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 2024
에디터 장라윤
마드모아젤 샤넬이 디자인한 역사적인 2.55 백에 뿌리를 두고 칼 라거펠트와 버지니 비아르를 거쳐 발전하고 있는 11.12 백은 현대 여성의 아이코닉 백으로 자리 잡았다.
“가방을 손에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는 데 지쳐서 스트랩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후프나 여러 겹의 페티코트로만 지탱 가능한 극도로 넓고 풍성한 스커트, 가슴을 끌어올려주고 숨 쉬기 힘들 만큼 허리까지 확실히 조여줬던 코르셋, 히프를 강조하기 위한 페플럼 등 20세기 초까지 여성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보디라인에 맞추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완벽한 S 라인을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행위였던 것. 이러한 혹사에서 여성을 해방시켜준 디자이너가 바로 가브리엘 샤넬이다. 그녀는 현대 여성과 옷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기존의 불필요한 요소를 가차 없이 폐기했다. 그리고 1955년, 그녀의 ‘해방운동’이 이번에는 여성의 손으로 향했다. 당시 여성들은 토트백이나 클러치 등 손으로 움켜쥐어야만 하는 백을 들었다. 주머니에 손 넣는 것을 좋아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백에 조절 가능한, 마치 주얼리처럼 백을 장식하는 메탈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메는 형태의 2.55 백을 선보였다. 남과 같아지는 것을 거부했던 독창적인 그녀는 오트 쿠튀르 의상 같은 백을 상상하면서 특유의 대담함을 더해 장갑 소재로만 사용되던 부드러운 고급 램 스킨 레더를 사용하고,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저지, 라메, 벨벳, 트위드 등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매치해 백을 디자인했다.
“안과 밖이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
샤넬의 백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완벽한 재단. 바느질했을 때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들어맞게 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장인에 의한 꼼꼼하고 정확한 재단이 필수다. 두 번째는 프왕 드르아 드 쿠튀리에(point droit de couturie`re) 기법으로 모든 가죽 조각에 퀼팅을 넣고 더블 C 로고를 플랩 안쪽으로 바느질하는 것. 세 번째는 가방에 생동감과 볼륨감을 주는 백인백 기법인데, 가방 몸체와 받침대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이다. 즉 백 하나는 안쪽에 넣고, 또 다른 백이 겉을 감싸게 하는 것. 네 번째는 ‘안과 밖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샤넬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피케-르투르네(pique´-retourne´) 기법으로 백을 뒤집는 방법인데, 현재 이 기법은 샤넬의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안과 밖의 다른 컬러. 이렇게 대조적인 컬러를 사용하면 소지품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마지막은 가죽을 고정해 가방의 구조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프왕 드 브리드(points de bride)라는 스티치법이다. 1955년 가브리엘 샤넬이 고안한 2.55 백을 1980년대에 칼 라거펠트가 재해석한 것이 11.12인데, 이 백도 예외 없이 샤넬의 규칙을 따랐다. 조금 다른 점은 직사각형 잠금장치인 마드모아젤을 단 2.55와 달리 11.12는 CC 잠금장치를 달았다는 것. 그리고 2.55의 퀼팅보다 좀 더 볼륨감을 살렸고 레더 리본과 함께 손으로 엮은 체인을 매치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레디-투-웨어 의상처럼 포켓도 더했는데, 그 수는 총 7개. 우선 립스틱을 넣을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한 케이스 포켓이 있으며, 카드나 콤팩트를 넣을 수 있는 천을 덧댄 포켓 2개, 그리고 편지나 작은 메모를 넣을 수 있는 ‘비밀’이라는 이름의 지퍼 포켓도 있다. 큰 사이즈의 포켓도 2개 있어 실용성을 더했으며, 마지막으로 장인들이 ‘스마일 포켓’이라고 부르는 포켓이 백 뒷면에 자리한다. 샤넬의 아이코닉 백은 샤넬 공방 중 하나인 베르뇌유-앙-알라트 아틀리에(Ateliers de Verneuil-en-Halatte)에서 제작되며, 공방은 파리 북부 와즈(Oise)에 위치한다. 최대 15시간 동안 1백80개의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11.12 백도 여기서 탄생하는데, 약 4년에서 5년의 훈련을 통해 모든 공정과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장인의 손만 거친다. 베르뇌유-앙-알라트 아틀리에는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2016년 높은 기술력과 장인 정신을 갖춘 기업에 주어지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Ateliers de Verneuil-en-Halatte)’ 라벨을 획득하기도 했다.
