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의 노래, 그리고 대관령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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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3, 2013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의 저자)

미국에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이국적 자연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회를 즐길 수 있는 제10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찬란한 위상과 하이라이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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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의 노래
북유럽 음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정명화, 정경화 예술감독이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를 북유럽 음악으로 정한 것은 이미 지난해의 일이었다. 페스티벌의 레퍼토리를 넓히고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선사하기 위해 클래식 마니아가 아닌 이들에게는 조금은 낯설지도 모르는 북유럽 음악을 메인 테마로 선정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번 페스티벌 ‘오로라의 노래(Northern Lights)’는 그간의 명성에 버금가는 열렬한 찬사를 자아냈다. “북유럽은 최근 세계의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환경, 디자인, 음식, 엔지니어링, 문학, 미술 등도 훌륭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북유럽 5개국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많은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요.” 클래식 마니아이기도 한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구삼열 행정감독은 이번 음악회를 통해 북유럽이 그리그, 시벨리우스, 닐슨뿐 아니라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비결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한한 핀란드 출신의 유명 지휘자 사샤 마킬라는 북유럽 음악은 크게 ‘샘물, 대구, 그리고 어린 시절의 풍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가 시벨리우스는 자신의 음악을 고향의 샘물에 비유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음악가인 그리그는 즐겨 먹는 대구 요리에서, 닐슨은 어린 시절의 풍경에서 자신의 음악이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지요.”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인 그리그가 자신의 음악이 생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사샤 마킬라는 북유럽 음악가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공통점이 없다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는 것. 북유럽의 자연과 여유로운 생활 방식은 중남부 유럽의 음악적 유행이나 규칙에서 자유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새롭고 독창적인 음악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페스티벌의 첫 번째 순서인 ‘저명 연주가 시리즈’ 연주회에서는 노르웨이 출신 음악가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 Op. 40’, 핀란드 작곡가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Op. 1’, 스웨덴 작곡가 다그 비렌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 11’을 연주해 ‘오로라의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오로라의 노래’를 직접 연주하기 위해 핀란드에서 지휘자 사샤 마킬라 이외에 관악 5중주단 판타지아 퀸텟, 생 미셸 스트링스 등이 내한한 것도 주목할 만했다.
첼로와 대금을 위한 관현악곡의 세계 초연

그렇다고 이번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북유럽 음악만 연주한 것은 아니다. 바흐, 베토벤, 비발디 등 대가들의 곡 연주도 연이어 펼쳐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3년을 축하하기 위한 특별한 연주회도 눈에 띄었는데, 베르디 탄생 2백 주년을 기념하는 국립합창단의 공연 ‘오페라 합창 모음’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오페라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돈 카를로> 등 베르디의 명곡들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벤저민 브리튼 탄생 1백 주년을 축하하는 ‘첼로 소나타 C장조 Op. 65’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우정으로 창작된 곡으로 1961년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던 작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 1백 주년을 기념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김다솔의 공연 역시 매혹적이었다. 손열음과 김다솔의 모던하면서도 도전적인 무대의상은 스트라빈스키가 1백 년 전 이 작품을 초연했을 때 받았던 야유와 조롱을 비판하는 듯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감독 정경화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한 듀오 리사이틀에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27번 G장조 K. 373a’ 등을 연주해 변함없는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위해 만든 세계 초연 작품을 2곡이나 선보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작곡가 이영조가 첼로와 대금을 위해 쓴 실내악곡과 작곡가 리처드 대니얼 푸어의 관현악곡도 찬사를 받았다.
첼리스트 정명화가 대금 연주자 김진성, 북 연주자 설현주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은 흥분에 사로잡혔다. 김진성과 설현주는 보라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고, 정명화 감독은 풍성한 드레스에 옥색 모시 재킷을 입었다. 우아한 세 연주자의 ‘첼로와 대금과 타악기를 위한 모리’는 서양과 동양 악기의 화합으로 상이한 문화의 만남을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운 충격을 선사했다. 친근한 멜로디가 아니라 다소 어렵다는 평에 대해 이영조 작곡가는 원래 예술은 어려운 것이라는 우문현답을 했다. 하지만 첼로와 대금, 북의 아름다운 조화가 가져다준 감동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리처드 대니얼 푸어의 ‘방랑하는 다르비슈의 노래’는 대관령국제음악제 10주년을 맞아 헌정한 세계 초연 작품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15분짜리 작품이다. “ ‘다르비슈(Darveesh)’는 ‘거리를 떠도는 탁발승’이라는 뜻인데, 실크로드를 걸어가는 다르비슈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입니다. 다르비슈가 방랑하면서 결국 발견한 것은 그 자신이거나 내면의 모습이겠지요.” 유명 음악가들이 페스티벌 기간 동안 참여하는 대관령국제음악제 오케스트라(GMMFS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이 사샤 마킬라의 지휘로 공연해 박수를 받았다. 꽃미남 지휘자 사샤 마킬라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기간 동안 프로그램에 따라 GMMFS 오케스트라와 GMMFS 앙상블이 연주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모두 솔리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음악가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과 엘리나 아롤라, 비올리스트 킴모 아알토, 첼리스트 이르요 풀키, 에이키 호티, 더블베이스트 미치노리 분야, 현악 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멤버 등 최고의 솔리스트들이 만든 오케스트라 화음이 더욱 아름다우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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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국제음악제의 비하인드 스토리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국제적 위상은 2백여 명의 세계적인 음악가뿐 아니라 참석하는 VIP와 후원 기업의 리스트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관객들은 정명화, 정경화 음악감독 외에도 평소 편애하던 음악가들을 알펜시아 리조트 곳곳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으며, 국제적 명사들을 연주회장에서 만날 수 있다.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이 2011년 주한 외교사절을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초대하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올해도 50개국 1백여 명의 외교 사절이 연주회를 감상했다. 혹시 당신의 옆자리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한 이탈리아 대사 세르조 메르쿠리, 일신방직 김영호 회장, 배우 윤여정, 영화감독 이재용이 앉아 있더라도 당황하지 마시라. 한편 VIP와 연주회를 마친 음악가들을 격려하기 위한 디너파티도 거의 매일 진행되었는데, 이는 삼성, 브레게, 토즈, 대원문화재단 등의 후원으로 개최할 수 있었다. 후원 기업들은 다채로운 방법으로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지원하며 기업의 문화적 이미지를 제고할 뿐 아니라, 음악제를 격조 있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특히 토즈의 파티는 음악가와 VIP들이 가장 기대하는 행사 중 하나로, 참석자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테이블 세팅에서부터 요리, 좌석 배치까지 해마다 섬세한 준비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민하기로 유명한 스타 음악가들이 2백여 명이나 모이다 보니 까다로운 요구에 따른 에피소드는 없을까? 정명화, 정경화 예술감독과 구삼열 행정감독의 풍부한 경험과 후원사의 도움으로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티스트들은 와이파이를 무료로 협찬한 KT와 신동와인, 네스프레소 커피, 크롬바커 맥주의 후원으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또 유재세 현악실에서 언제든지 스트라디 바리우스 현악기를 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의를 제공했다. 다만 밤에 객실에서 연습하고 싶어 하는 연주자 모두에게 복도 구석에 위치한 룸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작은 불편일 뿐이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

