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tzker Winner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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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 2017

글 유현준(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계 노벨상 수상자 3인의 철학 Pritzker Winners’ Way

1979년에 제정된 프리츠커(Pritzker)상은 아직 연력이 40년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상이지만 그 영향력과 권위는 견줄 데 없이 막강하다. 그래서 ‘건축계의 노벨상’ 이라 불린다.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프리츠커상은 최근 더 젊어지고, 수상자의 면면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추세다. 그중 3인의 건축 철학을 요즘 미디어상에서 활약이 돋보이는 유현준 건축가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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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은 하나의 작품보다는 금세기 세계 건축에 크게 공헌한 건축가, 또는 그룹에 주어지는 일종의 공로상이다. 그래서 젊은 건축가보다는 나이 든 이들이 받기 마련이었다. 상이 책정된 이래 수십 년 동안 40대 수상자는 미국의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유일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40대 건축가가 수상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일본, 중국, 칠레 등 유럽과 미국 이외의 국가 출신 건축가가 수상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최근 추세의 하나다. 유럽과 미국은 오래전에 도시화가 끝났고, 아시아에 비해서는 건축물이 신축되는 경우도 적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듯하다. 현대 건축의 중요한 이슈에 나름의 답을 제시한 최근 프리츠커상 수상자 3명의 건축 세계를 소개한다.

물성의 건축 : 페터 춤토어
2009년 수상자인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그의 사무실은 경치 좋은 스위스 산골에 있고, 직원이 서너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춤토어의 대표작 중 하나는 스위스 산골 작은 마을 경사진 산기슭에 위치한 예배당인 ‘성 베네딕트 채플’이다. 이 교회는 경사진 대지 위에 나무로 마루를 만들어 평평한 타원형에 가까운 평면을 포함하고 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세 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인공물인 건축도 세 가지 방식으로 자연을 대한다. 이를 경사 대지 위에 건축물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설명해보자. 첫째,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흔히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재개발에 활용되는 방식이다. 대지의 경사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거대한 축대를 쌓아 평평한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 건물을 앉힌다. 대형 토목공사가 필요하고 자연의 모습을 모두 바꾸어버리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자연을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첫 번째 방식보다 좀 더 ‘스마트’하다. 경사 대지가 있다면 그 경사면을 이용한다. 경사 대지에 교회를 짓는다면 대지의 경사면을 이용해 교인의 객석을 배치하고 강대상(講臺床)을 아래쪽에 둬 편하게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능적인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재미난 건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연을 동등한 대화 상대로 보는 방식이다. 성 베네딕트 채플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이 교회는 경사 대지에 마루를 평평하게 만들고, 벽체와 마루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땅과 교회 마루 사이 빈 공간을 통해 음향의 공명을 만들어내고, 인공 건축물과 자연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에 대해 춤토어는 ‘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디자인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 예배당은 자연을 대화 상대로 보는 건축이다. 우리나라의 정자도 이처럼 자연과 대화를 가능케 하는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자는 물 가운데 위치해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자연과 건축 사이의 물로 확보한 빈 공간이 인간에게 사유할 여유를 주는 건축이라 할 수 있겠다. 자연을 극복할 대상이나 이용할 대상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대화 상대로 보는 동등한 관계 설정에서 시작해야 나올 수 있는, 가장 성숙한 디자인 방식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Bruder Klaus Field Chapel)’에서는 재료의 물성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대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건축가는 통나무 여러 개를 묶어 세워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뒤, 안에 있는 콘크리트를 불로 태웠다. 통나무 거푸집이 타는 과정에서 생긴 타르 성분이 콘크리트 표면에 밀착되면서 검은색 콘크리트를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색상뿐만 아니라 나무 냄새도 함께 남아 있는 독특한 콘크리트 벽의 교회 공간을 창조해냈다. 제작 과정의 사건과 시간이 건축 재료에 남아 있는 새로운 노출 콘크리트를 빚어낸 것이다.
훌륭한 건축가들은 각기 자신만의 특성을 노출 콘크리트에 담는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거친 콘크리트, 안도 다다오(Tadao Ando)는 매끄러운 표면의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하다. 춤토어의 클라우스 필드 채플의 검은 콘크리트는 건축사에서 처음 보는 새로운 물성이다. 건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눈에 보이는 건축 구조체를 가지고 ‘프레임’하는 일이다. 이때 프레임이 되는 건축물의 재료는 공간의 특징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춤토어는 현란하지 않은 형태의 건축물을 디자인하지만, 매번 기존 건축 재료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탈중심의 건축 : SANAA
두 번째로 소개할 건축가 그룹은 2010년에 수상한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 2인조로 이뤄진 건축 사무소 SANAA. ‘건축을 시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사들’이라는 찬사를 듣곤 하는 이들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탈중심적 현상을 건축 공간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 TV 프로그램을 보면 MC라는 한 명의 리더가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런데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한 명의 MC가 아닌 공동 MC 여러 명이 사회자 역할을 한다. 이렇듯 하나의 중심과 주변부가 있는 구성이 아니라 여러 명의 중심점이 군집된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터넷 연결망도 그러한 탈중심적 특징의 예다. 인터넷은 병렬 네트워크로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는데, 이는 감자 같은 줄뿌리 식물의 구성과도 같다. 이를 ‘리좀(rhizom)’이라고도 한다. 중심과 곁가지가 있는 모양새를 띤 ‘수목형(樹木形) 구조’와 대비되는 구성이다.
SANAA에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은 일본 가나자와에 있는 ‘가나자와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동그란 평면 안에 다양한 크기의 박스들이 특별한 규칙 없이 흩어져 있는 구성을 띤다. 그래서 박스와 박스 사이 공간이 무작위로 생겨난다. 기존 모더니즘에서 볼 수 있는, 위계와 규칙이 보이는 공간 구성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다. 비슷한 양식의 배치가 주택 작품인 ‘모리야마 하우스’의 평면과 독일 에센에 있는 ‘졸버레인 학교’의 창문 모양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볼 수 있다. SANAA의 건축은 이처럼 탈중심의 구성을 공간적으로 보여준다.
근작에 속하는 ‘데시마 미술관(Teshima Art Museum)’을 보면 이들이 건축적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놀이터에 있는 모래밭에서 즐겨 했을법한 ‘두꺼비집’ 짓기를 예로 들어보자. 손을 모래밭에 집어넣고 위에 모래를 덮은 뒤 단단히 다지고 나서 조심스럽게 손을 빼낸다. 안쪽 공간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흙을 파낸다. 욕심을 부려 과하게 파내다가 결국 무너지면 놀이가 끝난다. 더 크고 넓은 두꺼비집을 만들기 위해 비 온 뒤에 젖은 모래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어릴 때 한 번쯤은 건축가였던 셈이다.
니시자와 류에는 미술가 나이토 레이(Rei Naito)와 함께 이 두꺼비집을 짓는 원리를 이용해 데시마 미술관을 설계했다.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흙을 사람 키보다 높이 쌓아 완만한 언덕을 만들고 형태를 곱게 다듬은 후 그 위에 비닐을 깐다. 그런 다음 비닐 위에 구멍 2개를 만들고 이를 피해 철근을 배열한다. 이때 철근이 비닐에서 일정 거리 떨어지게 설치한다. 마지막으로 콘크리트를 부어 철근을 덮는다. 콘크리트가 굳은 다음에는 구멍에서 흙을 파낸다. 마치 모래밭에 두꺼비집을 짓듯이 흙을 다 파내고 나면 일반적인 목재 거푸집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아름다운 곡면의 얇은 조개껍질 같은 콘크리트 지붕이 나온다. 쌓았던 흙은 두꺼비집 지을 때 놀이터 모래 속에 묻었던 손이고, 지붕에 부은 콘크리트는 두꺼비집의 젖은 모래인 것이다.
건축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조개껍질 같다고 해서 ‘셸(shell) 구조’라고 부른다. 내부는 마치 로마의 판테온처럼 조개껍질 같은 둥근 구조체 안에 구멍을 뚫는 구조라 햇빛도 들어오고 비도 들이친다. 커다란 구멍으로 새가 날아 들어와 신나게 놀다가 다시 다른 구멍으로 나가기도 한다. 나이토 레이는 바닥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을 뚫어 물이 한 방울씩 올라오게 했다. 매끄러운 방수 표면의 바닥 위에서 이 물들은 표면장력으로 서로 뭉쳐 있기도 하고 또르르 흘러내리기도 하고 바람에 흩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노는 원리를 이용한 건축가의 창의적인 기법과 미술가의 시적인 장치가 합쳐지면서 ‘자연이 완성하는’ 미술관이 태어난 것이다.


