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치유의 도시 미학, 예술이 풍경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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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 2018

글 고성연

도시를 가리켜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거대한 인공물’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 곧잘 비유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빛 고을’ 광주에서 그 변화의 중요한 한 축은 예술이 맡아왔다.
1995년 첫 행사를 치른 이래 20년이 훌쩍 넘도록 자리를 지켜온 현대미술 축제 ‘광주비엔날레’가 그 중심에 있다. 사실,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다. ‘예향’의 자부심을 살려 역사의 깊은 상처를 문화 예술로 승화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당시 광주는 작은 시립 미술관 하나가 고작일 만큼 현실적인 인프라가 열악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기반이나 지역 인구 규모에서도 글로벌 행사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보란듯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의 도시로 거듭났다. 예술을 품은 공간형 콘텐츠가 이 도시의 빛을 되찾아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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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 오는 11월 11일까지 66일간 계속되는 2018 광주비엔날레의 대장정을 이끄는 큰 주제다.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다각적인 시각으로 조망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민족주의 연구의 대가 베네딕트 앤더슨이 집필한 고전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우리를 둘러싼 공동체, 국가, 조직 같은 것이 모두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경계가 아니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술로 현실을 논하는 현대미술의 장에서 이런 테마가 나온 것은 좀 뻔하기는 하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미술 행사의 주제와 별다를 것 없고(옆 동네에서 열리고 있는 부산비엔날레의 주제 역시 결이 비슷한 ‘비록 떨어져 있어도’다), 심지어 23년 전 개최된 광주비엔날레 1회의 주제도 ‘경계를 넘어’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지구촌의 초점이 난민, 분단, 차별 등의 이슈에 쏠려 있지 않은가. 결국 핵심은 ‘콘텐츠’, 그리고 콘텐츠를 구성하고 조화시키는 ‘큐레이팅’ 능력일 터.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의 광주비엔날레는 너무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바람에 ‘산만하다’는 평이 많이 나온다. 한마디로 ‘TMI(Too Much Information)’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견된 반응이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1명의 ‘지휘자’가 집중적으로 이끄는 단일 감독제가 아니라 11명이 각자의 전시를 기획해 참여하는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공통된 대주제 아래 11명의 큐레이터가 7개의 소주제전을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이는 방식이다. 7개의 소주제는 ‘상상된 국가들’,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종말들’, ‘귀환’, ‘지진’, ‘생존의 기술’, ‘북한 미술’이다. 역대 최다 큐레이터가 참여했고, 43개국 1백65명 작가가 참여해 3백여 점의 작품을 내놓은 만큼 볼거리는 많다. 미리 꼼꼼하게 주제와 작가 목록을 살핀 뒤 관람하거나 아예 직관에 기대어 자유롭게 노닐 듯이 다니겠다는 마음이라면 ‘괜찮은 발견’을 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경계의 압박
주 전시장인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에서는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었다.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라는 소주제로 기획한 큐레이터 그리티야 가위웡(Gridthiya Gaweewong)의 섹션이다. 지구촌 곳곳의 미술 행사를 다녀봤다면, 아니 뉴스만 자주 접하더라도 “또 난민이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볍지 않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슈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룬 작가의 문제의식과 내공을 대하노라면 진지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에서 보듯 우리에게도 피부에 와 닿는 일이 아니던가. 2전시실에 설치된 프랑스계 알제리 작가 카데르 아티아의 영상물 ‘이동하는 경계들’은 특유의 오라로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의자에 덩그라니 앉아 있는 의족이 충격적인 느낌마저 준다. 전근대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작가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를 여행하며 죽은 자들과 대화하고 무당이나 영매와 인터뷰도 한다. 호주 작가 톰 니콜슨이 1백10개의 작은 모형을 이용해 만든 디오라마 작품 ‘나는 인도네시아 출신입니다’도 눈길을 절로 사로잡는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다양한 인간 군상은 인도네시아 통치 정책과 호주 이민 정책이 야기한 문제를 조명한 결과물이라고. 현실을 해맑게 비트는 방식 덕에 실소가 나오는 작품도 있다. 사람들이 이륙을 앞둔 비행기 위에 주르르 앉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합성 사진. 기차 지붕에 올라타 통근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모습을 빗댄 것. 알고 보면 터키로 온 시리아 난민들이라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터키 작가 할릴 알틴데레의 ‘쾨프테 항공’이다.
정보의 차단, 통제, 검열 등 포스트 인터넷 시대가 야기한 폐해를 다룬 크리스틴 Y. 킴(Christine Y. Kim)과 리타 곤잘레스(Rita Gonzalez) 큐레이터의 섹션도 흥미로웠다(4전시실).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는 중국의 인터넷 통제와 중국인들의 정보 욕구를 재치 있게 담아낸 미아오잉 작가의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다. 직사각형 설치 작품으로, 정면을 보면 아래에 2개의 모니터가 있는데, 하나는 중국 마오쩌둥의 이마 부분, 또 다른 하나는 판다를 보여준다설치 작품의 또 다른 면에는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미국 자유여신상 등의 이미지와 글이 보인다. 심각한 수준의 인터넷 통제 속에서도 그 통제망을 뚫고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광주시 동구에 자리 잡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는 문화 예술 명소다운 넓은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시각적 전시 효과가 훨씬 더 뛰어나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대형 구조물로 인류의 소비와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타라 도노반의 작품 ‘무제’와 신문지를 활용해 형상화한 비석을 바닥에 펼침으로써 기억조차 할당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의 희생자를 환기시키는 여상희의 ‘검은 대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 정치적인 상처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반영한 바이런 킴의 ‘멍’ 회화 시리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집단 창작 조선화와 문인화를 선보인다고 해서 개막 전부터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북한 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섹션이 있다(문범강 큐레이터).


