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낙하(落下)를 두 손으로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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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 2022

글·인터뷰 고성연

Exclusive Interview with_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신작이 서울에 당도했다! 아마도 대다수의 현대미술 애호가라면 이 문장 하나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행운아라면 이 아름다운 고도(古都)에서도 유서 깊은 궁전인 팔라초 두칼레 전시장을 수놓은,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키퍼의 전시에서 비롯된 잔상을 아직도 ‘저장’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에게도 안드레아 에모(Andrea Emo)라는 베니스 철학자의 글에서 발췌했다는 긴 전시 제목의 글자들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방한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프리즈(Frieze)와 Kiaf를 내세운 아트 페어 주간을 앞두고,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시를 비롯해 릴케의 작품에서 영감받았다는 작품들을 서울로 보낸 그와 ‘글’로 주고받은 인터뷰로 아쉬움을 달랬다. “시는 바다의 부표와 같고, 나는 그 부표들을 오가며 헤엄친다”고 말할 만큼 ‘텍스트의 힘’을 추앙하는 안젤름 키퍼의 글이어서였을까.
마치 손 편지를 받아 든 듯 감흥을 즐기다가 이내 차분히 그의 문장들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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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생 독일 현대미술가’라는 수식어는 단순하고 건조하지만 아주 많은 함의와 연상을 자아낼 수 있다. 인류의 참담한 비극을 초래한 전범국이자 패전국에서 냉전기에 성장한 세대로서 예술가의 운명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큰 자괴감과 고뇌에 시달렸을지, 뼈저린 공감은 못할지라도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다. 20세기의 이념적, 정치적 격동의 중심에서 증폭된 갈등과 번민은 ‘젊은 피’들의 예술적 에너지를 폭발시켰고, 그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왔다. 흔히 ‘신표현주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키퍼는 모국의 참혹한 역사적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아우슈비츠’를 다룬 시(詩)를 소재로 삼고 전후 시대에 금기시되던 논란적인 도상을 끄집어내는 ‘파격’을 시도했다. 자민족의 어두운 상처와 인간의 본성을 들쑤셔대기에 그만큼 논란적이고 무겁고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작품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슬프고, 때로는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가을’ 속 심상을 읊은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신작 회화 13점과 이번 서울 전시에서 함께 선보인 진흙 벽돌 설치 작품 역시 전후 독일의 폐허와 잔해 속에서 자란 그에게 아픈 ‘상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재건, 자연으로의 재순환 가능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가 손수 고른 릴케의 시에 저물어가는 가을처럼 세상 모든 것이 쇠락하고 소멸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그 ‘낙하(落下)’를 양손에 받아들이는’ 존재가 등장하듯 말이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안젤름 키퍼와 주고받은 문답을 모두 공유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요약한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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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늘 서가(library) 산책에 나서는데, 운명처럼 ‘그날의 책’을 찾게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책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 전시의 경우는 어떤가요? 이번 전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고, 전시 제목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가을날(Herbsttag, 1902)’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역시 어느 날 아침, 문득 영감으로 다가온 시인가요? 전시가 때마침 가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열리게 됐네요.
Anselm Kiefer(이하 AK) 릴케의 시는 60년 동안 제 기억 속에 존재해왔습니다. 제게는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시가 많은데, 이 시들은 고스란히 제 안에 있다가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가을’을 주제로 한 작품과 전시 시점의 계절이 가을이라는 점 간에 굳이 연관성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작업의 시작점이 어떤 ‘충격(shock)’에서 비롯된다고 한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런 충격을 받는 계기는 ‘사건(event)’이 될 수도 있고, ‘시(poem)’가 될 수도 있고, ‘풍경(landscape)’이 될 수도 있다고요. 이번 전시를 위한 작업에서는 어떤 충격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AK 이번 ‘충격’은 이 시리즈의 작품을 시작할 당시가 아니라 그보다 몇 년 전에 발생했습니다. 어느 가을,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 있었는데, 햇빛이 아주 많이 내리쬐던 날이었습니다. 런던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특별한 날이었지요. 폭발하는 듯한 색감과 압도적인 자연 경관에 정말 충격을 받았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와 문학에 대한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잘 알고 있습니다. “파울 첼란(Paul Celan)의 글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고 봐도 된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죠(안젤름 키퍼는 그가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유대계 독일 시인 파울 첼란에 헌정하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수첩에 끄적거린 단상이나 짧은 에세이 같은 글을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직접 시를 쓰기도 하십니까? 만약 다른 생이 주어진다면 화가보다 시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AK 그건 제 평생의 고민이자 갈등입니다. 글을 써야 할지, 그림을 그려야 할지. 같은 강도로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열여섯 살 때, 프랑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일기로 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제 갈등을 완화해주지는 못했죠. 하지만 오늘은 분명히 말해야겠네요. 저는 ‘화가(painter)’입니다.


