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자’ 브랜드를 세상에 각인시킨 변화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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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 2025

글 고성연(샤르자 현지 취재)

Interview with 후르 알 카시미 샤르자 미술재단 대표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는 해마다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파워 100’을 발표하는데, 최근 순위에서는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를 이끌어가는 후르 알 카시미가 1위에 올랐다. 해당 연도를 전후한 활동량과 횟수에 따라 순위는 오르내리기 마련이지만 샤르자를 비롯해 카타르, 사우디 등 중동 미술계 인사들의 약진이 눈에 띄기는 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왕족 출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르 알 카시미는 확실히 다른 결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1980년생으로 불과 20대 초반에 미술계 전면에 등장한 그녀는 샤르자 비엔날레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며 세간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피해 가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기획자’로도 ‘러브콜’을 받으며 몸이 2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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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 알 카시미가 어린 시절 진지하게 품은 장래 희망은 ‘요리사’였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샤르자의 집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지금도 요리를 즐겨 하느냐”는 질문에 배시시 웃었다. 사실 샤르자 미술재단(SAF)이 들어선 예술 지구의 알 무레이자(Al Mureijah) 광장에는 앙증맞은 팻말을 입구 앞에 둔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올해 샤르자 비엔날레(SB16) 오프닝 때 프레스 행사의 만찬 장소이기도 했던 ‘펜(Fen Cafe´& Restaurant)’. 그간의 방문자들이 매겨준 높은 평점만큼이나 실제로 맛도 준수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으로 그녀가 메뉴 개발에도 참여한다고. “처음에는 셰프를 꿈꿨고, 그다음에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창 시절 미술 선생님이 ‘아티스트 자질이 풍부하니 미술학교에 가야 한다’고 강력히 권유하셨죠.” 그리하여 후르 알 카시미는 영국 런던의 예술학교 슬레이드에 진학한다(나중에는 RCA에서 현대미술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졸업한 이듬해인 2003년, 그녀는 당시 탄생한 지 10년 된 샤르자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다. UAE 토후국 샤르자를 이끄는 알 카시미 가문의 젊은 딸이 비엔날레 감독이라니, 호사가들이 입방아 찧기 좋은 소재였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과 그래도 불거지는 호기심이 공존했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당시의 비엔날레를 보지 못했지만 행사가 무사히 치러졌음에도 많은 이들은 ‘공주님’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버리거나 남더라도 굳이 실무를 하지는 않겠지 하는 편견을 지녔던 것만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국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에 ‘진심’이었다. 머뭇거리기는커녕 2009년 SAF를 설립하면서 샤르자 비엔날레의 격을 끌어올리고 내실을 다지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글로벌 무대를 누비는 예술감독으로의 성장
애초에 기획자이자 리더로서의 노선을 택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슬레이드 시절에도 그녀는 뉴 미디어 전시를 공동 기획하는 등 아티스트들에게 ‘전시 공간’을 꾸며주고 기획을 할 때 보람과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계기는 1972년부터 샤르자를 통치하고 있는 부친인 H. H.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 카시미와 2002년 함께 찾았던 독일 카셀의 현대미술 축제 도쿠멘타였다. 당시 나이지리아 출신의 큐레이터이자 시인인 오쿠이 엔위저(Okuwi Enwezor)가 예술감독을 맡았던 도쿠멘타11은 기존의 유럽+백인+남성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데, 후르 알 카시미에게도 엄청난 영감으로 다가왔다.
“팔레스타인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다국적 작가들이 참여하고 ‘국가’로 나뉘지 않는 하나의 축제 현장이었죠. 저는 ‘우리에게도 비엔날레가 있지 않냐. 우리도 이런 기조로 꾸려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계기로 그녀는 오쿠이 엔위저와의 인연을 쌓게 되고 2018년에는 샤르자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그를 초청했다. 흔쾌히 승낙했지만 이미 몸이 아팠던 그는 2019년 작고했다. 별세 전 그는 후르 알 카시미에게 바통을 넘겼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회의도 많이 한 상태였고, 그는 매우 신이 나 있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병원에 찾아갔을 때 그는 ‘네가 해야 한다’고 말했고, 제게는 그게 유언 같은 거였죠.” 그렇게 후르 알 카시미는 오쿠이 엔위저의 못다 한 창조적 비전을 이어받았는데, 팬데믹 여파로 결국 이 전시는 샤르자 비엔날레 개최 30주년인 2023년(SB15)에 열렸다. 주제는 비서구권의 동시대 미술을 포스트식민주의 시각으로 접근한 ‘Thinking Historically in the Present’.
이제 그녀는 샤르자의 젊은 상징 같은 존재다. 명실공히 세계적인 미술 행사로 자리매김한 샤르자 비엔날레의 위상을 발판으로 그녀는 ‘큐레이터’로서의 역량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 내년 시드니 비엔날레의 에술감독을 맡았고, 가깝게는 올가을 일본 아이치(Aichi) 트리엔날레에서 또 다른 결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마 60차례도 넘게 일본을 방문했을 거예요. 아이치도 첫 비엔날레 때 그냥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뭔가 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일본에 대해서는 언어를 배웠고 덕분에 문화도 더 친숙해졌다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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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Interview with 후르 알 카시미 샤르자 미술재단 대표_‘샤르자’ 브랜드를 세상에 각인시킨 변화의 리더십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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