상실을 기억하고 아픔을 치유하다
쓰라린 고통을 겪어낸 광주의 역사성을 반영하는 ‘GB 커미션’ 작품은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단연 주목받을 만하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시민들이 치료받기도 한 구 국군광주병원은 역사의 잔흔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 특정적 작품’이 놓이기에 적합한, 아니 그 사실성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숙연해지는 전시 공간이다. 지금은 ‘상실의 역사’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 장소들을 유리 조각 하나, 먼지 한 톨 손대지 않은 채 전시 무대로 활용했다. 영국 작가 마이크 넬슨은 구 국군광주병원 교회에서 ‘거울의 울림(Mirror Reverb)’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으슥한 숲속에 자리한 낡고 아담한 붉은 벽돌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먼지가 가득하고 유리창도 깨져 있는데, 천장에는 수십 개의 낡은 사각 거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거울이 겹치면서 서늘한 ‘울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실제로 병원 건물에서 가져온 거울들이란다. 깨진 유리창과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병원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서늘하다 못해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엔날레 주 전시관에서 영상 작품을 선보인 카데르 아티아의 또 다른 설치 작품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이 2층의 여러 방을 무대로 펼쳐져 있다. 폐허나 다름없는 썰렁한 방마다 폐목이 서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 잘 보면 어떤 나무 조각은 벌어진 틈을 스테이플러(‘찍개’)로 봉합해놓았다. 전시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마치 수술에 쓰이는 것처럼 아픈 상처를 도구로 봉합하지만, 다시 벌어지기도 하는 모양새를 나타낸 것”이라고. 아주 깊은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 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함일까. 이 건물의 또 다른 공간에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품 ‘별자리(Constellations)’도 있다(개막 초기에는 작동되지 않아 공개하지 않았지만). 서구 열강의 침략이라는 집단적 경험이 있는 아시아의 근대성과 상흔에 천착해온 그는 이번에 움직이는 당구공과 스크린을 통해 광주라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풀어내고자 했다고. 이 밖에 해외 유수 기관이 참여하는 위성 프로젝트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도 놓치면 아쉬울 콘텐츠다. 올해는 프랑스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필리핀 컨템퍼러리 아트 네트워크, 헬싱키 국제 아티스트 프로그램(HIAP)이 참여했다. 각국의 신진 작가와 한국 작가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동시대 현대미술의 담론을 생산하는 ‘교류의 장’으로 광주비엔날레가 탈아시아적 축제라는 포부에 걸맞게 지역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면서도 ‘글로벌한’ 면모를 품게 하도록 뒷받침해준다. 특히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팔레 드 도쿄가 공동으로 기획한 <Today Will Happen(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전시는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는 근대 건축물인 광주시민회관을 무대로 삼았는데, 이 공간이 자아내는 특유의 고아한 분위기 속에 자리한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빛 고을을 한층 더 풍성하게 하는 주변부의 콘텐츠
매번 비슷한 스타일이라든지, 대형 미술 행사의 범람이라든지 하는 비판이 나오기는 해도 해마다 짝수 해 가을이면 광주는 빛을 발한다. 건설적인 비판은 긴장 어린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좋은 피드백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문화 예술의 혼을 담은 콘텐츠로 이 도시에 깊이 새겨진 상흔을 보듬는 차원이 아니다. 기억은 남아도 새살은 돋는 법. 20년 넘는 세월에 걸쳐 아시아를 아우르는 현대미술 축제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광주는 확실히 달라졌다. 아직은 풍부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문화 예술 공간이 생겨나고,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잠재력 있는 작가들도 나오고 있다. 그 주변부의 변화도 눈에 띈다. 광주에서 20~30분이면 도착하는 담양에 좋은 예가 있다. 양곡 창고를 개조해 미술관과 카페로 운영하는 ‘담빛예술창고’. 광주비엔날레 개최 기간에는 정영창, 김유섭 작가의 2인전인 <경계와 다리: 블랙 페인팅>이 열리고 있다. 광주를 들른다면 발걸음이 결코 아깝지 않은 수준의 전시다. 또 근처에 있는 ‘대숲’으로 유명한 죽녹원에는 담양이 자랑하는 이이남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이이남미술관도 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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