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5, 2025
글 고성연(스페인 현지 취재)
Interview with_에바 알바란(Eva Albarrán) & 크리스티앙 부르데(Christian Bourdais)
건축에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주면서 수익도 추구하는 ‘솔로 하우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에바 알바란과 크리스티앙 부르데. 한 쌍의 부부로서, 그리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끈끈히 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 커플의 직업적 정체성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다면적이면서 유기적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태생으로 파리에서 공공 미술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 제작과 설치(art production)를 하는 내실 있는 사업체를 꾸려온 에바 알바란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공을 다진 건축, 그리고 예술의 확장에 대한 관심으로 크리스티앙과 함께 2010년부터 솔로 하우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순히 건축을 입힌 숙박업이 아니라 현대미술 전시도 열고, 작가와의 협업도 진행하며, 와인 사업까지 녹인 다각형 플랫폼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자신들의 성을 따 이름 붙인 상업 화랑인 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 Bourdais)를 마드리드에 열었다. 또 마드리드와는 별개로 지중해 발레아레스제도의 아름다운 섬 메노르카에도 갤러리를 꾸리고 있다. 유기적 시너지를 뿜어내는 자신들만의 창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커리어 여정이 참신하게 와닿는다.
“저는 미술과 비즈니스를 동시에 전공했어요.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결코 없었지만요. 그렇지만 늘 미술 생태계에 관련된 일을 하고는 싶었죠.” 자그마한 체구에 선하면서도 다부진 눈매를 지닌 에바 알바란은 사업을 했던 자신의 부모가 같은 길을 걷길 바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두 장기를 살려 조합까지 하는 시너지를 거둔 것 같다고 얘기하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갤러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마드리드 태생인 그녀는 1990년대 후반 파리로 떠났고 매리언 굿먼 갤러리에서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미술 제작’의 잠재성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린다.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세계적인 미술 축제를 위한 작품 설치를 하던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같은 작가와 일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수요’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바는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회사(Eva Albarrán & Co.)를 파리에 창립하고 제작 사업에 전격 뛰어들었다. 굵직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전문성을 갖추고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실력 있는 ‘아트 프로덕션’ 업체로 키워냈음을 자부하는 그녀는 초기부터 인연을 맺었던 피에르 위그를 비롯해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나가와 후지코(Fujiko Nagawa) 등 쟁쟁한 다국적 작가들을 20년에 걸친 협업 명단에 올려두고 있다. “제작자로서 맡은 첫 프로젝트도 피에르 위그의 미술관 설치 작업이었죠.”일의 성격상 작가들은 물론 설치를 담당하는 벤더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는데, 이는 자연스레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2010년 스페인 아라곤의 크레타스(마라타냐 지역)에서 솔로 하우스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물론 부지도, 자본도, 인력도 만만치 않게 요구되는 워낙 덩치가 큰 일이라 차근차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는 줄곧 제작 사업을 맡아왔고, 크리스티앙은 주로 솔로 하우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M A D R I D
신생 갤러리의 패기와 제작 마스터의 노련함을 동시에
그렇다면 2018년 마드리드에 공간을 열면서 뛰어든 갤러리 사업은 어떨까? 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라는 이름으로 꾸리고 있는 만큼, 둘 다 갤러리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커리어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수순처럼 갤러리 비즈니스의 길로 인도한 촉매제 역할을 한 인물은 이 커플에게 거의 가족과 같은 존재였던 프랑스의 현대미술계 거장이다. 수년 전 작고했지만 그이 아버지처럼 따랐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1944~2021)다. 그는 “늘 갤러리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고, 이들이 갤러리를 차리자 기꺼이 함께 협업을 했다.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가 마드리드에서 연 첫 번째 전시는 그룹전이었는데, 당시에도 볼탕스키를 비롯해 베르트랑 라비에,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르스터 등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계열 작가들이 포함됐다. 미술계 특유의 관계성만 작용한 게 아니라 제작과 설치 부문에서 무르익은 알짜배기 내공이 함께 경쟁 우위로 빛을 발한 덕분에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는 아트 바젤이나 아르코 마드리드 등 주요 아트 페어에도 자주 참가할 정도로 비교적 단시일 내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가을 프리즈 서울 주간에 개막했던 K&L 뮤지엄의 전시를 위해 방한하기도 했던 스위스 작가 클라우디아 콤테(Claudia Comte),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주인공이었던 구정아 작가 등 20여 명이 현재 다국적 크리에이터들로 이뤄진 갤러리 소속 작가 명단에 들어 있다.
