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IX.1985’ (1985), India ink on paper, 35.4 X 24.7cm (unframed), Photo ©Andrea Ros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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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India ink on paper, 35.2 X 25.1cm (unframed), Photo ©Jens Zie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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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 작가 플로린 미트로이(1938~2002)는 1961년 부쿠레슈티 예술 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조교수로 임용됐다. 온화하고 겸손했던 미트로이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야망이 크지 않았던 그는 루마니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경력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 1960년대 중반, 루마니아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떨어져 나왔고, 곧 지역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서구 개방 흐름을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됐다. 이 혁신은 국수주의적 문화 부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반드시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미트로이는 당시 존재했던 신아방가르드와 공산주의풍 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
●● 1974년, 인생 대부분을 작은 작업실에서 보낸 그는 상식적인 모더니즘을 버리고 오랫동안 잊혔던 전통인 카제인 기반의 템페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수 준비한 나무, 유리, 캔버스, 종이에 손으로 혼합한 색소를 얹었다. 탄탄하고 정교하지만 공허한 작품에서 그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여겨지는 자살 행위, 유해하다고 여겨진 에로티시즘 등을 무자비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사후에 발견된) 7천3백여 점에 이르는 미트로이의 작품은 그의 위대한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절묘한 슬픔에 메스를 대듯, 각 작품에서는 가학, 비극, 예술적 완벽에 대한 황홀한 갈망이 묻어난다. 전시나 판매에는 관심이 없었던 미트로이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작업했다(생전의 개인전은 1993년 열린 전시가 유일했다). 당시 정권이 통제하는 예술에서 섹스뿐만 아니라 죽음도 완전히 금기시하는 주제였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비밀스러운 작품은 루마니아 전후 예술의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 미트로이의 초상화는 정면 또는 측면을 그린 여성과 남성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 초상화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한 작가의 사진 작업을 반영하는데, 대개 루마니아 시골에서 찍은 두건을 쓴 나이 든 여성들의 흑백사진 등을 묘사한다. 짙은 단색 배경 위에 드리운 강렬한 검은 선이 개개인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 삭막한 검은 윤곽을 만들어내는 붓질은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반면 상반신만 드러낸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은 종교적 모티브, 전통문화 요소 등을 갖추었다. 단조로운 배경에 공허한 표정을 한 눈 큰 인물의 시니컬한 표정은 신비로워 보인다. 미트로이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속 숨겨진 ‘진실’의 이면에 주목했다.
‘22.III.1994’ (1994), Tempera on paper, 92 X 65cm (unframed), Photo ©Sang T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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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with Burgundy Background’ (1986),Tempera on plywood, 46 X 38cm (unframed), Photo ©Alexandru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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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