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동서양을 초월한 예술의 여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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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5, 2022

글 황다나(이화여대 Art & Luxury Business MBA 겸임교수)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모던 라이프>


현대미술은 새로운 어휘를 고안하는 일이자 형태를 찾는 고집스러운 탐구다. 그에 대한 답 역시 하나일 수 없기에 아는 만큼 매혹적인 미술 감상은 관람객에게도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재)발견해나가는 여정이 되어준다. 작품은 으레 이래야 한다는 성급한 확신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작가의 유연함과 세밀한 통찰력을 끈기 있게 받아들이는 기나긴 탐험에서 좋은 나침반이자 길라잡이가 되어줄 전시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프랑스 최초의 사립 미술 기관으로 손꼽히는 매그 재단(Fondation Marguerite et Aime´ Maeght)과 공동 주최한 <모던 라이프(Modern Life)>전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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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함께 만국 공통어로 일컬어지는 미술. 하지만 직관적으로 즉각 울림을 자아내는 음악에 비해 현대미술은 기존 관념과 편견을 과감히 버리는 태도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무장하는 바람에 때로는 대중의 몰이해를 초래해 외면받거나 오해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동서양을 망라해 미적 판단을 좌우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전문 용어의 나열을 곁들여 꾸준히 제시되어왔지만, 결국 미술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흥의 정도는 궁극적으로 감상자의 몫이다.


미술의 궤적을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원전 미술은 식량 채집 시대에서 농경 사회로 도약하며 예측불허의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인류의 염원에서 출발했다. 자연의 모방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 하면, 공동체 형성과 더불어 만물의 척도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때때로 왕의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이내 산업혁명과 더불어 사진 같은 기술의 진보를 등에 업은 근대미술은 시대가 주목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솜씨 좋게 포착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더 중시하기에 이른다. 당대 예술가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창조의 원천으로서 영감에 가치를 부여해왔다.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명민하게 진화해온 미술사에서 ‘현대(근대)성(modernity)’이라는 의제는 낯선 방식과 개념을 앞세워 동시대인의 지각에 영향을 끼쳐왔다.


사유를 위한 아름다운 산책

대구미술관 <모던 라이프>전에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한 올리비에 들라발라드(Olivier Delavallade)의 말을 빌리자면 모더니티의 역사는 예술이 자율성을 획득한 역사, 특정 종류의 표준화된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역사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호안 미로(Joan Miro´)부터 윤형근, 서세옥, 이배, 이우환에 이르기까지 양 기관의 소장품을 두루 선보인 이번 전시는 ‘모더니즘’을 주제어로 삼아 지난 2년에 걸쳐 진행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작가 78명의 대표작 1백44점을 통해 당대 예술가들이 순수하게 예술에만 의지하며 부단히 추구했던 미적 근대성을 ‘탈-형상화’, ‘풍경-기억’, ‘추상’, ‘글’, ‘초현대적 고독’, ‘평면으로의 귀환’ 등 테마별로 담았다.
한 편의 이야기와 같이 펼쳐지는 <모던 라이프> 전시는 숲길을 거니는 사유의 산책을 제안한다. 이는 1964년 아티스트들이 직접 아티스트를 위해 고안해 프랑스 남부의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에 설립한 예술과 건축, 풍경이 고루 어우러지는 매그 재단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 여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근에 작고한 크리스토(Christo), 국내 작가로는 이배의 개인전을 선보이기도 한 매그 재단에서 관람객은 예술을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접할 수 있다. 관람객과 작품을 품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시관과 바깥 정원,안뜰에 자리한 ‘미로의 미로(The Miro´ Labyrinth)와’ 저 멀리 아득한 지중해를 향해 열려 있는 ‘자코메티의 뜰(Giacometti Courtyard)’. 조르주 브라크의 모자이크 수영장과 알렉산더 칼더, 한스 아르프 등의 조각상들이 들어선 여러 갈래로 뻗은 관람로까지. 남프랑스 매그 재단 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특유의 아늑함, 작품과 예술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은 대구미술관 전시실의 흐름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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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예술의 관계 속 존재의 이유를 사색하다

