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치유의 계보학
‘리외는 시내에서 들려오는 (페스트의 종료를 기뻐하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러한 환희가 늘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장편소설 <페스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유럽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코로나19 백신 덕분에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나가면서 일각에서 환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상에 치명타를 날린 팬데믹의 영향으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는 ‘재난’, 그리고 그에 따른 ‘힐링’을 다루는 전시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미술의 시작이기도 한 ‘제의 가치와 힐링 아트’의 계보와 적극적인 치유책으로서 ‘미래 아트’를 함께 다뤄야만 균형 있는 모습이 갖춰진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당면한 아픔을 달래는 소극적인 예술적, 사상적 치유만으로는 카뮈의 날카로운 경고처럼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등에 살아 있던 균이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는 시초부터 치유와 깊이 연결된 ‘힐링 아트’로 시작됐다. 고대에 행해진 제의 방식은 소, 양, 사람 등의 희생 제물을 바치며 ‘소통’을 통해 인간과 신의 ‘수직적 관계’를 먼저 치유하는 것이다. 제물을 흠향(歆饗)한 신은 질병을 고쳐주거나, 불행이나 불상사를 예고해 피할 기회를 제공한다. 제의는 일종의 종합예술이며 이때 사용한 제기, 연주, 행위, 언어 등은 조형미술, 음악, 연극, 문학 등으로 발전된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 작품을 규정하는 두 가지 특징적 성격으로 ‘제의 가치’와 ‘전시 가치’를 꼽으며, 이 두 가치의 반복과 과정이 곧 예술의 역사라고 봤다. 그런데 근대로 접어들면서 작품의 오라를 뿜어내는 ‘제의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고, 치유의 역할은 과학이 대신하게 됐다. 예술의 심장과도 같은 ‘치유’의 기능은 ‘과학’에 넘겨주고, 오라는 시장에 내다버린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여파인지 오라가 스물스물 배어 나오는 작업이 여기저기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사에서 제의를 행한 최초의 샤먼은 누구였을까? 2천여 점의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자랑하는 라스코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을 아는가? 이 등장인물이 다친 수렵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지만, 일각에서는 ‘샤먼’이라고 보는 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새가 앉아 있는 솟대(axis mundi) 옆에 누운 이 사람은 새 가면을 쓰고 있는데, 새 모양의 손, 발끈 서 있는 웅장한 성기 등을 근거로 엑스터시에 빠진 샤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의 들소는 창자를 쏟아내며 죽어가고 있는데, 에로스(삶과 사랑의 충동)와 타나토스(죽음의 충동)가 기묘하게 얽혀 있다. 예술 사학자 아베 브뢰유(Abbe´ Breuil)는 라스코 동굴을 가리켜 ‘선사시대의 시스틴 성당’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는 의례였고, 그 장소는 지성소였다.
현대미술에는 2명의 원조 샤먼이 있다.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이다. 샤먼은 의사의 원형이다. 무당은 치병과 유희적 기능이 중요한 존재이며, 죽음(신령, 영혼/죽은 토끼, TV스크린 등)을 통해 산 자를 치유한다는 역설을 실천한다. 요제프 보이스가 조용히 앉아 많은 것을 사유케 하는 회색빛 샤먼이라면, 백남준은 혼란스러운 색을 동원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디지털 샤먼’이다. 보이스는 모든 통과의례를 거치며 온갖 노력 끝에 샤먼을 후천적으로 획득한 ‘강신무’라면, 백남준은 어릴 때부터 굿을 자주 접해 자연스럽게 무당이 된 ‘세습무’ 같다.
베를린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Hamburger Bahnhof Museum)에서는 올해 탄생 1백 주년을 맞이한 요제프 보이스(1921~1986)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과학에 주도권을 빼앗긴 치유의 현대적인 계승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근대까지의 거대 담론적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적 신화’를 내세우며 치유 방식을 현대화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 사건에 바탕을 두고 사실과 신화(허구)를 적절히 섞으며, 샤먼이 되는 의례를 거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3년, 폭격기 부조종사 요제프 보이스가 탄 비행기가 격추된 사건인데, 의식불명의 그를 타타르(Tatar)족 유목민이 발견해 동물의 지방, 펠트 천 등으로 치료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보이스는 작업, 저서 등을 통해 자신이 겪은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지방과 펠트를 생명을 감싸주는 에너지와 치유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독일 수색 특공대가 발견했을 때 사고 장소에 타타르인은 없었고, 그는 군 병원으로 바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서부전선에 재배치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사실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신화’이기에 그의 치유 예술 혹은 샤먼으로서의 역할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는 샤먼이 되기 위한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가 겪은 사건은 일종의 ‘무병’이자 ‘통과의례’였다. 전쟁을 직접 겪으며 치유의 절실함을 깨달았기에 그렇게 감동적이고 절절한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생존 사건부터 이후의 미술 작업까지 ‘모든 일이 치료 과정’이었기에 그는 “예술가는 시대의 상처를 지적하고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오스에 가까운 성격의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통해 사고의 전환을 요청하고, 치유책으로서 미술의 본질을 깨닫게 했다.
무속 신앙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지녔던 백남준(1932~2006)은 스스로를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와 ‘굿쟁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마디로 ‘소통’이고 ‘커뮤니케이션’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게 아니겠어?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인 셈이지.” 백남준이 세습무 같다고 했지만, 그 역시 하데스의 세계에 다녀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18세였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자신이 공산주의를 피해,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피란 열차를 탔다는 사실은 그의 정체성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폭탄이 터지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더욱 치열한 내적 전쟁을 겪었다. 이때 그는 선악의 경계선을 넘었고, 모든 판단을 유보하게 되었다.
