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021 Summer SPECIAL]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미술 시장의 지각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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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7, 2021

글 이학준(크리스티 코리아 대표) | 기획 고성연

Market Insight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미술 시장의 지각변동

작년 이맘때만 해도 미술 시장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고 암담해 보이기까지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모두가 발이 묶이면서 세계 곳곳에서 주요한 아트 페어나 경매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여전히 물리적 환경의 제약으로 고전하는 시장도 있지만, ‘순풍’이 분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특히 한국은 작년과의 온도 차가 뚜렷한 시장이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열린 아트 페어나 경매는 저마다 빼어난 성적을 자랑하고 있고, 내로라하는 글로벌 갤러리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입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또 삼성가의 역대급 미술품 기증으로 대중의 품에 안기게 된 ‘이건희 컬렉션’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MZ 세대의 투자 열기, NFT 열풍 등이 맞물리면서 슬슬 ‘과열’과 ‘거품론’ 얘기까지 나올 만큼 시끌벅적한 미술계는 팬데믹을 계기로 커다란 변혁의 장을 맞이하고 있는 걸까? ‘옥석 가리기’의 태도가 요구되는 시기인 것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미술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해 시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자본 시장과 암호화 화폐 시장에서 넘어온 자금의 흐름이
국내외 미술 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시장 규모가 작은 국내 미술 시장의
갑작스러운 활황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꽤 있다.
여전히 미술 시장의 규모는 작은데 펀더멘털의 변화 없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활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럽고 힘든 한 해였다. 미술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를 비롯해 유수 경매업체들은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작년 상반기에 주요 오프라인 경매를 연기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 결과, 작년 글로벌 경매 시장 규모는 UBS와 아트 바젤에서 발간하는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 비해 30%가량 줄어든 1백76억달러(한화 약 20조원)를 기록했다. 경매뿐 아니라 아트 페어 등 미술품 거래 플랫폼이 대부분 타격을 입었다. 당연히 글로벌 미술 시장이 받아 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2020년 세계 미술 시장 판매액은 전년 대비 22% 감소한 5백억 달러(한화 약 55조원)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난파선만 잔뜩 쏟아질 듯했던 팬데믹의 격랑 속에서도 미술 시장의 회복 탄력성이 돋보였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술 시장에 지난 한 해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난 해도 없었던 것 같다. 글로벌 경매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에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해 경비 절감에 나서는 동시에 예기치 못한 난관을 돌파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온라인 세일의 강화와 하이브리드 세일(온라인과 오프라인 경매의 장점을 살린 경매)의 도입이 그 승부수였다. 아트 바젤을 위시해 주요 아트 페어들도 일제히 온라인 판매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에 비해 무려 2배 수준으로 껑충 뛰면서 25%를 차지하게 됐다(출처 UBS ‘The Art Market 2021’).


위기 속에 싹튼 기회의 장? 아니면 다시 과열의 도가니로?

지난 15년간 글로벌 경매 시장을 돌아보면 눈에 띄는 큰 위기가 두 차례 있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로 혹독한 불황을 겪은 2009년, 그리고 코로나19가 직격탄을 날린 2020년이 꼽힌다. 그런데 최악의 불황기였던 2009년 1백83억원 규모를 기록한 순수 미술품 경매 시장은 2010년 단숨에 2백76억달러로 커지면서 거뜬히 회복했다(출처 UBS ‘ The Art Market 2018’). 팬데믹이 초래한 작금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올해 1분기 상황만 보더라도 2019년에 근접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타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의 양상은 좀 달랐다.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2007년 정점을 찍은 이래 2015년 단색화 열풍이 불기까지 무려 8년 동안 장기 불황에 허덕였다. 단색화 열기에 힘입어 2015년부터 4년간 호황을 누렸으나 2019년과 2020년에 다시 꺾이는, 변동성이 큰 모습이다.
현 상황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핫’하다는 표현이 들어맞는다. 글로벌 경매 시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작년 말부터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두말할 필요 없이 시중에 넘쳐나는 풍부한 유동성이 자리하고 있다. 자본 시장과 암호화 화폐 시장에서 넘어온 자금의 흐름이 국내외 미술 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시장 규모가 작은 국내 미술 시장의 갑작스러운 활황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꽤 있다. 여전히 미술 시장의 규모는 작은데 펀더멘털의 변화 없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활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국내 미술 시장의 호황도 풍부한 유동성에 바탕을 뒀다. 당시 정부가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을 억제함에 따라 일부 자금이 미술 시장에 유입되는 바람에 더 탄력을 받았다. 지금의 풍경과 꽤 닮은 구석이 있다.


