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 2016
글 김민서
현대미술을 둘러싼 생태계에서 아시아가 유례없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의 규모로도, 거침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컬렉터로도, 잠재력 있는 작가의 원천으로서도 그렇다. 이런 현상은 구미 지역에 쏠렸던 구도가 점차 변하면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까?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변화의 흐름이 거세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가운데 과연 한국 미술계는 어떤 행보를 택해야 할까?
한동안 지칠 줄 모르고 달아오르던 세계 미술 시장이 숨 고르기를 하는 걸까. 이 생태계를 둘러싼 움직임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시장의 ‘성적’ 자체는 살짝 주춤하다. 시장 동향을 조사하는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이나 아트프라이스닷컴 등에서 나온 주요 보고서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세계 미술 시장 규모는 실제로 다소 축소됐다(‘Art Economics’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작품 판매액이 72조원대로 전년 대비 7% 하락). 최근 들어 ‘아메리칸 컬렉터’의 힘을 유독 과시하고 있는 미국 시장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금융 위기의 그늘 아래 침체를 면치 못했다가 2010년 이후 되살아난 뒤 줄곧 상승 가도를 달려왔던 글로벌 미술 시장인 만큼 이제는 성장세가 슬슬 꺾일 때도 되지 않았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사실 변수가 워낙 다양한지라 시장의 앞날을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트’라는 키워드 자체는 여전히 굉장히 ‘핫’하다는 점, 그리고 2015년 세계 미술 시장이 다소 위축된 결정적인 원인은 ‘중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반부패 정책과 경기 둔화로 이중 타격을 입었기 때문일까. 미술계에서도 위세를 떨쳐온 중국의 최근 시장점유율(TEFAF 2015년 보고서 판매액 기준)은 19%로 전년 대비 3% 하락하며 1위 미국(43%)과의 격차가 벌어졌고, 전년에 동률이었던 영국(21%)에 뒤처지며 3위로 밀려났다. 2015년 중국 경매 시장 규모는 전년에 비해 23% 감소한 한화 8조8천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물론 ‘억, 억’ 소리 나는 소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중국에서도 1백만달러가 넘는 하이엔드 미술품 시장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세계 미술 시장이 무려 78%나 규모를 키웠으니 아무래도 양극화 이슈가 제기될 만큼 ‘편애’를 받아온 블루칩 작품의 공급도 제한적이고 미술품 구매에 뛰어드는 신규 고객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소비의 핵심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40세 이하의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와 고학력 중산층 미술 애호가의 부상, 그리고 아직은 비중이 적지만 무서운 속도로 세를 키우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으로 미술 생태계 저변 자체가 넓어질 수 있다는 긍정론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영민하고 발 빠른 이해관계자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영토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유력 후보, 아니 이미 대세로 떠오른 곳은 ‘아시아’다. 최근 글로벌 미술 시장의 열기가 다소 시든 모습도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중국,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결과 아닌가. 지금 세계 미술계는 아시아를 주시하고 있다. 미술품을 구매하는 수요 측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신진 작가나 스타의 등장이라는 공급 측면에서도 그렇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온갖 경계가 무너지면서 격변을 겪고 있는 글로벌 미술 생태계에서 역동적인 아시아 시장과 콘텐츠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향후 행보는 어떤 식으로 펼쳐져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억, 억’ 소리 나는 소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중국에서도 1백만달러가 넘는 하이엔드 미술품 시장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세계 미술 시장이 무려 78%나 규모를 키웠으니 아무래도 양극화 이슈가 제기될 만큼 ‘편애’를 받아온 블루칩 작품의 공급도 제한적이고 미술품 구매에 뛰어드는 신규 고객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소비의 핵심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40세 이하의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와 고학력 중산층 미술 애호가의 부상, 그리고 아직은 비중이 적지만 무서운 속도로 세를 키우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으로 미술 생태계 저변 자체가 넓어질 수 있다는 긍정론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영민하고 발 빠른 이해관계자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영토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유력 후보, 아니 이미 대세로 떠오른 곳은 ‘아시아’다. 최근 글로벌 미술 시장의 열기가 다소 시든 모습도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중국,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결과 아닌가. 지금 세계 미술계는 아시아를 주시하고 있다. 미술품을 구매하는 수요 측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신진 작가나 스타의 등장이라는 공급 측면에서도 그렇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온갖 경계가 무너지면서 격변을 겪고 있는 글로벌 미술 생태계에서 역동적인 아시아 시장과 콘텐츠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향후 행보는 어떤 식으로 펼쳐져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트 허브를 꿈꾸며 투자하는 아시아 도시들
세계 미술 시장의 관심이 아시아 시장으로 본격 쏠리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스위스의 아트 바젤을 주관하는 MCH그룹이 지역 페어인 홍콩 아트 페어(Art Hong Kong)를 인수해 아트 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트 바젤 홍콩은 ‘아트 바젤’이라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함께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 최대의 옥션 하우스가 정기적으로 경매를 열고,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갤러리 페로탱 등 세계 유명 갤러리의 분점이 있는 홍콩의 지역적 장점을 내세워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미술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상을 차지하게 됐다. 일례로 올가을 한류를 이끄는 팝 스타 빅뱅의 탑이 소더비와 손잡고 컬렉터가 아닌 큐레이터로 나서 화제가 됐을 때도 그 데뷔 장소는 소더비 경매가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홍콩이었다.
