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hina 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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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 2016

글 고성연(베이징 현지 취재) | 사진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중국인 스스로 깨어나고 스스로 서야 비로소 탈출구가 생긴다. 중국 예술은 오래된 신화에서 점점 ‘특수한’ 모습으로 오늘의 세계에 출현하려 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현재의 사람들이다.”  중국 현대미술계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장샤오강은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의 발언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차원에서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LV)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본토(本土, Bentu)>가 내세우는 정수와 맞닿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오는 5월 2일에 막을 내리는 이 전시 큐레이터는 ‘본토’가 민족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중대한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데 있어 ‘로컬’과 ‘글로벌’을 조화롭게 담아내는 변증법적 설명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중국’을 관찰하고, 그 복잡한 변화를 몸소 겪어내며 자기만의 역량과 스타일을 반영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처럼 생생한 기상이 느껴지는 아티스트들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도시는 아무래도 베이징이다. <본토>전에 참여한 12명의 작가 중 대다수도 베이징을 근거지로 활약하고 있다. 그중 1970~80년대에 태어난, 현재 중국의 문화 지형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스타 작가 4명을 그들의 베이징 스튜디오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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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또 다른 ‘4대 천왕’ 쩡판즈는 ‘촌놈’이던 자신이 1990년대 초 베이징으로 상경해 둥지를 틀었는데, 당시 두려움, 불안 등의 복잡한 심정에 휩싸여 절규하듯 그린, 불룩한 핏줄이 솟은 커다란 손, 하얀 가면을 쓴 기형적인 얼굴이 등장하는  ‘마스크’ 연작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져버린 베이징에 대한 작가 특유의 정서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한 인터뷰에서 나온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이제 적응이 돼 마스크를 벗었고, (그런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라고 했다.  홍콩 경매에서 유화 ‘최후의 만찬’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을 만큼 대작가로 성장한 그는 여전히 베이징에 아틀리에를 갖고 있다. 같은 장소라도 누군가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메마른 디스토피아일 수도, 누군가에겐 유토피아 수준은 아닐지라도 이런저런 추억이 그득한 뜻깊은 휴식처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쌓이면서 어떤 스토리가 채워졌느냐에 따라 품는 정서가 달라질 테니까. 어쨌거나, 계속 버텨내며 살아간다면 그곳은 밉든 곱든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삶의 터전’일 것이다. 한때 ‘거품론’이 일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뿜어내온 예술 도시로서의 베이징.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 중에는 꿈을 품고 예술의 본산지를 찾아온 이들도, 격랑의 세월을 견디면서도 꿋꿋이 고향으로서의 베이징을 지켜낸 이들도 있다. 확실한 건 오염된 공기로 악명 높은 이 도시에는 무게감이 남다른 예술적 기운이 곳곳에 흐른다는 점이다. 베이징의 공기를 예술혼으로 물들이는 ‘4인 4색’  스튜디오를 찾아간 날에는, 마침 비바람을 실어다준 자연의 손길 덕분에, 이 도시에서 1년에 몇 번 보기 힘들다는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이 활짝 드러났다.
