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문화 예술을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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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23

글 고성연

Brands & Artketing_10 프라다 모드(Prada Mode)


혹여 너무 남발하는 건가 싶어 살짝 걱정될 정도로 ‘애정’하는 표현 중 ‘우연한 충돌’이라는 어구가 있다. 유전적으로 이종교배가 우성인자를 낳듯 서로 다른 생각, 이질적인 문화의 우연한 만남과 섞임,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크고 작은 창의성의 불꽃. 혼종의 시대라지만 ‘따로국밥’의 덫에 빠지기 쉬운 오늘날, 매력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어떤 기업들은 의도적으로 ‘우연한 충돌’을 유도하기 위한 ‘판’을 깔아놓기도 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브랜드 프라다가 펼치는 문화 예술 행사의 미학을 우연히 경험했다.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4면체 철제 건축물을 회전시키며 패션, 영화, 아트 등의 콘텐츠를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인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 반(半)백수 시절에 어쩌다가 맞닥뜨린 이 구조물의 미학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 이후로도 ‘프라다 방식’의 문화 예술 지원과 마케팅 전략에 절로 관심의 촉수가 뻗친 것 같다. 한동안 주로 해외에서만 접하다가 초가을 서울에서 다시 만난 프라다만의 작은 축제. 짧지만 강렬하게 복합 문화 공간의 진수를 보여준 프라다 모드 서울(Prada Mode Seoul)을 반가운 마음으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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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광주비엔날레 현장에서 마주쳤던 이숙경 예술감독이 올가을, 정확히는 지난 9월 5일 서울 종로에 자리한 문화 공간 코트(KOTE)에서 열린 프라다 모드 서울(Prada Mode Seoul) 행사장에 나타났다. 1964년 가구 공예품점으로 출발한 코트는 지난 2020년 삼일절을 기념해 문화, 예술, 창작, 사색, 협업의 장을 표방하며 거듭난 이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공간. 곳곳에 행사 로고가 과하지 않게 곁들여지며 프라다 모드 행사장으로 살짝 변신했지만 세월과 추억이 서린 특유의 빈티지 감성은 방문객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유유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대미술 비엔날레의 무게감이 드리운 전시장과는 사뭇 다른 경쾌한 분위기가 물씬 감도는 이 공간에서 만난 이숙경 감독에게 어쩌다 브랜드 행사에서 뵙게 됐냐고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네자 “(프라다에서) 아트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요”라는 미소 깃든 답이 돌아왔다(그녀는 이번에 전시 기획자로 참여했다).
그렇다. 프라다는 문화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온 브랜드다. ‘아트 마케팅’이 대세인 요즈음 많은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미술 애호와 후원을 자처하지만 사실 소수의 브랜드만이 ‘원조’ 격으로 이 세계를 주도해왔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가 개인적 관심에 그치지 않고 공간과 콘텐츠를 꾸릴 플랫폼을 만든 게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말이다. 1993년 자신들의 DNA와 닮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프라다 밀라노아르테(Prada MilanoArte)’가 바로 그것이다. 2년 뒤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이 설립됐고 당대의 저명한 큐레이터 제르마노 첼란트가 합류하면서 브랜드 생태계가 아니라 미술계에 널리, 길이 회자될 만한 쟁쟁한 현대미술 전시가 기획됐다. 2015년에는 밀라노 남동쪽의 라르고 이사르코에 ‘스타키텍트’ 렘 콜하스가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OMA가 설계한 프라다 재단의 새 보금자리가 문을 열었는데, 당시 독보적인 건축, 공간, 소장품과 기획전으로 큰 화제 몰이를 했으며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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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라다 모드는 현대미술에 오롯이 집중하는 독립성을 갖춘 비영리 재단 활동과는 엄연히 다른 브랜드 차원의 플랫폼이다. 초청받은 소수의 이들이 예술, 음악, 미식,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동시대의 문화를 독특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소셜 클럽’을 정체성으로 내세웠는데, 셀럽들이 포토월에서 촬영을 하고, 프라이빗 디너와 파티, 공연이 벌어진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콘텐츠를 선정하고 다루는 방식 등 DNA 차원에서 프라다 재단과 비슷한 결이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현대미술가 카르슈텐 횔러(Carsten Höller)가 15년 전쯤 기획한 ‘문화의 장’ 콘셉트를 모태로 하기에 ‘예술’과 ‘협업’이 핵심적인 토대로 녹아들어 있다. 