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독창적인 현대미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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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 2016

글 이소영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현대미술 후원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진앙지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미술의 정수를 담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전위적이라 할 만큼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미술가들과 창조적 즐거움을 빚어온 수준 높은 협업, 참신한 신진 작가 후원 활동을 30년 넘게 해오면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겨왔기 때문이다. 빼어난 전시 콘텐츠와 아름다운 건축물의 조화가 돋보이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예술을 즐기는 대중은 물론이고 아티스트들이 파리에 가면 즐겨 찾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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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의 대표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ique Perrin)은 조각가 세자르(Cesar)의 제안으로 우아하고도 진취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프랑스 최초의 기업 재단으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을 설립한 것이다. 예술가들의 개인전과 기획 전시를 개최할 뿐 아니라 재능 있는 동시대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해 다채롭고 풍부한 컬렉션을 소장하게 됐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유리 건축물로 이전한 뒤 전시는 한층 더 활력을 띠었다. 1994년 파리 중심부 라스파유(Raspail) 거리에 선보인 투명한 건축물은 파리의 낮과 밤을 투영하며 명소로 떠올랐다. 유리 벽은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전시회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고, 해와 달과 노을이 변화하는 모습을 반영한다. 로타 바움가르텐(Lothar Baumgarten)이 설계한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 역시 사계절 내내 피는 꽃과 나무, 과일과 허브로 방문객을 매혹한다.
작품을 의뢰하고 신진 작가를 후원하는  방식

에르베 샹데(Herve´ Chande`s) 관장과 그라치아 쿠아로니(Grazia Quaroni) 큐레이터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심도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예술 작품 의뢰와 신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는 일은 이들의 가장 큰 보람이자 업적이다. 작품 하나 혹은 전시회 전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함께 진행하면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미술가는 단순한 후원 관계를 넘어 창의적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마르크 쿠튀리에(Marc Couturier),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차이 구어치앙 & 미야지마 다쓰오(Cai Guo-Qiang and Miyajima Tatsuo) 같은 작가들이 그렇게 기념비적인 작업을 완성했다. 미술뿐 아니라 영화와 사진, 공연, 디자인 등으로도 영역이 다채롭게 확장되고 있으며,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에게도 컬렉션을 의뢰한 바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검증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최초의 전시를 열어주기도 하고,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1994년에는 피에리크 소린(Pierrick Sorin)에게 비디오 설치물을 의뢰했는데, 그는 이후 국제적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됐다. 1995년에는 디자이너 마크 뉴슨(Marc Newson)의 설치 작업을 전시했고, 그는 이제 ‘스타’로 불린다. 사진가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oodman) 등의 전시를 열었고,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린코 가와우치를 소개하기도 했다.

위대한 시청각 전시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최근 선보이고 있는 전시는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The Great Animal Orchestra)>. 미국의 음악가이자 생물 음향학자인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에게 영감을 받은 전시인데, 세계 각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모아 ‘동물의 왕국’에 대한 시청각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버니 크라우스는 40년 동안 약 1만5천 종의 육지와 바다의 자연 서식지에서 5천 시간에 달하는 소리를 수집했다. 동물 소리 녹음에 빠지기 전에는 영화 <악마의 씨>, <지옥의 묵시록> 등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던 음악가이자 음향 전문가인 그가 이제 우리에게 야생동물의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귀 기울여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중국 미술가 차이 구어치앙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18m 길이의 드로잉을 선보였다. 화약을 사용한 이 그림은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평화롭게 우물가에 모여 있는 순간을 묘사했다.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재료인 화약으로 동물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일본의 사진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촬영한 동물 박제들의 흑백사진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브라질 미술가 아드리아나 바레장(Adriana Vareja?o)은 아마존의 새들을 그린 타일 벽을 제작했는데, 이는 정원과 건물, 전시 공간을 연결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버니 크라우스의 청각 자료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영국 아티스트 그룹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트(UVA)의 3D 설치물이다. 버니 크라우스가 녹음한 소리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빛의 조각으로 변환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물 소리의 조화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각각의 종은 자신이 선호하는 소리의 음역대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바이올린, 목관악기, 트럼펫, 퍼커션 악기들이 오케스트라 속에서 해당 악기만의 소리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캐나다, 미국, 브라질, 짐바브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심해에서 녹음된 사운드 스케이프가 관람객의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한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아그네스 바르다(Agne`s Varda)의 애완 고양이 즈구구를 기리는 작품 ‘즈구구의 무덤(Le Tombeau de Zgougou)’을 설치해 하늘나라로 떠난 모든 애완동물의 영혼을 위로한다. 이처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전시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서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2017년에는 서울에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독창적인 전시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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