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니 세계 현대미술 생태계를 이끄는 도시를 들라면 단연 뉴욕이 선두 주자로 꼽히지만 언젠가부터 서부를 대표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존재감도 솟구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를 등에 업은 영화 도시로서만이 아니라 미술, 건축, 음악 등 다채로운 콘텐츠 스펙트럼을 지닌 문화 예술의 허브로서도 ‘상승 무드’를 타고 있다는 얘기다.
원래도 로스앤젤레스,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 출신의 걸출한 작가는 많았지만 ‘컨템퍼러리(contemporary)’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빼어난 공간이나 콘텐츠는 아무래도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변화의 물결이 차츰 퍼져나갔다. 주요 공공 미술관이 재단장에 나서고, 2015년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가 사재를 들여 세운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The Broad)가 다운타운에 등장했으며, 이듬해에는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Hauser & Wirth Los Angeles)가 문을 열었다.
갤러리 지점 하나 생긴 게 대수냐 싶겠지만, ‘뮤지엄급’ 전시장을 갖추고 동네의 문화적 지형까지 변모시킬 만큼 독특한 오라를 지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의 다운타운 입성
마누엘라와 아이반 워스 부부에게 로스앤젤레스는 원래도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러 자주 찾은 도시로 늘 특유의 에너지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티스트 제이슨 로드(Jason Rhoades)의 추천으로 아츠 디스트릭트의 매력과 잠재력을 포착했고, 셀도르프 아키텍츠와 크리에이티브 스페이스와의 창조적 설계 협업으로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를 탄생시켰다. 116,000ft² 면적에 이르는 이 공간은 제분소 건물 말고도 옆 은행 건물 등으로 이뤄진 ‘ㅁ’ 자형의 커다란 복합 단지이기에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어떤 건물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예컨대 ‘사우스 갤러리’의 경우 높은 천장을 둔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이라 고풍스러운 느낌을 품고 있고, 밝고 경쾌하고 시원하게 펼쳐진 안뜰은 마치 야외 공연장 같다. 실제로 이곳에서는(팬데믹 이전) 늘 공연이나 퍼포먼스, 파티 같은 행사가 열리며 도시의 ‘아트 피플’뿐 아니라 동네 주민 혹은 학생들도 끌어모으곤 했다. 필자가 2019년 방문했을 때는 운 좋게도 소속 작가 찰스 게인즈(Charles Gaines)의 개인전 오프닝이 있는 날이었는데 웬걸, 재즈 공연이 신나게 펼쳐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연주를 하던 밴드에서 ‘드러머’로 열심히 비트를 쪼개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작가였다.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 역시 서머싯에 이은 제2의 아트 센터답게 대중, 특히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다채롭고 역동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1백30개 이상의 교육기관이 참여하니 그 호응도를 짐작할 만하다. 예컨대 고등학생 ‘꿈나무’들은 4주간 갤러리의 실무 현장을 경험하는 워크숍을 비롯해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가 이끄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비미술인 지역인들이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를 입버릇처럼 ‘뮤지엄’이라고 칭하는 데는 매혹적인 공간의 힘만이 아니라 이 같은 다채롭고 내실 있는 콘텐츠의 힘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2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의 안뜰에 있는 정원 풍경. 이미지 제공_Hauser & Wirth Los Angeles
3 오는 9월 부산비엔날레와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아르헨티나 태생의 작가 미카 로텐버그(Mika Rottenberg) 개인전이 현재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 중이다(오는 10월 2일까지). © Mika Rottenberg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by Zak Kelley
4 2019년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Resilience: Philip Guston in 1971> 전시 모습. © The Estate of Philip Guston Courtesy the Estate and Hauser & Wirth Photo by Fredrik Nilsen
5 밀가루 공장 단지를 갤러리만이 아니라 유기농 레스토랑 마누엘라(Manuela), 미술 서점 등을 갖춘 대형 갤러리 공간으로 변신시켜 도시 재생 건축의 모범 사례를 남긴 하우저앤워스 로스앤젤레스. Hauser & Wirth Los Angeles, 2019 Photo by Elon Schoenholz ※ 전체 이미지 제공_하우저앤워스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