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 2024
에디터 제롬 하노버(Jérôme Hanover) l 아트 디렉터 크리스토퍼 브런켈(Christophe Brunnquell) l 할로리 메인게인트(Halory Maingaint) l 코디네이터 가브리엘 마테(Gabriel Mathé)
밀라노에 위치한 부첼라티 공방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문 기술을 통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제작되는 주얼리와 그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골드의 가격은 국제 거래량에 따라 결정된다. 젬스톤의 가치는 물론 희소성, 원산지, 품질, 사이즈 같은 요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러나 부첼라티에서 가장 진귀한 것은 그저 금고 안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 미학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인내심은 진귀한 스톤을 얻기 위해 지질학적 측면에서 지구가 보여주는 인내심에 필적한다. 여기서 진정한 보석은 바로 부첼라티를 구성하는 3백50명의 장인이 서로 공유하는 노하우를 의미한다. 이들의 절반은 현재 부첼라티 내부의 자체 공방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접근 지점과 보안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젊은 장인들이 기술적인 드로잉을 참고하기 위해 가끔씩 아이패드를 사용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장인들이 저마다 노트에 주얼리 사진을 붙여 두고 디테일을 스케치하고, 모든 제작 단계마다 메모를 해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기록용 노트는 개인적인 일기이자 진귀한 가이드북이며, 진정한 아티스트의 스케치북과 같다. 이탈리아에서 법으로 의무화된 바에 따라 젬스톤 세팅 장인은 현미경을 사용해 작업한다. 이는 현대에 들어와 유일하게 요구되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부첼라티에서 수십 년을 일해왔으며 오직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는 가장 숙련된 장인들에게 현미경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주얼리가 태어나는 이곳 공방 장인의 기술보다 더 심오하고, 신비롭고, 화려한 오브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첼라티 가문은 종종 ‘중요한 것은 정교한 손길, 굳은 의지, 따뜻한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존재인 만큼, 주얼리 또한 각각 고유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처럼 장인들은 서로 같은 도구를 쓰는 법이 없다. 각각의 도구는 장인 한 사람의 손바닥에, 그립에, 확신에 찬 손길에 맞추어 점차 장인과 일체화된다. 바위가 파도에 서서히 마모되어 형태를 갖추듯, 도구는 각자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를 갖춰가는 것이다. 프레스 기계를 사용하면 금세 곡선을 완벽히 균일하게 구현할 수 있지만, 메탈을 꾸준히 해머링하는 수작업을 거치면 주얼리마다 고유한 매력이 생긴다. 모든 디테일은 그 뒤에 숨은 인간성을 증명하는 작업과 같다. 창립자 마리오 부첼라티는 장인들에게 종종 ‘왼쪽 이어링과 오른쪽 이어링 사이에는 이 이어링을 착용하는 여성의 얼굴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라고 이야기하며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는 바로 착용자라는 점을 명심하게끔 했다. 시인 겸 작가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은 “무생물이여, 그대는 우리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영혼,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주얼리 장인이라면 “물론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마치 벌집에서 뽑아낸 듯한 허니콤 메탈 오픈워크로 완성된 튈은 모두 하나의 정체성과 투명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으며, 장인들 모두가 지닌 굳건한 의지와 이들이 구사하는 동일한 효과가 돋보인다. 하지만 안드레아, 루카, 마리아 크리스티나같이 부첼라티의 전문적인 감식안을 지닌 이들은 아주 작은 틈새에서 비롯되는 한없이 미묘한 차이만 보고도 폴리곤이 치우친 방향이나 모티브 배열 방식을 통해 ‘이건 지안마르코, 마리아 크리스티나, 일레니아가 만든 작품’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집중력이며, 조연은 침묵이다. 그러나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눈앞에 주얼리가 나타나듯 귓가에 명확한 음악이 어우러지는 첫 번째 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메탈이 녹아서 컬러가 섞이지 않도록 정확한 무게의 다양한 골드를 조립해 주얼리 하나를 완성하는 불꽃의 숨결과도 같다. 