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미항(美港)의 도시가 품은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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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4, 2023

글 고성연 | 취재 협조·이미지 제공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프로젝트

현대의 도심에는 성전 대신 미술관을 짓자고 했던가.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내로라하는 미술관 앞에 자주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허울 좋은 말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몇 겹씩 똬리를 튼 기나긴 줄은 ‘미술관 효과’를 실감케 한다. 그래서 ‘창조 도시’, ‘문화 예술 허브’ 같은 탐나는 키워드를 겨냥하는 세계 유수 도시는 저마다 랜드마크가 될 미술관 짓기에 여전히 열중하고, 팬데믹에 아랑곳없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항(美港)의 도시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발 프로젝트는 단연 블록버스터급이다. 울루물루만의 근사한 풍경을 등에 업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NSW 주립미술관)의 확장 프로젝트로 현지에서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탄생 이래 규모나 무게 면에서 ‘역대급’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8년여에 걸친 시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예산과 기부, 무엇보다 수많은 창조적 인재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 완성해낸 미술관 프로젝트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니 모던(Sydney Modern)’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의 건축을 맡은 SANAA의 ‘스타키텍트’ 듀오가 몸소 ‘신관’을 공개한 지난달 초 오프닝 주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와 맞물려 도시 전체가 축제 모드에 휩싸인 그 현장을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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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오페라’만 있는 게 아닌데, 왜 ‘오페라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건가요?”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오페라하우스 건축 투어를 하던 중 누군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클래식과 팝을 가리지 않는 콘서트, 발레 공연, 전시 등 다채로운 유·무형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사실 ‘건축’ 하나만 가지고도 온종일 ‘썰’을 풀 수 있는 다면성을 품고 있는 공간 아닌가. 오늘날 미술관이라는 존재 역시 그러하다. ‘도시의 세기’라 불리는 21세기를 구가하는 대다수의 메트로폴리스는 도시의 자존심을 좌우하는 랜드마크로 현대미술관을 내세운다. 첨단을 달리는 기술력과 미학의 조화를 반영하는 하드웨어(건축물)와 동시대적 시각, 흐름을 담아내는 소프트웨어(현대미술)가 어우러지는 공공의 공간. 미술 전시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도 접할 수 있고, 미식과 쇼핑을 즐기거나 정원 산책을 하며 ‘힐링’을 꾀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이기도 하다. 시드니에서 만난 SANAA의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말했듯 예전에는 주로 미술 애호가들만 드나들었던 데 반해, 이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이 즐겨 찾는’ 공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외관상의 건축미도 중요하지만, 일단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다음에 맞닥뜨리는 경험 디자인이 빼어난 미술관에 더 호감이 간다. ‘화이트 큐브’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대개 네모반듯한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 비해 아무래도 미술관은 공간성이 훨씬 더 풍부하게 느껴지고, 시시때때로 카멜레온처럼 변모할 수 있는 유연함을 발휘하는 무대를 꾸릴 수 있지 않은가. 미술관은 도서관, 강연장, 체육관 같은 여타 공공 플랫폼과는 달리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환경에 놓여 있지만, 결국 공간을 배회하는 주체는 ‘관람객’이다. 공간, 그리고 예술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공감대를 형성할지는 관람객 각자의 몫이므로 그들의 자유로움과 가능성을 최대한 뒷받침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이는 SANAA가 추구해온 ‘열린 건축’과도 일맥상통하는 기대였던 것 같다. ‘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프로젝트로 공개된 새 미술관의 공간은 확실히 ‘열려 있다’는 인상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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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등장 이래 ‘역대급’ 프로젝트, 그 베일을 벗다  
시드니 중심가의 도메인 지구, 하이드파크와 세인트 메리 대성당 근처에 자리한 뉴사우스웨일스(NSW) 주립미술관. 1백50년 역사를 반영하듯 창공을 향해 치솟은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채 고색창연한 황토빛 건물로 무게감 있는 위용을 뿜어낸다.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력답게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 목록도 출중하기에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그렇지만 이 문화적 자산이 ‘modern’을 겸비한 랜드마크로 거듭나기를 갈망했던 시드니 시민들의 숙원 사업이 바로 ‘시드니 모던’ 프로젝트였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이래 ‘역대급’ 프로젝트라는 수사를 동원한 만큼 전 세계적인 공모를 실시했고,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라는 걸출한 ‘스타키텍트’ 듀오가 이끄는 일본 건축 스튜디오 SANAA가 채택됐다. 2010년에 건축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SANAA는 뉴 뮤지엄(미국 뉴욕), 21세기 미술관(일본 가나자와) 등 ‘뮤지엄 건축’에서도 꾸준히 두각을 드러내온 터라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3억4천4백만 호주달러가 투입됐다는 시드니 모던 프로젝트가 시동을 건 지 8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초, 드디어 NSW 주립미술관 신관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건축에는 파사드가 없습니다”라는 니시자와 류에의 설명처럼 본관 옆에 자리한 신관은 보행자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보기에는 마치 하얗고 투명한 물결처럼 유연한 곡선의 가리막을 드리운 듯한 단층짜리 건물로 보인다. 물론 햇빛 속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외관의 자태와 그 앞 마당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듯한 커다란 조각물들은 충분히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압도적인 높이와 화려한 파사드를 갖춘 압도적인 랜드마크의 건축미를 내심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놀랍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프랜시스 어프리처드(Francis Upritchard)의 커미션 신작인 이 길쭉하고 덩치 큰 인물의 형상을 띤 조각들은 화합과 소통의 손길을 내밀거나 마주 잡고 있는데, ‘Here Comes Everybody’(2022)라는 제목을 붙였다. 처음에는 이 조각 작품들이 놓인 앞마당을 빈터로 만들지 않고 본관과 바로 연결하는 구상도 고민했다고 전해지는데, 결이 다른 신·구관이 이렇듯 숨을 터주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풍경은 외려 시각의 ‘충돌’을 완화하고,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디자인과 구도가 친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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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섬세한, 그리고 따스함이 밴 공간
