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 2025
글 고성연(홍콩 현지 취재)
Exclusive Interview with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팬데믹 시기가 도래하기 전인 2019년 여름, 홍콩섬 센트럴 지역에 자리한 복합 문화 공간 타이퀀에서 일본이 낳은 현대미술계 슈퍼스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개인전이 열렸다. 이 전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무라카미 대 무라카미(MURAKAMI vs MURAKAMI>라는 전시 제목 자체에서 언뜻 떠오르는 그만의 다면적인, 혹은 이중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친 적이 있다. 종종 톡톡 튀는 ‘코스프레’ 룩으로 단장한 채 등장하는, 재기와 파격이 넘치는 캐릭터지만, 우리 앞에 드러내는 이미지를 현란하게 연출하면서도 자신의 작업 세계에 대해서는 무던히 고민하는 그만의 독특한 여정이 어쩌면 꽤 고단할 법해서다. 올봄 아트 바젤 홍콩 기간, 홍콩 컨벤션 센터(HKCEC)에 무라카미에게 헌정하는 대형 전시 부스를 차린 루이 비통과의 20년 넘는 세월을 관통하는 브랜드 협업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 현지에서 직접 일대일 대화로 접해본 그의 면면은 예상을 뒤엎고 훨씬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슈퍼스타로서의 무라카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업 속 캐릭터를 형상화한 형형색색의 모자 밑으로 길고 구불구불하게 드리운 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해 제법 과한 동작과 포즈를 취하는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b. 1962). 그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한 ‘꽃(무라카미 플라워)’ 이미지는 대부분 접해봤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동시대 아이콘 같은 이 현대미술가가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곤 하는 모습이다. 당연히 이 같은 연출은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의 소산이자 자신의 예술 세계를 나름 압축해 보여주는 축소판이기도 하다. ‘오타쿠’를 자처하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흥청거리던 버블 경제의 거품이 꺼진 1990년대 독특한 일본 문화 현상과 미술을 결합한 ‘니폰 팝(Nippon Pop)’을 이끌어 세계적으로 각인시킨 주인공이다. 고급과 저급, 전통과 현대, 예술과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경계를 해체하고 계급과 취향의 서열도 납작하게 눌러버린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독자적 개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언뜻 유치하기 짝이 없고 “그게 예술이야?”라는 핀잔도 곧잘 듣지만, 일본화를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밟은 그의 작업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후 미국에 뼛속까지 물든 ‘심신의 뒤죽박죽’ 상태에서 순수 미술과 서브컬처, 세계와 일본, 유일성과 복제성 등 다차원적으로 분열된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에서 자신의 생존 조건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삐뚤어진 예술’로 보는 시선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평론가 사와라기 노이). 어쨌거나 그는 서구 모방주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커리어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카이카이 키키(이상하고 기이하다는 뜻)’라는 회사이자 갤러리를 이끌며 ‘일본적인 것’의 세계화를 향해 질주했다. 그 과정에서 2002년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던 루이 비통과 협업을 펼쳐 ‘만화경의 미학’으로 재해석한 모노그램 패턴을 창조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이 운명적 조우는 역대급 성공을 거뒀고, 브랜드와 작가 둘 다에게 커다란 ‘윈-윈’으로 남았다.
홍콩 센트럴 지역의 루이 비통 매장에서 만난 무라카미는 모노그램이 박힌 상·하의를 입고 자신이 협업한 MLB 도쿄 시리즈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마침 LV Х 무라카미 리에디션의 두 번째 챕터가 발표된 시점이었고, 우연히 끼 넘치는 배우처럼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그의 화보를 봤던지라 20년도 더 넘은 과거의 협업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냐고 물어봤다.
홍콩 센트럴 지역의 루이 비통 매장에서 만난 무라카미는 모노그램이 박힌 상·하의를 입고 자신이 협업한 MLB 도쿄 시리즈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마침 LV Х 무라카미 리에디션의 두 번째 챕터가 발표된 시점이었고, 우연히 끼 넘치는 배우처럼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그의 화보를 봤던지라 20년도 더 넘은 과거의 협업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냐고 물어봤다.
인간 무라카미의 진솔한, 혹은 전략적인(?) 고백
“처음으로 파리에서 큰 전시를 한 때였어요. 마크가 그 전시를 보고 이메일로 제안을 해왔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루이 비통이 뭔지, 마크 제이콥스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죠.” 의외의 답을 하면서 그는 “당시 여성 동료가 ‘이 협업은 무조건 해야 한다’면서 엄청나게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라고 부연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은 ‘슈퍼플랫’의 개념과 잘 어우러졌다. 마치 이제는 박제된 듯한 튀는 패션 스타일 역시 “유치하고 일본의 스트리트 컬처를 연상시키는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았는데, 잘 맞았던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자신 역시 수줍었다는 고백과 함께. 그런 그가 다음 날 루이 비통 파티에서 ‘카이카이 키키’ 단어를 랩의 한 구절로 흥얼거리며 일본 힙합 아티스트와 함께 열심히 공연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무라카미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적응 지수(AQ)가 가장 높은 아티스트라는 지인(평론가)의 글에 절로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수장’으로 이끄는 카이카이 키키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그는 팬데믹 시기에 카이카이 키키가 파산 위기를 겪었다가 NFT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의 자아는 어떤 면에서는 분열되어 있는 걸까?