‘디지털 샤먼’인 백남준은 헤테로토피아 세계에서 적절한 ‘소통의 도구’로서 ‘개인의 신앙’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샤머니즘을 적용했다. 1963년, 백남준은 첫 개인전을 엥겔스의 고향 부퍼탈(Wuppertal)에 위치한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개최했다. 그는 고대 제의 문화에서 가장 귀한 희생 제물이던 ‘소’의 머리를 고대 그리스 신들의 지성소인 파르나스 갤러리 입구에 설치했다. 이는 동서양 신화에 20세기의 새로운 신화인 디지털 세계를 콜라주한 세계 최초의 전시였다. 1990년 7월 20일, 현대화랑(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그는 보이스 서거 4주기를 기념하며 ‘추모 굿’을 벌였다. 그는 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오브제, 한국 굿에 흔히 사용하는 오브제, 반면 굿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나 요강 같은 오브제 등을 여기저기 놓았다. 굿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비롯한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게 하는 4D의 콜라주다. 백남준은 멀쩡한 피아노를 걷어차고, 남성용 소변기를 작품화한 ‘샘’(1917)의 한국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요강’으로 연주를 한다. 그가 한바탕 벌인 굿을 보면, 각각 서로 다른 공간에 속했던 오브제를 한 장소에 놓으면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히게 한다. 근대에는 이러한 부딪힘을 최대한 제거해 자연스러운 흐름(동일화 과정)을 추구했으나, 다다이즘부터는 오히려 이러한 부딪힘이 상쇄되지 않도록, 타자의 독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미술계의 또 다른 치유자가 있다. 미술 그 자체를 추구한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 ‘샘’을 선보여 세상을 발칵 뒤집은 주인공이기도 한 뒤샹은 이보다 2년 전인 1915년, 자신의 오브제를 ‘레디메이드(기성품)’라고 이름 붙였다. 하물며 그는 ‘튜브 물감’도 이미 제조된 생산물인 ‘색의 레디메이드’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작업은 레디메이드이자 아상블라주(assemblage, 콜라주의 3D)인 셈이다. 이렇게 현대미술이 시작되었고, “레디메이드 색(색상표)을 사용한다”며 색의 평등성을 콜라주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4900가지 색채’처럼,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콜라주’가 발전되고 있다. 콜라주에는 크게 두 종류의 방식이 있다. 우선 화면에 시각적인 이질감을 직접 대치시킨 유럽형 다다이스트의 콜라주가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해체하고자 했던 다다이스트의 아이러니는 다다가 ‘배타적인 남성 연합(Walter Mehring)’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편향된 세계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나눠주는 착한 여자(Hans Richter)’인 한나 회흐(1889~1979)는 훌륭한 작업을 해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 ‘다다 부엌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 맥주 배를 절개하다’(1919~1920)를 보면 정치, 문화, 댄스, 패션, 과학, 시대적 상징 등과 함께 반(反)다다와 친(親)다다의 대립을 한 화면에 몰아넣으며, 현실 자체가 이러한 이질감의 아상블라주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이 작품은 6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문을 연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의 재개관 기획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뒤샹의 방식처럼 오브제에 개념을 접합하는 미국형 콜라주가 있다. 뒤샹은 ‘샘’(남성용 소변기)에 ‘개념’을 콜라주했다. 헤겔이 개념화로 인한 미술의 종말을 예언했는데, 바로 그 ‘개념’을 오브제(레디메이드)에 콜라주한 것은 기가 막힌 반격이었다. 헤겔의 말대로 근대미술은 종말을 맞았으나, 뒤샹 덕분에 현대미술의 다원성이 폭발했다. 현대미술의 설치, 조각 등에서는 유럽형 3D 콜라주가, 평면 작업에서는 미국(뒤샹)형 콜라주가 실천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샘’에 디지털 세계(AI, AR, VR, NFT 등)가 콜라주되고 있는 형국이다.
재난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최선의 힐링 아트는 결국 ‘도전’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 아트’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제의’에서 신과 목숨을 걸고 대면하는 것처럼 적극적이어야 한다. 인류를 옥죄는 여러 재난 중 하나는 ‘자본에 휘둘리는 예술’이다. 요즘 논쟁이 되는 디지털 경제의 키워드에서 미술계도 예외가 아닌데, 여기에는 ‘비플(Beeple)’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NFT 아트’가 7백85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 자리한다. 세계 양대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그의 작품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물꼬의 조절기가 경매업계나 미술 시장에 넘어갈 징조인 것 같아 두렵다. 현대미술계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지적처럼 NFT 아트가 잘못된 것이라면 넋 놓고 비판할 게 아니라 얼른 그 대안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앞질러 가야 한다. IT 인프라가 강한 한국의 미술계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최초의 NFT 전시와 포럼 등을 개최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이며, 여기서 ‘아차’ 하면 또 늦어져서 서구 미술계를 쫓아가느라 허둥댈 게 뻔하고, 미술은 자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작가, 갤러리스트, 연구자 등 미술 관계자들은 ‘코로나 퇴치’라는 경주용 신호총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로 있다. 곧 종이 울린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종일까?
[ART + CULTURE 2021 Summer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