늘 전시가 있고, 융합적 콘텐츠 구성이 있고, 대담을 비롯해 참여적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프라다 모드’라는 이름의 첫 행사도 2018년 12월 글로벌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렸고, 이후로도 홍콩, 런던 등에서 아트 바젤, 프리즈 같은 미술 행사 기간에 맞춰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키아프와 프리즈가 동시에 열리는 9월 초, 열기 넘치는 아트 주간에 맞춰 처음으로 서울에 상륙했다.이숙경 예술감독과의 협업으로 프라다 모드 서울이 기획한 전시는 <다중과 평행>展. 각자의 영역에서 개성 있는 존재감을 지닌(그리고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3명의 한국 영화감독과 협업해 영상과 설치 작업 등이 어우러진 전시를 진행했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무엇이 한국 문화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인지 생각했다”고 밝혔는데, 그 선택은 반가우면서도 전혀 의외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등 세 감독은 코트의 공간에 저마다의 스토리와 감성을 투영한 전시를 펼쳐냈는데, 영화와는 또 다른 면모가 돋보이기도 했고, 영화만큼이나 세 감독의 결이 다르기도 했다. 김지운 감독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설치 작품을 내놓았는데, 주요 소재인 평상이 곳곳에 놓여 있고 그 위에 말린 고추, 꽃무늬 쟁반 등이 올려져 있다. 그리고 공간을 느슨하게 구획하듯 드리운 천 위로 흑백 영상이 흐른다. 김 감독은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 것들에 아쉬움을 느끼다가 평상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나온 웹툰 <지옥>을 모티브로 삼아 동명의 전시를 선보이면서 주인공이 살던 고시원을 서늘하게 재현했다. 고시원 문을 열고 복도 맨 끝에 다다르면 섬뜩하지만 감독의 예술적 감성을 녹여낸 듯한 설치가 펼쳐진 ‘하이라이트 공간(방)’이 자리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해온 정다희 감독은 ‘종이, 빛, 유령’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영상 작품을 다양한 크기의 스크린으로 보여주면서 드로잉과 조각 등을 활용한 공간을 완성했다. 영화라는 매체를 가능하게 하는 빛의 특성에 주목해 물질인 종이, 조각과 비물질인 빛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시 말고도 세 감독이 추천한 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꾸려졌을뿐더러 밤에는 각종 퍼포먼스와 공연이 이어지는 등 깨알 같은 알찬 프로그램이 구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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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틀에 걸친 행사였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프라다 모드 서울은 여러 장르가 얽히는 동시대 감성을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판’이었다. 패션과 현대미술, 영화, 미식,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어우러지는 무대는 꽤 많지만, 좀 더 진중히 ‘느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을 품고 있고, 향유자에 따라서는 창조적 영감을 받거나 사색으로 이끄는 동기를 선사받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복합 공간의 매력을 잘 활용하고 콘텐츠의 내실에도 공들인 기획이기에 가능했을 시너지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만희 감독의 1964년 영화 <마의 계단>을 무한 제공되는 팝콘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였다. 그리고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감상하기 – 질문의 발견’이라는 워크숍은 아트 주간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속도와 우리를 둘러싼 다층적 세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예상치 못한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서비스로 미식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다이닝 메뉴는 매혹적인 ‘덤’으로 다가와 ‘행사의 신은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잠시라도 이 정도의 찬사가 나왔다면 아트 마케팅이라는 수식어든 메세나 요소 짙은 브랜드의 후원이든, 서울의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한 이 행보는 분명 성공적이라 해야 할 듯싶다.




[Kiaf X Frieze Seo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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