“세계는 상징과 숫자로 표현된 일련의 진동이다”
버지니 비아르는 가브리엘 샤넬 이후 하우스를 이끌게 된 최초의 여성. 예쁘고 우아한 ‘여성 백’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을 넘어 걷고, 뛰고, 그림을 그리고 창조하기 위해 손의 자유가 필요한 진짜 ‘여성을 위한 백’을 만들고자 했던 그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혁신 그 자체였던 2.55 백을 재해석한 11.12 백에는 샤넬 여사에서부터 칼 라거펠트, 그리고 버지니 비아르의 손을 거쳐 이어지고 있는 비밀과 숨겨진 스티치, 은밀한 제스처가 담겨 있다. 백을 수트나 드레스에 매치하는 다양한 조합을 좋아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백이 레이어링 또는 반전 효과를 주며 의상과 어우러질 때 매력이 배가된다고 생각했다. 버지니 비아르 역시 이러한 조합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해, 이 백을 매우 여성스러운 모던함의 일부로 만들어냈다. 청바지와 잘 어울리는 백, 자수 재킷과 어우러지는 백, 롱 코트의 완벽한 실루엣을 돋보이게 하는 백 같은 아이디어는 마치 완벽한 악보와도 같다. 단순한 백 이상인 2.55와 11.12는 과거와 현대 여성에게 신비 가득한 상징적인 액세서리로 자리매김했다. 자유의 향기이자 몸에 걸친 문장, 착용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자유로운 실루엣, 흉내 낼 수 없는 파리지앵 무드, 사상, 제스처와 우아함에 대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전설적인 핸드백을 통해 샤넬 여사가 대대로 전해준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고, 이상을 위해 노력하며, 차별성과 특이점을 개발하는 능력이다. 이는 샤넬 여사 자신도 평생 구현했던 가치. 오늘날 버지니 비아르가 이러한 유산에 새로운 면을 더하고 있다.
“실례지만 남은 방 있나요?”
사랑을 탐구한 영화 <남과 여(A Man and A Woman)> (1966)에는 이와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샤넬은 영화계와 오랜 인연을 이어나가고자 했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 또한 언제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누벨바그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버지니는 영화계에서 영감을 얻고 있으며, 가브리엘 샤넬이 그랬던 것처럼 친한 감독들과 교류하고 있다. 이번 아이코닉 핸드백 캠페인에는 도빌이 등장한다. 도빌은 해안에 자리한 휴양지로 1921년 마드모아젤 샤넬이 자신의 이름을 딴 모자 부티크를 열고 1913년 첫 오트 쿠튀르를 선보인 곳. 원작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사랑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샤넬 핸드백을 든 모습을 보여준다. 이네즈 & 비누드가 촬영하고 연출한 이번 캠페인은 영화의 일부 장면과 대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영상 속 주인공은 영화계 전설로 2018년부터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해온 페넬로페 크루즈와 어딘가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남자를 섬세하게 구현한 컬트 배우 브래드 피트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감정을 숨기려는 듯 조심스레 백을 움켜쥔다. 그의 손가락이 퀼팅 레더를 어루만지는 순간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어깨에 걸친 체인이 눈에 들어온다. 모던한 직사각형의 완벽한 실루엣으로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샤넬 핸드백은 흠잡을 곳 없는 매력으로 독보적이면서도 갈망하게 만드는 매력을 품고 있다. 호텔 레스토랑 테이블 위 남과 여 사이에 위치한 이 전설적인 백은 삶의 특별한 순간, 가장 깊은 욕망을 주장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백이 전하는 것은 마침내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대담함이다. 영화에서 샤넬의 전설적인 아이코닉 백은 판타지, 대담함, 자유라는 세 가지 감정이 빚어내는 향기를 발산한다. 마치 삶과 허구 사이에 그 어떤 경계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의미, 대비, 신비로 가득한 샤넬 백은 하나의 상징으로 기분에 따라 변신한다. 