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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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 2022

글 천수림(미술 저널리스트)

Kiaf·Frieze Seoul 2022

에릭 오 <오리진(ORIGIN)>/스페이스K 서울


서울 강서구 일대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는 현대미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마곡동의 스페이스K 서울에서는 프리즈 서울 주간을 앞두고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스페이스K 서울이 강서구와 기획·협업한 에릭 오(Erick Oh, b. 1984)의 신작 단편 애니메이션 <오리진(Origin)>이다.
지난 8월 24일부터 미술관 외벽과 미술관 부지 내 작은 공원 바닥에 미디어 파사드 형식으로 상영되고 있는 이번 작품은 미술 애호가는 물론 동네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미술관 내에서는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에릭 오는 <오페라(Opera)>로 2021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종 후보, 2022년 <나무>로 연속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인물이다. 픽사(Pixar)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독립 단편영화와 2018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크리스털상을 받은 <PIG: The Dam Keeper Poems> 시리즈 등으로 주목받았고 바오바브 스튜디오(Baobab Studios)의 새로운 가상 현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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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오(Erick Oh)의 2022년 신작 <오리진(Origin)>은 <오페라(Opera)>(2020)의 프리퀄 연작으로 우주, 생명, 인류의 존재와 ‘기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상은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텅 빈 공간에서 시작된다. 이윽고 행성(지구 혹은 미지의 행성)을 둘러싼 얼음(혹은 반투명 유리처럼 보이는 물체)이 균열을 일으키며 영상의 변화를 이끈다. 검은 점이 하나씩 생겨나며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는데, 마치 사람이 흘리는 눈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성은 어둠으로 뒤덮이는 듯 보이다가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꽃잎 형상으로 폭발해버린다. 환상적인 꽃잎은 거대한 사운드와 함께 보라색과 푸른빛으로 피어나고, 꽃송이 한가운데에서 신비로운 노란빛 태양과 행성을 둘러싼 회색빛 행성이 출현하지만 이내 사라진다. 회색빛 작은 행성이 사라진 뒤, 마침내 가장 처음에 등장했던 행성으로 돌아간다. 러닝타임은 5분이지만 무한 반복되는 이 작품은 ‘시작과 탄생, 인류의 변화, 성장, 죽음, 소멸’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하도록 이끈다. 아름다움과 장엄함, 절망과 희망, 공허함과 두려움, 행복과 환희, 선과 악 등 다양한 감정으로 반응하게 만들지만, 서사를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함을 담고 있다. <오리진>은 특히 코스모스(cosmos)가 공간의 의미와 함께 아름다움과 조화를 뜻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오리진>은 <오페라>처럼 설치와 영화를 위해 기획되었고, 제작 기간만 2년이 걸렸다.
<오리진>이 에릭 오가 어릴 때부터 품어온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과 삶의 기원에 대한 습관화된 개인의 이야기라면, 4년에 걸쳐 34명의 애니메이터와 함께 완성한 <오페라>는 인종차별부터 전쟁과 테러의 지속적인 위협,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 등 감독의 사회구조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오페라’라는 단어는 라틴어 ‘op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 노동, 작품 등을 의미하며(라틴어로 opus의 복수 주격형이 opera다). 9분 분량의 단편 <오페라>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오케스트라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따랐다. 에릭 오 작가는 ‘오페라는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인간 사회, 우리의 삶과 역사를 반영한 것, 정치적 갈등, 전쟁, 인종차별, 종교적 갈등, 자연재해 등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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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는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 안에 다양한 인간형 캐릭터로 채운 상호 연결된 24개의 서로 다른 서사가 담겨 있고, 이처럼 서로 다른 장면으로 이루어진 방이 동시에 펼쳐진다. 맨 위에는 왕이 앉아 있는데, 일렬로 늘어선 노예들이 바치는 끝없는 식사로 점점 살이 찌고 있다. 아래 방에서는 노동자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식과 연료를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회의 중인 직원들이 나오는 장면부터 잘린 머리를 용광로에 던지며 춤추는 인물의 등장까지 다양하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카메라와 함께 하나의 연속 촬영으로 펼쳐지는데, 관람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각자의 이야기로 각인될 것이다. 무한 반복되는 ‘루프’ 아이디어는 역사의 악순환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활과 불멸을 향한 우주론을 서술한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표도로프(Nikolai Fyodorov)는 “지구는 인류의 뮤지엄으로, 우주를 여행한다”라고 말했다. 에릭 오의 <오페라>와 <오리진> 작품을 보면 이 말이 연상된다.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상영되며, 오는 12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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