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cultural cur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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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3, 2020

글 고성연 | 일러스트 하선경

경영 혁신의 전도사로 활약하면서 스스로도 하나의 브랜드가 된 톰 피터스는 일찍이 “브랜드! 브랜드! 브랜드!
이것은 메시지다. 1990년대 후반, 그리고 그 이후에도…”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가축을 식별하기 위한 표시 수단을 뜻하는 어원을 지닌 ‘브랜드’는 태생부터 차별화를 품고 있는 단어다. 하지만 모든 것의 브랜드화가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너도나도 외치는 차별화는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다.
많은 이론가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주는 ‘브랜드 체험’이야말로 진정한 차별화의 관건이라고 설파한다.
특히 창의적이고 미학적인 요소를 내세운 체험 마케팅은 브랜드 자산을 살찌우는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선두 대열에 있는 몇몇 럭셔리 브랜드는 동시대 미술을 끌어들이면서 일종의 문화 생산자 역할까지 해내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의 예술화’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예술성이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상품 사회에서 시대의 흐름을 영민하게 읽어내는 브랜드들의 행보가 흥미롭다.



서울 통의동에 자리한 지상 4층짜리 ‘핫 플레이스’ 대림미술관. 코로나19의 압박 속에서도 주말에는 예약이 쉽지 않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지원하는 문화 예술 프로젝트라는 소문이 나서다.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전. 아마도 대림미술관을 찾아본 적이 있다면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채 입장하자마자 1층 공간의 외양이 확 바뀐 걸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굿즈와 도록을 파는 아트 숍 대신 24시간 동전 세탁소가 떡하니 들어서 있고, 분홍, 보라, 그리고 연녹색의 인어 꼬리가 세탁기의 문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광경을 맞닥뜨린다. 묘한 신비감과 자극을 주는 이 연출된 공간은 미국의 젊은 아티스트 올리비아 에르랭어(Olivia Erlanger)의 ‘이다, 이다, 이다!(Ida, Ida, Ida!)’라는 설치 작품이다. 201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하지만 평소 같으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세탁소라는 공간에 난데없는 인어 꼬리를 던져놓으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연 꼬리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려는 건지, 아니면 나오는 참인지? 통 속에 가려져 있는 상반신의 모습은? 우리는 흔히 인어를 보면 ‘인어 공주’를 떠올려보곤 하는데, 사실 꼬리의 색깔이나 형태만 보고 성별을 알 도리가 없다. 실제로 작가는 성(gender)이 정해지기 전, 또는 성의 구별이 없는 ‘젠더리스’의 원형으로서 인어라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인어가 여성으로 제시될 때 불거지는 질문에 주목해보라고 제안한다. 이를테면 다리를 갖기 위해 목소리를 잃는 디즈니의 인어 공주 아리엘을 둘러싼 안타까운 제약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 작품으로만 봐도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이 전시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 구찌의 ‘G’를 연상시키는 콘텐츠가 전혀 없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보면 퀴어 잡지나 서적의 표지가 벽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데, 이는 주류 역사에서 소외되어온 개인의 서사를 기념하는 이강승 작가의 작품 ‘표지들(퀴어락)’이다. 이어서 국내 대안 예술 공간을 운영하는 여러 작가를 비롯해 작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특히 인터넷의 종말 이후 세상을 다룬 세실 B. 에반스의 영상 작품 ‘마음이 원하는 것’을 ‘강추’한다). 한마디로 동시대를 수놓고 있는 다양성을 시각예술로 풀어낸 순수한 ‘현대미술’ 전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들의 사유가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설명을 듣지 않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초보자에게는 꽤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하드코어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관람객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특히 브랜드 아카이브 전시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결이 전혀 다른 전시였을 터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전시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구찌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시각적 충족이나 확장만이 아니라 지적 지평도 넓힐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한 소득이 아닐까 싶다. “나 이런 거(현대미술) 정말 잘 몰라. 그런데 와보길 잘한 것 같아.” 전시장에서 친구더러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는 여성 관람객의 말이 들린다. 그녀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열정적인 자세를 지닌 ‘슈퍼 팬’일지, 아니면 현대미술 애호가가 될 잠재력이 풍부한 문화 소비자일지는 모를 일이다.

