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최강 아트 페어는 어떻게 브랜드 파워를 키워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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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글 고성연

Art Basel in Basel 2022
강소국 스위스 북서부에 위치한 바젤은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자체 인구는 20만 명 수준이다. 엄격한 행정적 기준으로 20만 남짓이고 인접 도시권까지 포함하면 70만 명 가까운 규모로 커진다지만 여전히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화학과 제약, 금융 산업이 발달했고 독일, 프랑스와 맞닿는 국경 지대에 있는 만큼 외국인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다. ‘작지만 강한’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영역의 글로벌 행사가 많이 개최되는데, 해마다 6월이면 ‘아트 도시’로 부각된다. 세계 최강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Art Basel in Basel)이 열려서다. 1970년에 시작된 아트 바젤의 원조 도시가 바로 바젤이다. 올여름, 바젤의 아트 신은 마치 팬데믹 전으로 다시 돌아간 듯 활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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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트 페어에 다니는 이들의 캘린더는 거의 ‘비어 있는 달’이 없을 정도로, 심할 때는 도시를 이리저리 옮겨 한 달에도 서너 개 행사를 섭렵해야 할 정도로 빽빽했다. 갤러리스트든 컬렉터든 아티스트든 미술 기자든 ‘아트 페어족’은 대체 쉴 틈이 없다고 응석 어린 푸념을 하곤 했다. 물론 이는 2020년 우리 인류를 덮친 팬데믹 이전의 풍경이다. 코로나19가 어느덧 엔데믹 기조로 접어들면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는 저마다의 아트 페어를 다시 열기 시작했고, 미술 시장의 호조세에 힘입어 높은 실적을 낸 갤러리들의 환호성이 자주 들렸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하늘길이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닌데다 방역 규제 수준이 높은 탓에 다국적 인사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그리운 풍경은 오래도록 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아트 페어의 브랜드 가치를 따질 때 현존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아트 바젤의 본산인 스위스 바젤 행사가 드디어 올해는 원래대로 6월에 열린다는 사실에 몇 달 전부터 미술 애호가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흔히 ‘바젤 바젤’이라고도 불리는 ABB(Art Basel in Basel)는 연례행사지만 팬데믹 첫해에는 온라인 행사로, 작년에는 가을에 치러진 터라 초여름을 장식하는 글로벌 현대미술 장터다운 위용으로 돌아온 건 무려 3년 만이다. 이 같은 귀환을 환영하듯 VIP 프리뷰 기간을 포함해 일주일간(6월 13일부터 19일까지) 7만 명가량의 관람객이 아트 바젤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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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트 바젤이 돌아왔다’_도시를 감싼 열기
요충지 역할을 하는 강소 도시의 운명이 그러하듯 바젤 역시 내로라하는 국제 행사가 열리면 ‘숙박 전쟁’을 치른다. 프라이빗 제트기가 바젤의 하늘로 속속 몰려들고, 조금 괜찮다 싶은 레스토랑들은 예약이 꽉 차며, 시내 호텔에는 방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든 상황도 벌어진다. 올해 아트 바젤의 주 전시장인 메세 바젤은 3년 전처럼 마스크를 대부분 쓰지 않은 인파로 가득했는데, 특히 아트 페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최근 수년간의 트렌드가 여전히 이어지는 듯 VIP 프리뷰 기간이 외려 더 붐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백 투 노멀(back to normal)’이라며 감격에 겨워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아트 바젤까지 와서 ‘발품’을 팔지 않을 수는 없지만 조금은 한가롭게 거닐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도 많다. 더구나 이미 베니스 등을 거치면서 전시를 30개도 넘게 보고 다닌 경우라면? 작품을 사겠다는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미학적 충족을 위해 찾거나 간만에 미술계 지인을 만나러 온 경우라면? 실제로 바젤에서 만난 필자의 지인 중에는 아트 페어라는 플랫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탈리아 갤러리스트가(소속 작가 목록은 꽤 알차고 세계적인) 있는데, 그래도 아트 바젤은 예외적으로 ‘관찰’이라도 한다. 필자의 경우도 올해만큼은 아트 바젤은 기꺼운 ‘덤’에 가깝고 이 도시의 보석 같은 미술관인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다시 방문하기를 주요 과제로 삼기를 원했을 만큼 ‘유유자적 관람객’을 꿈꿨다. 사실 성공적인 아트 페어 브랜드를 지닌 도시라면 지극히 자본 친화적인 미술 장터를 미끼로 각 도시 고유의 인프라를 전폭 활용하는 ‘지역 축제’로서의 확장성을 일궈내기 마련이지 않은가. 