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도 우리나라 제2의 도시를 뜨겁게 달군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수많은 ‘별’들이 스쳐 간 행사지만 가장 깊이 있게 빛난 건 스크린이 곧 인생이었던 아름다운 노장을 향한 경외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01년부터 ‘한국 영화 회고전’이라는 뜻깊은 행사를 개최해온 에르메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폭넓은 연기로 스크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원로 배우 신영균 씨를 올해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지난 10월 5일 밤,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는 에르메스 한승헌 사장이 ‘신영균’이라는 이름을 새긴 ‘디렉터스 체어(Director’s Chair)’를 본인에게 전달하는 증정식이 열렸다. 브랜드 특유의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이 의자는 작고한 장-루이 뒤마-에르메스 전 회장의 부인인 고(故) 르나 뒤마 여사가 직접 디자인한 작품. 1960년 <과부>로 데뷔해 <빨간 마후라>, <연산군>, <미워도 다시 한 번> 등 3백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신 씨는 사극을 비롯해 멜로, 전쟁, 문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소화한 인물이다. 그의 표현처럼 ‘머슴부터 왕까지, 안 해본 역할이 없을 정도’다. 이날 행사에서 안성기, 강수연, 유지태, 김남길, 배수빈 등 후배 배우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으며 의자에 당당히 걸터앉은 이 80대의 노장은 “영화 속에서는 ‘한국 남성의 아이콘’이었을지 모르지만 사회에선 평범한 남자였다”며 “(배우로서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남은 인생, 문화 예술을 지원하며 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만들어가려 한다”고 미소 어린 소회를 밝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신영균 씨의 예술혼을 기리는 차원에서 1978년 작품인 <화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그의 대표작 8편이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