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된 지도: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과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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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6

글 고성연, 김연우, 양혜연

Female Artists in Focus


· 지도를 펼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 위에 그려진 선들은 변하지 않는 경계가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시선이 머물다 간 흔적이다. 미술사의 지도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완결된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조건과 제도, 기억과 해석이 겹친 잠정적 배열에 가깝다.

·· 이 전시는 미술사의 빈칸을 채우거나 완성된 지도를 다시 그리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지도가 투영 방식에 따라 대륙의 크기까지 다르게 보여주듯, 지도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 불완전함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신체와 전위적 실험, 자연과 비물질적 사유, 물성과 생명의 조각 언어, 추상 회화와 공간 구성, 디지털 이미지와 새로운 조형 체계, 파편과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와 확장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의 경계를 넓혀온 여성 작가 6인의 궤적을 따라간다.

··· 이들의 작업은 하나의 양식이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장소와 경험, 매체와 재료를 바탕으로 전개된 여섯 작가의 실천은 한국 현대미술 안에 또 다른 경로와 좌표를 만들어왔다. 정강자는 신체와 환경을 매체로 삼아 기존 예술의 경계를 확장했고, 김순기는 자연과 우연, 기록의 행위를 통해 자아를 비우고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윤신은 나무라는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순환과 합(合)과 분(分)의 세계를 조형화했으며, 정은모는 기하학적 질서를 빛과 색채의 공간으로 확장했다. 홍승혜는 픽셀이라는 디지털 최소 단위를 통해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형되는 구조를 탐색했고, 이수경은 깨진 도자 파편과 금빛 접합을 통해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재구성했다.

····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여섯 작가의 작업에는 공통된 태도가 존재한다. 각자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시간은 몸, 자연, 물질, 공간, 이미지, 파편이라는 여러 층위를 거치며 저마다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자의 작업은 서로 다른 좌표에 놓여 있지만, 그 사이에는 고정된 형태보다 변화하는 과정, 완성된 결과보다 생성의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자리한다. 여섯 개의 이름은 느슨한 세대를 이루면서도 각기 다른 세계를 품고 있다. 그 세계들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중심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국 현대미술의 풍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고성연



JUNG Kangja 정강자
무체(無体)를 향한 몸, 그 해방으로의 여정


검은 장막으로 둘러싸인 실내. 바닥에서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수색 조명은 폐쇄된 공간의 곳곳을 더듬어가며 비춘다. 곧이어 공습경보 사이렌이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그 소리를 가로질러 또박또박한 음성이 들려온다. 조명이 차단된 뒤에는 암흑 속에서 붉은 비상등만 깜박이는 가운데, 강단 있는 목소리가 동일한 메시지를 되풀이해 전달한다.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관람객에게 강렬한 시청각적 긴장감과 당혹감을 선사한 <무체전(無体展)>은 1970년 8월, 서울 소공동 국립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정강자(1942~2017)의 첫 개인전이다.

당시 정강자는 젊은 작가로 구성된 신전(新展) 동인, 제4집단 등 실험 미술 그룹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신체를 매체로 삼은 일련의 행위 예술, 이른바 ‘해프닝’을 선보여왔다. 보수적인 가부장제 사회와 제도권 미술계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런데 그가 처음 선보인 개인전 역시 전통적인 예술 작품의 개념을 전복하는 것이었다. 정강자는 빛과 어둠, 소리와 연기 등 비물질적 요소로 총체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 안에 놓인 관람객의 신체가 공간과 상호작용하도록 했다. 관람 경험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몰입형 전시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긴장과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지나치게 닮은 탓이었을까. 이 전시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이틀 만에 강제로 철거되고 만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한동안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회화로 전향한다.

정강자는 10여 년간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전통 염색 기법인 바틱을 익혔고, 중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문화를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회화에서 돋보이는 선명한 색채, 시원한 구도,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장면에 풍부한 영감을 주었다. 그의 작업에서는 춤추는 여인, 모자상 등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재현된다. 여인의 초상은 종종 자연의 풍경으로 스며든 모습으로도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황토색 배경이 인상적인 ‘사하라’(2011)를 들 수 있다. 사막을 떠도는 여행자를 지켜보는 여인의 모습은 모든 생명의 근원적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떠올리게 하며,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복의 형상을 빌려 한국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작업도 눈에 띈다. 풀어헤친 저고리는 때로 우뚝 서 있는 산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한복의 치마는 산수화의 굽이치는 능선으로 재해석되어 화면을 누빈다.

