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민의 필수 교양 작가를 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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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5, 2023

글 심은록(Sim Eunlog Meta Lab 연구원) l Edited by 고성연

예술가, 세상을 바꾸다: JR 사례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 JR(1983~)은 올해로 40대에 들어선 젊은 아티스트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작품이 좋아 사랑받는 작가는 많지만, 존경까지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2011년, 28세의 JR이 공개 강연 프로그램인 ‘TED’ 프라이즈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그 가능성이 드러났다. 시각적으로는 안젤름 키퍼나 아놀드 레픽 등의 작업처럼 추상 표현주의가 쉽게 다가오지만, 작품 내용을 알고 나면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것은 단연 JR의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추상적이나 간접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다루는 게 아니라, ‘사실’을 ‘직접’ 다루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작가라 할지라도, 미술 평론가들의 펜촉을 날카롭게 세우게 하는데, JR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들의 붓이 부드러워진다. 알면 알수록 멋지게 예술을 한다는 감탄이 드는 작가다. 진실된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고 싶은 이들의 필수 교양 수업이 있다면, JR은 0순위로 삼아도 모자람이 없다. 전 세계를 캔버스 삼아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JR의 대규모 전시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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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제이알)은 1983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장 르네(Jean Rene´)로 ‘JR’은 이름 이니셜에서 가져왔다. 그의 아버지는 동유럽, 어머니는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이민자다. 그의 부모는 우리에게 ‘벼룩시장’이라고 알려진 클리냥쿠르(Clignancourt) 시장에서 노점을 했기에, JR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성장한 파리 북부나 생-드니 지역은 치안이 불안해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이 소수자, 이민자 등에 대한 JR 작품 세계의 심성적 바탕이 된다. JR은 처음에는 다른 그래피스트들처럼 래커,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공공장소 혹은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나 기타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삼성 카메라를 주웠고, 이 카메라를 사용해 사진을 찍어 프린트한 것을 벽에 붙이며 다른 그래피스트들과 차별화된다. 뱅크시(Banksy, 1974~)가 주변 환경을 이용해 풍자적 장면을 독특한 스텐실 작품으로 만들어 위트 페이스팅(wheat pasting, 밀가루 접착제를 사용해 종이 기반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부착하는 행위나 예술 형식)을 한다면, JR은 종종 28mm 광각렌즈로 피사체의 얼굴(혹은 눈, 코, 등 일부분) 혹은 인물 전체를 주로 모노크롬 포토(monochrome photography)로 표현하는 위트 페이스팅을 한다. JR은 건축 도면을 인쇄하는 프린터를 주로 사용하는데, 폭 90cm의 출력물로 건물에 맞춰 사이즈를 조정한다. 그의 실내 전시도 훌륭하지만, 실외에서 건물과 어우러지는 작업은 더욱 인상적이다. 2009년, 파리의 센 강둑과 다리에 거대한 눈이 설치됐을 때, 루브르와 에펠탑을 배경으로 ‘아나모포시스’ 작업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은 더 자유롭고 친밀하게 그의 작업과 교류하며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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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크로니클스

JR을 심도 있게 접할 수 있는 대규모 개인전 <JR:CHRONICLES>)가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진행 중이다(8월 6일까지). 이 전시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2019), 독일 뮌헨 쿤스트할레(2022~2023)를 거쳐 한국에 왔다. 사진, 영상, 프로젝트를 기록한 아카이브 등 1백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JR의 작품은 하나하나 감동적이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이해 없이는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기에 몇몇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겠다.


‘세대의 초상, 브라카쥐, 래지 리’(2004)