특히 아트 페어는 2010년 이후 거래 규모가 49% 증가했고, 전체 미술품 거래량의 40%(2014년 기준)를 책임지는, 그야말로 각광받는 플랫폼이다. 아트 바젤이나 파리에서 열리는 피악(FIAC) 같은 대형 국제 아트 페어 말고도 지역 아트 페어가 우후죽순 생기는 이유도 신규, 또는 잠재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매력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트 페어의 범람으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그 와중에 올 초에는 30년 전통을 자랑하던 호주 멜버른 아트 페어(Melbourne Art Fair)가 주요 갤러리 유치에 실패하면서 아예 취소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당시 멜버른 아트 재단 관계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갤러리들이 국제적인 성격이 짙고 규모도 큰 아트 페어에 나가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트 페어의 세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멜버른의 비극은 비즈니스 모델과 지역의 매력도가 부합하지 못해 생겨난 실패일 뿐 ‘브랜드’를 내세운 대형 글로벌 아트 페어의 위세에 눌려 상대적으로 규모나 인지도에서 뒤처지는 지역(local) 아트 페어가 기를 못 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진단한다. 투자 자본이 복잡하게 엮이는 데다 규모나 성격, 참가자, 관람객 구성은 어차피 수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므로 ‘국제’와 ‘지역’의 경계를 정확히 나누기가 애매한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최근 아시아에서는 그 경계에 있다고 할 만한 아트 페어가 세계적인 ‘예술 허브’를 꿈꾸면서 기치를 올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15회를 맞이한 한국국제아트페어(이하 KIAF)를 비롯해 2011년 시작된 싱가포르의 현대미술 장터 아트 스테이지(Art Stage), 그리고 이런 흐름에 동참해 올 초 첫 행사를 개최한 인도네시아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Art Stage Jakarta), 상하이에서 열리는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West Bund Art & Design Fair) 등을 대표 주자로 꼽을 수 있다. 아트 페어의 콘텐츠와 격을 높이기 위해 비엔날레와 흥미로운 전시 등 각종 아트 행사가 동시에 기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아트 페어는 2010년 이후 거래 규모가 49% 증가했고, 전체 미술품 거래량의 40%(2014년 기준)를 책임지는, 그야말로 각광받는 플랫폼이다. 아트 바젤이나 파리에서 열리는 피악(FIAC) 같은 대형 국제 아트 페어 말고도 지역 아트 페어가 우후죽순 생기는 이유도 신규, 또는 잠재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매력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트 페어의 범람으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그 와중에 올 초에는 30년 전통을 자랑하던 호주 멜버른 아트 페어(Melbourne Art Fair)가 주요 갤러리 유치에 실패하면서 아예 취소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당시 멜버른 아트 재단 관계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갤러리들이 국제적인 성격이 짙고 규모도 큰 아트 페어에 나가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트 페어의 세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멜버른의 비극은 비즈니스 모델과 지역의 매력도가 부합하지 못해 생겨난 실패일 뿐 ‘브랜드’를 내세운 대형 글로벌 아트 페어의 위세에 눌려 상대적으로 규모나 인지도에서 뒤처지는 지역(local) 아트 페어가 기를 못 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진단한다. 투자 자본이 복잡하게 엮이는 데다 규모나 성격, 참가자, 관람객 구성은 어차피 수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므로 ‘국제’와 ‘지역’의 경계를 정확히 나누기가 애매한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최근 아시아에서는 그 경계에 있다고 할 만한 아트 페어가 세계적인 ‘예술 허브’를 꿈꾸면서 기치를 올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15회를 맞이한 한국국제아트페어(이하 KIAF)를 비롯해 2011년 시작된 싱가포르의 현대미술 장터 아트 스테이지(Art Stage), 그리고 이런 흐름에 동참해 올 초 첫 행사를 개최한 인도네시아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Art Stage Jakarta), 상하이에서 열리는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West Bund Art & Design Fair) 등을 대표 주자로 꼽을 수 있다. 