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열린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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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2, 2025

글 심은록(AI영화감독, 미술비평가) Edited by 고성연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展_부산현대미술관

전 세계 미술계에서 빈번히 회자되는 유명한 이름이지만 거듭 파고들어도 무궁무진한 매력의 보고 같은 불세출의 예술가 백남준(1932~2006). 부산 을숙도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역대급’을 표방하는 백남준 회고전인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展(2024. 11. 30~2025. 3. 16)이 펼쳐지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등에서 대여한 작품과 사진, 영상 등 1백6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 소장품이 한 점도 없는 미술관에서 백남준 전시를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였으나, “백남준 사후 국내 미술관급에서 개최되는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고 강조했다. 생각보다 열악한 미술관 생태계의 상황과 더불어 백남준에 대한 한국 미술관의 관심과 지원 수준이 새삼 아프게 다가오는 언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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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에서 자서전으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展은 백남준의 ‘자화상’(비디오)에서 시작해 ‘자서전’(수필)으로 끝난다.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까까머리 청년 백남준이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는 영상 ‘손과 얼굴’(1961)이 관람객을 먼저 맞이해준다. 화가들이 흔히 자신을 모델로 삼듯, 백남준 역시 스스로의 모습을 영상의 주체로 설정했다. 이 영상은 ‘무성’이다. 백남준이 음악적 요소와 소리를 중시했음에도 이 작품에서는 어떤 노래나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 이 침묵은 낯설고 두려운 느낌을 준다.
백남준은 언어적 한계를 직접 경험한 예술가다. 그는 한국어를 잃어버린 시대(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독일에서도 언어의 어려움을 겪었다. 6개의 외국어를 구사했지만, 특유의 어눌한 억양과 함축적이고 중의적인 표현 탓에 외국인들은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남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처럼, 언어는 세계와 존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도구인 동시에, 사고와 경험을 제약하는 감옥이기도 하다. 백남준의 예술은 이러한 언어적 한계와 이중성을 통찰하며, 그것을 초월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장을 나서며 관람객은 벽면 가득 쓰인 백남준의 ‘자서전’을 읽게 된다. 그는 양력으로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한 1932년 7월 20일에 태어났다’고 기술했으며, 음력으로는 ‘동독의 스탈린에 대항하는 봉기일인 6월 17일에 태어났다’고 기록했다. 그는 7월 20일을 선호했는데, ‘독일 국민이 히틀러에게 저항한 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데올로기, 편견, 선입관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예술가였던 그의 자서전(1965)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11932년에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십만 살이 될 것이다.


평생 중도의 미를 거부하며 극과 극을 오갔던 백남준다운 엉뚱함이 묻어나는 문장인데, 그는 어째서 굳이 ‘십만 살’이라는 황당한 숫자를 언급했을까? 그건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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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소’와 원방각
백남준이 미래를 사유하는 방법 중 하나는 최첨단 기술과 정보를 다루는 동시에 전통과 과거를 참조하는 것이었다. 그의 ‘삼원소’(1999)는 3개의 레이저 작품, ‘원’, ‘사각형’,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한민족 고유의 문화 코드인 ‘원방각(圓方角)’을 상징한다. 제천 문화에서 비롯된 ‘원(圓, ○), 방(方, □), 각(角, △)’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기 훨씬 전에 백남준이 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요소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제1. 선인 발귀리의 송가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원(○)은 하나[一]이니 하늘의 ‘무극(無極) 정신’을 뜻하고, 방(□)은 둘[二]이니 하늘과 대비가 되는 땅의 정신[反極]을 말하고, 각(△)은 셋[三]이니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太極) 정신’이로다”.
‘삼원소’는 목재 틀에 거울이 달리고 내부에는 레이저 광선이 통과하는 구멍이 있는 프리즘 상자로, 앞면으로는 유리창처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프리즘은 빛을 굴절시키고 분산시켜, 한정된 공간을 무한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독특한 효과를 낸다. ‘삼원소’에서 사용한 색은 빛의 삼원색(RGB)이다. 인간은 세 가지 유형의 원뿔세포(cone cell)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의 빛의 파장을 감지한다. 이러한 색상 감지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은 약 1백만에서 1천만 가지 색상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각적 세계의 근본인 가시광선(visible light)은 전자기 스펙트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가시광선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0.0035%에 불과하며, 음향 스펙트럼에서 인간의 가청 주파수(audible range, 20Hz~20kHz)는 0.000001%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극히 제한된 범위만 보고 듣고 사유하는 존재다. 이쯤에서 백남준이 남긴 많은 명언 가운데 특히 자주 회자되는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에 대해 고민해보자.