몇 마디 말로는 결코 정의하기 어려운 모더니티의 윤곽을 짚은 이 전시는 규범의 예술 너머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시대의 산물인 독창적인 작품 하나하나에 빠져 예술적 상상력, 색의 감각과 신뢰를 쌓아가도록 관람객을 초대한다. 프랑스와 한국, 두 문화의 조우, 서로 다른 회화의 전통을 지닌 두 미술계의 대비도 흥미롭다. 형상의 안팎에서 정체성의 정수를 찾아 기억을 더듬어가는 작업 과정은 금방이라도 비틀거리며 쓰러질 것 같지만 살아 있기 때문에 한없이 가벼운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상 ‘베니스의 여인(Femme de Venise III)’(1956)에서도, 한국전쟁이 끝나고 강렬한 흑백 대비와 두꺼운 입체, 굵은 선으로 최영림이 그려내던 눈빛이 공허한 여인의 얼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자체로 기호이자 소통의 매개체인 ‘글(writings)’을 다룬 섹션은 또 어떠한가. “언어라 함은 의도를 내포함을 뜻한다”며, “일찍부터 이미지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왔고 한번도 그것을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피에르 술라주의 작품을 이 섹션에 걸어둔 것은 큐레이터의 의도였을까. 앤 매든의 ‘And the word was god’(1979)에서처럼 미술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를 이해하도록 돕는 글자 그대로에 띄어쓰기를 없애거나 형태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개념을 담기도 한다. 이는 신문지에 펜, 볼펜, 연필을 이용해 전면을 흑색으로 칠하는 인내의 작업 ‘무제’(2009)로 애초에 글씨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의미를 철저히 지워내고 암흑 속 침묵만 남기는 최병소의 작업과 사뭇 대조된다.
하지만 유채로 산의 거대함을 무던히 캔버스에 담아온 유영국의 작품(Work, 1973)과 종이에 먹으로 한 폭의 산맥을 단아하게 그려낸 노르웨이 작가 안나 에바 베르그만이 담아낸 북녘의 풍경(Paysage du Nord III, 1980)이 배치되는 풍경의 기억 앞에서 동서양의 비교는 그야말로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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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으로서의 ‘기원(genesis)’

전시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원’에 이르기 전 펼쳐지는 ‘재신비화된 세상’ 공간에서 3개의 노란 태양을 형상화한 칼더의 모빌과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청동 조각 너머로, ‘예술에 대한 나의 전체적인 이론은 형태, 대중,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라던 칼더의 말을 되새겨본다. 매그 재단의 국보급 작품 샤갈의 ‘삶(La Vie)’(1979) 속 파편들이 한데 빚어내는 희로애락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으로 창조하면 거의 모든 의도가 남는다. 머리로 창조한다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라던 작가의 의도를 진실로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비로소 ‘기원’을 다룬 미술관 1층에 자리 잡은 어미홀에 다다르면 리차드 롱과 이우환이 각각 작업의 재료이자 원천으로 삼은, ‘지구보다 더 오래된 시간의 덩어리(이우환)’인 돌 앞을 배회하고, 불에 완전히 전소된 나무의 잔재지만 새로운 에너지의 탄생이 근원이 되는 숯의 생성과 소멸의 무한한 교차를 담은 이배 작가 작품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결국 예술은 동서양을 뛰어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흔적을 이해해나가는 여행이라고 절로 수긍하게 된다. 오는 3월 27일까지. http://artmuseum.daegu.go.kr





[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1. Intro_일상의 조각들 응시하기 보러 가기
2. Front Story_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예술혼을 기리며_자유의지의 환상을 넘어서고자 했던 현대미술 거장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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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앤디 워홀(Andy Warhol)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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