을 선보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일본에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에서 토목 기사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지만,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것은 귀찮아했어요. 제 경우에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도 호출되지 못했지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재난 지역에 찾아가기까지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토목 기술로 자연을 극복하고자 하는 재건 부흥 의도가 확고했던 거죠.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피해 지역의 본래 자연을 존중하면서도 인간적 사고 중심으로 가설 주택을 짓는 데 참여하고 싶다고 거듭 요청했어요. 건축은 원래부터 예술 장르는 아니었어요. 저는 농사를 지으며 살던 피해 지역 주민들이 다시 모여 웃을 수 있도록 자연 속의 집합 주택을 만들었고, 위기를 겪은 이들이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마을 회관 같은 개념의 ‘모두의 집’을 설계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지진 복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젊은 건축가와 함께하는 ‘모두의 집’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체육관 등 기능을 확충해나갈 계획이고요.



건축가로서의 명성이나 부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 대단히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젊을 때는 쟁쟁한 건축가들 사이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젊은 건축가들도 아마 그때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그들도 연륜이 쌓이면 알게 되겠지만,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당신은 이번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위해 빠른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야외 설치 작품 ‘윤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처럼 작은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큰돈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많았을 텐데, 이 프로젝트에 열정을 보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 야외 설치물 같은 소박한 프로젝트는 제 영감의 원천이에요. ‘모두의 집’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중요했죠. 국내외 소박한 프로젝트에서 나온 생각이 하나둘 연결돼 결국 발전된 사고와 사상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는 거죠. 시간도 촉박하고 도쿄와 광주가 가깝지 않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완성 작품이 아름다워서 흡족합니다.


미래의 건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건축가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하겠지만, <스타일 조선일보> 독자들도 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는 젊은 건축학도뿐 아니라 초등학생을 위한 건축 교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을 디자인해보라고 하면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발상이 나와요. ‘건축은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인 듯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건축과 집에 대한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획기적인 발상이 억제되고 억압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교육이며, 집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 공간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건축은 건축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건축의 원리를 만들어내고 그 원리를 공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새롭게 선보일 건축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80% 정도의 프로젝트가 일본이 아닌 아시아에서 이뤄집니다. 제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건축 시장이 크고, 아시아 클라이언트들이 새로운 건축물을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유로 세계 건축가와 사람들의 시선이 아시아에 쏠려 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죠. 20세기에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건축 원리가 아시아로 수입되고 재편됐다면, 현대는 아시아 건축의 파워를 세계에 발산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아요. 내년에 선보일 주목할 만한 건축물은 대만의 오페라하우스와 싱가포르의 콘도미니엄입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으로 자연주의 건축 철학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죠.


누가 그를 70대라고 생각할까? 어떤 이에게는 은퇴를 고려할 나이겠지만, 그는 새로운 꿈을 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간 국내외에서 훌륭한 건축물들을 선보였지만, 이토 도요의 가장 큰 업적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복구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자연에 녹아든 집합 주택과 피해 지역 주민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작은 마을 회관 ‘모두의 집’이 아닐까 싶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지진 피해 복구에 참여한 감동적인 프로젝트는 그에게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13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안겨줬다.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려는 예술가로서의 욕심을 접고, 피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만든 소박한 ‘모두의 집’은 현재까지 14채가 완성됐고, 앞으로도 여전히 이어질 예정이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과 예술가로서의 표현 욕망을 현명하게 조율하는 거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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