약자를 위한 살아 있는 건축 :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마지막으로 소개할 건축가는 2016년에 프리츠커상을 거머쥔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다. 프리츠커 역사상 칠레 건축가로서는 최초, 남미 건축가로는 네 번째 수상자인 그는 사실 이 글에 소개한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서는 크게 눈에 띄는 작품 목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칠레의 무주택자를 위한 공공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등 ‘사회 참여형 건축’의 모범을 보여온 공로를 인정받아 영예로운 프리츠커 수상자가 됐다. 일례로 2004년 칠레 북부 이키케라는 도시에 들어선 아라베나의 ‘킨타 몬로이(Quinta Monroy)’ 공공주택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1만달러의 예산으로 빈민층을 위해 지은 이 집합주택을 보면 땅콩주택의 절반만 지은 듯한 모양새다. 그래서 ‘반쪽 주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택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해 집의 절반만 짓고 나머지 절반은 차차 돈을 벌면 집주인이 완성해가도록 하는 것이 그가 추구한 주요 건축 개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 번에 완성되는 타운 하우스와 달리 각각의 집들이 다른 개성을 지닌 집합 주거 단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집은 처음에 이사를 오면 실내 마감재가 하나도 없이 달랑 구조만 완성된 모습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면 집주인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벽지로 도배도 하면서 스스로 마무리해나간다. 시간이 흘러 자녀가 태어나고 성장해 여분의 방이 필요해지면 바로 옆에 증축을 하면 된다. 건물을 짓기 전에 이 부분은 집의 덱(deck) 공간으로 마당처럼 사용하면 된다. 대다수 건축가가 흔히 하는 실수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완성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외관을 만들고 인테리어의 재료와 색상, 그리고 가구 배치까지 모든 요소를 섬세하게 아우르려고 하는 태도는 물론 좋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정작 건축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개성을 앗아 가버리는 숨 막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성숙한 건축가라면 70% 정도만 완성하고 나머지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색깔로 공간을 채울 여지를 두기 마련이다. 아라베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용자들이 건물의 나머지 절반을 완성하게 했다. 여기서 건축은 완성품이라기보다는 건축가와 사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듭하는 셈이다. 건축물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호흡하는 사람들과 시간과 더불어 천천히 성장시켜나가는 그의 작품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 여길 만하다. 글 유현준(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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