아트 페어의 콘텐츠와 격을 높이기 위해 비엔날레와 흥미로운 전시 등 각종 아트 행사가 동시에 기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시아 ‘밖’에서도 아시아를 논하는 시대의 도래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를 둘러싸고 들썩이는 움직임과 관심이 ‘내 집 잔치’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피악이 열리는 기간인 10월 말 아시아 현대미술에 초점을 둔 아트 페어 아시아 나우 페어(Asia Now Fair)가 파리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글로벌 미술 매체인 <아트넷(Artnet)>에서는 유럽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에만 주안점을 둔 아트 페어는 처음인데, 2회를 맞이한 올해에는 그 규모가 2배로 커졌다”며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는 이르지만 잠재력만큼은 높이 샀다. 유럽의 주요 전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는 아시아 작가들의 이름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올 초 파리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에서는 당대 최고의 중국 작가를 대거 소개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했고, 최근 퐁피두 센터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 개인전이 열렸다. 또 뉴욕 구겐하임이 개최하는 휴고 보스상은 필리핀의 마리아 타니구치가 거머쥐었고, 세계적인 현대미술 뮤지엄인 런던 테이트 모던 신관은 태국의 영상 아티스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품을 들여놓는 등 여기저기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들이 조명을 받는 다양한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예술 세계에서도 항상 참신한 걸 찾기 마련입니다. 아시아 미술은 새로울뿐더러 가격도 합리적이라 2006~2012년에 서구의 유명 컬렉터들이 많이 구입했어요. 더불어 중국 경제가 급성장했고, 한국의 K-팝을 위시해 아시아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바람에 탄력을 받은 면도 있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밖에서 아시아 미술을 논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지금은 아시아의 긴 역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새로운 예술가, 콘셉트, 아이디어를 발견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단색화 열풍도 좋은 예죠.” 얼마 전 KIAF 참관을 위해 서울에 온 아트 컨설턴트 제한 추(Jehan Chu)의 설명이다. 그렇다. 일찌감치 남다른 대접을 받았던 일본 작가들을 제외하면 비아시아권에서 아시아 작가에 이처럼 많은 관심이 쏠렸던 적이 있을까. 당장 한국 작가만 해도 화이트 큐브, 페로탱 같은 세계 유수 갤러리에서 단색화 작가 개인전이 열리거나 글로벌 경매에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모습이다. 홍콩의 매머드급 프로젝트로 2019년 개관을 앞둔 컨템퍼러리 뮤지엄 M+를 향한 국제적 관심도 미술 시장의 중심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제한 추는 “M+는 아시아 지역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다양한 아티스트를 지원할 예정이고, 동시에 관련 업계 종사자 교육, 미술품 거래 등을 둘러싼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라 경제적으로도 크게 기여할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예술 세계에서도 항상 참신한 걸 찾기 마련입니다. 아시아 미술은 새로울뿐더러 가격도 합리적이라 2006~2012년에 서구의 유명 컬렉터들이 많이 구입했어요. 더불어 중국 경제가 급성장했고, 한국의 K-팝을 위시해 아시아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바람에 탄력을 받은 면도 있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밖에서 아시아 미술을 논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지금은 아시아의 긴 역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새로운 예술가, 콘셉트, 아이디어를 발견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단색화 열풍도 좋은 예죠.” 얼마 전 KIAF 참관을 위해 서울에 온 아트 컨설턴트 제한 추(Jehan Chu)의 설명이다. 그렇다. 일찌감치 남다른 대접을 받았던 일본 작가들을 제외하면 비아시아권에서 아시아 작가에 이처럼 많은 관심이 쏠렸던 적이 있을까. 당장 한국 작가만 해도 화이트 큐브, 페로탱 같은 세계 유수 갤러리에서 단색화 작가 개인전이 열리거나 글로벌 경매에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모습이다. 홍콩의 매머드급 프로젝트로 2019년 개관을 앞둔 컨템퍼러리 뮤지엄 M+를 향한 국제적 관심도 미술 시장의 중심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제한 추는 “M+는 아시아 지역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다양한 아티스트를 지원할 예정이고, 동시에 관련 업계 종사자 교육, 미술품 거래 등을 둘러싼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라 경제적으로도 크게 기여할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근본’을 명심해야 할 한국 미술계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미술 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K-아트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2015년 단색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세계 