M E N O R C A
지중해의 숨겨진 보석 같은 섬에 자리한 또 다른 공간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의 위치 선정은 갤러리 공간만 봐도 탁월함이 느껴진다. 카스티야 지역에서는 마드리드 중심가에 있는 로에베의 옛 워크숍 자리에 둥지를 튼 데 반해, 지중해를 낀 발레아레스제도의 메노르카섬에서는 유서 깊은 극장 앞에 있는 건물에 매력적인 갤러리를 열었다. 메노르카는 하우저앤워스 같은 메가 갤러리의 전시 공간이 들어서면서 ‘예술의 섬’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스페인 출신인 에바와 파트너인 크리스티앙에게는 휴양지로 ‘애정하던’ 섬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4년 전쯤 건물을 매입하고는 제2의 갤러리를 열 준비에 나서게 된다. “우리 가족은 휴가철이면 발레아레스제도의 섬을 찾았어요. 그런데 어느덧 이비사는 자꾸만 번잡해지고 있었고, 마요르카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섬이었어요. 우리는 메노르카와 사랑에 빠지게 됐죠.” 이 커플은 메노르카에 아름다운 전시 공간을 꾸릴 건물을 찾게 됐을 때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의논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반긴 볼탕스키는 머지않아 섬을 찾아 공간을 보고는 머리를 맞대고 전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갤러리를 정식으로 열기도 전에, 2021년 여름 그의 개인전을 메노르카에서 선보이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개막 직전에 볼탕스키가 작고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오프닝 파티 대신 작가의 창조혼을 기리는 첫 유고전이 된 셈이다(같은 해, 우리나라의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볼탕스키의 사후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보더라도 뭔가 애틋해지는 전시다. “네, 아주 특별한 전시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눈가가 촉촉해지게 만드는 볼탕스키와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 듯했다. 그 뒤로 갤러리가 다시 문을 열기까지 3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 재단장을 위한 건축 허가를 받고 수리를 거친 끝에 지난해 여름 방문객을 맞아들이게 됐다. 첫 전시는 현재 DDP에서 개인전 <색·모양·움직임>이 진행 중이기도 한 펠리체 바리니(Felice Varini)가 장식했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마드리드와 메노르카의 갤러리 공간을 보면 문득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구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은 온통빛으로 넘실대며, 내 마음도 날개를 펼치고 천천히 두 바다 사이를 유유자적하는 수공작처럼 요동한다.’
1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바란과 그녀의 파트너이자 남편인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티앙 부르데 커플.
2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에 자리한 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 갤러리.
3 마드리드 갤러리의 내부 모습.
4 2020년 마드리드 갤러리에서 열린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 에서 선보인 작품. 구정아(Koo Jeong A), ‘Seven Stars’, 2019. Ⓒ Pablo Gomez Ogando
5 지난해 가을 마드리드 갤러리에서 개막한 엑토르 자모라(He′ctor Zamora) 작가의 전시 모습.
Photo by 고성연
※ 1~4 이미지 Ⓒ Albarrán Bourdais
홈페이지 https://albarranbourdais.co
6 얼마 전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에 합류한 소속 작가 훌리오 르 파르크(Julio Le Parc)의 작품. Julio Le Parc, ‘Se′rie 16 n°12 Permute′’, 1971~2024. Acrílico sobre tela. Ⓒ Atelier Le Parc. Cortesía Albarrán Bourdais
7 Julio Le Parc, ‘Sphe‵re Bleu fonce′’, 2013, Plexiglass azul, madera, nylon, metal. Ⓒ Atelier Le Parc. Cortesía Albarrán Bourdais
8 클라우디아 콤테의 작업. 지난해 프리즈 서울 주간에 막을 올린 K&L 뮤지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Claudia Comte, ‘Hummingbird on a tree’, 2024. Courtesy the artist, K and L Museum, Seoul & Albarrán Bourdais
9 스페인 발레아레스제도에 있는 메노르카에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가 지난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10 2021년 여름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의 메노르카 공간에서 처음 연 전시인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전시 풍경. 작가의 유고전이 됐다.
11 ‘착시 효과’로 유명한 펠리체 바리니의 메노르카 전시 모습(2024년 가을).
12 지난해 말 메노르카 갤러리에서 시작한 그룹전 모습.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아드리앵 베스코비의 작품이 보인다.
※ 6~98 10~12 이미지 Ⓒ Albarrán Bourdais
2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에 자리한 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 갤러리.
3 마드리드 갤러리의 내부 모습.
4 2020년 마드리드 갤러리에서 열린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 에서 선보인 작품. 구정아(Koo Jeong A), ‘Seven Stars’, 2019. Ⓒ Pablo Gomez Ogando
5 지난해 가을 마드리드 갤러리에서 개막한 엑토르 자모라(He′ctor Zamora) 작가의 전시 모습.
Photo by 고성연
※ 1~4 이미지 Ⓒ Albarrán Bourdais
홈페이지 https://albarranbourdais.co
6 얼마 전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에 합류한 소속 작가 훌리오 르 파르크(Julio Le Parc)의 작품. Julio Le Parc, ‘Se′rie 16 n°12 Permute′’, 1971~2024. Acrílico sobre tela. Ⓒ Atelier Le Parc. Cortesía Albarrán Bourdais
7 Julio Le Parc, ‘Sphe‵re Bleu fonce′’, 2013, Plexiglass azul, madera, nylon, metal. Ⓒ Atelier Le Parc. Cortesía Albarrán Bourdais
8 클라우디아 콤테의 작업. 지난해 프리즈 서울 주간에 막을 올린 K&L 뮤지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Claudia Comte, ‘Hummingbird on a tree’, 2024. Courtesy the artist, K and L Museum, Seoul & Albarrán Bourdais
9 스페인 발레아레스제도에 있는 메노르카에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가 지난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10 2021년 여름 알바란 부르데 갤러리의 메노르카 공간에서 처음 연 전시인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전시 풍경. 작가의 유고전이 됐다.
11 ‘착시 효과’로 유명한 펠리체 바리니의 메노르카 전시 모습(2024년 가을).
12 지난해 말 메노르카 갤러리에서 시작한 그룹전 모습.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아드리앵 베스코비의 작품이 보인다.
※ 6~98 10~12 이미지 Ⓒ Albarrán Bourdais
[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의 개성 넘치는 창조적 여정]
01. Blessed in Solitude_알바란 부르데(Albarrán Bourdais)의 솔로 하우스(Solo Houses) 건축 프로젝트 보러 가기
02. Interview with 에바 알바란(Eva Albarrán) & 크리스티앙 부르데(Christian Bourdais)_갤러리를 둘러싼 창조성의 경계를 묻다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