릴케는 한국에서도 명성 높은 시인이고, ‘가을날’은 제 학창 시절에 일부 시구를 외웠을 정도로 자주 접한 유명한 시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Wer jetzt kein Haus hat)’이라는 대목을 이번 서울 전시명으로 채택했습니다. (여러 함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주로 철학적, 문학적 암시라고 봐야 할까요? 현 세계 정세를 반영하는 사회·정치적인 맥락도 담겨 있는지요?
AK 전 정치적인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제 작품이 매일매일의 정치·사회적 뉴스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의 주된 관심사는 사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제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점,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구소련이 붕괴했을 때, 서방과 미국이 유럽의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한 분투를 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승리자라고 선언했을 때, 이미 세상이 잘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건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기조는 러시아를 지방(province)이라고 선언한 오바마 정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협력해야 할 나라를 대하는 적절한 방식은 아니지요. 게다가 핵 앞에 승리자가 어디 있을까요? 승자는 없습니다.


전시 제목 <지금 집이 없는 사람> 전시 일정 2022년 9월 1일~10월 22일 전시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2022
Emulsion, oil, acrylic, shellac, lead and rope on canvas 190 x 280cm

© Anselm Kiefer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Paris·Salzburg·Seoul Photo: Georges Poncet

Wer jetzt kein Haus hat…, 2016~2022

Emulsion, oil, acrylic and shellac, lead, rope, sediment of an electrolysis and chalk on canvas 190 x 330cm

© Anselm Kiefer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Paris·Salzburg·Seoul Photo: Georges Poncet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2022

118 laterite and straw bricks 83 x 288 x 183cm

© Anselm Kiefer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Paris·Salzburg·Seoul Photo: Georges Poncet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2022
Emulsion, oil, acrylic, shellac, lead and rope on canvas 190 x 280cm

© Anselm Kiefer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Paris·Salzburg·Seoul Photo: Georges Poncet