모름지기 여러 면모를 지녀서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갖춘 도시를 무대로 할 때 아트 페어도 수명을 보다 길게 늘릴 수 있는 법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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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은 물론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콘텐츠 향연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발품’을 아주 열심히 팔았다. 6월 13일, 본격적인 장터가 열리기 하루 전에 도시 곳곳에서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이는 장외 전시인 파쿠르(Parcours)와 장내 대형 설치 작품을 전시하는 언리미티드(Unlimited) 등 예술성을 보여주는 ‘백미’로 일컬어지는 아트 바젤의 섹터들, 그리고 주로 신진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리스테(Liste), 디자인 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 같은 위성 페어의 프리뷰가 VIP들을 대상으로 일제히 펼쳐진다. 아트 바젤 VIP 카드 소지자라면 웬만한 위성 행사와 미술관 입장도 ‘프리 패스’다. 늘 주목받는 언리미티드 부문은 유명 갤러리가 대표 작가의 대형 작품을 설치해 ‘오픈 스페이스’에 펼쳐지는 미술관을 연상시키는데(하지만 판매된다), 올해는 70개 부스가 전시장을 채웠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국 작가 안드레아 지텔이 10년간에 걸쳐 제작하고 착용한 개인 유니폼 76벌을 입힌 설치대가 늘어서 있어 마치 패션쇼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들고, 이어 각양각색의 볼거리가 관람객을 압도해 눈과 발과 손이 절로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독일의 유명 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잉크젯 사진 시리즈(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요안 카포테(Yoan Capote)의 카리스마 넘치는 회화(갤러리 콘티누아), 로나 심프슨(Lorna Simpson)의 세리그래프 작품(하우저앤워스) 등이 줄줄이 미술관 등 기관에 판매됐다. 저녁에는 별도의 장소에서 ‘필름 세션’도 기다리고 있다. 첫날 상영 작가는 태국이 낳은 거장 아피찻퐁 위라세타꾼(Apichatpong Weerasethakul). 바젤에서 첫날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튿날, 오전 11시부터 퍼스트 초이스 VIP 카드를 지닌 고객들은 메인 전시장인 갤러리즈(Galleries) 섹터에 입장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북적북적했다. 다양한 문화와 세대를 폭넓게 아우르는 피처(Feature) 섹터와 떠오르는 작가들의 솔로 부스 18개를 차려놓은 스테이트먼츠(Statements) 섹터와 함께 메세 바젤 컨벤션 센터의 1, 2층을 채우고 있었다. 올해 ABB에는 40개국 2백89개 갤러리가 참여했는데, 그냥 지나칠 만한 부스가 없을 정도로 면면이 화려했다. 피카소, 칼더 같은 20세기 거장들은 물론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같은 동시대 거장들까지 신구작을 접할 수 있으니 다국적 미술관이 따로 없다. 요즘 가장 존재감 있는 글로벌 갤러리로 꼽히는 하우저앤워스는 아예 루이즈 부르주아의 커다란 청동 거미(높이 3.26m, 지름 7m 이상)를 들여놓아 단연 시선을 끌었다. 부스 전체를 감싸듯 존재감이 남다른 이 작품은 4천만 달러에 거래되어 기록을 새로 썼다. 전시장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전개된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몬드리안 전시, 그리고 쿤스트뮤지엄의 <피카소-엘 그레코> 전시 등 블록버스터 전시를 빼놓을 수 없다. 국경 너머 조금만 더 멀리 가면 독일 땅에는 디자인 성지로 여겨지는 비트라 뮤지엄도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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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와 글로벌 대전? ‘파리+’ 출범과 아시아 시장 이슈
세계 최강의 브랜드 파워이자 최대 규모인 ABB를 폭풍처럼 훑은 뒤의 감상은 ‘명불허전’이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아트 바젤 글로벌 디렉터 마크 스피글러는 “직접 대면하는 행사의 중요성을 여실히 증명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ABB에는 대형 신인들이 메가 갤러리 부스에도 꽤 두드러지는 몫을 차지했다는 평이 나왔는데, 글로벌 ‘블루칩’만이 아니라 참신한 기대주에 대한 관심의 공존이 엿보였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아트 바젤 부스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서구권 행사에서 선보인 작가들도 더러 눈에 띄었는데, 비엔날레 본전시에 소개되고 있는 이미래 작가(티나 킴 갤러리)도 ABB 스테이트먼츠 섹터에 소개됐다. 올해 한국 국적의 갤러리로는 국제갤러리가 유일하게 참가했는데, 제니 홀저 같은 글로벌 스타의 작품도 소개됐지만 유영국, 이기봉,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태국 작가) 등 아시아 작가들도 주목받았다(이들 작품은 판매로도 연결됐다). 아트 바젤의 발상지인 ABB에는 아무래도 구미 지역 갤러리가 많은 게 당연하다. 지역성을 띠는 홍콩, 마이애미 등의 에디션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왕래가 쉽지 않은 아트 바젤 홍콩(ABHK)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또 오는 9월 초 또 다른 굴지의 아트 페어 브랜드 프리즈(Frieze)의 서울 입성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올가을 프랑스를 상징하던 세계 3대 아트 페어 피악(FIAC)을 대신해 ‘Paris+, par Art Basel’을 론칭해 영토를 확장할 예정인 아트 바젤은 벌써부터 프리즈의 진출로 들뜬 아시아 시장도 의식해서인지 아트위크 도쿄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나서는 등 ‘최강 수성’을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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