혹은 조각칼로 새기는 소리나 드라이 포인트의 거친 소리, 연마기의 조심스러운 소리나 부드럽게 두드리는 해머 소리일지도 모른다. 오픈워크의 형태를 잡는 칼날은 마치 바이올린의 활을 켜듯 움직인다. 그리고 왁스 처리한 코튼 원사를 부드럽고 섬세하게 움직여 이러한 형태를 폴리싱하는 과정은 마치 밸브 트롬본을 연주하는 듯하다. 악보는 즉흥연주가 불가능하지만, 모든 것은 연주 방식에 달려 있다. 리가토 기법으로 완성된 커프 브레이슬릿에 평행하게 새겨진 수많은 홈의 개수를 세려면 인내심이 필요할 테지만, 이를 제작한 장인은 실제로 구현된 글로시 효과를 통해 홈 개수가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서로 조금씩 겹치는 세그리나토 라인을 구사하려면 마치 오페라 가수의 비브라토 같은 손길이 필요하다. 이곳에는 음악뿐 아니라 춤도 존재한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비유다. 1919년 마리오 부첼라티가 오픈한 최초의 부티크는 라 스칼라(La Scala) 극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메트로놈에 맞춰 연출된 듯한 안무 같은 움직임과 발레리나처럼 유연한 손목이 돋보인다. 때로는 두 장인이 파 드 되(pas de deux)를 추면서 한 명은 주얼리를 고정하고 끌을 위치시키며, 다른 한 명은 정을 두드려서 홈을 만들기도 한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해머로 내리치는 동안 말이 오가지는 않는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 비로소 완벽한 깊이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4분의 1박자 후에 끌은 다음 틈으로 움직인다. 리가토, 텔라토, 세그리나토, 오르나토, 모델라토와 같은 인그레이빙 기법 하나만 보더라도, 장인 한 명이 브라스 플레이트 위에 1년간 연습해야만 기본을 마스터할 수 있고,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다면 3배 혹은 4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부첼라티 하우스의 전문 기술은 고대에서 유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공방을 주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기나긴 금세공 전통의 일부다. 당시는 금세공 장인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가 동시대 화가인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만큼 예술적인 아티스트로 여겨지던 시기다. 아낌없이 노력을 쏟아부은 이들의 결과물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손꼽혔다. 부첼라티 주얼리의 약 80%를 차지하는 옐로 골드와 화이트 골드 조합은 두 합금의 강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나의 모티브를 조화롭게 연출하기 위해 도구 사용 시 손의 압력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시그너처로 여겨진다. 로듐 배스는 화이트 골드에는 광채를 더하지만 옐로 골드는 부식시키므로, 주얼리를 담그기 전에 얇게 레드 페인트 층을 발라 보호해야 한다. 염료를 제거하고, 옐로 골드의 광택을 살리고, 두 골드 사이에 완벽한 비율의 광채를 연출하려면 배스에 추가로 일곱 번을 담가야 한다. 프롱 세팅 또한 정교하다. 모든 가지는 탄생의 원천과도 같은 골드를 지지하고, 모든 디테일은 더도 덜도 말고 장엄하게 융합되는 인그레이빙 모티브만큼이나 진귀한 매력을 자아낸다. 장인들에게 부첼라티 공방은 성지와도 같다. 주얼리 세계에서 이렇게나 다양하고 탁월한 노하우를 갖춘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부첼라티의 미학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탓에 혼동될 수는 있지만, 이 기술은 단순히 수단에 불과하며 진귀한 언어 표현을 위한 문법과 같은 존재다. 이들 기술은 오브제에 서정성을 불어넣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손길을 구현한다. 즉 이 공방은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예술가를 위한 공방과 다름없다. 밀라노의 저명한 금세공 교육기관인 스쿠올라 오라파 암브로시아나(Scuola Orafa Ambrosiana)와의 파트너십에 힘입어 향후 몇 년간 수백 명의 견습생이 부첼라티에 유입될 전망이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부첼라티의 회장 겸 CEO로 활동한 지안루카 브로제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가 지나고, 장인 응용 예술 분야에는 수작업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장인 정신의 미학과 독창성을 다시금 발견한 새로운 세대가 합류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물론 부첼라티를 초월한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부첼라티는 이를 활용해 탁월함의 한계를 설정하고자 한다. 이는 바로 1천 개의 성채를 밝히는 등대다. 문의 02-3440-5613
1. © Cortili Photo Studio 밀라노 워크숍에서 완성된 일 지아디노 디 부첼라티(Il Giadino di Buccellati) 컬렉션 브로치 펜던트.