뉴욕을 사로잡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카오페이
베이징 차오양 구(Chao Yang District)의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고전적인 느낌의 커튼, 낡은 패브릭 의자, 빨간 칠을 한 철문. 마치 아날로그 시대의 극장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펼쳐지고, 갈색 단발이 잘 어울리는 동그란 얼굴의 여성이 나온다. 아이를 둔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인 1978년생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카오페이(Cao Fei). 이따금씩 얼굴에 번지는 수줍고 온화한 미소가 호감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극장으로 쓰인 낡은 건물을 1980년대 스타일로 다시 꾸민 거예요.”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보여주면서 그녀는 자신의 주 작업실로 활용하고 있다는 널찍한 지하 공간에서 동영상 작품 여러 편을 틀어줬다. 첫 번째 작품은 ‘힙합(Hip Hop)’(2006). 자신의 고향 광저우를 배경으로 어린아이, 공사판 인부, 노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영상이 어깨춤을 절로 추게 만든다. 문호 개방과 자본주의, 디지털 물결에 휩쓸린 ‘바링허우’ 세대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카오페이의 작품들은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흐리면서 희극과 비극적 요소를 함께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녀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코즈플레이어(Cosplayers)’ 역시 그런 작품. 광저우의 풍요로운 도시 풍경과 빈곤한 노동계급 가정이라는 대조적인 배경 속에서 만화나 게임 캐릭터로 변신을 거듭하는 ‘코스프레’에 빠진 젊은이들을 비춰준다. “당시 그런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실제 생활로 돌아가면 괴리감에 더 외로움을 느끼죠. 이런 작품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비주얼 문서’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작품 세계에는 출중한 매력이 있다. 결코 난해하지 않고 눈을 고정시키는 데다 내용이나 메시지에 상관없이 은근히 희망적인 잔향을 남긴다. 또 배경음악 선택이 탁월하다. 러브콜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e유토피아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기반의 ‘RBM 시티’로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고(FLV의 중국 작가 소장품을 소개하는 <컬렉션>전에도 8월 29일까지 전시된다), 최근 BMW 아트카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상업 영화에 도전해볼 생각도 있다”라며 총기 어린 눈빛을 내뿜는 그녀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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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보석, 하오리앙
‘차오창디 예술구’. 이제는 몹시 화려해진 베이징의 아트 허브 ‘798 다산쯔 예술구’의 높은 임대료에 밀려 거처를 옮긴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중 회색 벽돌 건물이 감싼 네모난 마당에 들어섰다.  벽에 비스듬히 기댄 자전거, 옅은 청록색 문. 해사한 날씨 덕분인지 예쁜 엽서가 따로 없다. 이곳에 천장이 높고 햇빛이 적당히 스며드는 작업실 하나를 점유하고 있는 한 젊은이가 반갑게 인사한다. 다소 구부정한 어깨에 조용하지만 말씨가 단호한 그는 청두 출신으로, 주로 비단에 붓으로 채색하는 중국 전통화계의 보석으로 여겨지는 하오리앙(Hao Liang). 수 년 전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 30대 초반의 아티스트다. 이렇게 전통화를 전문으로 하는 젊은 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법이나 소재 면에서 계승 가치가 높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수련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왜 현대미술 작가들에 포함된 걸까? 파스텔 같은 연한 색조의 산과 구름, 꽃, 나무, 인물.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현대미술 맞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시다시피 정원이에요. 그림의 배경이 된 실제 장소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달라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원이죠.” 수려한 중국식 정원이 담겨 있는 실크 두루마리를 길게 펼치면서 그는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뭔가 다르긴 하다. 풍경이든 인물이든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기운이 묻어난다. 그러고 보니 벽에 기대어 있는 그의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오라를 뿜어냈다. 역사적, 철학적 소재를 현대의 사회적 이슈와 병치시킨다고 했다. 현재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본토>전에 내놓은 그의 작품 ‘The Virtuous Being’(2015)에서도 그런 면모가 느껴진다. 중국 옌산 산맥을 배경으로 한 명(明)나라 시대의 정원으로, 문화대혁명 때 파괴됐다가 1990년대에 관광지로 복원된 곳이다. 무지개를 배경으로 관람차가 돌고 있는 풍경과 여백의 미가 묘한 조화를 일궈낸다. 여운이 진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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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 낳은 진정한 팔방미인, 리우웨이