K-아트, 아직은 먼 글로벌 브랜딩의 여정

하지만 2007년 국내 미술 시장에는 거의 모든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제히 치솟은 반면 현재의 상황은 좀 다르다. 학습 효과 덕분일까? 해외에 미술 시장의 기반을 둔 작가, 특히 단색화 작가 위주로 여전히 거래가 활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경매에서도 한국 단색화 작가에 대한 컬렉터들의 국제적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단색화 작가를 가격 측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미화 1백만달러에 턱걸이하는 수준에서 거래가 되는지라 글로벌 관점에서 예술적인 성취도를 따진다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 국제 무대에서 1980년대, 1990년대생 작가들이 소위 ‘밀리언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일은 이미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에서 진행되는 경매를 보면 이젠 동남아시아 미술도 시장에서 이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베트남 미술은 최근의 가파른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례로 마이 쭝투(Mai Trung Thu)라는 베트남 1세대 작가의 작품이 지난 4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3백만달러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또 5월 크리스티 홍콩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브닝 경매에서는 출품작 총 75점 중 동남아 출신 작가 작품이 8점이나 됐다. 반면, 한국 작품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이 유일했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홍콩 경매에서는 곧잘 동남아시아 미술을 별도 세션으로 만들어 경매를 진행한다.
작가에 대한 글로벌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 개인적인 경험담이 있다. 2010년과 2011년 떠난 출장길에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우연히 반가운 작가들의 전시회를 보게 됐다. 한 분은 나라 요시토모였고 한 분은 한국 작가였다. 나라 요시모토는 아이를 소재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자신만의 독창적 영역을 개척한 작가로 막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키네틱 조각을 하는 한국 작가 역시 그만의 독창적 조형언어로 세계 무대에서 관심을 끌던 초기 단계였다. 이후 나라는 세계적인 갤러리인 페이스(Pace) 전속 작가가 되어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고, 지난해엔 미국 서부의 주요 미술관인 LACMA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2010년 경매에서 5억원대 중반에 낙찰됐던 그의 작품은 이제 1백50억 원에 거래될 정도다. 한국 키네틱 작가의 가치가 꼭 ‘가격’으로만 증명되는 건 아니지만 엄연한 시장의 논리로 보자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프리즈 아트 페어와 세계적 갤러리들의 서울 입성, ‘아트 허브’로의 도약 가능성?

최근 거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홍콩은 여전히 뉴욕, 런던과 함께 글로벌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콩의 경쟁력을 꼽자면 무관세 같은 세제의 이점, 영어가 가능한 풍부한 인적자원, 금융 인프라, 그리고 아시아 허브로서의 지리적 장점 등이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 미술 시장의 존재감은 아직은 훨씬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술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미술 시장이 전후 서양 현대미술과 21세기 현대미술에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마침 페이스를 위시한 글로벌 화랑들이 전시 공간을 확장하거나 새로 입성하는 등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는 소식이 있다. 런던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아트 페어 브랜드 프리즈(Frieze)가 KIAF와 손잡고 내년 9월에 서울에 진출한다는 소식 또한 들린다. 미술 시장의 거점 다변화를 위한 전략에 따른 행보이고, 언제든 떠날 수도 있겠지만 시장 경제의 논리에서 볼 때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미술 시장이 맞닥뜨린 환경의 변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그 역동적인 흐름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해낼지에 따라 운명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그동안 잠재적 역량은 지니고 있었지만 국제 무대에 노출될 기회가 많지 않아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한국 미술의 토대를 다지고 넓힐 기회가 찾아온 것은 맞다.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1%의 지분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K-아트의 현실을 직시할 때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존재감을 뿌리내리기 위한 전략적 접근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말이다.


미술계의 논쟁적인 화두 ‘NFT 아트’

요즘 미술 시장에 전 세계의 이목을 쏠리게 하는 또 다른 화두는 NFT(Non-Fungible Token) 아트다. 지난 3월 비플(Beeple)의 작품이 7백85억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에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된 이래, 전 세계에는 NFT 아트의 열풍이 몰아닥쳤다. 비플의 작품에는 2007년 5월 1일부터 13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한 결과물로 최근의 정치적 소용돌이, 기술 발전에 대한 집착과 공포, 부에 대한 열망과 분노 등 미국 현대 역사에 대한 실시간 고찰이 담겨 있다. 그는 일각의 시선처럼 근본 없는 스타는 아니다. 크리스티 경매 이전에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서 이미 20여 점의 작품을 3백50만 달러에 판매한 디지털 아트 분야의 인기 작가였다. 디지털 아트는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최근의 NFT와 블록체인 기술로 드디어 상업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크리스티의 비플 경매 이후 글로벌 경매 회사에서는 이브닝 경매에 ‘크립토 펑크’를 출품하는 등 NFT 아트 특별 경매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
NFT 아트 열풍에 대한 시선은 크게 엇갈린다. 사실 진지한 접근도 있지만 NFT 아트 열풍에 편승하는 한탕주의적 접근 탓에 본질을 흐린 사건도 있었다. 예컨대 진가를 알 수 없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작품을 저작권 문제도 해결하지 않은 채 ‘민팅(NFT로 만드는 디지털 암호화 작업)’해 경매를 추진한 일을 들 수 있다. 결국 문제가 되자 경매를 취소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오점만 남길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메이커스플레이스(MakersPlace)처럼 회원 가입 절차를 마련한 NFT 아트 전문 거래소가 없을 뿐만 아니라 NFT 아트에 관련한 제대로 된 전시회조차 열린 적이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NFT 플랫폼이 생기려는 기미가 보이고 있고, 믿을 만한 기관에서 시장 참여자를 위해 NFT 아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NFT 아트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 반길 만한 현상이다. 이미 되돌릴 수는 없는 흐름이기에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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