아주 오래전에 모국(homeland)을 떠났고(키퍼는 프랑스와 국경을 가까이하고 있는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1945년 태어났고, 1990년대 초반 독일을 떠났다), 이후로 주로 프랑스에서 거주해오셨습니다. 프랑스에 정착하신 이유가 있나요? 당신에게 ‘집(home)’은 어떠한 문화적 기억의 대상인가요?
AK 저는 프랑스 건너편에 있는, 라인(Rhine)강 근처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 문화와 굉장히 가까울 수밖에 없었고, 강한 유대감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독일은 개인적인 이유로 떠났습니다. 집(home)이란 굉장히 복잡한 개념으로, 보수파에서 주로 많이 거론됩니다. 언젠가 한번 이런 종류의 질문에 답한 적이 있는데, 독일에서 다소 도발적으로 제기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집이란,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새 파리 판테온(Panthe´on)의 영구 설치 작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공개한 팔라초 두칼레의 대규모 전시 등 작업 여정에 방점을 찍을 만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여름 팔라초 두칼레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심지어 반 시간 넘게 홀로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죠. 과거에 “난 걸작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항상 빠져 있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런 대작들을 내놓은 다음에는 솔직히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AK 저는 결과가 제 기준에 결코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늘 절망스러웠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제가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그것이 파괴되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상 파괴자/인습 타파주의자(iconoclast)만이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존재(being)나 무(nothingness)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순서(chronology)라는 것도 없죠.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제가 6년 전에 발견한 안드레아 에모(Andrea Emo)의 철학입니다(베니스의 철학자. 올해 키퍼의 팔라초 두칼레 전시 제목 ‘Questi scritti, quando verranno bruciati, daranno finalmente un po’ di luce’는 안드레아 에모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이 다 타버리고 나면 마침내 한 줌의 빛을 비추리라’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저는 당시 그를 알기도 전에 제 작업 방식이 그의 철학에 철저히 부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바르자크(Barjac)에 있는 당신의 예전 스튜디오(작업실)는 그 자체로 ‘장소 특정적 예술’이라 할 만한 엄청난 규모와 오라를 지니고 있는 ‘미술관’ 같은 공간입니다. 올해 이곳을 대중에게 개방해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예약제로 관람 가능). 바르자크 스튜디오는 당신이 2016년 설립한 비영리재단(Eschaton-Anselm Kiefer)에 이미 기증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모든 계획을 예전부터 세워두고 진행한 것인지요? 
AK 아니요. 그렇게까지 미리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두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 그 작품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절대로 모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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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이름에 들어 있는 ‘eschaton(에사톤)’이라는 단어는 ‘종말’ 같은 종교적인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로 넣었나요?
AK 에샤톤은 ‘시간의 종료’를 의미합니다. 저는 제가 처한 상황을 종료 지점에 서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릴케의 시구 중 이에 적합한 것이 있는데, ‘모든 이별을 앞질러라, 마치 그것이 네 뒤에 있었던 것처럼, 마치 네가 풍화시킨/극복해낸 겨울처럼’이라는 구절이죠.


당신은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성당의 미사를 돕는 복사(altar boy)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믿지 않는다고 밝히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종교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요?
AK 저는 어떠한 신조/교리(dogma)든 그 자체로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1980년대 일어난 방코 암브로시아노(Banco Ambrosiano) 사건 때문입니다(바티칸 교황청이 최대 주주로 있던 이탈리아 지방은행의 파산 사건으로 ‘검은 거래’ 의혹이 있었지만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핵심 관련자 중 한 명이 런던의 한 다리에 매달려 숨진 것이 발견되면서 공론화되었죠. 저는 ‘자애로운 창조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아이작 루리아(중세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의 전설적인 랍비)의 개념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어요. 신은 만물(all things)이지만, 그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세계가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는 개념이죠. 모든 결함,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을 모든 비인간적인 것과 함께 말이죠.


우리는 원소로 이뤄진 텅 빈 존재, 결국 우주로 용해될 작은 입자일 뿐이라는 당신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대해 공허감을 느끼거나 냉소적이 되기도 하지만요. 그렇지만 그 ‘무(nothingness)’라는 것의 미학,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강조하셨죠. 당신의 관점에서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AK 저는 노자의 입을 빌려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득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얻어지지만, 유용성은 없는 것(無)에서 생겨난다.” 또는 폴 발레리(Paul Valery)의 아이러니한 문구를 인용할 수 있겠네요. “신은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다.” 계속 나아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스스로 묻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작품, 더 나아가 나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놀라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당신에게 있어 불가결한 존재이자 영적인 작업(process)이죠. 그처럼 예술과 내면의 자아를 깊이 파고드는, 평생에 걸친 부단한 투쟁의 여정에서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보이는(발견한) 건 무엇인가요?
AK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며, 진실은 아름다움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단지 그것의 힌트만 있고 우리는 그저 가까이 갈 수만 있을 뿐, 진실은 가려진 채 비밀로 남아 있지요. 진실과 가까이에서 지내는 것, 그리고 세상과 ‘가려진’ 지구 사이의 갈등을 견뎌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뭔가 성취했을 때, 그 성취와 우리를 움직이게 했던 열망이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실천으로 옮기기 전 단계에 무한한 갈망이 있고, 우리 앞에 광활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러한 드넓은 평야를 작품으로 입증하기도 하지만, 다시금 무로 돌아가 부활을 기다립니다. 작품은 현존하고 사람들은 그 순간을 보지만, 동시에 그 작품의 부정(否定)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부활도 직시하게 되지요.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순간은 동시에 그 순간의 부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끝나고 나면, 우리 기억 속에서 소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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