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일상을 수놓는 기계 미학의 결정체인 자동차의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 연초부터 지구촌을 신음하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필두로 한 각종 악재가 쏟아져도 자동차업계는 크게 주춤거리지 않았다. 외려 다양한 비대면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면서 여전히 매혹적인 신차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이동이 예전처럼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자차(자기 소유 차량)’ 안은 평온을 누리고 상대적으로 자유를 즐기기에 더없이 적합하고 소중한 ‘나만의 성역’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멀리 이국으로 향하지 못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호젓한 방식의 국내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 틈새를 놓칠 리 없는 하이엔드 카 브랜드들은 저마다 차별된 장점을 내세우며 마케팅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 내·외관 디자인을 바꾸는 글로벌 모디피케이션 전문 브랜드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여가 지향성 라이프스타일로 편의성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따라 SUV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올 초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이 1백6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고성능 SUV 모델 ‘DBX’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SUV의 S클래스’로 불리는 플래그십 SUV 신형 모델(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LS)을 내놓는 등 하이엔드 카 브랜드들이 앞다퉈 SUV 시장에 공을 들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는 열혈 캠핑족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는 3열이나 2열까지의 뒷좌석을 앞으로 접었을 때 평평해지는 ‘풀 플랫(full flat)’ 기능이 뛰어나 ‘차박’에 유리한 대형 SUV가 사뭇 유혹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주차나 이동 면에서 편리한 중형 SUV나 콤팩트 SUV도 여전히 실속 있는 선택일 수 있다. 이 수요를 겨냥해 제네시스도 GV80보다 한 체급 작은 SUV GV70을 연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연내 발표될 브랜드 최초의 양산형 SUV 전기차인 ‘아우디 e-트론’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캠핑이 확대되고 진화하면서 야외에서 필요한 럭셔리 캠핑용품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각종 사양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SUV를 둘러싼 럭셔리의 미학도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모양새다. 포드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 포드는 항공기 1등석이 부럽지 않은 ‘고요한 비행’을 표방하는 콤팩트 SUV ‘링컨 코세어’를 올해 출시했는데, MZ세대를 겨냥해 미술관 도슨트 투어까지 할 수 있는 2박 3일의 독특한 캠페인을 연말까지 진행한다. 시승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집’을 콘셉트로 한 미술관인 양평의 구하우스에서 미술, 영화, 독서, 플라워 등 다양한 주제의 소규모 강좌를 듣고 미식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https://www.facebook.com/lincolnkorea). 메르세데스-벤츠는 패션, 미술 등 문화 예술업계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꾸렸다. 루이 비통의 남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스트리트 감성을 펼치는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설립자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손잡고 지난해 탄생 40주년을 맞이한 상징적인 SUV 모델이자 국내에서도 팬덤이 막강한 G클래스(G바겐)를 바탕으로 한 협업 작품을 발표하는 것(9월 8일 디지털 공개). 