경매 시장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톱 10 대열에 올랐고, 이를 계기로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다른 한국 작가들로도 확대되고 있는 반가운 조짐도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미술 한류’로 인한 ‘가격 상승’에 흥분한 나머지 근본적인 토대나 고찰 없이 마케팅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쏟아진 데다, 해외에서는 주목받을지 모르지만 정작 국내 미술계는 여전히 불투명한 이슈가 산재해 있고, 호황기를 누렸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시장도 별로 활성화되거나 국제화 흐름을 타고 있지 못하는 대조적인 현실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아트 허브’라는 포부를 감안할 때 이미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쥔 홍콩 미술계의 발전과 비교되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올해 KIAF는 작심한 듯 꽤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일단 갤러리 숫자를 줄여 부스 자리와 크기를 키우고 통로를 넓혀 공간감을 끌어올렸다. ‘국제 행사’다운 모습을 보이는 데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대작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특히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지닌 세계 곳곳에서 유수 컬렉터와 미술계 관계자를 대거 초청해 해외 페어에 온 듯하다는 평가도 이끌어냈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수치로도 반영됐다. 전년도와 비슷하게 5만3천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지만 매출은 지난해보다 31% 증가한 약 2백35억원을 기록해 실질적인 작품 구매층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시 공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화 중심의 구성과 참신한 작품의 부재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아무래도 국제적인 미술 행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미숙한 진행 태도는 그렇다 치고, 갤러리와 유관 기관, 국내 컬렉터, 크고 작은 지역 커뮤니티의 조직이 유기적으로 협업하면서 흥미로운 콘텐츠를 다양하게 생산하는 시스템과 마인드가 많이 결여되었다는 점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느껴졌다. 이는 비단 KIAF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뒷받침돼야 아트 페어만이 아니라 국내 미술계가 존속할 수 있고, 우리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홍콩의 비영리 미술 조직 파라사이트의 스타 큐레이터인 코스민 코스티나스(Cosmin Costinas)의 주장처럼 파라사이트가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는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기관이 독립적으로 활약하면서도 정부의 후원을 받고 상업적인 페어와 다각도로 협업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실력은 있지만 다소 소외된 작가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편견 없는 컬렉터가 더 많아져야 콘텐츠가 풍부해지면서 생태계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KIAF를 참관한 홍콩의 건축가이자 저명한 컬렉터 윌리엄 림의 말을 빌자면 이렇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잘 알고 그에 집중한다고 봅니다. 예술을 둘러싼 부수적인 게 아니라 ‘미술’ 자체, 그리고 ‘아티스트’ 같은 근본적 주제에 대한 담론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갤러리든 아트 페어든 개성을 잃게 마련이고, 결국 살아남기 힘들어지겠죠.”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홍콩의 비영리 미술 조직 파라사이트의 스타 큐레이터인 코스민 코스티나스(Cosmin Costinas)의 주장처럼 파라사이트가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는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기관이 독립적으로 활약하면서도 정부의 후원을 받고 상업적인 페어와 다각도로 협업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실력은 있지만 다소 소외된 작가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편견 없는 컬렉터가 더 많아져야 콘텐츠가 풍부해지면서 생태계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KIAF를 참관한 홍콩의 건축가이자 저명한 컬렉터 윌리엄 림의 말을 빌자면 이렇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잘 알고 그에 집중한다고 봅니다. 예술을 둘러싼 부수적인 게 아니라 ‘미술’ 자체, 그리고 ‘아티스트’ 같은 근본적 주제에 대한 담론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갤러리든 아트 페어든 개성을 잃게 마련이고, 결국 살아남기 힘들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