요즘 가장 ‘핫한’ 중화권 작가로 손꼽히는 리우웨이(Liu Wei)의 스튜디오는 그 공간 자체로도 탐이 난다. 빈티지 가구와 컨템퍼러리 가구, 애플 컴퓨터 같은 첨단 기기, 당구대가 공존하면서 벽에는 작가의 회화 작품들이 윤기를 더해주는 사무실. 한편에는 괜찮은 커피 머신도 있다. 색 바랜 ‘잠바’와 스키니 바지를 걸친 채 긴 머리를 묶어 한쪽으로 내려뜨린 독특한 차림새를 한 리우웨이의 매니저가 꽤 매끄러운 영어로 “커피를 원하세요?”라고 말하자 막 점심을 마친 방문객들은 탄성에 가까운 “예스”를 외친다. 한 홍콩 저널리스트가 “우리 딸아이는 저 매니저의 열혈 팬”이라고 귀띔했다. 매니저는 작업실로 이동해 디지털 스캔을 바탕으로 채색을 하는 모습, 돼지 가죽 같은 재료로 콜로세움 등 유명 건축물을 표현한 작품을 만드는 공정을 보여주며 경쾌하고 여유롭게 설명한다. 20분쯤 흘렀을까. 청바지 차림의 리우웨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매니저와 달리 리우웨이는 전혀 달변가가 아니다. 마침 FLV 전시에 선보일 작품의 시제품을 보여줬는데, “사물의 공간적 관계를 다뤄보고 싶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고개를 가우뚱했다. 그는 자신에게 예술이란 게 뭔지 설명하기도 힘들다고 겸연쩍어했다(진심으로 어려워하는 눈치다). 확실한 건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의 눈에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이미지에서 캔버스로 옮겨낸 기하학적 추상화, 책이나  TV, 냉장고, 나무 문짝, 동물 내장 같은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다양한 조각이나 설치물 등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는 단단한 지지와 인기를 누려왔다.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급변하는 중국 사회상과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성, 그에 영향받는 인간의 삶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어떠한 형태나 이데올로기에 구속받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애쓰는 작가다. 홍콩 화이트 큐브, 뉴욕 리먼 모핀 등 쟁쟁한 갤러리에서 단독전을 개최하고 세계 곳곳의 비엔날레와 페어에서 초청받는 리우웨이의 전시를 올봄 서울 플라토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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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정신과 세련된 감성의 조화를 일궈낸 신성, 쉬추
“작업 공간이 모자라 한 동네에 작업실 두 곳을 꾸리고 있어요.” 마지막 방문지는 최근 ‘신성’으로 각광받으면서 몹시 바쁘다는 쉬추(Xu Qu)의 스튜디오. 난징에서 태어나고 대학에 다녔다는 그는 언뜻 ‘100% 토박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학파’다. 2004년 독일로 떠나 브라운슈바이크 미술대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 존 암리더와 비르기트 하인 밑에서 수학했다. 이들의 영향으로 쉬추는 자신의 예술 언어로 회화만이 아니라 비디오, 퍼포먼스까지 아우르게 됐다. 2010년 귀국하면서 택한 활동 무대는 베이징. 그 뒤로 개인전을 잇따라 열면서 거침없이 달려온 그의 시선은 주로 ‘세계화를 둘러싼 현실’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방식이 실험적이면서도 세련미가 있다. 여러 나라의 지폐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기하학적 구성의 회화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그는 이 작품을 바퀴가 달린 캔버스에 옮겨 관객들이 앞뒤 양면을 다 볼 수 있도록 했는데, 한 면엔 빳빳한 새 지폐, 다른 한 면엔 윤곽이 흐릿한 낡은 지폐가 있다. 이 ‘모바일 캔버스’의 양면은 금융시장의 변화, 자본의 움직임, 혹은 예술 작품이 소비재로 변모하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그의 실험적인 면모는 영상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작인 ‘Zebra’(2015)는 도살업자가 검은 말 가죽을 칼로 벗기는 모습을 담았는데, 지방이 있는 하얀 부분과 검은 털이 있는 부분을 한 줄씩 교차해 나타나도록 가죽을 벗기면 ‘얼룩말’처럼 변하는 다소 충격적인 흑백 영상이다. “중국 북부에서는 말고기를 먹기 때문에 탈피 작업이 그저 ‘루틴’이죠. 그런데 언젠가 얼룩말 무늬 깔개가 유행하는 걸 보고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도살업자한테 다른 방식으로 가죽을 벗겨보면 어떠냐고 제안해서 나온 작품이에요. 도살업자도 신기해하더라고요.”  같은 일도 다른 관점에서 시도하면 창의적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젊은 작가의 진지한 열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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