브랜드의 ‘예술화’, 그 대열에 동참한 구찌
아마도 구찌는 슈퍼 팬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고, 또 그들이 감각과 의식을 겸비한 문화 소비자이기를, 적어도 그렇게 되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문화 코드를 공유하고 공감해보기를 다수의 문화 소비자와 문화 향유자들에게 권유한다. 구찌가 이번 전시에서 추구하는 바는 뭘까? 전시 큐레이터를 맡은 미리암 벤 살라의 설명을 풀이하자면 ‘다름’에 대한 수용, ‘타자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각의 주체가 저마다 독립된 개성을 유지하면서 ‘함께해나간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려보고자 함이라고 한다. 다분히 상업적인 대중성이 어려 있는 대림미술관에 주류 미술관에서 접하기 힘든 대안 예술 공간의 콘텐츠를 모아놓은 이유일 것이다. 이 같은 의도는 전시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다. 실제 세상에는 ‘없는’ 유토피아와 구분해 우리의 현실에 ‘실재’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장소를 뜻하는 ‘헤테로토피아(eterotopia)’는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이다. 현실 속 유토피아란 딱 부러지게 하나로 정의될 수 없고,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 않은가. 이번 전시가 제안하듯 편견을 허무는 다양성에 대한 담론은 주류에 비주류의 감수성, 실험적인 예술성을 가미해 새로운 트렌드로 엮어내는 구찌의 절충주의적 비전과 미학과도 맞닿는다. 유망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순수한 예술 후원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브랜드 이미지와 문화 코드를 세련되게 엮어낼 수 있는 것. 바로 현대미술 전시 같은 공간형 콘텐츠를 내세운 영리한 체험 마케팅의 장점일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구찌는 2018년에 상하이에서도 문화 예술계에서 회자된 전시 콘텐츠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때는 이탈리아의 재기 발랄한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큐레이터로 삼아 ‘짝퉁 쇼핑의 메카’로 불리던 상하이를 무대로 ‘복제’, ‘모방’을 키워드로 엮는 재치를 발휘했다. 모방이나 복제가 예술적 동인으로서 얼마나 중요하게 기능해왔는지 되짚으 며 오리지널과 짝퉁을 둘러싼 도시 정체성에 대한 지적인 화두를 던진 것.
사실 럭셔리 생태계를 좀 아는 이들이라면 ‘구찌가 왜 이런 전시를?’이라는 질문조차 가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브랜드들이 문화 예술 프로젝트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임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물론 그중에는 여러모로 예술성을 추구하고, 창업자 가문에서 순수하게 문화 예술을 후원해온 소수의 럭셔리 브랜드도 있고,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아트 마케팅’의 흐름을 영민하게 주도하는 (혹은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브랜드도 있다. 어쨌거나 럭셔리 비즈니스업계 화두 중 하나는 인하우스 차원의 협업, 브랜드가 주최하는 전시, 미술상, 재단과 미술관 설립, 아트 컬렉션, 기업 차원의 아트 프로그램 펀딩 등으로 이어지는 ‘예술화’다. 여러 단계를 밟아 이제는 최상층에 위치한 브랜드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재단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까르띠에, 프라다, LVMH, 에르메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구찌,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케어링 그룹의 경우에는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더불어 아트계의 슈퍼 컬렉터로 꼽힌다. 그런데 아트에 ‘브랜드’가 끼어들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패션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상업성을 띠지만, 예술은 순수하다는 논리에서 말이다. 하지만 예술을 둘러싼 생태계는 결코 상업적인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은 편이 다. 외려 럭셔리 브랜드들이 예술 후원을 할 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인맥이나 수익, 예산 같은 복잡한 셈법에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입장이라 덜 계산적이고, 따라서 더 빼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인재 양성 문화, 문화 예술계 아이콘을 만들다
사실 일부 럭셔리 브랜드들의 경쟁 우위는 비단 문화 예술 활동만이 아니라 브랜드 고유의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섬유업계 잡지 <저널 드 텍스타일>은 매 시즌 소매상과 도매상에게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이 보여주는 창의성을 점수로 매겨달라고 요청하는데, 럭셔리 그룹에 속한 브랜드가 받은 시즌별 평균 점수는 이른바 ‘독립 브랜드’가 받은 점수의 3배였다는 과거 10년치 결과가 있다. 흔히 가질 수 있는 편견(?)과 달리 LVMH, 케어링, 리치몬트 같은 대형 그룹 소속 브랜드가 더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교수인 앤드루 시필로브와 프레데릭 고다르는 대개 브랜드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거대한 럭셔리 그룹들의 성공 비결은 ‘인재 양성’이라고 분석한다. 다채로운 문화적 경험을 가진 역량 있는 전문가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조직의 전략적 유연성 덕분이라는 것. 특히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는 자신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벗어나 세계 곳곳의 다른 디자이너와 생산자, 공급자 등과 관계를 맺고 이들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문화에서 받은 영향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컬렉션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브랜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는 것. 지금은 고인이 된 패션계의 전설 칼 라거펠트(그는 스웨덴인 부친과 독일인 모친을 뒀으며 종종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당일치기’로 오가는 삶을 살았다)는 스스로를 ‘1인 다국적 패션 센세이션’이라 부르기도 했지 않은가.
오늘날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의 예술화’ 현상과 함께 문화 예술 아이콘으로서의 파워가 더 강해지고 있다. 일례로 지금 서울 하늘을 수놓고 있는 구찌의 문화 예술 감성은 5년 전 패션계에 신데렐라처럼 등장해 당시 구찌를 둘러싼 전형을 깨뜨리면서 ‘파괴적 혁신’을 주도한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트’를 사랑한 미켈레는 빈티지와 주변 소재에서 영감을 받는 오늘날의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패션에도 과감히 도입했고, 구찌가 관여하는 문화 예술 프로젝트에서도 진보적이고 절충주의적 감성을 입히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해외에서 전시 콘텐츠를 소개할 때 그저 자금만 대는 전시가 아니기에 ‘powered by Gucci’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컬처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루이 비통의 남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그 자신이 아티스트이자 가구 디자이너, 큐레이터 등으로 활약하는 전천후 크리에이터다. 건축을 전공하고 힙합 스타 카녜이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동한 이력을 지닌 그는 비패션인 출신으로 스트리트 감성을 하이패션에 접목해 시대의 아이콘이자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청춘’을 주제로 한 전시의 큐레이터를 담당한 그룹전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가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전시 공간에서 열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패션 칼럼니스트 바네사 프리드먼은 버질 아블로를 가리켜 ‘밀레니얼 세대의 칼 라거펠트’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누가 칼 라거펠트처럼 될 수 있을지 앞날을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건 이들 크리에이터는 이제 단순한 패션계 아이콘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가 다 같이 선망하는 ‘컬처 큐레이터’, ‘컬처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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