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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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7, 2025

에디터 김하얀

실제보다 더 사람 같은 ‘조각상’을 만난다. 현대미술 조각가 론 뮤익(Ron Mueck)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 이야기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작가 론 뮤익의 시기별 주요 작품을 짚으며 지난 30년의 궤적을 따라간다. 현대 조각의 흐름과 변화를 좇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사유

1986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해온 호주 출신 현대 조각가 론 뮤익은 실제에 가까운 표현과 인체 사이즈의 왜곡으로 관람객에게 생경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예술가다. 초대형 사이즈부터 손바닥만 한 작품까지 다양한 크기의 인체 조각을 통해 인간의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현대 조각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조각상은 생생한 인간의 형상을 띠어 오히려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현대적 재료와 전통적 방식으로 정밀하게 조각된 작품은 세밀한 피붓결, 흩날리는 머리카락, 주름진 옷차림까지 그냥 지나칠 법한 모든 부분을 정교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표현력은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 불안감 등 내면의 유약한 감정을 기반하며 인간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3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수가 총 48점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그가 기술적 완성도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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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6.5m, 가로 3.9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침대에서’는 여느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압도적 힘이 느껴진다. 이 작품의 묵직한 존재감은 단순히 형태적 정교함과 웅장한 스케일에서 비롯된 물리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작품 속 인물은 마치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처럼 보이며,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만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다른 곳을 응시한다. 우리의 존재는 그녀를 방해하지 못한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시선의 차단은 작품 사이즈와 별개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들고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침대에서’와 대조를 이루는 크기와 구도가 특징인 ‘치킨/맨’은 형태적 크기를 축소해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의 크기부터 가구 배치, 남자의 신체와 자세, 닭의 모습과 눈빛까지, 이 작품을 이루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며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불편한 긴장감으로 인도한다. 시선을 잠시 뗐다가 다시 보면 의자가 뒤집혀 남자는 쓰러지고 닭은 깃털만 남긴 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분. 닭은 노인의 편집증이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른다. 개연성 없는 상상이 주제가 될 수 있고,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 더욱 흥미롭다.
제5 전시실 끝에서 만난 대망의 ‘매스’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1백 개의 대형 두개골을 켜켜이 쌓아 올려 시각적 충격을 안겨준다. 매스(mass)의 사전적 의미는 더미, 무더기, 군중을 의미하고 종교적 의식을 뜻하기도 한다. 두개골의 상징성 역시 다중적이다. 두개골은 인간의 삶을 고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대중문화에 빈번히 등장해 친숙한 매개체다. 론 뮤익은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입니다. 한눈에 집중할 수 있는 강렬한 아이콘이기도 하고요. 친숙하면서도 낯선 매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죠. 무의식적으로 외면할 수 없게 만듭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작가는 ‘매스’를 전시할 때면 전시 장소의 건축적 특성에 맞게 작품을 드러내는데, 이번에도 역시 현대미술관의 공간을 고려해 풍성한 실루엣으로 완성했다. 3층 높이의 깊고 넓은 공간을 하나의 면처럼 감싸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는 마치 유기적 구조를 갖춘 듯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3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처음 공개한 ‘배에 탄 남자’, 어둠 속에서 바깥을 응시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긴 ‘어두운 장소’ 등을 전시하며, 사진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존 뮤익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제6 전시실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 2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에서는 실제로 작가가 25년간 펼쳐온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과장되게 크거나 실제와 달리 매우 작게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관람객에게 묘한 잔상을 남긴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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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표상을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내가 포착하고 싶은 건 삶의 깊이다” _론 뮤익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1984년부터 론 뮤익을 포함해 수많은 미술가를 발굴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시대를 반영한 디자인부터 사진, 그림, 비디오, 공연 예술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인 현대 예술을 향한 아낌없는 찬사와 지원을 보내고 있다. 이렇듯 예술가를 위해 끝없는 영감을 부여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지난해 설립 40주년을 맞이해 오로지 예술을 위한 랜드마크를 새로 개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2025년 말 공개할 예정인 이 획기적인 예술 공간은 파리의 유서 깊은 장소, 팔레 루아얄 광장(Place du Palais-Royal)에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아이디어로 구현된다. “예술가의 창의성을 끌어올려주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낼 예정입니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 대담한 건축물과 차별화된 공간, 다채로운 전시 형식을 제안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전시와 함께 예술의 경지에 오른 전시 공간을 말입니다.” 1994년 라스파이 대로(Boulevard Raspail)에 세운 공간에 이어 전 세계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장소로 발돋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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