2. © Buccellati Archive / Farabola 1950년대에 촬영된 부첼라티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모습.
3. © Aplomb Photo Studio, ANDREA BUCCELLATI 2014년 커프(Cuff) 컬렉션으로 옐로 및 화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소재의 커프 브레이슬릿.
4. © Aplomb Photo Studio, ANDREA BUCCELLATI 2018년 일 자르디노 디 부첼라티 컬렉션(Il Giardino di Buccellati Collection)의 보토레타(Botoletta) 링. 화이트 및 옐로 골드, 토파즈, 다이아몬드로 이뤄졌다.
5. © Aplomb Photo Studio, GIANMARIA BUCCELLATI 1968년 부첼라티 히스토릭 컬렉션으로 다이아몬드, 블루 에나멜, 핑크, 옐로우 및 화이트 골드 소재의 파우더 케이스.
6. © Aplomb Photo Studio, GIANMARIA BUCCELLATI 1991년 개인 소장품. 다이아몬드, 화이트, 옐로, 핑크 골드 소재의 베고니아(Begonia) 브로치.
7. © Marcus Dawes 2015년 런던 스펜서 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컬렉션 출시 행사에서 장인들이 부첼라티의 세공 기술을 시연하는 모습.
8. © Buccellati Archive ‘마리오 부첼라티의 워크숍에서 인그레이빙되었다(Grave´dans l’atelier de Mario Buccellati)’고 적힌 텔라토 상자 뒷면.
9. © Fondazione Cirulli / Sotheby’s 1910년경 출판된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aso Marinetti)의 <The Foundation and Manifesto of Futurism(미래주의 재단 및 선언문)> 제목 페이지.
2. © Buccellati Archive / Farabola 1950년대에 촬영된 부첼라티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모습.
3. © Aplomb Photo Studio, ANDREA BUCCELLATI 2014년 커프(Cuff) 컬렉션으로 옐로 및 화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소재의 커프 브레이슬릿.
4. © Aplomb Photo Studio, ANDREA BUCCELLATI 2018년 일 자르디노 디 부첼라티 컬렉션(Il Giardino di Buccellati Collection)의 보토레타(Botoletta) 링. 화이트 및 옐로 골드, 토파즈, 다이아몬드로 이뤄졌다.
5. © Aplomb Photo Studio, GIANMARIA BUCCELLATI 1968년 부첼라티 히스토릭 컬렉션으로 다이아몬드, 블루 에나멜, 핑크, 옐로우 및 화이트 골드 소재의 파우더 케이스.
6. © Aplomb Photo Studio, GIANMARIA BUCCELLATI 1991년 개인 소장품. 다이아몬드, 화이트, 옐로, 핑크 골드 소재의 베고니아(Begonia) 브로치.
7. © Marcus Dawes 2015년 런던 스펜서 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컬렉션 출시 행사에서 장인들이 부첼라티의 세공 기술을 시연하는 모습.
8. © Buccellati Archive ‘마리오 부첼라티의 워크숍에서 인그레이빙되었다(Grave´dans l’atelier de Mario Buccellati)’고 적힌 텔라토 상자 뒷면.
9. © Fondazione Cirulli / Sotheby’s 1910년경 출판된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aso Marinetti)의 <The Foundation and Manifesto of Futurism(미래주의 재단 및 선언문)> 제목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