데이 백으로 착용하다 이브닝 백으로 착용할 수도 있고, 잠 못 이루는 밤부터 잠에서 깨는 새벽까지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컬렉션을 거듭하며 샤넬 백은 평생을 함께하고,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백으로서 다양한 컬러, 형태, 소재로 변신하고 있다. 자유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샤넬의 아이코닉 백에는 레더와 함께 엮은 체인 링크처럼, 샤넬 하우스의 역사, 현재, 과거,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샤넬 백은 나만의 공간이자 은신처, 나를 재창조할 수 있는 장소다. 지난 수년간 여러 샤넬 컬렉션을 통해 수많은 디자인으로 아이코닉 백을 기리며, 독보적인 아이콘이자 전설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interview with_ Bruno Pavlovsky(샤넬 패션 총괄)
“샤넬의 비결은 매번 새로운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아이코닉한 것과 패션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해낸 브랜드는 샤넬밖에 없습니다”
“샤넬의 비결은 매번 새로운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아이코닉한 것과 패션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해낸 브랜드는 샤넬밖에 없습니다”
Stylechosun
백은 가브리엘 샤넬이 여성의 두 손에 자유를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1.12 백은 현대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Bruno Pavlovsky
11.12백은 가브리엘 샤넬, 칼 라거펠트, 버지니 비아르를 모두 거쳐 간 샤넬의 자산이다. 1955년 2월에 탄생한 2.55 백은 항상 샤넬 패션을 동행했다. 처음엔 마드모아젤 샤넬, 그리고 칼, 지금은 버지니에 의해 백은 계속 모던하게 재해석되어 같은 백이지만 항상 다른 느낌을 준다. 특별한 마무리, 다양하고 특별한 가죽, 다양한 색상과 소재로 나왔고, 트위드로도 출시되었다. 나는 이런 지속적인 재해석이 오늘의 11.12 백을 탄생시켰다고 본다. 샤넬에 11.12 백은 백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샤넬 브랜드의 영원한 아이콘인 동시에 모던하고 트렌디하며 에지 있는 백이다. 샤넬은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버지니가 샤넬 백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샤넬 쇼에 등장한 2.55 백, 11.12 백, 그리고 많은 11.12 백을 재해석한 신상 백들은 사이즈가 작든 크든, 모두 샤넬을 상징하는 샤넬 여성의 패션을 완성하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11.12 백 캠페인에서도 페넬로페 크루즈가 백을 들고 있는데, 브래드 피트와 페넬로페 크루즈, 두 배우와 함께 샤넬 백이 세 번째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Stylechosun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재해석을 거치면서도 매 시즌 고객들이 여전히 샤넬의 아이코닉 백을 찾게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Bruno Pavlovsky
샤넬의 비결은 새로운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아이코닉한 것과 패션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을 해낸 브랜드는 샤넬뿐이다. 샤넬은 아이코닉하면서 매우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소재와 컬러를 소개하면서 특별한 것을 만든다. 11.12 백은 샤넬이 추구하는 패션이 뭔지 보여주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패션 액세서리인 동시에 아이콘 백인 셈이다. 아이코닉한 백의 또 다른 가치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인데, 11.12 백도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백이 되었다. 그렇기에 11.12 백은 한 고객의 백이면서 고객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백이 될 수 있는데, 백의 이러한 아이코닉한 속성을 샤넬은 꾸준히 지켜나갈 것이다. 명품업계에서 아이코닉과 패션, 이 두 가지를 다 잘하기가 정말 어렵다.
Stylechosun
샤넬의 아이코닉 백을 제작하는 베르뇌유-앙-알라트 아틀리에는 샤넬의 다른 백 공방과의 어떤 차이점이 있나? 무엇이 특별한지?