2015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투병 중에도 작가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신체적 고통과 수술 경험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다시 자신의 몸을 작업의 중심에 놓는다. 말년의 작업에서는 특히 우주에 대한 관심이 돋보이는데, 이는 만물의 근원적 형상을 탐구하는 기하학적 추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계기가 된다. 그 중심점인 ‘반원’은 이전부터 파편화된 신체나, 나풀거리는 치마폭의 운동감 등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했던 형태이기도 하다. 신체를 저항적 매개로 삼아 출발한 정강자의 여정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한한 화면 위에서 계속되어왔다. 그곳에서 몸은 더 이상 억압된 육체에 머물지 않고, 산이 되고, 대지가 되고, 우주의 일부가 된다.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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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oun-gui 김순기
비움으로 채워가는 무한한 순간에 찬미를


한동안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기록하는 삶’에 대한 관점이 화제였다. 최근 유행처럼 번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나 블로그에 주간 일기를 쓰고, 브이로그(v-log)를 남기는 오늘날의 문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붙잡는 데 열중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기록에 있어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이것이 삶을 포장하는 행위로 나타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기록은 특별한 순간만 남기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을 이어 붙여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일에 가깝다. 김순기(1946~)의 무용하고 느린 시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무 앞에 돌을 쌓거나 산책하다 발견한 새의 발자국을 그리는 등 반복적 일상은 작가만의 삶을 이루는 사소한 행위와 그 사이를 통과한 시간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기록은 김순기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형식이지만, 이는 비디오라는 매체에서 정점을 이룬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에 정착하던 시기에 탄생한 ‘조형상황 I-III’(1971~1974) 연작은 회화라는 매체를 벗어나고자 한 작가의 초기 조형 실험을 보여주는 주요한 비디오 작업이다. 처음에는 캔버스 천이 설치된 야외 환경에 빛과 바람, 소리와 행인 등 여러 우연이 겹쳐 완성되는 대학 시절 작업 ‘소리’(1970)를 모태로 한 설치 작업에서 출발해, 이후 마리나, 모나코, 보르도 등 다양한 지역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들의 행위를 담은 퍼포먼스/영상 기록 작업으로 발전해나갔다. ‘조형상황’은 물리적, 제도적으로 닫힌 예술의 구조를 벗어나, 참여자들이 자연의 소리, 빛과 공기의 움직임에 직접 접촉하는 열린 시공간으로 예술을 확장시킨다.

1980년대에 시작된 ‘바보사진’ 연작은 감광액을 바른 필름이 담긴 상자에 바늘구멍을 뚫어 작가가 손수 만든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누구나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사진가가 될 수 있고, 초보다 작은 단위로 쪼개진 시간 속에 수많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세상에서 작가의 작업은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와는 정반대에 놓여 있는 것만 같다. 촬영에는 몇 분부터 한나절까지 걸리기도 하고, 적절한 앵글을 구현하거나 초점을 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색조나 명암을 보정하고 이미지를 크롭트하는 등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후반 작업 역시 생략되며, 최종 이미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결핍은 오히려 빛이 머문 시간이 스스로 흔적을 남기게 한다. 인위적인 통제의 욕망을 내려놓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간들이 겹쳐 완성되는 흐릿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는 ‘바보사진’만의 고유한 미학을 획득한다.

이처럼 작가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김순기의 ‘무아(無我)’는 ‘바카레스 호수(Etang de Vaccares)’(1985)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는 지도 위에 무작위로 돌멩이를 던지고는 그것이 떨어진 곳으로 떠나 해당 장소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호수의 한 지점을 계속해서 비추는 화면은 조리개의 조작에 따라 눈을 감았다 뜨듯 어두워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한다. 나른한 호흡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요한 수면 위에서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은 하나로 이어지고, 작가의 시선과 작가의 부재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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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un Shin 김윤신
합(合)하고 분(分)하며 자라나는 나무의 세계