음악제가 끝날 무렵에는 무대에 정명화, 정경화 예술감독이 올라와 개최 10주년을 축하하는 특별한 감사패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10년 전 대관령국제음악제를 탄생시킨 전 강원도지사 김진선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강원도의 문화 관광 부흥을 위해서 음악제를 개최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강효 초대 예술감독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 지금의 세계적 음악 축제가 탄생할 수 있었다. 강효 초대 예술감독은 아티스트 특유의 뚝심으로 음악가의 실력만을 우선시하는 음악제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뒤를 이어 지난 8회부터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정명화, 정경화 자매는 세계적 인맥과 새로운 도전으로 단기간에 페스티벌을 급성장시켰다. “모든 연주가 의미 깊고 소중하다 보니 2주일 동안 개최되는 연주회를 모두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항상 티켓을 구하기 어렵고, 음악제 내내 시간을 내기도 힘든 이들을 위한 묘안이 있지요. 페스티벌의 주요 음악회는 KBS에서 조만간 실황 중계할 예정이고, KBS 클래식 FM 라디오에서 라이브 연주로 감상할 수 있어요.”
정명화 예술감독은 클래식 FM 라디오에서는 생방송 부스를 만들어놓고 연주회를 막 끝낸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콘서트홀에서 직접 듣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하는 경우, 미처 티켓을 구입하지 못한 마니아들을 위해서 음악 텐트에서 무료로 실시간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컨벤션 센터에서 무료로 공연되는 ‘떠오르는 연주자 시리즈’도 놓칠 수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현악 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처럼 이곳에서 공연했던 젊은 연주자가 몇 년 후 스타가 되어 다시 대관령음악제를 찾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점찍어둔 연주자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연주회와 파티 외에도 음악제를 만끽하는 방법은 또 있다. 음악제가 열리는 알펜시아 리조트는 대관령 자연 속에 위치한 곳답게 트레킹 코스를 갖추고 있다. 세 가지 코스로 꾸민 알펜시아 트레킹 코스는 각각 다른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고, 사계절이 변하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뒤편에 펼쳐진 작은 동산은 30분이면 정상까지 다다를 수 있다. 호텔 앞의 솔섬 산책로부터 시작하는 ‘타운 산책길’은 이른 아침 또는 조명이 은은하게 켜진 저녁에 둘러보면 좋은 코스. 특히 아침이면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 스키 점핑 타워를 바라보며 스포츠 파크를 향해 걸어가는 코스는 ‘올림픽 기념길’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조성한 스포츠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내년에 개최될 제11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주제는 무엇일까? 예술감독들은 이미 테마를 정해둔 듯 보였지만 당분간 말해주지 않을 태세다. 다음 여름의 만남을 기대하며 오로라의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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