Bruno Pavlovsky
이 공방에서 처음부터 샤넬 11.12 백과 2.55 백을 제작했기 때문에 특별하다. 아이코닉 백의 스토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공방의 제작 능력을 지키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베르뇌유에서 아이코닉 백을 제작하는데, 사실 11.12 백은 제작하기 가장 까다로운 백이다. 가브리엘 샤넬도 2.55 백을 디자인하고 제작할 때 쿠튀르(couture) 기법을 사용했다. 이 백은 재킷을 재단하는 것처럼 제작된다. 이것이 포인트로 베르뇌유 공방을 가보면 다른 공방과는 달리 수공으로 바느질을 하고 백을 뒤집는데, 이런 기법은 쿠튀르의 전통을 살려 백을 제작하는 기술이다. 나는 이런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준 높은 다른 공방에 가보면 장인들의 기술력은 좋지만 샤넬이 보유하고 있는 노하우는 없다. 이 백은 2백78여 개의 공정을 거쳐 탄생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다. 기계를 이용하는 모델도 있지만 사람의 손을 꼭 거쳐야 하는 모델도 있다. 백이 완벽한지 아닌지는 최종 단계에서 백을 뒤집었을 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때 완벽해야 한다. 가장 까다로운 기준은 백을 정면에서 봤을 때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맨 마지막 단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장인의 기술이 뛰어나야 실수 없이 완벽한 백을 제작할 수 있고 실수를 하면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 베르뇌유는 최고의 장인들이 샤넬 백을 제작하는 최고의 공방이다.
Stylechosun
새로운 아이콘 백을 탄생시키기 위해 샤넬은 켜켜이 쌓인 헤리티지를 어떻게 적용하고 어떤 스토리를 입히는지? 샤넬만의 특별한 스터디 또는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Bruno Pavlovsky
새로운 아이코닉 백을 탄생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패션 백은 샤넬에서 많이 출시했다. 샤넬 22 백이 패션 백의 좋은 예다. 그 전에는 샤넬 19 백이 있었다. 그러나 샤넬의 아이코닉 백은 하나밖에 없고 사실 더 많을 필요가 없다. 아이코닉과 패션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매번 컬렉션을 발표할 때 신경 써야 하고, 버지니의 새로운 컬렉션과 잘 어울리면서 아이코닉 스타일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코닉 백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고 본다. 이 하나의 아이코닉 백을 가지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샤넬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아이코닉 백과 더불어 수많은 패션 아이템과 핸드백이 있다는 것이다. 패션 핸드백은 시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시즌이 지나면 구할 수 없기도 하지만, 아이코닉 백은 다르다. 이 핸드백은 영원을 상징한다.
Stylechosun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의 가치로 장인 정신을 앞세운다. 샤넬의 핸드백 장인들은 어떤 교육과 경험을 쌓는가? 다른 브랜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Bruno Pavlovsky
샤넬의 장인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은 실력 있는 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백 제작을 시작한 날부터 군복의 금속 장식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 백에 적용되는 모든 디자인 요소를 제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뛰어난 장인이 있어야 백 제작이 가능했는데, 이 백을 처음 제작한 공방이 베르뇌유다. 그때는 규모가 완전히 달랐다. 캉봉가의 작은 공방이었지만 뛰어난 장인들이 있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샤넬은 이 공방과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샤넬이 제작하는 다양한 백을 보면, 프랑스는 아이코닉한 샤넬 백처럼 각이 잡힌 백(structured)이 많고 이탈리아 백은 더 크고 각이 없는 부드러운 백(soft)이 많다. 어찌 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장인 기술과 스타일이 잘 나누어지는 것 같은데, 물론 의도한 결과는 아니지만 샤넬의 아이코닉 백은 각이 잘 잡힌 프랑스 장인 기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샤넬은 장인 기술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샤넬의 성공에 기여한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디자인을 개발할 때뿐 아니라 컬렉션을 개발할 때, 제작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Stylechosun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패션에서도 시계(모바일 폰이 대체)나 지갑(지폐, 동전이 점점 사라짐) 등이 사라지고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나고 있다. ‘백’이라는 아이템의 미래는 어떨까? 샤넬 백은 이런 사회 흐름에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비전을 공유하고 있나?