나무의 나이테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 어떤 예술은 긴 시간을 지나서야 제대로 읽힌다. 나무를 주재료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김윤신(1935~)은 70여 년에 걸쳐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해온 조각가다. 그럼에도 그가 국내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다. 재조명의 계기는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2023. 2. 28~5. 7)였다. 미술계에서 큰 호평을 얻은 이 전시 이후 이듬해 그는 국제갤러리, 리만머핀과 공동으로 전속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했고, 올해에는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2026. 3. 17~6. 28)이 열리며,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윤신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조명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로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오랜 세월 현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삶의 궤적을 들 수 있다. 1983년, 조카를 만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의 낯선 땅을 찾은 그는 삶의 터전을 그곳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전쟁 이후 대형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한국과 달리, 알가로보나 팔로산토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풍부한 자연에서 자신의 조형 언어를 확장시킬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명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이주를 결심할 만큼 나무는 그에게 중요한 재료였지만, 처음부터 작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정숙 교수에게 용접 기법을 배운 그는 졸업 후 한동안 부산에 머물며 철 용접 조각 작업에 몰두했다. 파리 유학 시절에는 석판화와 조각을 배우는 동시에 유리병, 바가지, 달걀 포장재 같은 일상의 사물을 활용한 작업을 통해 매체 실험을 하기도 했다.

나무가 그의 작업 세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어린 시절 독립운동가인 오빠의 생사를 걱정하며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안녕을 빌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착안해 나무 조각을 돌탑처럼 쌓아 올린 ‘기원쌓기’ 연작이 시작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나무 입상 조각 연작인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작업에 착수하며 평생 이어질 작품 세계의 토대를 다졌다. 아르헨티나로 기반을 옮긴 뒤에는 전기톱을 들고 거대한 나무를 베어내고 다듬으며 이 연작에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응축시켰다. 팬데믹으로 통나무를 구하기 어려워진 시기에는 자투리 나무와 각목, 판자 같은 폐자재를 조립하고 채색한 뒤 그 위에 다채로운 문양을 더하며 또 한번 자신의 예술 세계를 넓혔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하나가 되고, 다시 나뉘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를 담은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작가의 대표 연작명인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작업 세계의 근간이다. 조각을 제작하기 전, 나무 안에 잠재된 형태를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진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나무는 그의 손끝에서 ‘합(合)’과 ‘분(分)’이라는 동양철학의 개념을 품은 조각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더해진 강렬한 색채는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와 재료, 철학과 조형 언어는 작품 안에서 하나로 ‘합’해지고, 관람객과의 만남 속에서 다시 새로운 의미로 ‘분’하며 확장을 거듭한다.

양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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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 Eun-Mo 정은모
감각적인 기하학이 빚어내는 온기 어린 공간


절제된 화면 위 엄격한 질서와 규율은 흔히 기하학적 추상을 ‘차가운 추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구조적 특징으로 여겨진다. 정은모(1946~)가 일찍이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공부하던 196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이나 옵아트, 하드에지 페인팅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경향은 주요 미술관 전시를 통해 부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은모의 회화는 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의 화면은 기하학적 추상의 제약적이고 명료한 형식을 일부 공유하면서도, 차갑고 닫힌 구조와는 다른 온화한 감각을 드러낸다. 강한 원색의 대비나 극단적 대칭 대신, 빛을 머금은 은은한 색채가 각기 다른 형태가 되어 화면에 놓이고, 마주한 색면들이 서로를 부드럽게 밀고 당긴다. 이들은 나뉘고 포개지며,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화면 속에서 그들만의 리듬으로 다채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정은모의 작업에서 선과 면은 단순한 장식적 배열이 아니라, 화면을 지탱하는 구조물로 작동한다. 이러한 조형 언어에는 작가가 뉴욕 이후 파리, 뮌헨을 거쳐 1980년대 말부터 정착한 이탈리아의 환경이 깊게 작용한다. 로마, 토스카나, 밀라노 등지에서의 체류는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건축과의 지속적 접촉을 가능하게 했고, 그 풍부한 문화적 유산과 지중해의 강렬한 빛은 자연스레 화면의 색채 감각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회화에는 종종 건축적 구조가 감지된다. 이를 테면 반원형 변형 캔버스와 직사각형 캔버스를 결합한 작업은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흘러드는 성당의 통창이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며, 고전주의 건축의 프리즈나 건물 파사드를 연상시키는 화면도 종종 등장한다. 일부 작업에서는 문지방이나 미닫이문 같은 한국적 공간 구조가 겹쳐 나타나기도 한다.

