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내일을 사랑하는 법, ‘세상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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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요즘 서울의 다양한 신을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는 ‘공예’다. 최근 로우프레스에서 펴낸 <서울 서울 서울>이 공예를 경험할 수 있는 50곳의 플레이스를 선정한 것처럼, 서울다움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다. “공예는 생활적인 측면에서 서울의 기저를 단단하게 해주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소중히 하고, 아끼고, 배려하며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나가는 매개라고요.” <서울 서울 서울>의 저자 박선영이 ‘공예’를 통해 지금의 서울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요즘 공예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한다. 공예로 ‘세상 짓기’를 보여준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청주 문화제조창 본관, 11월 2일까지)가 개막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위하고, 새로운 세상을 짓는 지금의 공예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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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도와주는 일손을 마다하고 동작은 다람쥐처럼 빠르며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손의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장인들의 삶은 그 자체가 사실 ‘공예적’이다. 때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몇 년씩 멍하니 바다만 보내 지내기도 하며 이 고단한 일을 도대체 누가 계승하고 발전시킬지 생각하느라 장인들은 매일 밤잠을 설친다고 하지만,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만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공예의 미래’에 가슴이 뛰게 된다. “인간의 생존과 필요에서 비롯된 공예가 어떻게 탐미주의를 거쳐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재영 예술감독의 말처럼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공예가 지닌 본질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행사. 벌써 14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상 짓기: Re-Crafting Tomorrow’라는 주제로 16개국의 1백48명의 작가가 참여해 보편 문명으로서의 공예부터 탐미주의를 위한 공예,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로 그 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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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삶과 노동, 전쟁과 폭력을 담아내다
공예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윤리를 바꿀 수 있을까? 환경 파괴, 종의 멸종,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담아 ‘자수와 위빙’으로 엮어낸 공예 작품들이 전시된 충북 청주의 문화제조창. 이 시대의 폭력성을 수공예로 전환해 치유에 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작업에는 섬세한 미가 담겨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여성들과 협업해 자수 작업을 선보이는 수지 비커리의 작품, 종이와 섬유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고 중국 전통 의례에서 영향받아 철학적 성찰이 깊게 밴 재키 청의 ‘월하노인-인연과 혼인의 신’, 꽃무늬와 곡선에 지역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담아내고 꼼데가르송, 마그다 부트림 등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하는 베아타 레기에르스카의 ‘10월의 아침’도 공예로 펼쳐낸 회화 같다. 자연과 지구 생명체에 죄책감 없는 공예를 고민하고 젠더나 장애, 전쟁과 폭력, 기후 위기, 정치적 이슈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공예 작업도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전쟁 영화를 보며 자란 시간과 고장 난 장난감을 혼자 고치며 놀던 경험을 종이 판지 등의 재료를 활용해 실제 크기의 군사 장비와 기계장치를 재현해낸 유디 술리스티요 작가의 작품 ‘사라진 역사’는 공예의 비폭력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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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는 주빈국인 태국의 공예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쓰게 하며 결국 붓다의 정신으로 이끄는 그들의 창작 세계가 경이롭다. <유연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라는 태국 특별전 제목처럼 유연한 시간을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며 마음을 돌보게 하는 철학적인 공예를 보여준다. 건축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윗 핌칸차나퐁의 작품 ‘미로’는 마치 수행자 같은 마음을 느끼게 하고, 70개의 종으로 이뤄진 설치 작품인 루디 탄차로엔의 ‘여정 2021: 공존’은 한밤중 사원에서 들려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생각나게 한다. 태국 전통 기법인 로스트 왁스 주조로 만들었는데,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영롱하게 울려 퍼진다. 언젠가 치앙마이의 숲속 사원에서 들은 종소리와 밤공기에 퍼지던 사원의 향, 그 향에 실린 따뜻한 바람까지 기억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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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첫선을 보인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엮음과 짜임> 특별전도 인상적이다. 섬유 노동의 명상적 수행성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직조한 장연순, 한국와 인도를 오가며 얇은 베일 작업에 명상적 움직임을 담아낸 유정혜, 인도 쿠치 지역 여성들이 계승해온 전통 아플리케를 자수 기법으로 완성한 홍연인, 인간의 생애를 담은 의복을 완성한 고소미, 그리고 보이토(Boito), 카이무라이(Kaimurai), 페로(PÉRO), 수막쉬 싱(Sumakshi Singh) 등 한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8팀이 저마다 선보인 리서치 기반의 수행적인 작업은 놓치기 아쉽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공간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등 모든 관계의 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사이 공간이 공명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소미 작가의 말처럼 관계의 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착하는 또 다른 특별전인 <명명백백(明明白白)>에서 선보인 성파 스님의 100m에 달하는, 하나로 이어진 한지 작품은 미래 공예의 수공예적 망망대해로 안내한다. 전통에 대한 고민이 깊은 수많은 장인들도 이제 공예의 미래를 조금은 덜 걱정해도 될 것 같다. 수많은 예술가와 문화인이 이렇게 고민하고 있으니까.





Craft Special

01. Craft Special_ ‘공예다운’ 것, 태도의 가치에 관하여 보러 가기
02. Cheongju Craft Biennale 2025_ 지구의 내일을 사랑하는 법, ‘세상 짓기’ 보러 가기
03. Interview with Ko Somi_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4. Antony Gomley_ 안토리 곰리와 ‘동물의 신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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