내가 아는 것은 모른다는 것뿐이다 – 소크라테스
사태 그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 에드문트 후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리처드 파인먼
예술은 사기다 – 백남준


혹시 이 인용문의 공통분모를 눈치챘는가?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식한 이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와 관련된 언급을 했다는 점이다. 다시 태어나면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던 백남준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인식은 ‘사기’와도 같다. 그러므로 이 한계를 의심하지 않고, 보고 듣는 것을 신뢰하며, 이를 예술로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것은 일종의 ‘자발적 사기’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기 위해 백남준은 ‘중도의 미’를 포기하고, 극과 극을 오가는 방식으로 예술적 탐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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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네틱화된 예술
[좌] Nam June Paik: Electronic Art: [catalogue of an Exhibition]
New York, Galeria Bonino, 23rd November – 11th December, 1965

[우] [좌]의 첫 수식 부분의 일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에 의해 창립된 이론으로 인간, 기계, 그리고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과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닫힌 회로(closed circuit)를 통해 제어와 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반면 백남준은 ‘사이버네틱화된 예술(cybernated art)’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탐구하며,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열린 회로를 통해 사회적 연결성과 미래 가능성을 표현한 비디오아트를 주창했다.
백남준이 작업에 사용한 간단한 수학적 기호는 그의 철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좌]에서 볼 때 적분의 상한인 ‘me(나)’는 백남준 자신을 가리키며, 예술 창작의 주체를 상징한다. 하한인 ‘t=you’는 관객(you), 타자, 혹은 세상으로, 시간(t)이라는 흐름 속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나타낸다. 적분(∫)은 관객과 예술가 사이에서 예술적 경험이 시간이 지나며 축적되고 발전하는 과정이다. 피적분 함수인 ‘사이버네틱화된 예술’은 기술과 인간, 혹은 기계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예술과 ‘사이버네틱화된 예술의 총합’을 계산한다. 백남준은 이러한 예술 철학을 통해 예술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과정적 예술’임을 말한다. 지면의 제약으로 이 글에서는 가장 앞 수식 하나만 해석을 시도했다. 백남준의 수식은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며, 풀어가는 과정에서 독창적인 해석의 재미를 선사하므로, 이어서 해석해보길 강력히 권한다.

불교도들은 또한 말한다(The Buddhists also say)
업은 윤회(삼사라)라(Karma is samsara)
관계는 환생이다(Relationship is metempsychosis)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


백남준은 ‘사이버네틱화된 예술(Cybernated Arts)’이라는 글을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라는 문장으로 마친다(Manifestos, a Great Bear Pamphlets, New York: Something Else Press, 1966 참고). 그가 말한 ‘열린 회로’는 단순한 기술적 개념이 아니라 정형화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스템을 상징한다. 글자의 배치 역시 열린 사고와 비형식적 연결성을 암시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듯, 개념이 점진적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흐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글자의 배치는 백남준의 철학적, 예술적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이는 불교적 개념인 업과 윤회, 관계와 환생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는 ‘열린 회로’ 개념을 통해 단순히 외부 환경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열린 자세와 마음으로 새로운 창조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과 기술, 예술,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백남준의 철학적 관점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기술 발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철학은 단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직면한 기술적, 사회적, 예술적 도전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데도 빛을 발한다. 수많은 화두와 수식으로 점철된 그의 작업과 사유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며, 새로운 가능성과 연결의 방식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백남준의 유산은 우리의 열린 회로 안에서 계속 진화할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수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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