Bruno Pavlovsky
좋은 질문이다. 백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질문인데, 사실 질문의 요지는 ‘미래에 여성들이 백을 더 이상 안 들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명품 산업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전통적인 작은 가죽 제품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갑도 다시 살아났다. 샤넬 지갑도 매출이 상승하고 있고.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을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지갑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작은 가죽 제품 카테고리가 고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매출이 좋다. 이 카테고리도 샤넬에 중요하기 때문에 패션 액세서리로 개발해 다양하게 연출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백, 가죽 백을 소개했다. 일종의 나만의 패션 선언을 백으로 표현하는 건데, 시장의 반응이 좋다. 클래식한 백을 착용할 때도 패션 액세서리와 함께 연출하면 잘 어울린다. 그래서 앞으로 백이 사라질 위험은 없다고 보고, 백은 당분간 우리와 함께 갈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백은 패션 실루엣을 완성해주는 필수품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백은 패션을 완성해준다. 샤넬이 다른 브랜드와 확실하게 다른 점은 샤넬에 백은 커스텀 주얼리와 슈즈처럼 패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Stylechosun
우리나라 고객들이 샤넬 핸드백의 큰 팬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과 관련해 매우 민감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샤넬 CEO로서 입장이나 향후 계획을 들을 수 있을까?
Bruno Pavlovsky
매년 가격 인상이 있는데 최근에 가격이 인상되었다. 샤넬은 안정적인 가격 정책을 추구하며, 샤넬의 가격 정책은 두 가지 원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는 10% 범위 안에서 세계 어디에서든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정렬되었다는 것이다. 여행 중 구매할 수도 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구매한다면 한국, 일본, 홍콩 어디서든 가격은 같다. 샤넬의 모든 패션 제품은 이러한 가격 원칙을 지킨다. 두 번째는 가격 책정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샤넬의 포지셔닝은 궁극의 럭셔리인데, 아이코닉 백의 가격이 샤넬 재킷의 가격과 비슷하다. 그리고 가격 인상은 제조 원가와 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품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샤넬 제품에 빼놓을 수 없는 양가죽(lambskin)도 샤넬은 최고를 고집하는데, 최고의 가죽을 확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다음엔 인력이다. 샤넬 백을 제작하는 장인들도 샤넬에 소중한데, 이들의 기술과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매년 가격 인상을 하는 것이고, 이번에는 6% 인상되었는데, 환율 때문에 매번 약간 다르지만 3~10% 범위에서 인상을 한다. 평균적으로 7~8%다. 사용하는 소재의 품질과 전문가를 제대로 대우하기 위해 이러한 가격 인상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통화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큰 폭의 가격 인상은 없을 것이다. 샤넬의 가격 정책을 보면 아이코닉 백이 가장 비싸고, 그다음에는 매 시즌마다 소개되는 신상 백(novelty)이 조금 더 저렴한데, 이 카테고리도 샤넬에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런 가격 정책 덕분에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
Stylechosun
이번 2024/25 F/W 레디-투-웨어 컬렉션 중(또는 제품 중) 어떤 스타일이 개인적으로 ‘가장 샤넬스럽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그 이유는?
Bruno Pavlovsky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패션 실루엣이다. 도빌에서 영감받은 이번 2024/25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멋진 트위드와 니트웨어를 보면 샤넬스럽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고, 백과 슈즈를 액세서리로 잘 활용해 가장 샤넬스러운 것을 보여줬다. 이번 2024/25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이 최고의 컬렉션 중 하나라고 보며, 샤넬 부티크에는 9월 말에 입점할 예정이라 고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조금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 컬렉션이 샤넬의 시그너처 컬렉션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모던하고 샤넬스럽고 우리가 사랑하는 컬렉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