또 이 작품을 ‘아트 토이’ 수준으로 축소한 레플리카에 대한 경매를 실시해 수익금을 전부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는데, G바겐과 문화 예술계 아이콘인 버질 아블로의 만남으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자동차의 ‘왕’ 격인 대형 세단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압도적인 오라가 느껴지는 대형 그릴이나 품격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길고 멋스러운 차체, 편안하고 넉넉한 공간 등 매력이 많다. 손흥민을 모델로 내세운 볼보는 플래그십 세단 ‘신형 S90’을 9월에 판매하는데, 이미 지난 7월 사전 계약 대수가 16일 만에 1천 대를 넘어설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4년 만에 선보이는 부분 변경 모델인 신형 S90은 최근 ‘안전성’에 대한 인식으로 다시금 떠오른 SUV 모델 라인업과 더불어 ‘스웨디시 럭셔리’의 정수를 담은 차량으로 기대되고 있는데, ‘수입차 빅 4’까지 넘보는 볼보의 위치를 더 격상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간 중심 철학을 반영했다는 현대적인 디자인 감성에 재즈 클럽(jazz club) 모드를 추가한 영국의 바워스&윌킨스(B&W)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과 스웨덴 오레포스(Orrefors)의 크리스털 기어노브 등 디테일의 미학이 엿보인다. 얼마 전 선보인 아우디의 고성능 플래그십 세단 ‘더 뉴 아우디 S8 L TFSI’도 시선을 끈다. 아우디 S모델은 레이싱 경험을 기반으로 모터 스포츠의 DNA를 품은 독보적인 기술을 녹였다고 자부하는 브랜드의 고성능 모델 라인. 4.0L V8 TFSI 엔진과 8단 팁트로닉 변속기를 탑재해 최고 출력 571마력, 최대 토크 81.58kg·m의 강력한 주행 성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단 3.9초. 가히 ‘일상을 위한 스포츠카’라는 설명을 곁들인 하이엔드 세단다운 성능이다. 또 ‘즐거운 드라이빙 경험’을 북돋워주는 차원에서 스마트폰 콘텐츠를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아우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23개의 고성능 스피커로 구성된 뱅앤올룹슨(Bang&Olufsen) 어드밴스드 사운드 시스템 등을 갖추었다. 여기에 세단 시장의 전통 강자들도 합세할 예정이다. 지난봄 브랜드 최상단에 위치한 럭셔리 플래그십 S클래스(마이바흐)의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강자다운 면모를 보였던 메르세데스-벤츠는 올가을 브랜드 주력 모델인 E클래스의 부분 변경 신형 모델을 투입할 예정이고, BMW 역시 7세대 5 시리즈를 3년 만에 부분 변경한 ‘신형 5 시리즈’로 맞불 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브랜드와 차종을 막론하고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럭셔리 경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의 취향’을 한껏 살린 비스포크 모델을 당해내기는 힘들 수 있다. 물론 기계 미학과 스마트의 역학까지 담아내는 자동차라는 품목의 특성상 탄탄한 기본기에 혁신적인 기능을 갖추는 건 ‘필수’겠지만 여기에 ‘나만의 감성’을 입힌 디자인을 구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자동차 공학 지식을 바탕으로 내·외관을 다양한 형식으로 바꾸거나 업그레이드하는 모디피케이션(modification)이 매력적인 대안일 수 있다(엔진 성능 등에 초점을 맞춘 ‘튜닝’과는 미묘하게 구별된다). 자동차 애호가라면 단번에 솔깃하게 들릴 테고 ‘환골탈태’한 근사한 모습을 이미지로 접해본 적이 있다면 더 관심이 쏠릴 듯한데,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탄탄한 명성을 쌓아온 칼렉스 디자인(Carlex Design)을 주목할 만하다. 폴란드에 본사를 두고 올봄 아시아 헤드쿼터를 파주에서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칼렉스 디자인은 롤스로이스, 벤츠, 맥클라렌, 페라리 등 내로라하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엄선된 모델을 재탄생시켜온 이력을 자랑한다. 출중한 명품 차를 기반으로 하지만, 개성 어린 감성을 담아 유일무이한 차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치면 도로를 질주할 때도 ‘칼렉스’라는 이름을 내건 채 질주하는 셈이다. 칼렉스 디자인은 최근 현대 산타페 TM 모델을 바탕으로 한 ‘어번 에디션(Urban Edition)’을 선보이며 한국 브랜드도 목록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올가을 리뉴얼하는 웹사이트에서 11종의 특별 한정판을 순차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이렇듯 아예 차종을 선택해 칼렉스에서 작업한 한정 모델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개인이 원하는 ‘맞춤형’ 주문도 가능하다. 예컨대 롤스로이스 팬텀 8세대 모델을 수공 작업을 통해 은장식으로 점철된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현재진행형’ 사례가 있는데, 차값을 뺀 모디피케이션 가격만 수십억원대에 이른다고. 가히 럭셔리 자동차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