오로지 선과 색면으로 이뤄진 화면에서 빛은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빛의 방향에 따라 살짝 비틀어지는 각도, 단계적으로 짙어지는 색의 농도, 어긋난 면의 배열은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깊이를 구축하고 미세한 공간감을 조성한다. 하나의 색에서 출발해 다른 색을 덧씌우고 얹는 과정에서 조금씩 축적된 색채는 시간의 층위 속에 서서히 바랜 고대의 벽화나, 빛이 오래 머물다 지나간 자연의 표면을 닮았다. 이러한 색채의 상호작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감각과 장소를 환기하게 한다. 분명 그의 회화는 특정한 풍경이나 대상을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화면에서는 문 틈으로 들여다본 실내,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처럼 무한한 공간적 환영이 펼쳐진다. 실내와 실외,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화면은 기억과 시간이 머무는 공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공간을 담는 정은모의 회화는 작품이 놓인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을 때 더욱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일랜드 현대미술관(IMMA)에서 선보인 장소 특정적 회화 연작 ‘Parallel Windows’(1993)에서는 12점의 변형 캔버스가 설치된 짙은 푸른색 벽면이 캔버스의 연장선이 된다. 그 위에 걸린 회화는 오히려 작가의 작품 속 기하학적 형태처럼 읽히며, 닫힌 질서를 벗어나 공간 전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전환하는 열린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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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Seung-Hye 홍승혜
미완의 레이어를 쌓아 만든 유기적 기하학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미완의 존재이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인정할 때 비로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홍승혜(1959~)의 작업은 픽셀 기반의 래스터 이미지에서 벡터 이미지로, 평면에서 입체로, 정지된 화면에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끊임없이 확장된다. 그 변화의 원동력은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고 여기는 ‘아마추어 정신’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도구 사용법을 배우는 것도, 실패를 감수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비어 있는 틈은 결핍이 아닌 가능성이며, 디지털 세계 안팎을 넘나들며 구축한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그 여백을 채운다.

‘픽셀’로 대표되는 홍승혜의 작업은 초기 연작명이기도 한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단어로 설명된다. 네모반듯한 픽셀은 기하학적이지만, 각 픽셀이 세포처럼 모여 형태를 이루는 과정은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홍승혜가 래스터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픽셀을 작업의 조형 언어로 삼은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그 전까지 앵포르멜 계통의 회화나 콜라주 작업 등을 선보여오던 그는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시스템이 전산화되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그림판 프로그램에서 픽셀이란 새로운 조형 언어를 발견했고, 이를 패턴화하기 위해 포토샵을 다루면서 작업의 터전을 디지털 세계로 옮겨갔다. 컴퓨터그래픽이 순수 미술의 언어로 여겨지지 않았던 1997년, 이 작업들을 모아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유기적 기하학>(1997. 8. 26~9. 13)이란 전시를 선보였다.

이후 그의 픽셀 이미지들은 생명체처럼 변모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액자 밖으로 꺼내 입체화하고, 때로는 다시 해체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한 ‘더 센티멘탈’ 연작을 통해서는 멈춰 있던 이미지에 운동성을 부여하고, 작곡 프로그램 개러지밴드 사용법을 익혀 직접 만든 사운드를 이후 작품의 요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진행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2023. 2. 9~3. 19)를 통해 다시 한번 도약한다. 포토샵 대신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해 벡터 형식으로 제작한 평면 작업과 이를 기반으로 창작한 입체 작업을 선보였다. 더불어 갤러리의 한 관은 그의 지난 시간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총망라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치환했다. 무용수 픽토그램을 이용한 입체 작업, 일러스트레이터 기반의 꽃잎 입체 작업,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를 결합한 작업이 전시장 안에서 겹치고 호응하며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시기의 주요 조형 언어가 공존하는 모습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디지털 이미지 툴의 레이어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큰 원과 작은 원, 긴 선과 짧은 선, 곡선과 교차하는 선,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묘한 사운드까지. 기하학적 도형과 선은 모이고 흩어지며 유기적인 표정을 만든다. 홍승혜의 최근작 ‘표정 연습’(2025)은 그림판부터 개러지밴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구와 매체를 탐구하고, 이를 재배치하며 끊임없이 조형 언어를 확장해온 그의 작업 궤적과 닮았다. 조합에 따라 무한하게 만들어지는 표정처럼, 그의 조형 언어 역시 고정된 형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스스로를 완성된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 한, 그 언어는 앞으로도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낼 것이다.