이 작품에서 JR은 그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래지 리(Ladj Ly)를 찍고 있다. 래지 리는 카메라를 총처럼 겨누고 있다. 사실 카메라와 총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다. ‘photo shoot(사진 촬영)’의 ‘shoot’은 ‘쏜다’라는 의미다. 카메라나 총은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하며, 초점을 맞추고, 결정적인 순간을 노린다. 무엇보다 잘못(왜곡)된 저격은 커다란 피해를 야기한다. 이 점을 잘 아는 래지 리는 위 이미지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아는 동네 형들이 사진을 찍으니, 래지 리 뒤편으로 동네 아이들 몇 명이 함께 사진에 찍히고 싶어,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뒤로 JR의 작품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처럼 3중으로 중첩된 의미(사진과 총, 아이들의 순진함, JR의 작품 등)를 지니고 있는 작업이지만, 사람들은 래지 리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사진 속 오브제가 무엇인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총’을 겨누고 있다고 여긴다(래지 리는 이 사진을 찍은 지 15년 뒤 이민자 문제를 다룬 <레미제라블>(2019)이라는 장편 극영화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대상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이 사진이 예언자적인 역할이라도 한 듯, 이듬해인 2005년 ‘파리 소요 사태’가 발생한다.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0대 무슬림 소년 2명이 감전사로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때 한 매체가 JR에게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청년들을 촬영해달라고 요청하나, 친구와 같은 그들을 부정적 이미지로 다룰 것을 우려해 거절한다. 이때 그는 자신의 작품이 나아갈 방향을 확신한다. 미디어나 뉴스가 소외자와 소수자의 부정적인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면, 그는 반대로 긍정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리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작품이 낙관적이고 지나치게 긍정적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이는 작가의 미학적 포지션이다. 모든 작가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어느 쪽이든 ‘예술’적이고(‘기술’적이 아니라), 비판적이며, 숭고성을 지니면 된다. 더욱이 ‘적극적’인 긍정성은 ‘거리를 둔’ 부정적 비판성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 다음에 소개할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Face 2 Face’(2006~2007)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거의 쉴 틈 없이 이어진다. 2006년, JR은 그의 친구 마르코(Marco)와 함께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이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러 그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한다. 그리고 ‘Face 2 Fac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택시 기사를 만나 프로젝트를 설명하자, 그는 대단히 친절하게 사진을 찍고 벽에 붙여도 좋다고 했으나, “이스라엘 택시 기사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증오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스라엘 택시 기사도 팔레스타인 기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양국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JR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변호사 등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진을 크게 인쇄해 벽에 붙였다. 직업이 동일한 사람 2명씩 짝지어진 작업을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이들이 누구냐?”고. 이에 JR이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데 구분이 가냐?”고 되물으면 모두 입을 다문다. 결국 그들은 그토록 다르다고 느꼈지만, 실상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은 일촉즉발의 위험성을 품고 있었으나, 그만큼 보람이 컸다. 분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포스터에서처럼 활짝 웃으며 서로가 옆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JR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너무 멀리 가려고 하지 않고 조금씩만 더 나아가자”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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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전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이번 롯데뮤지엄 전시에서 제시한 21개 주제에는 속하지 않지만, JR은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위해서도 각고의 노력을 쏟고 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Can Art Change the War?’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NFT를 출시했다. 다섯 살 난 우크라이나 난민 소녀 발레리아(Valeriia)의 초상화를 활용한 NFT였다. 1천6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응답했고, 그 덕분에 JR의 팀은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JR 팀은 우크라이나 현지 파트너의 도움으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제공했다. 예컨대 2022년 3월부터 6월까지 10대의 트럭이 프랑스 파리에서 폴란드 국경 메디카로 갔고, 그곳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배송을 담당하는 팀에게 배송을 인수했다. 4개월 동안 25톤의 물품을 우크라이나 국경, 리비우, 키예프에 전달해 1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도왔다. 또 우크라이나 아티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도 꾸리고 있다(https://jr-art.io). 오픈씨에 발행된 JR의 NFT 가격은 다른 작가들의 작업에 비해 대단히 저렴한 편이다.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돕기 위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가격을 책정한 것 같다. 여전히 판매 중으로, JR의 NFT 작품도 소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술이 전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셈도 된다. 위 이미지는 뉴욕 타임스 커버에 게재되기도 했다. JR은 필자가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 번이나 <타임>지 커버를 장식했다.


#JR의 한국 첫 프로젝트 :
이우고등학교의 ‘AM I OK?’

한국인인 우리와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에게 고등학생 자녀가 있다고 치자. 당신 자녀의 얼굴이 당신이 사는 지역에 집채만 하게 프린트되어 역 구내나 아스팔트 위에 붙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자녀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친구들의 이미지도 유심히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로 위에 붙어 있는 자녀의 사진을 밟고 지나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아이의 이미지도 친숙하게 느껴질 텐데, 그건 당신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일 법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묻는다. 아이들은 왜 길거리에 엄청나게 큰 사진을 붙여놓은 걸까? 시위라도 하는 걸까? 사실 방금 언급한 것은 2016년 10월, 이우고등학교(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소재)에서 실현한 ‘AM I OK?’라는 프로젝트로, JR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백15명의 초상을 야외에서 JR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선보인 전시다. 고교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는데, 아스팔트 위에서도 전시가 펼쳐졌고, 수원 광교 호수공원에 이어 허솔 등 이우고등학교 학생 6명은 서울 망원역 역사 내에서도 ‘AM I OK?’ 프로젝트를 연장 전시했다. 사진을 통해 한국 고등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나는 괜찮은가?”_ 한국에서는”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기도 전에 “부모님, 친구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다. 나 자신을 말하는 걸 주저하게 되고, 당당히 말하면 가족, 친구들이 실망할까 두렵다. 늘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할 틈도 없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잠시라도 쉬면 경쟁에서 밀려나고, 대학에 못 가고, 그러면 취업하기도 힘든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것에 힘들어한다.

“왜 소리치지 않니?”_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도 학생들은 소리치지 않는다. “무엇이 학생들이 소리치는 것을 막고 있는가?”, “왜 그들은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를 주저하게 될까?”(이우고등학교총학생회, 허솔 작성, 2016. 10. 22 페이스북 참고) 그리고 주저하게 만드는 게 뭘까? 그러나 또다시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져 얼른 다시 교과서를 편다.

이 학생들이 이제는 괜찮은지 묻고 싶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들이니 모두 잘 성장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JR은 큐레이터가 바로 이우고등학교 학생이나 거리의 관람객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글로벌한 시각을 갖게 됐을 것이다. <JR: Chronicles>가 순회전이기는 해도  ‘AM I OK?’ 프로젝트가 1점이라도 전시됐다면, 최소한 언급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역시 한국적인 상황이니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제2,3의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들은 다양하고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되고, 국제적인 상황에도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가장 깊은 관심사와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JR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면 그는 “벽에 걸린 자신들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면서 잠시 전쟁을 잊는 것이 예술”이라고 답한다. 이렇게 JR은 예술을 통해 조금씩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선입견과 관점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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