“저는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작은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죠. 3백 명이 넘는 직원과 함께하고 있고 일상적으로 회사 일에 임하다 보면 조직 내에서 소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돈의 흐름에 대해 매일같이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매우 슬프기도 하고요.” 사실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개인 브랜드만 보자면, 적어도 커리어나 수입 면에서는 걱정할 게 별로 없겠지만 동료들과 후배들을 챙기며 끌고 나가는 가장 같은 리더십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그의 영리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인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가 미술계에 속한 2명의 인물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했다는 점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한 명은 스페인의 ‘올드 마스터’인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현존하는 동시대 거장인 독일 현대미술가 안젤름 키퍼다. “고야는 작고하기 전 수년 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은둔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캔버스가 아니라 벽에 붓질을 했죠. 기억을 잃더라도 내 손과 눈은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자유’라며 이런 상황이 부럽다(?)는 그의 말에 마지막으로 궁금해마지않던 질문을 건넸다. 선배 예술가인 안젤름 키퍼(b. 1945)의 수많은 수작 중 ‘오시리스와 이시스(Osiris and Isis, 1985~1987)를 늘 ‘최애 작품’으로 꼽는 이유가 있느냐고. “뉴욕 모마(MoMA)에서 그 작품을 봤어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서 창피할 법한 상황이었는데도요. 당시 여자 친구가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지만 나도 모른다고 답했죠.” 당시 스물여섯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웃음 띤 동그란 얼굴을 마주하자니 문득 ‘젊은 무라카미’가 보고 싶어졌다.
“저는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작은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죠. 3백 명이 넘는 직원과 함께하고 있고 일상적으로 회사 일에 임하다 보면 조직 내에서 소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돈의 흐름에 대해 매일같이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매우 슬프기도 하고요.” 사실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개인 브랜드만 보자면, 적어도 커리어나 수입 면에서는 걱정할 게 별로 없겠지만 동료들과 후배들을 챙기며 끌고 나가는 가장 같은 리더십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그의 영리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인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가 미술계에 속한 2명의 인물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했다는 점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한 명은 스페인의 ‘올드 마스터’인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현존하는 동시대 거장인 독일 현대미술가 안젤름 키퍼다. “고야는 작고하기 전 수년 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은둔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캔버스가 아니라 벽에 붓질을 했죠. 기억을 잃더라도 내 손과 눈은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자유’라며 이런 상황이 부럽다(?)는 그의 말에 마지막으로 궁금해마지않던 질문을 건넸다. 선배 예술가인 안젤름 키퍼(b. 1945)의 수많은 수작 중 ‘오시리스와 이시스(Osiris and Isis, 1985~1987)를 늘 ‘최애 작품’으로 꼽는 이유가 있느냐고. “뉴욕 모마(MoMA)에서 그 작품을 봤어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서 창피할 법한 상황이었는데도요. 당시 여자 친구가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지만 나도 모른다고 답했죠.” 당시 스물여섯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웃음 띤 동그란 얼굴을 마주하자니 문득 ‘젊은 무라카미’가 보고 싶어졌다.
1 루이 비통은 아트 바젤 홍콩에서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를 개최했다. 2018년 루이 비통 재단에서 선보인 컬렉션의 일부인 ‘조초군과 타몬군’(2003), 수수께끼 같은 스크린 작품 ‘슈퍼플랫 젤리피쉬 아이즈 1’(2003) 등을 내세웠다. 또 조각, 판화, 텍스타일 작품은 물론 부스 내 ‘시크릿’ 상영관에서 무라카미의 비디오 작품도 선보였다.
2 루이 비통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협업 20주년을 맞이해 올해 2백 점 이상의 ‘루이 비통 X 무라카미 리에디션’을 선보였다.
3 일본 전통 회화인 니혼가 기법과 애니메이션, SF, 팝 컬처를 버무린 작업으로 미술계 스타로 자리매김해온 무라카미 다카시. Photo by 고성연
4 Takashi Murakami, ‘MAX & SHIMON’, 2004.
5 Takashi Murakami, ‘Superflat Jellyfish Eyes 1’, 2003, exihibition view,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6 ‘Flowerball’ by Takashi Murakami, Collection Louis Vuitton 2009 Ⓒ Louis Vuitton.
2 루이 비통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협업 20주년을 맞이해 올해 2백 점 이상의 ‘루이 비통 X 무라카미 리에디션’을 선보였다.
3 일본 전통 회화인 니혼가 기법과 애니메이션, SF, 팝 컬처를 버무린 작업으로 미술계 스타로 자리매김해온 무라카미 다카시. Photo by 고성연
4 Takashi Murakami, ‘MAX & SHIMON’, 2004.
5 Takashi Murakami, ‘Superflat Jellyfish Eyes 1’, 2003, exihibition view,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6 ‘Flowerball’ by Takashi Murakami, Collection Louis Vuitton 2009 Ⓒ Louis Vuitton.
※ 1, 2, 4~6 이미지 제공_루이 비통
01. 홍콩을 열기로 채운 ‘슈퍼 마치(Super March)’_Getting Back on Track! 보러 가기
02. Exclusive Interview with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_예술가로서의 완전한 자유를 향해 보러 가기
03. ‘아트 위크’에 머무는 로즈우드 홍콩(Rosewood Hong Kong)_장밋빛 노을과 푸르른 항구의 축복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