양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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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esookyung 이수경
부서진 세계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법*


도자기는 불순물을 걸러낸 흙에 물을 섞어 점토를 만들고, 이를 성형한 뒤 공기 중에 건조시킨 다음 고온의 불에 소성해 완성된다. 고대 철학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흙, 물, 불, 공기)가 모두 관여해 탄생하는 셈이다. 제작 과정에는 점토의 수분, 가마의 온도, 불의 방향, 요변(窯變)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그중 많은 부분은 만드는 이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성에 의해 좌우된다. 이에 도자기 장인은 완벽한 작품만 남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틀어지거나 미세한 결함이 발견된 결과물을 깨뜨려 폐기한다. 그렇게 버려진 도자 파편은 이수경(1963~)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2001~) 연작은 인체와 비례가 비슷한 조각부터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설치, 작은 도자기의 군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선보여왔다. 마치 증식하는 유기체 같은 형상의 조각에서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풍요로운 생명력이 느껴진다. 연작의 출발은 작가가 이탈리아 알비솔라 비엔날레에 참가했던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한국 도자기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 도예가에게 조선시대 백자를 찬미한 시를 번역해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백자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물로 나온 작품은 동양의 것도, 서양의 것도 아닌, 전혀 새로운 12점의 화병이었다. 이는 이수경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 그리고 도예가의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 결과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차, 즉 ‘번역’ 과정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장인들의 실패작 또한 완전한 재현에 이르지 못한 일종의 ‘오역’이라 보고, 그 지점에 개입해 자신만의 번역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한때 화병, 접시, 차주전자, 항아리 등이었던 깨진 도자기 조각은 작가의 손길에 따라 서로 이어지고, 이들이 맞닿은 틈새는 금으로 메워진다. 두께와 넓이가 일정하지 않은 금빛 선들은 작가의 제스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생명체를 유지하는 혈관처럼 도자기 표면을 타고 흐르고 번진다. 도자기가 하나의 캔버스라면, 작가가 그려내는 금빛 이음매는 때로는 두꺼운 마티에르가 쌓인 회화로, 때로는 얇고 가느다란 드로잉의 선으로 나타난다. 귀한 물질로 여겨지는 금을 사용하는 것은 흠결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부각하기 위함이다. 경쟁과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이수경의 도자기는 ‘부서진 세상의 존재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묵묵히 전한다.

작가의 ‘번식 드로잉’(2005)은 한국의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바리 공주에게 헌정하는 작업이다. ‘버려진 아이’를 뜻하는 ‘바리데기’라 불린 공주는 일곱 번째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졌지만, 훗날 병든 부모를 살릴 약수를 저승에서 구해온 뒤 저승의 영혼 인도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필요 없다고 여겨진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주체가 되는 이 이야기는 버려진 파편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재탄생한 그의 도자기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번역된 도자기’는 동양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고쳐나가는 치유의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와 같은 연약한 존재다. 부서짐은 이수경의 세계에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조건이 된다. 그 과정에서 남은 상흔은 삶을 견뎌낸 아름다운 증거다.

김연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25. 3. 25~8. 17) 전시 큐레이터 앤 안린 청이 이수경의 도자기에 헌사한 ‘이수경의 좌초된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의 시에 등장하는 구절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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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Female Artists in Focus_확장된 지도: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과 도약 보러 가기
03.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롯데콘서트홀_연결의 항해, 새로운 10년 보러 가기
04. 세 가지 키워드로 보는 전시 트렌드_지금 우리는 어떤 전시에 열광하는가 보러 가기
05.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_마이너는 정말 마이너인가? 보러 가기
06. 동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세 전시_AI 시대 속 ‘인간다움’에 대해 묻다 보러 가기
07. Exhibition in Focus 보러 가기
08.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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