사실 신관의 묘미는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바로 ‘가동’한다. 해사하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공간을 목도한 이들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지르기도 한다. 1층부터 시작해 아래로 한 층 한 층 내려가면서 지하 4층까지 유기적으로 펼쳐지는 이 미술관의 진짜 ‘위용’을 짐작할 수 있는 구조의 미학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양파 껍질 벗겨내듯 각각 다른 매력을 뿜어내면서 말이다. 일단 탁 트인 1층의 전시 공간은 SANAA 특유의 건축 언어를 반영하듯 한없이 가볍고 투명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이에 더해 따스함이 배어 있기도 해 위로받는 느낌도 든다. 입구에 가까이 위치한 원형 아트 숍은 그 자체로 작은 비엔날레의 파빌리온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갈색 도는 오렌지빛 반투명 유리에 미술 서적의 실루엣이 비치는 모습이 정겹다. 1층의 메인 전시 공간은 호주 원주민(aboriginal)과 토레스해협제도 원주민의 예술 작품을 전시한 이리바나 갤러리(Yiribana Gallery). 영국인 죄수와 이민자의 이주로 태동한 호주 근현대사에서 그들이 몰아내고 찬탈한 ‘원주민’ 문제는 뼈 시린 이슈이고, 당연히 아트 신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어왔다. 굳이 따로 분류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차치하고, 글로벌 미술계에서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는 동시대 호주 작가들의 현주소와 그네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리바나 갤러리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1층 공간에만 머물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외유’를 하는 동선도 잊지 말아야 한다. 푸른 물결 넘실대는 울루물루만(Woolloomooloo Bay)의 정취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1층 야외 공간으로 가면 넉넉하게 펼쳐진 테라스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화사한 꽃 조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관에는 1층만이 아니라 층층마다 바깥 풍경을 응시하도록 군데군데 창이 나 있든지 산책을 유도하는 정원을 품고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여기저기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예컨대 지하 전시장에서 통하는 소담스러운 뜰의 끝에는 대만계 작가 리밍웨이(Lee Mingwei)의 커미션 신작 ‘Mingwei Spirit House’이 자리하는데, 불상 앞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관 구성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다른 공간과 확연한 대조미를 이루는 지하 4층 전시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의 비공개 오일 탱크 시설이 있던 장소라 ‘탱크(Tank)’라 이름 붙인 이 전시장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스타 작가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Adria´n Villa Rojas)가 처음 보자마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고 전해지는 ‘어두운 기운’이 흐르는 공간인데, 이 암흑의 매혹을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살린 <The End of Imagination>이라는 전시를 직접 기획해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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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내용적’으로 무색하지 않을 만큼 신관의 소장품 컬렉션과 기획전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우고 론디노네, 무라카미 다카시, 솔 르윗 등 세계적으로 명성 자자한 이른바 ‘스타’ 작가들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과 배경의 작가 구성이 눈에 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김수자의 참여적인 전시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서울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마음의 기하학>처럼 관객들이 ‘진흙 공’을 테이블 위에 굴리면서 함께 이뤄나가는 전시다. 9백여 명에 이르는 다국적 작가의 작업 세계가 곳곳에 펼쳐져 있으니 제대로 감상하려면 일주일도 모자랄 듯하다. 건축과 예술의 조화가 많은 이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시드니의 르네상스를 이끌 것’이라는 수사를 끌어내기도 했지만, 더 눈길이 가는 건 마치 전쟁을 치르듯 비장하게, 때로는 축제에 가는 듯 흥을 내며 이 새로운 랜드마크를 공개할 채비에 여념이 없던 ‘미술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프리뷰’ 기간에도 미술관 담장 너머로 연신 기웃거리면서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낸 시드니 시민들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풍경을 보노라니 사회운동가이자 저술가였던 제인 제이컵스(Jane Jacobs)의 말이 떠올랐다. “도시에는 모든 이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는 도시가 모든 이의 참여로 창조되었을 때만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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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2-23 Winter SPECIAL]

01. Intro_Global Voyagers  보러 가기
02. Front Story_‘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프로젝트_미항(美港)의 도시가 품은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  보러 가기
0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The Great Harmony  보러 가기
04.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우리들의 백남준_서문(Intro)  보러 가기
05.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1_초국가적 스케일의 개척자_COSMOPOLITAN PIONEER  보러 가기
06.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2_기술로 실현될 미래를 꿈꾸는 예측가_INNOVATIVE VISIONARY 보러 가기
07.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3_퍼스널 브랜딩의 귀재였던 협업가_CONVERGENT LEADER  보러 가기
08.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4_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_STRATEGIC COMMUNICATOR  보러 가기
09. Global Artist_이우환(李禹煥)_일본 순회展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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